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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알면 새롭게 됩니다 (룻 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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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면 새롭게 됩니다 (룻 1:19-22)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저는 몸에 장애가 있어서 스포츠를 잘하는 것이 없습니다. 탁구를 좀 치기는 하는데 몸에 균형이 맞지 않아서 실력이 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니 웬만한 사람은 저를 이기려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교단 탁구대회에서 C그룹에서 3등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운동 경기는 못하지만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아주 좋아합니다. 특히 야구나 축구 경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야구나 축구가 재미있는 것은 그 결과가 끝나봐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기다가도 마지막에 질 수 있고 지다가도 역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새벽에 끝난 유럽 슈퍼컵 프로축구 대회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아침에 뉴스를 잠깐 보니 기막힌 역전 우승이 이루어졌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첼시라는 프로팀과 독일의 뮌헨이라는 프로팀이 결승 경기를 치르었습니다. 전후반 1:1로 비겼습니다. 그래서 연장전에 들어가 연장전반에 첼시가 먼저 한골을 넣어 2:1로 이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장후반에 경기가 거의 다 끝나고 루주타임 1분 중에 마지막 10초 남았을 무렵 뮌헨이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어 2:2로 비겼습니다. 결국 승부차기에 들어가서 5:4로 뮌헨이 이겼습니다. 기막힌 역전 우승이었습니다. 아마도 연장 전반전만 보고 텔레비전을 끄신 분은 첼시가 우승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봐야 합니다. 

야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야구는 9회 말 두 아웃이 되었어도 뒤집어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홈런이라는 것이 있기에 한 방에 승패가 뒤 바뀝니다. 그래서 야구는 꼭 9회 말 쓰리아웃이 되어야 승패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우리 인생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이 처음에는 속된말로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을 역전시켜 쓰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몇 사람만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좋아하는 요셉이 그런 사람입니다. 구약 창세기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요셉 이야기입니다. 창세기39장부터 50장까지 요셉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는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다 억울한 강간 미수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거기서 그의 인생은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노예로, 죄수로, 고생하던 요셉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그야말로 인생 역전의 주인공입니다. 그 배후에 누가 계신가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인생승패는 하나님 앞에 서봐야 알게 됩니다.   

모세도 보세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기막힌 하나님의 섭리로 자기를 죽이라고 명령한 바로왕의 왕궁에서 자라게 됩니다. 공주의 아들로 들어갔으니 바로왕의 손자로 자라게 된 것입니다. 기막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다 40세 되는 해에 우연하게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갑니다. 그곳에서 양치는 목동으로 40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거기서 그의 인생은 끝나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나이 80이 되어 그를 부르십니다.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는 엄청난 사역을 맡기십니다. 결국 그는 구원역사에 주인공이 됩니다. 누가 하셨나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참 멋있잖습니까?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런 인생 역전의 복을 누린 사람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나오미와 룻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 연속해서 룻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나오미와 룻,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들에게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가문에 남자라고는 없습니다. 대가 끊어졌습니다. 재산도 돈도 없습니다. 나오미 집안은 완전히 망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망한 그 집이 놀랍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망했던 가문이 존경받는 집안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오늘 우리의 삶도 이러한 복이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집안도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는 가정이 있습니까? 
사업이 휘청 이는 가정이 있습니까? 
가정 식구 간에 갈등이 있어서 만나기만 하면 다투는 가정이 있습니까? 
더 나아가서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가정이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라기는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가정에 회복과 치유의 은총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새롭게 회복될 수 있을까요? 몇 가지 조건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길 축원합니다. 

 
1. 나를 올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미를 보십시오. 그는 베들레헴에 돌아오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바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무서운 것은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 누군가요? 나입니다. 그런데 착각입니다. 사람들은 남을 평가하는 것은 아주 잘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제대로 알지 못하여 온전히 평가를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나오미는 자신의 현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룻1:20~21절을 보세요.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동내 사람들이 난리입니다. “이 사람이 나오미냐”하면서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돌아온 것이 반갑기는 하지만 너무나 초라한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나오미가 뭐라고 말합니까? “나를 더 이상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합니다. 

‘나오미’ 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 즐거움, 희락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즐거운 여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라’라는 뜻은 괴로움,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괴로운 여자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서 여호와께서 나를 풍족하게 나가게 하시더니 이제 나를 비워 돌아오게 하셨다. 전능자가 나를 징계 하셨고, 나를 징벌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기가 당한 것이 하나님의 징계라고 여러 사람 앞에 말합니다. 쉽지 않은 말입니다. 내가 이 꼴 된 것은 매를 맞아서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를 제대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열등의식 속에 자포자기가 아닙니다. 제대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물어 보지도 않고 약속의 땅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과 함께 어울려 자식을 결혼시키며 10년을 버티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하나님이 나를 징계하신 것이란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따라 무자비하게 징계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적어도 자신이 잘못했고 그래서 매를 맞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입니다. “나는 망한 사람이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나는 죄인이다” 자신의 모습을 똑 바로 보았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처지에 있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올바로 보고 그것이 왜 찾아왔는지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 새롭게 되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오미의 말이 어찌 보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투로 말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를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회개하는 모습이라 보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문제 해결을 여기서 출발합니다. 회개를 한다는 것은 자기를 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알고 돌이키면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미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2. 문제 해결자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태어나자마자 만나는 사람이 누군가요? 어떤 분은 산부인과 의사라 합니다. ㅋ 그러나 그것은 의미가 없는 만남이고 부모님과의 만남이 최초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고 스승을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고 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여러분은 왜 자식들 좋은 대학에 보내려 하시나요?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좋은 직장을 얻기 때문인가요? 그것도 있겠으나 좋은 만남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교수들을 만나게 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아멘?  


한국이 낳은 유명한 강영우 박사님을 아시나요? 

그는 맹인으로서 미국 정부에 정책차관보까지 지낸 분입니다. 그는 13세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공을 차다가 친구가 찬 공이 눈에 맞아 망막이 파손되어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맹인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뇌졸중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은 그의 어두운 눈에 소망의 빛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에게 좋은 사람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맹아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시각장애인으로 최초로 연세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리고 미국에 피치버그 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召天(소천)하셨지만 그는 살아있을 때 많은 미국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미국 장애인 정책을 집행하는 자리에서 헌신적으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만나는 것은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나오미의 며느리 룻은 보아스라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당시에 계대수혼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친족 중에서도 누군가가 그 여자와 결혼해서 그 집안에 대를 잊게 합니다. ‘고엘’이라는 제도인데 그 남자는 망한 집안의 재산을 다시 찾아줍니다. 그런데 보아스라는 사람이 그 역할을 감당합니다. 룻2:3절을 보세요.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이 어느 날 시어머리를 공경하기 위해서 밭에 나가 보리이삭을 줍다가 우연히 보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여기 성경에는 ‘우연히’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이 보기에 그렇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섭리입니다. 아멘?   

그 보아스가 룻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합니다. 먹을 것도 주고 양식도 좀 더 담아 줍니다. 그리고 룻은 그 사실을 시어머니에게 그대로 보고를 합니다. 시어머니가 좋아할 일이 아니기에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데 룻은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합니다. 신기한 것은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허락하고 도와줍니다. 

결국 룻은 보아스는 나오미의 도움으로 결혼하게 되고 그를 통해 나오미와 룻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 만남을 통해 가난도 벗어나고 자녀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축복된 가문의 어머니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은 이 보아스는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표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이 많습니다. 모세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죄악의 땅에서 구원해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은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다윗왕도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그에 못지않게 역할을 한 사람이 보아스입니다. 그를 만나서 그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올바로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누가 주님을 만날 수 있나요?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죄인 것을 아는 자가 만납니다. 자신의 허물과 죄악을 모르는 사람은 주님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은 이미 주님을 만나신줄 믿습니다. 그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옆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그쪽은 어떻습니까?” 그곳에서부터 우리 인생은 놀라운 인생으로 새롭게 시작됩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을 잘 보세요. 예수님 만난 사람들은 다 변화되었습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은 여리고 세리 장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돈은 많았지만 늘 외로웠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회개하며 다짐합니다. 남에게 빼앗은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합니다. 자기 재산의 절반을 내어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겠다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를 보십시오. 그도 세관에 앉아있던 세리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고 죄인 취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찾아오셔서 자기를 불러주시자 그 즉석에서 주님을 따릅니다. 그러자 그의 인생은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마태복음이라는 위대한 성경을 우리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다 변하였습니다. 
 

3. 주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려면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주안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룻과 나오미가 서로 미워하고 다투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며느리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가 날마다 서로 미워하고 다투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그들은 분명 갈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가 소망이 없는 인생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는 그런 갈등이 없었습니다. 왜죠? 서로를 사랑하고 공경했기 때문입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최고로 공경했습니다. 그래서 남에 밭에 가서 보리 이삭을 줍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했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생기면 먼저 시어머니에게 가져주었습니다. 참 좋은 며느리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을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룻1:11절 이하를 보세요.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며느리를 부르는데 뭐라 부르나요? “내 딸들아” 내 딸이라 부릅니다. 

룻 2:22절에도 말합니다.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여기도 내 딸이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표현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며느리에게 뭐라 부르시나요? 
“며늘애기야!” “애야” “애들 에미야” 이렇게 부르지요? 

그런데 이제 오늘 집에 들어가거든 호칭을 바꾸어 보세요. “내 딸아” 이렇게 불러 보세요. 호칭만 바꾸어도 고부간에 갈등은 50%이상 해결된답니다.   

그래서 룻기 4장에 보면 동내 사람들이 그를 뭐라 불러 주나요? 

“일곱 아들 보다 더욱 귀한 자부” 라는 호칭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며느리 룻은 일곱 아들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효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룻은 나오미를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사랑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기적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우리가족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이 서로 사랑하면 다 해결됩니다. 

지금 아무리 잘나가는 가정도 만나면 다투고 싸우면 그 가정은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적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정, 사랑하는 공동체는 늘 소망이 있습니다.   

두레마을을 만들었던 김진홍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중고등 학생시절에 품행이 좋지 못한 학생이었답니다. 학교는 안가고 교과서를 팔아서 영화관에 가고 4번이나 가출하였답니다. 그러다가 공부하기가 싫어 2년 동안 전국을 떠돌아 다녔답니다. 그런 그가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은 밤낮으로 자기를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가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한번은 외삼촌들이 어머니에게 와서 어린 김 목사를 흉을 보았답니다. 

“누님, 진홍이는 인간이 안 되겠어요, 학교는 안가고 영화관에나 가고 책은 늘 소설 나부랭이나 읽고 게는 장래성이 없어요” 

외삼촌들은 그가 문 밖에서 듣는 줄을 모르고 어머니께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신 어머니가 대답하기를 “걱정하지들 말거라. 우리 진홍이는 꿈이 있는 아이다. 꿈이 있는 아이는 그릇되지를 않는다. 난 그 아를 믿는다”하더랍니다. 

이 말을 들은 김 목사는 “아! 우리 어머니는 나를 믿어 주시는구나. 어머니의 믿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구나!” 하고 이발소로 가서 머리를 싹 밀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 위대한 목사가 되었다고 간증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생명을 살립니다. 사랑은 인생에 큰 힘을 줍니다. 중요한 것은 주안에서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사랑은 질병을 치료합니다. 사랑은 갈등을 이겨내게 하고 낙심을 소망으로 바꾸어 갑니다. 

왜 용서치 못하나요? 왜 서로 사랑하지 못하나요? 자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기를 처지를 알았습니다. 룻도 자기를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서로를 행복하게 하고 인생을 새롭게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습니다.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자신의 죄악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알아야 돌이킬 수 있고 그래야 해결자이신 우리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남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바로 알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하나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물론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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