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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을 위협하는 것은? (행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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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위협하는 것은? (행 8:1-4)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하나님의 선하심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이집트는 어떤 나라입니까? 이집트는 어떤 사람에게는 ‘피리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모세가 노예로 살던 백성을 이끌어낸 나라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기 예수님이 피난 가셨던 성지입니다. 요즘 이집트에 관한 뉴스는 ‘이집트 사태 악화일로, 사망자 급증’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2011년, 30년간 이집트를 철권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가 대통령에서 축출되었습니다. 그리고 무함마드 무르시가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하였습니다. 그러나 무르시는 나라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최근에 군부에 의하여 축출되었습니다. 그 후, 친(親) 무르시 세력과 반(反) 무르시 세력이 계속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1,3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하여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이집트의 혼란과 함께 이집트교회가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교회를 ‘콥틱교회(Coptic Church)’라고 합니다. 콥틱교회는 정교회의 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현재, 이집트에 약 750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이중 90%가 콥틱교회 교인이며, 이는 이집트 인구의 약 12%에 해당합니다. 근래 콥틱교회 안에서는 성령운동과 성경공부 열기가 일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집트교회는 외부로부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보상금을 주고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정책으로 하루에도 30-40명의 콥틱교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이집트 사태 와중에 과격 이슬람교도들에 의하여 교회가 공격을 받고, 예배당이 불타고, 성도들이 생명의 위협받는 핍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지구의 한편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고난당하는 형제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위하여 함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및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 이후에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I. 그들에게
  
당시 예루살렘교회가 겪은 고난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들에게 어떤 핍박이 있었습니까? 1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1a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스데반은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지도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였습니다. 당시 교회의 핍박자들인 유대종파주의자들은 스데반의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능히 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핍박자들은 사람들을 매수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였다고 고발하게 하였습니다. 핍박자들은 거짓 증인들까지 세웠습니다(행 6:8-13). 핍박자들은 스데반의 설교에 마음이 찔려 이를 갈고 귀를 막고 일제히 달려들어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1. 순교가 있었습니다.

죽음으로써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는 순교가 있습니다. 

얼마 전, 이집트의 한 소녀가 무슬림으로 추정되는 괴한의 총격을 받고 숨진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카이로 아인 샴스에 사는 제시카 볼루스라는 열 살 소녀가 교회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총격을 받아 숨진 것입니다. 제시카의 삼촌인 나스르 목사는 제시카의 죽음이 최근 이집트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기독교 탄압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계 주민들의 삶이 계속 위험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현지 기독교인들은 이집트 유혈사태가 격화되면서 무슬림의 무차별 공격이 커지고 있다며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순교는 수 백 전 전에 지나간 일이 아닙니다. 순교는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한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난입니다.
  
또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1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1b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스데반이 순교 하던 날, 유대종파주의자들은 스데반 한 사람의 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에서 ‘박해[diwgmov"/디오그모스]’는 ‘추적하다’는 말에 왔습니다. 사람을 잡기 위해 빠르게 뒤쫓아 달려가서 갖은 방법으로 괴롭히는 것입니다. 사냥감을 뒤쫓는 사냥꾼처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추적하는 박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든 집을 버리고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여러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2. 박해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지구상에 신앙에 대한 이런 박해가 있습니까?

지난 8월, 인도의 라자스탄주 자이푸르 지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힌두 과격파 4명이 오순절교회 목사인 비샬 베히(Vishaal Behi)의 집에 침입하였습니다. 마침 혼자 있던 목사의 어머니에게 “당신이 힌두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살해하여 산산조각을 내겠다.”고 위협하고 구타하였습니다. 인도기독교협의회 대표 사잔 죠지는 이번 사건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에 대한 증오와 불관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징후라고 말합니다. 인도에서는 2014년 총선을 앞두고 힌두과격파들이 교회에 대한 적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2월, 이집트의 페이욤 지방에서는 무슬림들이 마르 기르기스(Mars Girgis)교회를 공격했습니다. 약 20-30명의 마을 사람들이 교회 밖에 모여서 돌을 던지고 창문을 부쉈습니다. 그들은 교회 건물에 화염병을 던지고, 불을 질렀습니다. 교회 안의 십자가를 내려서 파괴하고, 교회의 돔을 지지하는 지지대를 무너뜨렸습니다.

박해 역시 성경이나 지나간 역사에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지구의 한편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겪었던 고난을 표현하는 또 다른 말씀이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핍박자들에게 돌을 맞고 순교한 스데반을 장례 지내고 몹시 통곡하는 경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경건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복음에 호의적인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구약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같은 종교를 가진 유대인들이 저지르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겪는 고난이 경건한 유대인들이 보았을 때에도 너무 심한 것이었습니다. 해도 너무 한 것이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이 슬퍼할 만큼 참혹한 일을 교회가 겪었습니다. 그들이 크게 울었다는 것은 교회가 얼마나 커다란 아픔을 겪고 있었는지를 말해줍니다.


3. 슬픔이 있었습니다.

최근, 100년 대륙 선교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선교사들이 강제 출국이나 입국 거부를 당하는 사례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정확한 설명도 듣지 못하고 수 년, 십 수 년씩 헌신해온 선교현장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이만큼 중국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슬픔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15일, 어느 중국선교사는 주한 중국대사관으로부터 비자 연장을 거부당하였습니다. 대사관 관계자는 거부 사유를 “당신이 (중국에서) 뭘 하는지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느냐”고 하였다고 합니다. 10년 넘게 힘써온 중국 선교가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5일 밤, 어느 선교사는 중국 베이징의 한 건물에서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공안들이 들이닥치며 “불법 종교 집회를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는 그날 공안 사무실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다음날 강제 출국됐습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자국 내 외국 선교사들을 주시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처럼 선교사들에 대해 대량 출국 조치를 취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선교 관계자들은 이러한 중국 정부의 변화가 시진핑 국가주석 등장 이후 급변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 내 소수민족이나 탈북자, 대학생 선교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모두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어느 사회나 두드러지게 모난 사람이 있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유대교인들 중에서도 스데반의 순교에 대하여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사울이라는 사람은 이번 기회에 교회를 없애려고 날뛰었습니다. 그는 집집마다 찾아들어가서,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끌어내서, 감옥에 넘겼습니다. 여기에서 ‘잔멸하다[lumaivnomai/뤼마이노마이]’는 말은 ‘파괴하다’, ‘황폐케 하다’는 뜻입니다. 멧돼지가 밭에 들어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사울은 교회를 쓸어버리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어 모두 감옥에 처넣었습니다.


4. 투옥이 있었습니다.

국제 종교자유 현황에 관한 미 국무부의 2012년 12월18일 보고에 따르면, 인구밀집도가 높은 전제주의, 권위주의 집권체제 아래 종교자유가 금지된 국가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박해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북한입니다. 그밖에도 이란, 파키스탄 등이 최악의 종교박해국가로 꼽힙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신앙의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체포, 투옥, 채찍형, 추방, 고문, 학대 등을 당하고 있습니다.

‘2011년 북한 종교 자유 백서’에 의하면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비공식적 종교 활동이 강화된 것으로 봅니다. 2000년 이후 북한 지역의 비밀 종교 활동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응하여 북한정권은 기독교를 접하거나 성경을 소지하는 등의 ‘종교행위’에 대한 탄압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이유로 강제 수용소에 투옥된 신자가 2011년 약 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2010년 8월에 평안남도 평성시에서 지하교인 23명이 체포되고, 그 중 3 명이 처형되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인에 대한 북한 당국의 공포정치와 탄압이 심각합니다. 우리는 북한 지하 교회 성도들이 탄압과 환난 가운데서 승리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북한당국이 성도들을 탄압하는 악행이 중단되고, 그 땅에도 진정한 신앙의 자유가 실현되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에 순교와 박해와 슬픔과 투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지구 한 모퉁이에서는 공공연히 신앙을 위협하는 박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고통 받는 형제들을 위하여, 선교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이제, 우리의 신앙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신앙을 위협하는 어떤 핍박이 있습니까?

  
II. 우리에게
  
우리의 주변에서도 신앙 문제로 가족에게 핍박을 받고, 직장에서 손해를 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신앙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하려고 합니다.
  
먼저, 데살로니가전서 5:3 말씀입니다.

(살전 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경고하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하면서, 아무런 영적 경각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생각 없이 살기 때문에 평안해 보이는 것입니다. 박해가 아니라 무사안일이 신앙의 최대의 적일 수 있습니다.

1. 안일이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사회 모든 부분에서 일을 어렵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에 좋은 예가 바로 ‘냄비 속의 개구리’의 이야기입니다.

살아 있는 개구리로 요리를 할 때, 펄펄 끓는 뜨거운 물에 개구리들을 넣으면 화들짝 놀라 모두 냄비 밖으로 튀어 나가 요리사들이 애를 먹는답니다. 그래서 요리사들은 미지근한 상태의 물을 담은 냄비에 개구리를 놀게 하고서, 서서히 가열하는 방법을 사용한답니다. 미지근한 물이 담긴 냄비 속의 개구리들은 처음에는 기분 좋게, 그리고 여유롭게 헤엄을 치면서 논답니다. 이럴 때, 조금씩 온도를 높여갑니다. 미미한 수온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개구리는 급기야 물이 끓을 때까지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다가 그냥 삶아 죽는다고 합니다. 개구리가 뜨겁다고 느낄 때는 행동하기에는 이미 늦어 온 신경이 마비되고 만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비올라 대학 교수이자 바나 리서치 연구소 소장인 조지 바나가 오래 전에 쓴 ‘냄비 안의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바나는 “왜 교회가 옛날처럼 부흥하지 못하고,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며, 점점 힘을 잃고 위축되어가고 있는가?”라고 묻고, 그것은 마치 교회가 냄비 속에 갇혀있는 개구리와 같기 때문이라는 진단하였습니다. 고난이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안일함이 영적으로 병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습관적 신앙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의 올바른 신앙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박해보다 더 두려워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5 말씀입니다.

(요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근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신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도마라는 제자는 예수님께 반문하였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의 질문은 자신은 그 길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 길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불가지론이 우리를 무능하게 합니다.

불가지론(不可知論)이란 ‘사물의 본질이나 궁극적 실재의 참모습은 사람의 경험으로는 결코 인식할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도 사람이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조차도 하나님과 천국과 영생에 대하여 확신이 없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죽어봐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를 위하여 보험을 들어놓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없습니다. 말씀에 의하여 구원과 영생에 대하여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오히려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희미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위협하는 것으로 염려를 꼽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1:34 말씀입니다.

(눅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 마지막에 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눅 21:25)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눅 21:26). 그런데 이 와중에 지나친 염려로 오히려 움츠러들고, 능력 있는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자신을 생각의 감옥에 가두는 것입니다.


3. 염려가 마음을 둔하게 합니다.

너무 무사태평하여도 문제이고, 너무 염려하여도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일함에 젖어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혀 알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극소수의 사람들이지만 마지막 때를 염려하여 짐 싸서 산골짜기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경각심으로 가지고 예의 주시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염려를 감사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써 확신을 가지고 지금의 삶에도 충실하여야 합니다.
  
요즘,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위협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사탄의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베드로전서 4:3 말씀입니다.

(벧전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즐기자는 향락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신앙을 대체하는 많은 즐길 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오락을 즐기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오락에 중독되어 있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신앙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여가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 여가가 신앙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교회마다 성도들의 예배 출석률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주 5일 근무제가 되면 그동안 주일을 지키느라고 여가를 즐기지 못한 사람들이 토요일에는 쉬고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정은 토요일에 이어서 주일까지 외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미국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원로목사인 존 파이퍼는 ‘미국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성경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국민들의 죄의 상태를 일깨우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현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리고 믿음 안에서 회개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일방적이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도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생활을 즐기는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중독의 가장 위험한 요소는 자신이 중독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묻고, 영적인 것에 다시 관심을 가지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인생은 허비해도 좋은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먼저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는 본문 말씀 4절은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순교 당하는 스데반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없는 박해를 받아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흩어진 그곳에서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전도하게 하였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핍박을 받고 있는 형제와 자매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안일과 불가지론과 염려와 여가에 빠지지 않도록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승리를 확신하고, 열정의 예배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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