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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사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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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사 5:1-7)

지난 4월, 방글라데시에서는 한 의류 공장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만 해도 1,000명이 넘는 아주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중국과 이탈리아에 이어서 세 번째 의류 수출국으로서 연간 200억 달러 규모의 옷이 세게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저나 여러분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방글라데시에서 만들어 진 옷이 있을 겁니다. 물론 싼 노동력이 세계 여러 나라의 다국적 기업이 그 나라에 진출하게 된 조건입니다. 약 5,000개의 의류 공장에서 지금도 360만 명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한 달 내내 일하고 받는 임금은 고작해야 40달러 안팎이라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5만원이 채 안 되는 금액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참한 상황을 지켜보다가 새로운 시도를 한 대학교수가 있었습니다. 무하마드 유누스라는 사람인데요, 그가 한 일은 다름 아닌 은행을 설립한 것이었습니다. 단 돈 20달러를 갚지 못해서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행을 시작하였는데요... 좀 특별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액을 대출해 주는 일을 합니다. 처음엔 함께 하는 사람이 없어서 자기 돈을 가지고 빈민들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많은 반대에 직면하였습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대출을 허용한다고 해서 보수적인 종교계에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일을 관철 시켰고,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30-35달러의 소액 대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일을 시작한 유누스 교수 본인에게도 그렇지만, 그것은 돈을 빌려 가는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도전이자 모험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과연 자신의 인생이 변화 될 수 있을지? 돈을 벌 수 있을지? 처음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적은 돈을 활용해서 자기들의 손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여성들에게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출 후 1년이 지나서 처음의 대출금을 완전히 갚을 수가 있게 되었을 때 쯤 되면, 그 여성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누스 교수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 내걸었던 구호는 ‘불가능이란 없다. there is nothing called impossible.'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일단 나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립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돼서 더 큰 꿈을 꾸게 됩니다. 처음엔 몰랐던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면서, 그 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발휘하고 싶어 하는 거죠. 따라서 매 번의 대출이 곧 도전이 되고, 돈을 갚을 때마다 자신이 몰랐던 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차차 잠재력을 발휘해나가면서 결국은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단단한 의지를 얻게 돼요...’ 
   
그 은행의 이름이 그라민 은행인데요... 조금은 특별하지 않습니까? ‘기회를 대출하고 변화를 이자로 받는 은행’이라고 합니다. 시작한지 3년 만에 약 300가구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시작한 이 특별한 은행은 이제 37개국에서 9,700만 명이 참여하는 놀라운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게다가 지금 방글라데시에서는 그라민 은행처럼 공익을 목적으로 한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기업이라고도 하지요. 다국적 기업들이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형편을 돕기 위해서 전기 회사를 만들기도 하고... 의류나 신발을 제조하는 기업이 생겨나는 데요, 이런 모든 사회적 기업들이 그라민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참 놀랍지 않으십니까? 이런걸 보면 정말 불가능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힘들고 가난하고 절망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선한 일에는 결코 불가능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유누스 교수는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의 어떤 판단이나 참여를 요구하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3절에 그런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과연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인지... 이런 어이없는 일이 생겼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을 독자들에게 묻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주민아, 유다 사람들아. 이제 너희는 나와 나의 포도원 사이에서 한 번 판단하여 보아라...’(v.3)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그 포도원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주인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우린 이런 궁금함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는 특별히 좋은 포도원을 만들어야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합니다. 먼저, 포도원의 부지를 선정하는데... 그는 포도원을 기름진 언덕에 자리 잡도록 합니다. 농사를 짓는데 토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텐데요... 생각해보면 기름진 언덕이란 얼마나 좋은 곳일까요? 가장 좋은 장소이겠지요. 토양이 아주 기름지고... 언덕에 자리 잡고 있으니 햇살은 얼마나 잘 받을 수가 있을까요? 아마 포도 농사를 짓기엔 기름진 언덕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단지 토양만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정성을 다하여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냅니다. 그리하여 포도나무가 뿌리를 잘 내리고 자라나는 데 조금도 지장이 없도록 모든 배려를 다 합니다. 아마도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아주 좋은 포도나무 종자를 골라서 심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요?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어 놓고서도 종자가 신통치 않으면 거기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포도원 주인은 혹시라도 누가 포도나무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까... 포도원 한가운데에 망대를 세웁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울타리를 두릅니다.(v.5) 포도를 수확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포도즙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시설까지도 다 갖추어 놓습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포도원에 쏠려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것도 그에게는 아주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아주 작은 것 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고, 모든 정성을 다하여서 포도나무를 돌봅니다. 그러면서... 포도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여러분도 기대가 되지를 않으십니까? 여러분이 만일 포도원의 주인이라면 얼마나 설레겠습니까? 아마 이제껏 맛보지 못한 최고의 열매가 곧 나올 거야... 아주 특별한 것이 곧 나오겠지... 그런 기대감 말이지요. 지난 가을에 어떤 분이 포도를 주면서 ‘이건 special edition 한정판입니다...’ 그런 말을 건넨 것이 기억납니다. 포도에 무슨 한정판이 있어... 그랬는데... 맛을 보니 정말 한정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 나오는 포도야 말로 그런 기대감을 가지게 하지 않습니까? 이 포도원에서 나오는 포도는 도대체 얼마나 달고 맛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포도원은 정말 세상에 존재하는 곳일까요? 이사야가 이렇게 아주 특별한 포도원을 이야기할 때... 이것은 그냥 가상의 포도원일까요? 어떤 중요한 것을 이야기를 듣는 청중들에게 일깨우기 위해서 포도원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포도원 자체가 이스라엘에겐 아주 친근한 공간이었습니다. 마치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친밀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비유를 이야기 하실 때, 포도원이나 포도나무를 소재로 하셨던 것도 그런 배경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가하면 포도주는 또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행하셨던 기적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것이었고... 종말에 있을 하나님 나라 잔치에서도 포도주는 아주 중요한 메뉴로 등장합니다.(이사야25:6) 
   
혹시 우리 이야기가 아니야? 눈치 빠른 사람들은 듣다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과연 이사야의 이야기를 수긍했을까요? 자기들이 세워진 곳... 지금 자기들이 선 곳이 기름진 언덕이라는 것 말이지요. 나아가서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 가져다 심은 포도나무... 그것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서 고르고 또 고른 아주 좋은 포도나무라는 것... 그런데 그 포도나무가 바로 당신입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을 당시 이야기를 듣던 청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혹시 이것이 우리들의 이야기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름진 언덕에서 포도원을 가구고 있네...’(v.1)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 그곳이 바로 기름진 언덕이다... 그런 말을 과연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인지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선 곳... 여러분의 가정이나 직업... 삶의 조건... 이런 것들은 정말 기름진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확신이 우리들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맨 정신으론 이렇게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보다 더 좋은 조건 속에서...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것입니까? 그렇게 본다면... 아마 우리들은 기름진 언덕은 커녕 메마른 황무지나 어두컴컴한 그늘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런 한계를 넘어서는 게 바로 믿음이 서는 자리가 아닐까요? ‘줄로 재어서 나에게 주신 그 땅은 기름진 곳입니다. 참으로 나는,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시16:6) 

어떤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도대체 지금 자기가 선 곳이 얼마나 좋길래 그곳을 기름진 곳이라고 이야기하며 나아가서 빛나는 곳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인지요? 아무래 좋으면... 빛까지 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이 믿음이지요...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저희 아버님이 춘천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내셨는데요... 모시고 갈 때마다 춘천 자랑입니다. 세상에서 춘천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하십니다. 제가 보긴 하나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다. 좋다고 하시는데요... 
   
하나님이 주신 땅이기에... 마치 포도원을 만드는 사람이 가장 기름진 언덕에 포도원을 세운 것처럼... 오늘의 내가 선 자리를 마련하여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줄을 띠우셔서 직접 선을 긋고...  그렇게 해서 이곳이 나에게 주어지게 되었으니... 그 곳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고... 빛나는 장소일 수밖엔 없습니다. 이런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로 인생을 행복하고 확신에 가득해서 살 수가 있는 것이지요. 지금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해서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지금 기름진 언덕에 서 있습니다.’ ‘당신도 역시...’ 

아주 좋은 포도나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당신이야 말로 아주 좋은 포도나무입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내가 바로 아주 좋은 포도나무입니다.’ 그런 기분으로 사시는 분이 있으신지요? 하지만, 오늘 이사야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바로 당신이 아주 좋은 포도나무이십니다...’ 이런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설교문을 작성하면서 제가 무의식적으로 했던 실수가 있었습니다. ‘아주 좋은’이라는 말을 자꾸만 ‘가장 좋은’ 이라고 쓰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고치면서... 둘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장 좋다...’ 그렇게 말할 때... 여기엔 비교의 성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좋다...’ 그렇게 말할 때엔 이런 비교의 성격이 없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포도나무’ 이렇게 번역하지 않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라고 번역한 것은 참 다행스런 일입니다. ‘가장 좋다...’ 이렇게 말할 때에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결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상위 1%로... 그런 말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정말 그런 사람들만이 ‘난 가장 좋은 포도나무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아주 좋다...’ 이렇게 말할 때는 느낌이 확실히 다릅니다. 이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들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영어 성경을 보니까 이 대목을 참 흥미롭게 번역을 하였습니다. 좋은... 이라는 말 대신에 선택이란 듯이 담긴 choice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choice vine’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포도나무란 다시 말하면 선택된 포도나무라... 포도원 주인이 이곳에 심으려고 미리 골라둔 포도나무다... 그렇게 표현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좋은 포도나무란 아주 특별한 나무를 말한다고도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미리부터 그것을 점찍어 놓고 선택한 주인의 손길인 것이지요. 
   
좋은 포도나무란 결국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기 자신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맞닿아 있음을 믿는 사람 말이지요. 나는 특별하다... 그런 자의 식을 가진 사람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15:15)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 때에 우리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기름진 언덕이다... 나를 이곳에 세우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확신을 가지고 오늘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나는 참 좋은 포도나무다... 그런 마음도 가지시길 바랍니다. 내가 좋은 포도나무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결과는 침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렇게 기름진 좋은 곳에 오래전부터 준비한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지만... 들포도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너무 시어서 사람들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인지요? 기대가 큰 만큼 포도원 주인의 실망은 참 컸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제 그는 포도원을 걷어치우려 하고 있습니다. 걷어 치운다가 보다는 그동안 포도원에 기울이던 모든 수고와 노력을 중단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포도원은 아무 것도 거둘 수 없고...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는 황무지로 변하고 맙니다.(v.6)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실망스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을까요?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해서 좋은 포도를 심었는데... 실제로는 들포도가 맺히게 되었을까요? 좋은 포도나무가 도중에 변질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주인에게 특별히 선택된 나무였는데... 그만 ‘난 특별해... 난 보통 나무들과는 달라...’ 그런 자의식이 희미해질 때... 그래서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되었을 때... 이렇게 포도나무가 변질 될 때... 거기선 더 이상 좋은 열매가 나올 순 없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어떤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이것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뭐래도 난 아주 좋은 포도나무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를 만드셨어...’ 이런 의식이 우리에게 있을 때...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지... 그런 의식이 없다면... 거기서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게 됩니다. 서민 은행을 시작한 유누스 교수는 이렇게 사람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비록 거리에서 자라나는 아이라도 얼마든지 황태자처럼 그렇게 멋진 모습으로 성장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런 자의식을 자기가 가질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황태자로 태어난 아이가 황태자답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내면 에 항상 그런 의식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야기합니다. 만일, 거리의 아이와 황태자가 서로 다른 처지에서 태어나고 자라난다면... 둘의 인생은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서 있는 곳은 기름진 언덕이고 빛나는 땅이다. 나는 아주 특별하다. 나는 아주 좋은 포도나무다...’ 설혹 우리가 믿음 안에서 자기의 그런 모습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처럼 흔들리기 쉽고 변질되기 쉬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정말 믿음의 사람으로서 세상을 잘 살아보려는 우리의 의지를 아주 간단하게 꺾어 버리는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주 특별한 사람일 수 없을 때... 내가 좋은 포도나무라고 하는 의식이 우리들 가운데서 사라질 때... 거기서부터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열매들은 주님이 기대하시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자기가 가진 독특함을 끝까지 지켜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결단과 마음가짐 속에 달려 있습니다. 나 자신이 어떤 경우에도 좋은 포도나무가 되기를 포기 하지 않을 때... 비록 현실에 힘들고 세상이 나를 좋은 포도나무로 인정하여 주지 않더라도...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항상 너는 좋은 포도나무야... 넌 얼마든지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어...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할 때... 바로 거기에서 좋은 열매가 맺히게 된다는 것을 마음속에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나 스스로가 좋은 나무가 되고.. 그렇지 못하고... 그 차이는 아주 미묘하게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Impossible 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불가능하다... 할 수 없다... 그런 뜻을 가진 말인데요... 여기에다가 점을 하나 찍으면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말이 됩니다. I'm possible. 난 가능해... 난 할 수 있어... 이렇게 읽을 수가 있겠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나중엔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오겠지만... 사실 처음엔 그 차이는 아주 작은 것입니다. 점이 하나 더 있느냐 없느냐? 단지 그 차이 뿐입니다. 끝까지 좋은 나무가 되고... 그래서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가지는 의지와 결심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서 기대하시는 좋은 열매... 그것은 무엇일까요? 7절의 말씀 속에서 이사야는 그것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선한 일’과 ‘옳은 일’ 이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서 기대하시는 좋은 열매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을 하고, 옳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거야’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때... 여러분이 받으신 느낌은 어떤 것인가요? 너무 평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더 근사하고 멋진 말도 많을 텐데... 어제 새벽에도 이런 말씀을 읽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말씀인데요... 영생을 추구하며 나온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누가18:22) 뭐 좀 이렇게 어려운 숙제를 내 주셔야...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다운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선하게 살아라... 올바르게 살아라...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우리에게 단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참 평범하게 느껴지는 가르침 같지만... 최근에 저는 여러 곳에서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최근에 수요일 저녁에 디도서의 말씀을 읽었는데요.. 그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대가, 이러한 것을 힘있게 주장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한 일에 전념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은 아름다우며, 사람에게 유익합니다.’(디도서 3:8) 

사도 바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그것은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주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마태5:16) 우리가 세상에서 빛이 된다는 것... 그것을 주님께서 친히 아주 단순하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찬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빛이 되는 것이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하게 살아라... 올바르게 살아라... 비슷한 말씀을 오늘 다시 이사야를 통해서 우리는 듣습니다. 선하게 살아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면서... 그 사랑으로 너를 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을 선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라... 의롭게 산다는 것... 정의를 이룬다는 것... 그것은 곧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을 도우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좋은 포도나무인 것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는 것이지요.  세상을 선하게 살고, 올바르게 살려 하는 마음... 그것이 우리들 모두에게 항상 있어서...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풍성한 것인지... 그것을 세상에 전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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