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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교회를 위하여 (고전 16: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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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교회를 위하여 (고전 16:15-20)

지금 일년 중 가장 무더운 여름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무더위를 피하여 피서를 하느라고 해수욕장과 산과 강, 계곡이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더위에 지친 나머지 청량음료 같은 시원한 것만 찾고, 에어컨이 팡팡 틀어져 있는 시원한 곳만 찾고 있는 때입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우리를 시원하게해주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철 삼복더위에 지친 우리들에게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얼음냉수 한잔은 우리를 시원하게 해줍니다. 뜨거운 뙤약볕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우리를 얼마나 시원하게 합니까? 

무더운 여름철에 열심히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다가 에어컨이 팡팡 틀어져 있는 사무실에 들어오면 얼마나 시원합니까? 답답한 도심속에 있다가 꿈에도 그리던 휴가를 떠나기 위하여 탁트인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면 얼마나 마음이 시원합니까? 지난번에 성경공부를 마치고 성도님들과 잠깐 예당저수지에 갔었는데 뻥 뚫린 고속도로와 넓은 저수지가 마치 바다에 온 듯 시원했습니다.

1.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성도들(:15-18) 

오늘 본문 18절을 봅니다.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이렇게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본문에서 마음을 시원케 하였다는 말은 무슨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해 있을 때 답답한 마음이 확 풀어졌다는 말입니다. 

세상일이 힘들어 고민하고 있을 때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낙심하고 좌절해 있던 마음에 용기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17절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에 지쳐있던 자신에게 힘을 주고, 큰 용기를 주고, 마음을 시원케 한 성도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들이 바로 본문의 주인공 스데바나와 브드나도, 아가이고 세 사람입니다. 

사실 주의 종인 목사는 물론이고 주의 일을 하는 성도님들도 주님의 일을 하면서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고 짜증날 때가 있습니다. 이것저것 필요없이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 누가 붙들어 주는 손길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다가 지쳐 있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주고, 격려하며, 박수를 쳐주면 새로운 힘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남을 붙들어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칭찬해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사람이 있는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 어디에서든지 누구에게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의 바울을 찾아왔던 세 사람은 바울을 찾아와서 그와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들도 이들처럼 사람들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주의 종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를 생각하면 속이 시원하고 기쁘고 즐거운데 어떤 성도는 마음이 답답하고 속이 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시원케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을 시원하다고 평가할 때 어떤 사람을 시원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까? 

솔로몬은 잠언 25:13절 말씀에서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스데바나처럼 주님과 몸된 교회와 주의 종과 성도들을 위하여 충성하는 사람이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입니다. 

1) 스데바나처럼 몸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사람 15절

본문 15절을 봅니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 자라”고 했습니다. 아가야는 지금의 그리스지역이며, 그곳에 고린도가 있었고, 그 지역에서 전도의 첫 열매가 바로 스데바나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 지역을 선교하기 위하여 먼저 아테네로 가서 선교를 시작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탈진상태에 이르렀고 주님의 사역을 포기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이때 찾아간 곳이 고린도지역이었고 이곳에서 전도하여 처음 얻은 전도의 열매가 바로 스데바나였습니다. 이 스데바나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양육을 받아 믿음이 자라나서 이제 교회를 섬기는 일꾼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스데바나는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15절) 

여러분들도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성하십시오. 남을 섬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굳게 작정하고 섬겨야 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스데바나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나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모두 다른 성도들,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로 작정하십시오. 그리하면 가족 전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가정이 될 것이고,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특히 자식들에게 남을 섬기고 남에게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들이 남들에게 욕을 안먹고 손가락질 안당하고 사랑받고 칭찬을 받게 됩니다. 자기 필요할 때만 나타나서 남의 단물 쏙 빼먹고 사라지는 이기주의적인 사람들은 정말 얄미운 사람들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스데바나는 이렇게 남들에게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사람이었고 형제의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그들을 잘 돌보며 섬기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섬기는 자가 되니까 모든 성도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이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도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신앙이 아름답게 성장하는 스데바나를 사도 바울은 바울 자신과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다고 서슴없이 칭찬했습니다. 

이렇게 스데바나처럼 섬기는 자가 될 때 주님과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섬김을 받던 사람이 섬기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

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0:45절에서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기까지 섬긴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지 말고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오늘 본문의 스데바나처럼 하나님과 성도들과 이웃을 섬기기로 작정을 하십시오. 먼저 믿은 여러분들이 이제 나중에 믿은 성도님들을 잘 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그들의 마음이 시원해져서 그들도 섬김을 배워서 또 남을 섬김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시원케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낮은 자리에서 헌신하고 섬기는 분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제가 더욱 은혜가 되고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뻥 뚫립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나는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이니 나만 섬겨라, 나는 세상에서도 알아주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니 교회에서도 나만 알아주고 나를 높여주어라”고 한다면 이런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답답하게 하고 짜증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내가 하는 일이 작고 하찮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사랑을 가지고 남을 섬길 때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한 여름날 얼음냉수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그 어디서든지 낮은 자리에서 상대방을 섬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스데바나처럼 성도들과 협력, 순종할 줄 아는 사람 16절

본문 16절을 봅니다. “이 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과 성도들을 시원케 하는 사람들이 스데바나만 아니었습니다. 스데바나와 함께 협력하는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그리고 19절의 아굴라와 브리스가, 다른 서신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를 위하여 협력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서로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 주님과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합니다. 

시편 133:1에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에 협력할 때 공동체를 아름답게 하고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서로’라는 말을 많이 나옵니다. 서로라는 말이 신약성경에만 120번이나 나옵니다. 서로를 위하여 힘을 모으고 서로 하나 되어 가는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해 줍니다. 서로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룰 줄 아는 사람이 주님의 마음과 성도들을 시원케 합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르비딤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것은 모세 혼자서 이룩한 일이 아닙니다. 모세의 피곤한 팔을 붙든 아론과 훌이 없었다면 이런 승리는 보지 못했을 것이고, 여호수아와 앞장서서 전쟁에 나간 군사들이 없었더라면 이런 승리는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합심하여 나가는 길에 승리가 있고 큰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서로서로 없어서는 안될 귀한 사람들입니다. 서로를 아끼고, 서로 존경하며,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서로 돌아보며 교만하지 말고 겸손히 서로 순종하며 섬기고, 사랑하고 협력할 때 주님과 주의 종과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3) 스데바나처럼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사람 17절

본문 17절을 봅니다.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여기서 부족함을 채워준다는 것은 적은 재산이나 물질적 궁핍같은 외적인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믿음이나 소망, 사랑 같은 내적인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본문의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고린도 교인들의 소식을 바울에게 가져와 고린도 교회 형편과 사정을 전해 줌으로 바울의 애타는 심정을 시원케 한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믿음을 북돋워주고,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일은 상대방의 부족한 것을 채워서 상대방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서로 서로 부족한 것에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으로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힘없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시고 목숨까지 주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주님처럼 목숨은 주지 못할망정 상대방 부족한 것까지 빼앗지는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헐뜯고 비난하여 자신이 유익을 얻으려고 하면 자신도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주신 것처럼 우리 또한 남의 허물과 약점을 덮어 줄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의 부족한 것을 채워 줄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부도 돕는 배필로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짝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남의 부족한 모습이 나에게 보이면 아! 하나님께서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라고 나에게 그 부족한 부분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약점을 물고 늘어지고 헐뜯지 말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어떻게 하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주의 종인 저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주십시오. 저도 사람이지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제가 부족하다고 헐뜯고 비웃지 마시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우리 목사님의 부족한 점을 내가 어떻게 하면 채워줄 수 있을까를 연구하십시오. 이렇게 서로를 위해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서로 칭찬과 격려와 위로를 하면서 지내는 아름다운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오늘날같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답답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답답한 문제를 속 시원하게 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교회에서도 주님의 마음을, 주의 종의 마음을, 성도들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 스데바나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스데바나처럼 작정하고 성도들을 섬기기를 힘쓰는 성도들,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 줌으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기쁘게 해주고 시원하게 해주는 성도들, 서로 돕고 합력하여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맡겨주신 큰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성도들이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무더운 여름날의 얼음 냉수같은 성도들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렇게 스데바나처럼 주님의 마음과 주의 종의 마음과 성도들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 무더운 여름날의 얼음 냉수같은 시원한 성도들이 되어 우리 주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어 아름다운 교회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그 집에 있는 교회 - 서로 교제하는 교회(:19-20)

본문의 아굴라와 브리스가는 부부로써 천막을 만들어 팔다가 같은 직업의 바울과 만나게 되어 감화받고 믿게 된 후 은혜받아 결단하고 바울을 전적으로 후원하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울을 도왔습니다. 바울은 일평생 그들을 잊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 집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정교회입니다.

그러니 늘 성도들이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교제하는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교제는 성령 안에서 서로 소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들 사이에 막힘이 없이 서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랑의 교제는 서로 아픔,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때 더욱 깊어집니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나아가서 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만의 교제를 뛰어넘어서 아시아의 교회들과 유럽 교회들 간의 교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가 서로 사랑으로 교제할 것을 가르칩니다. 교회는 성도들과 다른 교회와의 사이에서 서로 교제할 때 아름다워집니다.

섬김, 협력, 순종,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 사랑으로 교제하는 아름다운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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