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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관점에서 (창 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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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관점에서 (창 45:4-8) 

서로 다른 관점

한 달 사이에 아들과 딸을 결혼시킨 부인이 이웃들에게서 인사를 받고 있었는데 누군가 물었습니다.
"따님은 어떤 사람과 결혼했나요?"

그러자 부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습니다.
"아,얼마나 좋은 사람을 사위로 얻었는지! 내 사위는 딸이 늦게까지 잠을 자도 아뭇 소리도 않고,날마다 미장원엘 보내고 저녁마다 외식을 한대요. 세상에!"

"정말 좋은 사위를 얻으셨군요.그럼 아드님은 어떤 여자와 결혼했나요?"

그러자 갑자기 이 부인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신경질적으로 말했습니다.
"말도 마세요. 생각만해도 불쾌해요. 여자가 얼마나 게으르고 사치스러운지, 아침엔 항상 늦잠을 자고 미장원을 거르는 날이 없어요. 그뿐인 줄 아세요? 집에서 밥하기 귀찮다고 매월 한 번씩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한다지 뭐예요! 가정교육을 그 따위로 시킨 그 부모도 참 한심해요."

한 번 웃고 넘어갈 이야기인가요? 우리 자신의 실수와 죄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남의 작은 허물과 실수에 대해선 이를 갈고 분노하며 다른 이들에게 떠들어대는,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은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가 당하였던 시련과 역경도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볼 때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것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신앙이란 나의 관점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결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관점에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보실 때에 우리의 삶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살고자 하였던 요셉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가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관점에서 삶은 시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많은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그 시험들을 당할 때마다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았기에 그 시험을 잘 극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인격, 믿음, 복종, 사랑, 그리고 충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시험하십니다. 시험,유혹,연단,테스트와 같은 단어들이 성경을 통틀어 200번 이상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참 믿음을 시험하셨고, 야곱이 아내를 얻기 위해 몇 년을 더 일해야 하는 시험을 당하였을 때도 야곱은 그 시험을 잘 이겨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유혹을 이기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종으로 팔려가고, 감옥에 들어가고 하는 시험을 당하였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시험들을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소한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서도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우리의 친절, 우리의 따뜻한 말 한 마디, 쓰레기를 줍는 것 등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주거나, 쓰레기를 줍거나,상점직원이나 식당 직원에게 친절하게 대할 때와 같이 아주 사소한 행동도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대한 변화, 미루어진 약속,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 응답받지 못한 기도, 이유 없이 받는 비난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시험을 받을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시험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 32:31절).

히스기야는 평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해왔지만 하나님은 그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를 홀로 두셨고,그 기간 동안 그의 인격을 시험하시고 약점이 무엇인지 나타내심으로 더 많은 책임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를 단련시키셨습니다.삶이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시험은 아주 크게 느껴질 수도 있고, 어떤 시험은 있는지도 알지 못할 만큼 작을 수도 있지만 이 모든 시험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매우 큰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절)

하나님의 관점으로 시험을 바라보고 그 시험을 잘 참고 견디면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둘째로,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삶은 위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산 요셉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의 위탁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시간,우리의 에너지,지적인 능력,기회,관계 그리고 자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돌보고 관리하도록 잠시 맡기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의 청지기입니다. 청지기의 개념은 이 땅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절) 

엄밀한 면에서 보면 이 땅에서 우리가 잠시 머무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가 여기에 있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지구를 잠시 빌려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재산이었고,우리가 죽고 나면 하나님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실 것입니다. 즉 우리는 땅에서 사는 동안 우리가 소유한 것을 잠시 동안 즐기고 사용할 뿐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피조물들의 관리를 맡기셨고, 하나님의 재산을 맡은 청지기로 임명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절)

하나님이 사람에게 제일 처음으로 맡기신 일은 이 땅 위의 하나님의 소유물들을 돌보고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역할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고,오늘날에도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목적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당신이 가진 것 중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있는가?그런데 당신이 가진 것이 모두 하나님에게 온 것이라면,스스로 이루지 않은 것들에 대해 왜 자랑을 하는가?”(고전 4:7절) 

일상적으로 우리는 “소유하지 않으면 돌보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지만,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 그것들을 돌보아야 한다”라는 더 높은 기준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신뢰할 만해야 하고, 스스로 그렇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전 4:2). 

즉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예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은혜와 훈련을 하게 합니다.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세상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게 되는 훈련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의 저자인 토미 테니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절대적인 항복과 갈망의 표시로 하늘을 향해 손을 드는 것인데 그것은 이 땅의 존재들이 하늘에 계신 창조주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함입니다.예배야말로 하나님께서 작은 공간의 한정된 관점에 갇혀 있는 우리들을 들어 올려 그분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도록 하시는 방법이다.”

“여러분은 예배를 통해 하늘 아버지께서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문제들로 가득찬 지상의 구덩이에서 올라와 높고 탁 트인 천상의 자리에서 세상을 보게 되며여러분은 높은 시야를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영혼을 끌어올리고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며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한다.”

오늘 본문의 요셉은 진정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창 45:4-8절)

하나님의 관점에서 요셉의 삶은 시험의 연속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시험이라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요셉에게 복을 주셨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요셉의 삶은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쓰실려고 애굽으로 보내셨고,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은 내 인생이라고 해서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이 시간과 세대를 위탁하신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진실한 성도는 하나님 앞에 ”왜“라고 묻지 않고 ”무엇을“이라고 묻는다”라고 하였습니다.진실한 성도는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을 주십니까?”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내 관점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문제를 보고 사건을 보는 것을 결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성공적인 예배는 우리의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내 안경을 버리고 하나님의 안경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관점을 갖는 훈련을 하게 되고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는 보다 높은 하나님의 관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삶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훈련이 되어 있다면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하게 넘기지 않고 하나님의 의도하심대로 축복을 누릴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내 관점을 벗어 던져버리시고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내 관점이라는 안경을 벗어던져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안경을 쓰시고 세상과 삶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누리는 복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보는 눈과 그리스도 없는 눈을 가진 것의 차이

그리스도 없는 눈도 볼 수는 있기에 꽃을 보고그리스도인도 꽃을 봅니다.그들은 같은 꽃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도 그리스도인 만큼 꽃의 이름을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 더 잘 말할 수 있고 더 잘 알 수가 있으며 그 꽃을 분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 꽃을 보고는 그 꽃에 대한 보고서를 쓸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 둘은 같은 것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어떤 지점에 있어서는 보고서가 같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봅니다. 위에 있는 하늘은 "더 부드러운" 푸른색! 비그리스도인도 하늘은 푸르다는 보고를 합니다. 그는 온전하게 옳지만는 하늘의 부드러움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을 쳐다보고는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늘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광선이 있습니다.

시편 8편의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그리스도인은 다른 것을 봅니다.그는 거기 있는 것만이 아니라,하나님의 손가락으로 하신 일을 보는 것입니다.두 사람 안에 있는 두뇌의 힘은 대동소이하지만 부차적으로 생각할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마음의 영이 그리스도인 안에서는 달라집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볼 수 없는 어떤 것이 형형색색의 빛깔을 내며 살아 있습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도 최상의 연료를 찾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울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울 것인가를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영적 연료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둘 것인가의 선택에 따라 우리가 그리스도에까지 다다를 수 있느냐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연료 탱크가 비어서 엔진이 꺼질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사람들은 과거의 영적 경험이 고갈되어 유독 가스만 내뿜고 서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최근의 영적인 유행이나 최근의 프로그램이라는 값싼 대체물로 채우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연료는 최대한의 효과로 인생의 경주를 달리게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채워지는 것,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는 것,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채워지는 것,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 하나님의 평안으로 채워지는 것,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지는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지는 것, 끊임없는 기도로 채워지는 것 등입니다.

하나님의 주유소를 끊임없이 방문해야 합니다.연료 측정 눈금이 연료 부족선상에 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관련된 것들로 채워져 있을 때 하나님이 아닌 죄악 된 생각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주유소에 차를 대고,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언어를 사용하여 “가득 채워 주세요!”라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점의 차이

"내성적인 학생은 생각을 진지하게 해서 좋고 사교성이 적은 학생은 정직하고 과장되지 않아 좋으며 소심한 학생은 실수가 적고 정확해서 좋고 질투심이 많은 학생은 의욕이 넘쳐서 좋으며 말이 많은 학생은 지루하지 않아 좋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은 겸손해서 좋으며 직선적인 학생은 속정이 깊어 좋습니다.


은혜의 각도로 바라보기

사람이든, 식물이든, 물건이든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위치와 각도가 있습니다.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추하게 보이기도 하며, 날카롭거나 부드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무 한 그루도 보기에 좋은 위치와 각도를 잡아 심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그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을 텐데, 그것은 찾아보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방향, 시각으로만 바라보면서 미워하거나 무시합니다. 

사람은 그가 누구냐인 것 보다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중요도와 의미가 크게 달라집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은혜의 각도에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마다 다른 성격과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새롭고 놀라운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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