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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전(殿) (대상 2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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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전(殿) (대상 22:2-19)


제가 아직 미국에 있을 때에 경향교회 강서 성전이 건축되었고 그 입당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때에 저도 참석했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비쳤던 그 규모와 아름다움은 실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새 성전을 보면서 그런 화려하고도 웅장한 건물 자체보다 훨씬 더 값지고 귀중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성전을 짓기 위하여 그야말로 모든 힘과 정성을 다 바친 경향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정말 이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면서 자신의 삶을 바로 이 경향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온통 바치려는 성도들의 신실함과 열정이 그 새 성전을 통하여 제 마음에 가장 아름답고도 멋지게 비친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하면 우리 머리에는 퍼뜩 그 아름답고 화려함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실제로 그 성전은 당시로서는 가장 귀하고 비싼 재료들을 다 사용하고 최고 수준의 기술을 다 동원해서 건축된, 그야말로 시대의 최첨단이요 최고급의 건물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솔로몬의 성전에 있어서도 그 진짜 아름다움은 그런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성전을 지어 바친 성도들에게 있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을 통하여 예나 지금이나 진정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교회는 과연 어떤 성도들을 통하여 세워질 수 있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생애 최고와 전부를 다 바치는' 성도들이 실로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함께 세우게 됩니다. 

본문 2절부터 5절에 기록하기를 "2다윗이 명하여 이스라엘 땅에 우거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3다윗이 또 문짝못과 거멀못에 쓸 철을 한 없이 준비하고 또 심히 많아서 중수를 셀 수 없는 놋을 준비하고 4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 5다윗이 가로되 내 아들 솔로몬이 어리고 연약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전은 극히 장려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앞장에 나오듯이, 다윗은 자기가 직접 성전을 건축하고 싶은 소원을 가졌었지만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을 때에, 자신의 남은 인생을 다른 방법으로 헌신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것이 본문 5절 끝에서 다윗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러므로 내가 이제 위하여 준비하리라"는 결단이었습니다. 
비록 자기가 성전을 직접 짓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성전을 짓기 위한 준비만이라도 자신의 남은 전 인생을 완전히 다 바쳐서 완수하려 했던 것입니다. 
2절부터 5절까지의 네 절 속에 "준비"라는 단어만 해도 다섯 번이나 나타날 정도이니 다윗의 각오가 얼마나 굳건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남은 반평생의 인생을 두고 그런 확실한 목표를 굳게 정했던 다윗은 그 실천을 위해서도 역시 전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나중에 14절에 나타나는 대로, 그는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 그리고 "놋과 철은 그 중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예비했다"고 했습니다. 
그 양이 오늘날의 액수로 환산해서 얼마나 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하여튼 문자 그대로 "심히 많은" 액수였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14절 상반절에 보면 다윗은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이런 것들을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이 '환난 중에'라는 말은, 무슨 특별한 환난을 당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처럼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아주 힘든 일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그 '심히 많은' 액수의 자금을 모으는 것이 그저 굴러 들어오는 대로 저절로 된 일은 결코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왕이고 아무리 연전연승을 하기는 했지만 그와 같이 막대한 재물을 준비하는 것은 정말 다윗으로서는 피땀을 다 짜내는 듯이 어려운 일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기 전에 다 준비하겠다는' 결심 하나로써 그 모든 것을 다 해 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처럼 성전 건축을 위한 기금과 자재를 힘써 준비했을 뿐 아니라, 2절에 보니 돌 다듬는 일을 이미 시작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으므로 건축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미리 해 두는 것이 지혜로운 계획이었으며, 또한 다윗이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어찌하든지 조금이라도 더 많이 성전 건축에 참여하고 싶어 했던 심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처럼 귀금속 자재와 돌 뿐 아니라, 4절에 보면 당시로서는 최상의 목재였던 백향목 역시 시돈과 두로로부터 수운하여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준비하겠다.'라는 다윗의 서원은 이처럼 그의 남은 평생을 통해 자신의 모든 힘과 정성을 완전히 다 쏟아 바침으로써 이행되었습니다. 
바로 그 결과 다윗의 인생 결론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너무나도 명예로운 한 문장, 곧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에 어느 목사님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자녀들이 고인이신 아버지께서 생전에 제일 좋아하셨다는 어떤 노래를 장례식순 중에 오디오 기기를 통해서 조문객들에게 들려주었는데, 그것은 찬송가가 아니라 저도 잘 모를 무슨 클래식 음악이었습니다. 
고인께서 그처럼 음악에 조예가 깊고 고상한 음악을 좋아했다는 점은 충분히 알겠지만, 적어도 평생을 목사로 사셨다는 분의 장례식장에서는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어떤 장례식에서는 순서지에 나오는 고인의 약사에 고인께서 생전에 장로나 집사나 권사로 충성했다는 내용만 있고 어느 교회인지는 전혀 기록이 없는 경우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물론 가는 곳마다 어느 교회에서든지 충성스럽게 섬겼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의 생애에서 교회 직분이 중요한 만큼 그 직분을 가지고 정말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겼다면 그 섬긴 교회 이름도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제 머릿속에서 잠시 지나갔습니다. 
'아무 성도는 어느 교회에서 이런 직분을 받아서 이렇게 주의 일에 충성하면서 그 생애를 마쳤다.'라는 것은 적어도 한 사람의 인생을 정리하는 약사로서는 가장 명예로운 문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나중에 재림하신 예수님 앞에서 "대충 이사 가는대로 여기저기서 적당히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라고 자신의 인생을 보고하시겠습니까?
"내가 내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가 네게는 그렇게 값싸게 여겨지더냐?"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반문하실 때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그야말로 '숯불이 머리 위에 올려진' 것 같은 부끄러운 구원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제가 부족하지만 경향교회를 중심으로 저의 남은 모든 생애를 다 바쳤습니다. "라고 우리의 인생 약사를 정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계를 받은 교회'를 중심으로 각자 생애의 최고와 전부를 다 바치기로 기쁘게 서원하고 또한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는' 헌신의 결산을 주님께 바침으로써, 이 경향교회를 실로 '극히 장려하고도 만국에 명성과 영광을 떨치는' 교회로 함께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대대로 여호와를 섬기는' 성도들이 정말 멋진 교회를 함께 세우게 됩니다. 

6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에 "6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7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8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9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10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저는 늙은 다윗이 어린 솔로몬을 불러 앉혀 놓고 자신의 심령 가장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인생 간증을 남겨 주던 이 장면을 상상해 보면서 절로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역사상 여러 열왕들이 수도 없이 지나갔지만, 자기 뒤를 이어 즉위할 후계자를 앞에 두고 이런 뜨거운 말을 남길 수 있었던 왕이나 대통령이 다윗 외에 누가 있었겠습니까?
  
이 대화 속에는 그런 상황에서 흔히 있었을 정권 유지를 위한 요령이나, 백성과 신하를 다루는 노하우나, 전쟁에서 승리하는 계책 따위의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성전 건축을 내가 직접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피 묻은 과거 때문에 그 일을 못하게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대신에 네게 이 성전 건축의 과업을 물려주시고 이루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지금 네가 왕이 되는 것은 바로 이 한 가지 중차대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다." - 이스라엘 역사상 최전성기를 이룬 두 부자(父子) 성군들 사이에는 이런 차원 높고도 뜨거운 사명 전수만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후에 다윗은 본격적인 성전 건축에 대한 지시를 그의 마지막 소원으로, 마치 유언처럼 솔로몬에게 남겼습니다. 
  
11절부터 16절에 "11내 아들아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며 네가 형통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며 12여호와께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너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더욱 원하노라 13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 14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를 셀 수 없을만큼 심히 많이 예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예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15또 공장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16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이라는 이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너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신앙을 지켜라.'고 했습니다. 
성전 건축이라는 외형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니라, 그 사명을 통하여 솔로몬이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신앙을 순수하게 지키게 되는 것이 다윗의 최종적인 바람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4절에 나와 있는 대로 다윗이 보기에 솔로몬은 아직 "어리고 연약한" 사람에 불과했고 반면에 그가 완수해야 할 성전 건축은 실로 중차대하고도 막중한 과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런 솔로몬을 이제 이 일을 완수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강한 사명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윗이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다. 그리고 내가 이 일을 위하여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놓았으니 너는 조금도 어려워하거나 걱정할 것 없이 그저 일어나서 일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솔로몬을 격려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너, 성격이 온순하고 유약한데 그런 모습으로 신하들 앞에 나타나면 왕으로서의 권위를 세우지 못한다. 처음부터 꽉 잡고 세게 나가야 한다.'라는 따위의 정치적 조언을 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아라. 일어나서 이 일에만 충성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형통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다.' - 이처럼 다윗은 자기 아들 솔로몬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인인 동시에 충성스러운 사명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마지막 유언처럼 당부하며 격려해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 교회를 통하여 이와 같은 '신앙의 계승, 사명의 계승'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중심의 신앙생활이 바로 나와 내 아들, 나와 내 딸이 함께 부모자녀로서 형성되어야 할 공감대의 제1호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성경 말씀에 대한 순종과,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교회를 자자손손이 충성스럽게 섬기는 사명이 부모로부터 자녀와 후손에게 영적 유산으로 전해지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심각한 세대 단절입니다. 
그것은 문화의 차이나 사고방식의 차이 정도로 유발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최악의 단절, 바로 백보좌 심판대 앞에까지 그대로 이어질 영원한 단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부모 세대는 지금 자신이 섬기고 있는 이 교회를 자기만 신앙생활을 하고 끝날 곳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은 나름대로 신실하게 교회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 자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안중에 없는, 그런 무책임한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 교회를 통하여 자신뿐 아니라 내 자녀에게도 똑같은 하나님 경외의 신앙, 더 뜨거운 사명감, 더 큰 선한 사업에 대한 서원들이 계속 이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향교회의 을지로 때부터 온갖 고생을 하면서 이제까지 살아왔다. 그러니 이제 너희들은 어찌하든지 공부 잘하고 좋은 직장 얻어서 아버지 어머니의 노년에 호강을 시켜 주어야 한다." - 혹 이런 유치한 생각이 여러분의 자녀들을 향한 소망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평생토록 보여 주었던 그대로 너도 일어나서 일을 해야 한다. 너도 어디를 가든지 꼭 교회중심, 성경중심으로, 그래서 하나님중심으로만 살아야 한다. 그러면 너의 생애도 정말 만사에 형통할 것이다." - 우리는 자녀에게 적어도 이런 고차원의 교육을 시킬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선한 일에 충성을 다함으로써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이 귀한 유산을 자자손손 대대로 전해 줌으로써 이 경향교회를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멋진 교회로 더욱 부흥시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시대적 사명감에 공감하는' 성도들이 진정 영광스러운 교회를 함께 세우게 됩니다. 

17절 이하 19절에 기록하기를 "17다윗이 또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 명하여 그 아들 솔로몬을 도우라 하여 가로되 18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느냐 사면으로 너희에게 평강을 주지 아니하셨느냐 이 땅 거민을 내 손에 붙이사 이 땅으로 여호와와 그 백성 앞에 복종하게 하셨나니 19이제 너희는 마음과 정신을 진정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소를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의 거룩한 기구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에 드리게 하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들을 불러 놓고 솔로몬을 도와서 이 성전 건축에 적극 참여하기를 강권했습니다. 
그처럼 그들에게 성전 건축의 사명감을 일깨워 주는 가운데 다윗은 한 가지 의미심장한 사실을 또한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그 당시 누리고 있던 온갖 현실적인 축복들이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하여 그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사면으로 평강을" 주셨습니다. 
문자 그대로 평화 시대를 누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땅의 거민을" 다윗의 손에 붙이시고 이스라엘에게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앞의 사울 왕 시대 때까지만 해도 블레셋을 비롯한 주변 이방 민족들에게 시달림을 받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그들에게 공물을 받는 위치로 올라섰던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이 누구의 눈에도 명백했던 시기였습니다. 

다윗이 보기에는 이스라엘이 이런 축복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성전 건축에 모든 힘을 함께 모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마음과 정신을 진정하고" 즉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일어나서 성소를 건축하는" 이 일에 전심전력으로 충성하는 것만이 그런 축복의 시대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의 눈에도 당연하지 않았겠습니까?
  
다윗 이전 이스라엘이 주변 이방 민족들로부터 시시때때로 침략과 노략을 당하고 있을 때와 비교해 볼 때, 그런 평강의 시기란 명백히 성전건축을 위한 호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솔로몬 이후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결국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고통당하는 시기가 오게 될 때와 비교해 보면, 이스라엘이 최강의 힘을 가지고 있던 이때에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실로 반론의 여지가 없는 당연지사였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이 당장 "일어나서 성전 건축하는 것"이 그처럼 당연한 것이었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조국 전도와 세계 선교 사업에 총력을 다 기울이라고 명하실 때, 우리는 그것을 지극히 당연한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우리는 몰라도 아마 지금 저 미개발 지역에 사는 가난한 민족들이 본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신자라면 하나님께서 어떤 명령을 내리시더라도 기꺼이 즉시 순종해야 할 뿐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평강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5천 년의 역사를 통하여 지금의 대한민국만큼 복스러운 시대가 언제 있었습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이웃 부족과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런 시대는 지나가도 이미 한참 전에 다 지나갔습니다. 
하루에 1,700칼로리밖에 먹지 못하고 평균 40세밖에 살지 못했던 시대는 사실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도대체 얼마만큼 더 좋아져야 된다는 말입니까?
과연 여기서 얼마만큼 더 조건이 좋아져야 주일성수를 바로 할 수 있겠다는 말입니까?
과연 무엇이 얼마나 더 향상되어야 온전한 십일조를 바칠 수 있겠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우리의 생활 여건이 어느 정도까지 더 만족스럽게 되어야 기도 생활과 봉사 생활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아직까지도 그런 핑계나 변명을 더 붙일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보기에는, 적어도 일제치하와 육이오 사변 중에 순교하신 선조들이 보기에는, 아니 20세기 이전에 살던 모든 기독신자들이 보기에도, 우리가 이런 평화 시대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불평만 하고 불충에 빠져 있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될 일일 뿐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도록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라는 것이 목사의 축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복 주셔서 내 여생을 평안하게 지내게 해 주십시오."라는 것이 이 교회의 제단에서 여러분들이 드리는 기도 제목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염치없는 축도요 뻔뻔스러운 기도가 될 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환난의 시대가 아니라 평강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통과하고 있는 시대는 '현재의 고난에서 구원해 줄 것'을 기도해야 할 시대가 아니라, '자신의 생을 다 바쳐서 열심히 충성할 것'을 서원해야 할 시대임이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허락해 주신 '평강과 축복'을 늘 감사하는 가운데 '평화 시대를 사는 값'을 다하고자 하는 사명 의식을 중심으로 더욱 굳게 뭉침으로써 이 경향교회를 더욱 영광스럽게 세워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출석 교인이 늘어나고 헌금이 늘어난다 해도, 진정 자기 생을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위하여 온전히 다 바칠 줄 아는 성도들이 없으면 경향교회는 결코 더 아름답게 성장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 자녀들이 다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미게 되어도, 그들이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전수받지 못하면 사실상 우리 교회도 실패작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경향의 교인들이 땅에서 잘되고 형통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받은 축복을 하나님의 나라의 선한 사명 완수를 위해 쓰지 않는다면, 이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이름으로 제 속만 차리는 욕심쟁이들의 모임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리 되어서야 하겠습니까?

경향의 지난 40년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교회는 '생애 최고'를 바친 1세대 성도들이 강서성전 건축을 완성했으며 이제는 2세대 성도들과 함께 '생애 전부'까지 바치는 가운데 더욱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성경 말씀을 절대순종하며 교회를 극히 사랑하는 마음과 생활이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아들과 딸에게, 그리고 손자와 손녀에게까지 대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역사의 벽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비밀을 깨닫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시대를 값있게 사용해 드리고자 하는 실로 차원 높은 축복의 행진이 줄기차게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향교회를 정말 '아름답고 장려한 하나님의 집'으로 세우고 이 교회를 통하여 실로 '만국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명성을 높이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더욱 '교회중심의 신앙생활'과 '교회중심의 신앙교육'과 '교회중심의 시대적 사명'을 지켜 나감으로써, 오늘날 누리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의 미래에 함께 참예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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