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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른 교훈을 주신 은혜에 감사 합시다 (딤후 4:3) - 이단경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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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교훈을 주신 은혜에 감사 합시다 (딤후 4:3)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중국의 1% 부자는 모든 가정용품을 일제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물도 일제 생수를 공수로 배달하여 마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제는 짝퉁이 많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느 농부가 봄에 종자를 사서 뿌렸는데 싹이 나지 않았다합니다. 씨앗들이 모두 가짜였기 때문이었다 합니다. 한 해 농사를 망친 이 농부가 너무 속이 상해서 자살하려고 농약을 마셨는데 죽지도 않았다합니다. 농약도 가짜였다합니다. 중국은 짝퉁 천지라

고 하지만 중국만이 아니라 세상에는 짝퉁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여기가 천국이다, 지상낙원이다, 하나님의 나라다"라고 하는 짝퉁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어느 것을 비교할 수 있을까요? 짝퉁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런 것과 비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지도 않고 사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늘은 총회가 정한 이단 경계 주일입니다.
이단(하이레시스 aiJrevsei")은 본래 선택하다 혹은 의견의 방향을 의미하였으나 후에는 의견 자체들을 의미하였고 마침내 의견을 주장하는 종파(sect)들을 의미함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신약의 서신들 가운데 다른 의미를 가지고 나타남을 봅니다. 
바울 사도는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갈 5:20) 라는 말씀에서 죄악 목록에 이단 이란 말을 넣었습니다.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전 11:19) 하여 교회 안에서 일어난 편당으로 표시했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딛 3:10) 하여 이단을 분파적 의미로 사용하여 자의로 선택하고 변이한 신념과 행위를 가진 인물을 의미했습니다. 

이리하여 초대 속사도 교부들은 사도들이 설명한 이단(하이레시스 aiJrevsei")의 의미를 받아들여 어떤 사람의 기독교의 일부나 혹은 전부를 시인하면서 자기의 무엇을 더하든지 혹은 기독교의 전체를 배척하든지를 물론하고 일률적으로 이단자로 지적했으나 3세기에 이르러서도 교부들이 근본적 기독교 신앙에서 이탈하여 출교의 처분을 받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점차 이단은 기독교를 믿되 그릇 믿는 자들에게 국한하게 되었고 후대에도 니케야 회의에서 결정된 삼위일체의 교리가 거의 정통과 이단과의 구별을 판단하는 유일의 시금석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보통으로는 초대교회의 소위 공교회의 신앙이라는 것을 확립하지 않은 자를 가리켜 이단자(heretic)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이단은 이성주의적 (자유주의) 이단으로 인간 이성을 최고의 권위로 하는 자유주의 신학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하며 신비주의적 이단으로 객관적 계시 진리인 성경 부인하고 주관적인 신비주의 주장하며 종교를 빙자한 사기적인 요소가 나타나며 구원관에 대한 이단으로 율법주의적인 갈라디아 교회적 이단과 반 율법주의적 이단으로 유신앙론적 이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경에 의하든지 고대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비정통 (heterodoxy)이나 이단 (heresy)은 같은 말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단이 일어나는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몇 가지를 살펴보면 기성교회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 됩니다. 기성 교회가 말씀에 대하여 무능력해지고 교리 도덕적으로 부패해 질 때 일어납니다.

그리고 사회 정치 경제의 불안정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회가 불안하고 정치적으로 혼란하면 이러한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심리현상이 종교적으로 발전하여 일어납니다.
또한 사상적 문화적 빈곤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일정한 주의와 사상이 없고 신학적 체계가 없어 이단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나아가 사회적 도덕적 무질서에서 탈출하려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귀찮다고 하는 염세적인 현상이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적 작용으로 이단을 형성합니다.
그런가 하면 대중의 무지에서 오기도 합니다. 이단을 따르는 대 부분의 사람들이 성경과 신학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빠져들어 갑니다.

시골 소년이 처음으로 아버지가 주신 1달러를 가지고 읍내로 구경을 나갔다합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서커스 행렬이 옆을 지나갔습니다. 수영복의 미녀, 호랑이와 사자와 원숭이를 가까이서 보았고, 코끼리가 비단옷을 입고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자루 같은 옷을 입은 광대가 자기 앞으로 다가오자 소년은 가지고 있던 1달러를 얼른 그에게 주었습니다. 구경 값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진짜 재미있는 서커스는 행렬이 끝난 뒤 천막 안에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단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단의 공통점이 있는데 발생적 공통점은 발생 모체는 기독교회라는 점입니다. 이단의 대 부분이 기독교회의 미온적인 신앙과 지도자들의 교권적 횡포에 환멸과 욕구불만을 품고 이탈하여 자기들의 집단을 형성한 것입니다.

계시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단을 주장하는 대 부분의 지도자들이 신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사상적 공통점으로 성경 외에 자기들의 정경을 가진 공통점이 있으며 시한부 말세 심판을 주장한다는 것이며. 지상 천국 사상으로 이 세상에 가견적인 천국이 이루어진다고 하며 선민의식으로 자신들만의 교회가 유일하고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며 천년 왕국의 기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14만 4천이라고 자처한다고 하며 교주를 신격화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릇된 신비주의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제한하거나 부인하며 교주를 통한 대속을 주장하고 계속적인 계시를 주장하며 입신, 방언, 계시, 신유, 기적, 강신, 진동, 예언 등의 신비적 은사를 강조하며 종교적 혼합주의로 특수 분야의 매력을 가져 자기들 나름대로의 다른 길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들만의 새 계시를 주장하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신학체계를 세우고 계시가 자기들에게 새롭게 임했다고 주장하며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전도열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심는 전도를 하며 교리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하며 박해를 이용하여 진리 안에서 살려고 하니 박해가 따른 다고 주장하며 인간에 의한 업적을 강조하며 인간의 노력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공통점으로 재산 착취현상으로 급박한 말세 심판, 천지개벽 등의 사상과 인간의 노력의 대가에 의한 구원관등을 강조하여 온전한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재산을 바칠 것을 요구한다하기도 하며 비윤리적 반사회적이며 이중 교리를 가지고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현실 도피주의현상으로 역사 창조 의식이나 사회 참여의식, 가치 창조 의식이 없으며 독선주의로 자기들만의 아집을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뉴욕에 사는 어느 부부가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볼 수 있는 표 두 장을 우편으로 받았다합니다. 이상하게도 아무런 사연도 적혀있지 않은 선물을 받은 이들 부부는 누가 보냈을까 하며 의아해 하면서도 그들은 쇼를 보러가서 정말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나 아파트에 돌아온 그들은 누군가 침실에 들어와 몽땅 도둑질을 해 갔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값나가는 모피 옷들과 보석들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베개 위에는 "이젠 알겠지"라고 쓴 메모 한 장이 남아 있었다합니다. 

그 이름 없는 도적처럼 거짓 선지자들도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고 그들이 원하는 것으로 마음을 끌게 합니다.(벧후 2장). 거짓 선지자는 자신의 거짓말을 조심하라고 옷깃에 표시를 하고 오지 않고, 가장 진실한 사람처럼 가장하여 옵니다. 그는 우리의 삶을 더 살만하게 해 준다고 큰소리하지만 그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종종 큰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속은 줄을 알게 됩니다.
 
이단의 문제점은 어떠할까요?
이단에 의한 영향은 정치 사회의 부정부패 불안을 야기하여 집단 취락을 형성하고 정치적 세력을 규합하여 교묘하게 사용하기도 하며 반사회적 요소 형성하여 기존 도덕 윤리의 파괴, 유언비어 유포, 간음, 헌금, 헌납 등의 미명하에 재산을 탈취하고 폭행을 가하며 비윤리적 반도덕적 요소로 폭행, 감금, 사기, 의료법 위반 등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며 국가 안위 영향을 주는바 조직된 힘, 산간벽지 등에 은거하며 국가의 지배마저 거부 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기존 종교의 독자성 침해 한다는 것입니다.

1978년 11월 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의 밀림에 위치한 사교집단인 인민사원에서 이 사교집단의 창설자이자 교주인 짐 존스(Jim Jones)를 비롯해 총 914명에 달하는 신도들이 집단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존스는 미국 인디애나주(州)에서 사교집단인 인민사원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사회개혁을 내세우며 좋은 목적으로 출발하는 듯 하였으나 근거지를 가이아나의 밀림으로 옮긴 뒤에는 제2의 예수, 진정한 사회주의자, 최후의 인도주의자 등으로 자처하며 사설 왕국의 제왕이자 군주로 군림하며 거의 신적인 존재로서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게 되자 정신도 병적으로 변하였고 갈수록 폐해가 심해졌고 심지어 자신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고 믿게 되었던 차에 인권유린 여부를 조사하러 온 미국 하원의 조사단원 3명이 이들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미국 정부의 추궁이 두렵고, 또 자신이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고 믿고 있던 그는 결국 미국 정부의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하나 자신 혼자만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 죽음의 여행에 신도들을 동참시키기로 결심하고 모든 신도들을 광장에 모아놓고 주스에 독극물을 타 강제로 마시게 한 다음 '이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세상에 대한 개혁 혁명'이라고 설파하였다 합니다. 이는 역사상 최대의 집단 자살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단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딛 3:10-11)고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롬 16:17)고 합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계 2:2)내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막 13:5)고 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막 13:22-23)고 합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3-5)...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딤전 6:11)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 1:10-11)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서 노년 시절을 보내던 때에 있었던 이야기라고 전해지는 것이 있다합니다. 어느 날 공중 목욕탕에 갔던 요한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게린투스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탕 속에 들어가려던 요한이 벗은 몸으로 소리 지르며 뛰어 나오기를 "여러분 이 목욕탕에 무서운 이단자가 들어왔습니다. 이 목욕탕의 지붕이 무너질지 모르겠습니다. 어서들 밖으로 나가십시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이 세상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은 완악해져서 그리스도를 영접치 않게 됩니다. 때가 되면 사탄은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운 줄을 알고 더욱더 기승을 부려 사람들을 멸망의 자식으로 만들기 위하여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게 됩니다(벧전 5:8). 그래서 사탄의 꾀임에 넘어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되며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 복음을 외면하며 거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라는 말씀대로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자신의 본성을 충족시켜 줄 교훈만을 듣기 좋아하게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심판에 대한 훈계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즐거운 말만 들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선포의 핵심은 회개였습니다(막 1:14, 15). 죄에서 돌이켜 죄 사함을 얻고 새사람이 되어 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은 참 생명의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가르침이야말로 새 생명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인간들은 참 생명의 가르침보다는 듣기 좋은 가르침만을 따랐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벨론을 거스리지 말라고 경고하며 이스라엘이 멸망당할 것을 예언할 때 거짓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평안과 복지를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상반된 예언에서 자신들이 듣기 편한 거짓 예언자들의 예언만을 따랐습니다(렘 5:31; 겔 33:32>). 그러나 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멸망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마지막이 가까이 온 오늘날도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는 거짓 스승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누군가 자신을 즐겁게 하는 말을 할 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일치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하신 말씀대로 '진리'는 바른 교훈과 같은 것으로 죄와 형벌 등의 심각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진리를 거부하고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탄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딤전 1:4; 4:7). 이러한 허탄한 이야기들은 생명이 없으며 도리어 율법에 얽매이게 하여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혼미에 빠지게 합니다(딤전 1:6,7). 그래서 결국 생명을 잃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단에 대하여 거짓 교사들의 달콤한 사설에 미혹되어 그것을 더 좋아하여 진리를 받아들이고 바른 교훈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비 진리나 세속적인 것 따르기를 더 즐겨 한다고 경고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복음에 미혹되는 일이 많아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6절)고 심하게 책망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갈라디아 교우들이 자신의 가르침에서 떠나 이단의 무리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책망 속에는 갈라디아 교우들을 진리의 복음으로 이끌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과 함께 복음의 진리를 사수하고자 바른 교훈을 주고자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른 교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어지는 구원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고 합니다.
복음은 구원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고 합니다.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고 합니다.

복음은 십자가가 중심입니다. 그래서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고 합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합니다.

바울 사도의 평생 자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고 합니다.

바울은 순수한 마음과 용어로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바른 교훈만 나타내려고 하였습니다.
바른 교훈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수식어를 동원하여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려지고 인간의 달변이 무성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자신은 철저히 부인되고 바른 교훈인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구원의 능력만을 전파하고자 하였습니다.

카이프낙은 그린랜드의 산지에 살면서 살인을 일삼던 강도 두목 이었다 합니다. 하루는 그가 요한복음을 번역하고 있는 선교사의 오두막집으로 왔다합니다. 그는 선교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합니다. 선교사가 그에게 자기가 만들고 있는 부호들이 어떻게 말이 되며 그 책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자, 그는 그 책이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다고 했다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이야기를 읽어 주었다 합니다. 

그러자 두목은 즉각 물었다합니다.
"이 사람이 무슨 일을 저지렀나요? 그가 누구의 물건을 훔쳤습니까? 그가 누구를 죽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아무 물건도 훔치지 않았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요. 그는 아주 나쁜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왜 수난을 당해요? 그가 왜 죽어요?" 
"내 말을 잘 들어 보십시오. 이 사람은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나쁜 짓을 했어요. 이 사람은 누구의 물건도 훔치지 않았지만 당신은 동생을 죽였고 당신의 아이를 죽였어요. 이 사람은 당신이 수난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당신이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죽은 것입니다." 

"그 이야기 다시 한 번 해주세요." 

두목은 이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합니다. 그러고는 이 무자비한 살인자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다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셨고, 그를 믿을 때 모든 인간은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참된 복음입니다. 
총회가 정한 이단 경계 주일을 지키며 이단의 잘못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참된 구원의 복음에 대한 바른 교훈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진리에 바로 서서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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