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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막 건립의 메카니즘 (출 35:1-1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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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막 건립의 메카니즘 (Making the Tabernacle)
성경 : 출 35:1-10, 20-29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다 만들지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무릇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모든 자가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모든 자는 가져왔으며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세우시고 그 뜻에 따라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나타난 주님의 거대한 뜻은 인류의 구원에 있습니다. 주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주의 종들에게 주님의 뜻을 명하셔서 백성들에게 이를 선포하게 하시고, 백성들은 받은 말씀을 순종하므로 그 뜻을 이루게 됩니다. 

구약에서 인류 구원을 위한 주님의 뜻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으로 ‘성막(Tabernacle)'을 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내 산 성막 건립은 대략 다음의 네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제 1단계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금식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성막 건립 명령을 받은 단계입니다(제 25-34장). 

제 2단계는 모세가 여호와의 성막 건립 명령을 백성에게 전달하고 백성은 이에 소요되는 물자들을 준비하는 단계입니다(35:1-36:7).
 
제 3단계는 준비된 물자를 가지고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중심으로 수많은 자원자들이 성막의 각종 기구들을 완성한 단계입니다(36:8-39:43). 

끝으로 제 4단계는 이동용 조립식 성소였던 성막을 최초로 조립하여 그 기념 봉헌식을 거행함으로써 모든 역사를 필하고,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인 구름 기둥이 임함으로써 신적 승인까지 끝났던 단계입니다(제 40장). 

오늘 말씀의 핵심은 성막 건립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어가는 메카니즘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는 데 있습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만나고 교제하실 성막을 땅 위에 세우시려는 뜻이 있으셨고, 이 뜻을 모세에게 명하셨습니다. 이 뜻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은 백성들은 감동되어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우리가 말씀 안에서 하나 되어 명령하신 말씀대로 준행하여야만 합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하여, 성막이 세워지는 과정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메카니즘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여호와께서 성막 건립을 명령하심 (= 뜻을 명하심)
 
4절= “···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이 이러하니··· ”
 
본문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말씀은 ‘여호와께서 성막 건립을 명령하셨다’는 대목입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이 이러하니” 라고 했는데, 이를 직역하면 “이것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그 말씀이다” 입니다. 1절에도 유사한 표현이 있는데, 이는 성막 건립의 명령은 신적 기원을 가진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막의 건립은 성막 건립 자체에 부여된 의미보다 하나님 말씀의 성실한 준수를 통하여 성막을 건립할 때 그것을 통하여 계시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이 홀로 주관하시는 구원 사역의 진수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데서 비로소 참다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본문 2-3절에서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을 기념하는 안식일 규례를 엄하게 주신 것은 성막 건립에 준하는 중요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7일을 주기로 하여 돌아오는 안식일을 다른 날들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 준수를 통하여 다른 계명도 성실하게 준수하겠다는 다짐을 드러내보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정하신 뜻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먼저 모세에게 이 뜻을 명하셨습니다. 안식일 계명의 경우 ‘불도 피우지 말라’ 하셨고, ‘이 날에 일하는 자를 죽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4절 이하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 건립을 명확히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는 명령자의 위치요 인간의 자리는 명령을 받는 피조물의 위치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부족한 것도 없고 채워넣어야 할 그 무엇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66권 속의 모든 명령은 하나님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유익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성막을 지으라 명하심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성막에서 자기 백성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과 교제하시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수직관계이고 주종관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은 순종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이행여부는 여러분의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명령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행하심을 보며 체험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 아닌 것을 명령으로 생각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견강부회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걱정입니다.
 
몇 년 전 개봉된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은 1860년대 초 뉴욕의 격동기에 이민자와 거주자의 대립, 남북의 대립과 정치 세력간의 갈등, 상류층과 빈민층의 괴리 등을 보여주는 수작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으로 발생하는 폭동과 전쟁 장면에서 적(敵)으로 규정된 양자가 각자의 편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대비시키며 보여줍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찾으며, 십자가에 입을 맞추며,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장면들...
 
내가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적도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편도 하나님은 우리편이라 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누구의 편일까요? 

인간들은 각자의 사고에 따라, 신앙의 색깔에 따라 하나님을 팔아 자기의 이익을 챙기고 자신을 정당화하며 죄의식을 씻기도 합니다. 그러나 잠시 우기기를 멈추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가 돈다고 말한 이를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했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노예제도를 신앙화 했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성을 비하했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과연, 지식의 발전과 역사의 흐름과 나 자신의 이익이나 시대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나 또한 오판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까? 나만이 옳고 내 편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내가 하나님의 편이라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한번쯤 생각해 보고,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나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을 쉽게 정죄하거나 짓밟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링컨이 했다는 말처럼, 하나님이 우리편인가를 염려하기 이전에 내가 하나님의 편인지... 늘 염두에 둘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식하는 하나님의 뜻과 명령은 철저하게 성경에서 나와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성경의 명령과 계명을 받아들이고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철저히 받는 성도의 삶입니다.

 
2. 모세가 백성에게 성막 건립 명령을 전달함 (= 뜻을 전달함)
 
4절=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고,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 곧 성막 건립 명령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모세가 전하는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았습니다.
 
모세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뜻을 알리셨고, 그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패턴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뜻을 예언케 하셨습니다. 노아는 오랜 세월 ‘의를 전파’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노아의 말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성 심판에 대한 자신의 뜻을 알리셨고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받으셨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기도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선 각 시대마다 주의 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토록 하셨고, 종들은 백성들에게 그 말씀을 전해 왔으며, 지금도 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그 말씀을 바로 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갖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하나님과 통한다는 것은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에 통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전달자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전해야 하고, 듣는 자도 성령님의 감동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되, 듣는 이들의 마음 깊이, 심령 속까지 닿을 수 있도록 전해야 합니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중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니고데모는 신분이 세리였고 키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설교를 듣던 성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가 은혜가 있어 그런줄 알고 더 큰 소리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사는 동네에 오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보고싶어 나아갔으나 키가 작아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쯤되자 성도들이 "와" 하고 웃어버렸습니다. 그때서야 목사님은 실수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순간 재치를 발휘했습니다. 

“그때 삭개오가 나타나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그 자리는 내 자리야, 빨리 내려와.” 

여러분, 말씀 전하는 자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그리고 듣는 회중은 성경에 근거하여 선포되는 목회자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나 선지자 등을 통해 선포된 말씀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받고 순종했듯이, 신약의 성도들은 강단을 통해 선포되는 목회자의 설교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목회자가 성경에 근거하여 말씀을 선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불순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의 종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감없이 그대로 전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 건립을 예비케 했습니다. 

4절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온 회중’을 상대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성막건축을 위한 헌물에 대하여 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헌신을 통하여 성막이 건축되기를 원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일부의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온 성도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함께 협력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의 건축이나 선교 사업, 구제 사업, 혹은 교육 사업 등 어떤 일을 하든지간에 한 사람도 방관자적 자세를 지니지 말고 온 교회 성도들 모두가 다 함께 동참해야 합니다. 

모세가 온 회중을 상대로 주님의 뜻을 전달했듯이, 참 주의 종이라면 또한 온 회중을 상대로 주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설교자입니다.
 
제가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1분 묵상> 하나를 소개합니다. 마태복음 12:50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나님의 뜻’이 선포될 때 다른 모든 것은 그 앞에 잠잠해야 한다. 가장 위대한 피조물이라도 ‘아버지의 뜻’ 앞에서는 스스로 겸비(謙卑)해야 한다. 

혈연 관계보다 더 가깝고 밀착된 공동체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공동체의 성도들에게 속하시고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것은 형제와 자매와 모친이 서로에게 속하는 것과 같다.
 
‘가정같은 교회, 가족같은 교우’ -- 우리 서현인의 달콤한 고백입니다.
 
 
3. 백성이 자원하여 예물을 드림 (= 도구로 사용됨)
 
21절=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했을 때, 백성들은 자원하여 성막에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백성들은 아침마다 연하여 예물을 드렸는데 36:5,6에 보면,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21절에 보면, 마음이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 건립에 필요한 모든 예물을 여호와께 드렸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자’는 동일한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서 마음의 자원함이 주님의 감동하심의 결과로 나타났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신앙심이 있어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마음을 갖도록 은혜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은혜로 우리를 감동시키셔서 주의 종으로부터 받은 주님의 명령을 즐거이 자원하여 순종하도록 이끄시고, 이를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뜻을 이루시는 과정을 보십시오. 전달된 명령을 주님의 백성이 자원하여 준행하는 것, 즉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백성을 통하여 주님은 당신의 뜻을 이땅에 펴 나가십니다.
 
인간이 피조물 가운데 가장 복되고 위대함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음이요, 주님께서 뜻을 알리시고 전달케 하시며, 뜻을 이루시는 도구로 사용하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점에서 참으로 영광스런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아는 성도는 자신의 귀한 것도 아낌없이 드리는 법입니다.
 
22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26절=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
 
그리고 27, 28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족장이 일반 백성들보다 더욱 값진 물건들을 하나님 앞에 바쳤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
 
여기 족장들은 신약 교회의 중직을 맡은 직분자들에 비교됩니다. 모든 성도가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특별히 하나님께로부터 직분자로 세움을 입은 자들은 다른 성도들의 본이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9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 건립에 필요한 예물을 드림에 있어서 즐거움이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드림으로 얻는 즐거움은 세상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함으로 느끼는 그것과는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주님께 헌신함으로 누리는 즐거움은 하늘에 속한 즐거움으로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즐거움인바, 바로 그러한 이유로 주님께서는 보물을 이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권고하셨던 것입니다(마 6:19,20).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사모하십시오. 이를 위해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나라 일에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독일 아시스레벤 교회당에서 찬양대가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소년의 노래 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습니다. 지휘자는 잠시 연습을 중단하고 문을 열어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열 두 살쯤 되는 소년이 서 있었습니다. 

“너 거기에서 뭐하고 있니?” “찬양대원이 되고 싶어 노래를 불러보았어요.” “우리 찬양대는 모두 어른들 뿐인데 네가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소년은 이 질문을 받고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습니다. 

“네, 예수님이 써 주시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열심있는 소년이 바로 16세기 종교개혁의 기수 마틴 루터였습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타난 성막 건립을 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헌신은 헌신의 모범답안을 보여줍니다. 백성들은 모세로부터 예물을 드리라는 명령을 받고 즉각적으로, 자발적으로, 그리고 아낌없이 성막 건축에 필요한 예물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리하여 모세와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서 그 소임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기뻐하셨고, 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성막에 영광의 구름으로 임재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주님과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교회를 위한 이러한 헌신이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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