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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 (말 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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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 (말 3:13-18)

인권변호사로 이름이 난 어느 변호사에게 나이 지긋한 의사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찾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이혼문제였습니다. 그는 대학병원장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도 의사였으며 그의 사위도 역시 의사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에게 ‘지금까지 달려온 길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가?’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남부럽지 않게 쌓아온 부와 명예가 더 이상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변화를 이상하게 여긴 그의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의사는 아내의 의혹의 눈초리를 피해 병원 옆에 작은 방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가족들로 하여금 더욱 의심을 부추기게 하였고 심지어 경찰들과 그의 방을 급습하기도 하고 마약중독자로 오인되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단 하루라도 가족으로부터 인간적인 정을 느끼거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의 영혼은 피폐할 대로 피폐하여 이제는 정작 의사인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할 형편이 된 것입니다. 

또 한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도 의사였습니다.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서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간호보조원을 아내로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그는 30대 중반이 되자 골목귀퉁이에 신경외과를 개업했고 아내는 가정주부와 간호사의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돈을 빌려주면 많은 이윤을 얻게 해주겠다며 접근한 사기꾼에게 점차 재산을 맡기기 시작했고 마침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전 재산을 맡긴 것이 화근이 되어 그만 무일푼의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소망이 있었던 것은 끝까지 남편을 신뢰하고 격려하는 아내가 곁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의사 부부는 얼마 있지 않아 새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가정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첫째 가정은 부동산 등기 권리증이 그 가정의 복이었으나 두 번째 가정은 믿음 안에서 그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복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보배는 무엇일까요? 우주만물의 신비로움과 그 광대함일까요? 아니면 웅장한 바티칸의 대성당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특별한 소유 즉 보물로 여기신다고 말씀합니다(17a절). 이는 놀라운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나 자신을 하나님의 보배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마치 효도하는 자식을 둔 부모가 자식에 대해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듯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백성들을 아끼시겠다고 말씀합니다(17b절). 

이처럼 하나님의 보배된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악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함께 본문을 추적해가며 영적인 도전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1.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의 특징(13-15절). 

첫째, 말로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13절). 
말은 사상의 표현이며 인격과 가치관의 표현입니다. 13절의 ‘완악한 말’은 ‘건방진 말’, ‘뻔뻔한 말’, ‘교만한 말’을 의미하며 ‘대적한다’는 것은 외적 표현이나 내적 태도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공동체에 대해 오만불손한 태도를 가지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완악한 말로 자신을 대적하는 것에 대해 꾸짖자, “우리가 주께 무슨 못할 말을 했습니까?”라는 오히려 뻔뻔한 태도로 대적합니다. 

둘째, 신앙적 회의에 빠집니다(14절). 
14절을 다시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다 헛일이다. 세상의 쾌락을 멀리하는 것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라는 신앙적 회의의 말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을 무거운 짐으로 생각한다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제가 하나님을 섬긴 것이 무슨 유익이 있었습니까?” 라고 완악하게 대적하지 않겠습니까? 

셋째,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지 않습니다(15절). 
악한 자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하나님을 뜻을 거역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사는가? 그들은 큰소리치며 제멋대로 사는데도 멀쩡하게 살아있지 않는가?”(15절)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궁극적인 심판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의 세속화를 초래합니다. 예수 믿는 자의 자부심을 다 던져버리고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유행에 휩쓸려 살게 됩니다. 

에이즈 환자와 영적인 교만한 자의 공통점은 그 증상이 천천히 진행되다가 결국은 죽게 된다는 것과 자신뿐 아니라 남도 전염시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한 자들의 말과 태도는 다른 사람을 전염시키며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말은 하나님의 기념책에 기록됩니다(16절).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불신앙의 물결이 거센 슬픈 현실이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는 자들의 대화를 경청하시고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말들을 하나님의 기념 책에 기록하십니다(16절).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의 모든 말을 다 기록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상을 주기 위함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망령되이 내뱉은 악한 자들의 말도 다 기록하십니다. 이는 심판을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주님을 무시하는 언행을 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감사주일을 준비하면서 부부가 함께 “우리의 정성을 담으십시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적당히 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의 열매를 다 기억하십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베드로의 신앙고백, 바울과 실라의 빌립보 감옥에서의 찬송, 손양원, 주기철 목사님의 옥중 기도, 이 모든 것들도 주님께서 기억의 책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억의 책에는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분의 한마디, 한마디의 말들이 녹음되어 있는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의 상과 심판이 있습니다(4:1-3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악한 자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교만한 자와 악인은 초개와 같을 것이며 그 뿌리와 가지를 남겨두지 않는 처절한 심판이 있습니다(1절). 그러나 의인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2절). 우리의 삶에 의로운 해가 떠오르는 것은 경제회복, 건강, 자녀의 잘됨 등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침묵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귀한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완전한 승리와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우리 발바닥의 재와 같이 될 것입니다(3절). 

지난 8개월을 결산하면서 혹시 신앙의 자세를 벗어나 내 입술로 함부로 주님과 교회에 대해, 그리고 형제에게 편벽되게 말한 것이 있다면 회개합시다.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합시다. 물질문제, 건강문제, 자녀문제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서 환경에 굴복하는 환경의 종이 아니라 주님 앞에 보배로운 존재로 서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 나의 생애를 걸고 우리의 말과 태도를 바꾸어 영적인 정비를 새롭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도록 합시다. 9월에는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이 저와 여러분에게 더욱 충만하게 머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우리에게는 구원의 날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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