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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청결한 자 (마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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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청결한 자 (마 5:8)

요즈음 떠도는 유머 중에 잘못된 여자 3인방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첫째,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입니다. 딸 같은 며느리라고 자랑하지만 며느리는 며느리요, 딸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입니다. 아들 같은 사위라고 떠들어대도 사위는 사위요,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셋째, 며느리 남편을 내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입니다. 

남존여비 사상이 존재하던 옛날에는 결혼식하면 여자가 시집가고 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만 요즘 결혼식은 아들 장가보내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들들은 장가가는 즉시 며느리 남편이 됩니다. 그런데 내 아들로 착각하고 있으니 이게 됩니까? 

옛날에나 아들아들 했지 요즈음 아들이 인기 없는 시대입니다. 오죽하면 아들에 대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들이란 사춘기가 되면 남남, 군대 가면 손님, 장가가면 사돈이라고 우스개 소리하겠습니까? 또 있습니다. 아들이란 낳을 땐 1촌, 대학가면 4촌, 군에서 제대하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애 낳으면 동포, 이민가면 해외동포, 잘 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진 아들은 내 아들이랍니다. 

그런데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다행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문젭니다. 보세요. 남편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남편이란 집에 두면 근심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 덩어리, 마주 앉으면 원수덩어리, 혼자 보내면 사고덩어리, 며느리에게 맡기면 구박덩어리랍니다. 

웃자고 하는 말이겠습니다만 실제로 우리들의 오래된 착각이면서 오해들입니다. 사람이란 마음에 늘 욕심이 있고, 자기에게 유익하도록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 생각에서 조금만 빗나가면 실망하고, 상처도 받고, 아파하기도합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지켜나가느냐가 내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고, 마음에 무엇을 담고 살아가느냐가 그 사람의 됨됨이가 되고 나아가서는 그 마음의 결과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의 상급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유명한 산상수훈의 팔복 가운데 하나를 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그런데 여러분, 마음의 청결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느 정도 마음이 청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주님의 말씀에는 마음이 청결한 수준만큼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마음입니다. 기독교를 마음의 종교라는 말을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기독교는 속사람이 변화하는 종교라는 의미와 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외적행위는 내적 마음의 동기로 이루어집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좋지 않은 언어와 행위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아무리 아름다운 선행과 옥구슬 같은 언어를 쏟아낸다 할지라도 속사람 즉, 근본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의 자기위선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음과 행위가 일치할 때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논리학> 에서는 사람의 살아가는 형태가 대개 두 가지 스타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논리학의 용어로 <연역법적 삶의 방식> 과 <귀납법적 삶의 방식> 이 그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 마음에 내켜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마음으로 먼저 결정을 내리고 나서야 행위가 따라가는 사람들의 형태입니다. 말하자면 신중론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저것 요모조모를 면밀히 따지며 생각하고 나서 일단 마음이 결정 되어야 실행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쪽에 가까운 편일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다른 하나는 먼저 행동이 따라가고 마음으로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해놓고 보자는 성격입니다. 행동으로 저질러 놓고 마음으로 수습하는 형태입니다. 현실과 상황에 충실해서 먼저 일을 시작해놓고 마음으로 하나씩 정리하며 논리적으로 합리화시켜 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어떤 삶의 방식이 옳으냐를 논하자는 게 아닙니다. 장단점이 있고, 자기 성격에 맞는 방식이 있습니다. 어느 방식으로 살든지 상관없습니다. 둘 다 결국은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하고, 하나는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마음의 상태가 큰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 사실인데 문제는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오늘 말씀대로 누가 청결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니까 더 몸부림치고 더 마음이 악해지거든요. 그래서 가끔씩 돌아서서 후회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때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데 모르긴 해도 생각해보면 대부분이 그때 그 자리 그 상황에서 내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이 나가버린 것입니다. 틀림  없습니다. 여러 번 경험합니다만 마음을 다스린다는 게 여전히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성경 잠언4:23에 보면 이 부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자, 여러분 청결이 무엇입니까? 결국 마음을 깨끗이 지켜 나가는 것, 이것이 청결입니다. 

원래 청결이라는 헬라말의 의미는 세탁이 되어서 깨끗한 옷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주의 깊게 생각해 봅니다. 새것이 아닙니다. 더러워진 것을 깨끗하게 씻는 것을 청결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더러워진 마음, 찌들어진 마음, 구부러진 마음, 변질된 마음이 다 씻어져서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이 될 때 이것을 청결이라고 말합니다. 본래 새것이란 없다고 했습니다. 다 더러워진 마음이지만 누가 빨리 깨끗이 씻어내느냐는 문제입니다. 

또 하나의 청결의 의미는 농사지으면서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알곡만 남도록 키질을 하는 것을 청결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혼잡 되지 아니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모습을 청결이라고 합니다. 

가령 우유에 물을 타면 더 이상 우유가 아닙니다. 포도주에 물을 섞었다.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물은 물이어야 되고, 우유는 우유여야 되고, 포도주는 포도주여야만 청결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가 자리 잡았다면 언제까지나 예수여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수학공식 문제 하나를 내겠습니다. 예수 더하기 세상은 무엇입니까? 혼잡입니다. 

그러면 예수 더하기 내 욕심은 무엇일까요? 불결입니다. 예수에 내 장사가 더해지고, 예수에 내 영업이 더해지면 정말 지저분해지는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 순수한 마음, 청결한 마음이 없으면 교회는 나올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한다면 평생을 살아도 변화된 삶, 새로운 삶이란 기대 할 수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마음을 청결하게 할 수 있을까요? 
먼저는 악한 세상을 따라가지 않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 가운데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악한 풍습과 악한 마음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의 개념이나, 세상의 통념과는 다른 차원의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어려운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신앙을 떠나거나, 양심을 팽개치는 불신앙으로 죄짓지 않고 악한 마음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 세상의 풍속과 다른 우리들의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죄와 타협해서라도 빨리 결과를 끝내려고 하는 유혹이 생기는 이런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성공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지는 비결은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면 내가 이기는 걸로 아는 착각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남을 속이는 것은 곧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려고 하는 마음이 어디 깨끗한 마음입니까? 그것은 더러운 마음이고 어두운 마음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것 같고 위험한 것 같아 보여도 결국은 그것이 성공적인 삶입니다. 정직하게 살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청결해지면 하나님을 볼 수가 있으니 누가 인생의 최종 승리자가 되겠습니까? 

마지막 하나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지는 비결입니다. 욕심은 나를 죽이는 무서운 독약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흐려 놓는 것이 이 욕심입니다. 오늘 말씀이 의미하듯이 흐려진 마음에 하나님을 못 보는데 무엇인들 볼 수가 있겠습니까? 

야곱은 물질에 대한 욕심, 자녀에 대한 욕심,... 욕심이 보통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얍복강변에 섰을 때 이걸 다 포기하게 됩니다. 자녀를 건네 보내고, 재산을 건네 보내고 홀로 남아서 기도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쓸데없다는 걸 알게 될 때 마음이 어지간히 깨끗해졌고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마음을 비우고 순수하고 청결해 질 때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주님의 오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왜 이렇게 무기력합니까?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무능하다고 느껴집니까? 여러 가지 생각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마음을 다스리고 청결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놀라운 복을 다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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