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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의 걸림돌 (겔 18:30-32, 갈 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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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걸림돌 (겔 18:30-32, 갈 5:11-12)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란 조각상이 있습니다. 이 조각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팔지 않기 때문에 살 수 없고 값을 매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1501년 8월, 26세의 미켈란젤로에게 피렌체 대성당의 지도자가 조각을 의뢰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6미터나 되는 거대한 대리석을 이용하여 3년 만에 5.49미터의 조각상을 만들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 대리석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거추장스런 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돌을 피하여 돌아가던 쓸모없는 돌이었지만 미켈란젤로에게는 아주 요긴한 돌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걸림돌이지만 유용한 디딤돌이 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디딤돌을 걸림돌로 오인하여 만날 때마다 불평하고 걸릴 때 마다 치워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능한 조각가는 걸림돌을 가지고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어 자신의 디딤돌로 사용합니다. 
  
미국의 사상가 토마스 카라일은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길을 가다 거친 돌을 보고 만나게 되면 디딤돌로 보고, 그것을 디딤돌로 선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이며 성공하는 자입니다. 
  
시편 118:22에는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신약 여러 곳에서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필요 없다고 한 돌이지만 가장 요긴한 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씀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걸림돌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우리 구원의 디딤돌입니다. 예수님을 디딤돌로 모두 인류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모기와 날 파리가 적었습니다. 벌레의 유충이 성충이 되는 과정에서 너무 일찍 무더위 때문에 성충이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더운 날씨에 덕 본 것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작은 모기 한 마리가 여름밤 잠을 망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걸림돌은 반드시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일 때가 많습니다. 작은 걸림돌 때문에 큰 인생길을 망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영국 추리소설가 코넬 도일은 “가장 작은 것은 조금씩 찾아온다. 작은 구멍에 햇빛은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조약돌에 걸려 넘어진다. 작은 것이 곧 좋은 것이다. 작은 구멍이 커다란 배를 침몰시킨다. 오래 동안 내 좌우명이 작은 것들의 귀함이었다. 작은 것들이 한없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이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큰 산은 넘어가지만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눈으로 보면 몸의 병이 유익이 되고, 가난이 유익이 되고, 무지가 유익이 되고, 약함이 유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약함이고 걸림돌이지만 신앙으로 보면 강함이며 디딤돌입니다. 
  
시편 119:71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합니다.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11:30에는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합니다. 바울에게는 걸림돌이 디딤돌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성공하고 바라던 것을 이루려면 반드시 걸림돌과 장애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걸림돌이 없는 일은 없고, 걸림돌을 제거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도 없습니다. 십자가를 얻기에 장애가 되는 걸림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런 걸림돌을 잘 제거하여 십자가를 매고 가며, 십자가를 향하여 매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십자가는 걸림돌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1에는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라고 합니다. 십자가는 걸림돌이 있고, 장애물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걸림돌을 이전 성경에는 “거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얻으려는데 거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할례를 전하였다면 박해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면 박해란 아예 없었을 것입니다. 할례를 전하지 않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이나 귀에 거슬리는 것을 전하므로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논리나, 듣기 좋은 말을 하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반대가 되며 맞지 않을 때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었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스데반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결박을 당했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헤롯에 의해 참수를 당했습니다. 바울이 모진 고난과 순교를 당했습니다. 십자가만 아니면 이런 고통을 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3에는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라고 합니다. 십자가가 율법으로는 정죄의 대상이고, 심판의 조건입니다. 십자가가 이방인의 철학으로는 비논리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괴리관계입니다. 율법에 십자가란 없습니다. 희생적 사랑이란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용서란 없습니다. 마태복음 23:13에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고 합니다. 율법은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나 십자가의 걸림돌입니다. 율법은 십자가의 방해꾼입니다. 
  
이성적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지성적으로만 해석하여 지성화합니다. 반면에 물질적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물질로 해석하여 물질화합니다. 지성화와 물질화 이 두 가지는 십자가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세상의 권력이나 세상의 논리로 볼 때 십자가는 인생의 걸림돌에 불과합니다. 정치 논리에서 볼 때 십자가는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패배자의 절규에 불과합니다. 율법의 논리에서 볼 때 십자가는 하나님을 모독한 결과에 불과합니다. 철학적 논리에서 십자가를 볼 때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을 주장하다 죽음과 부활의 논리가 패배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모든 인간의 논리는 모두 십자가에 걸림돌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의 장애물 첫째는 아는 것이 단지 그 대상에 관해 아는 것 즉 정보의 축척이라는 지성주의자들의 사고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적 교만이라는 죄에 빠져서 우리가 알 수 없다면 진리일 수 없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지성, 자신의 지식으로만 보는 것은 십자가의 걸림돌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먹고, 마시고, 입고, 사는 문제들은 아주 중요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이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지만 영적 훈련, 영혼을 길들이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조금 열심히 살고, 진실하게 살고, 성공적으로 살려고 해도 걸림돌이 있는데 하물며 십자가의 삶을 살기 위하여 걸림돌이 없겠습니까?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며, 험한 길이며, 좁은 문으로 들어간 길이므로 가는 길에는 걸림돌이 많습니다. 십자가에 도달하기 까지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중국 장쓰안의 ‘나를 이기는 힘, 평상심’이란 책에는 불행, 실패, 고민, 고통 따위를 견디기 힘들 때는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고 합니다. 담담하게 인생의 길목에 놓인 걸림돌을 뛰어 넘은 다음에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 들판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그 걸림돌로 인해 더 멋이 나고 풍요로워진다고 합니다. 걸림돌은 인생을 멋있고 풍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얻으려면 걸림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걸림돌이 십자가를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묵묵히 걸림돌을 넘어 십자가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2에는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바울은 할례 얘기 끝에 스스로 베어버리라고 합니다.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라는 유대인에게 공격적, 풍자적으로 아예 할례가 아니라 거세해 버리라는 뜻으로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는 유대인에게 아주 중요한 의식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구원의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복음을 어지럽게 하는 걸림돌입니다. 할례는 하나의 상징이지 그 자체가 구원은 아닙니다. 

할례의 근거는 창세기 12:10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고 하신 말씀에 근거합니다. 

성경은 당일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다고 전합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나이가 99세였고, 이스마엘은 13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들어 할례를 받느라 고생했을 것입니다. 현재도 무슬림들은 13세에 할례예식을 하는데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은 그 나이에 따라서 그렇게 합니다. 율법적으로 말하면 할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과의 언약이며, 구원의 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율법적으로는 할례를 다 받게 하였지만 십자가는 더 이상 할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가 처음 총회를 모여 심각하게 논의했던 안건도 바로 이방인의 할례에 관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5:1에는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라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할례가 구원의 표로 오인하고 있었습니다. 

15:5에는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람들이 말하였습니다. 율법적으로 말하면 이방인들은 할례 받을 자격도 없지만 예수를 믿은 바리새인들은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만큼 할례가 중요한 의식이었던 것을 말합니다. 

할례 문제로 총회가 모여 심각하게 논의할 때 베드로가 사도행전 15:10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절에는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고 합니다. 할례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말하므로 할례라는 십자가의 걸림돌을 베드로가 제거해 주었습니다. 
  
기독교의 어떤 의식도 십자가 보다 앞서는 것은 없습니다. 기독교의 의식을 구원의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다 복음에 방해 되는 걸림돌입니다. 오래 전에는 재세례파라는 기독교 이단이 있었습니다. 재세례파는 이전의 유아세례를 부인하고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성인이 되어 신앙고백을 하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온전한 신자가 된다고 주장하는 파입니다. 

세례가 믿음과 구원에 걸림돌이 되면 안 됩니다. 안식교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그 외에도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은 방언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방언을 못하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은 제거해야 할 십자가의 걸림돌들입니다. 상징이나 의식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십자가를 가리면 무엇이든지 다 십자가의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십자가를 향하여 가는 길에서 걸림이 되는 것들은 낱낱이 제거해야 구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사야 57:14에는 “그가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가는데 걸림이 될 만한 모든 돌들을 제거하여 평안의 길로 만들어주십니다. 
  
캄캄한 방에 들어가면 커튼을 걷습니다. 커튼을 걷는 순간 밝은 햇빛이 방안으로 들어옵니다. 캄캄한 방을 밝게 한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햇볕은 내가 커튼을 걷기 전에 이미 있었습니다. 사람은 다만 햇빛이 방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걸림돌을 없앤 것뿐입니다. 걸림돌을 없애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걸림돌을 없애면 햇볕이 들어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육신의 걸림돌도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걸림돌을 해결하는 사람은 성공자이며 위대한 사람입니다. 플라톤은 곱사등이었습니다. 유명한 웅변가 데무스테네스는 말더듬이였습니다. 서사시인 호머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음악가 베토벤은 청각장애인이 되었을 때 불후의 명작을 작곡하였습니다. 걸림돌을 제거하면 예술에서도 위대함이 기다립니다. 
  
로마서 9:33에는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걸림돌을 두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의 도로는 참 잘 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로는 도로율뿐만 아니라 도로 포장율도 세계에서 으뜸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도로 총길이는 약 650만 킬로미터나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포장도로와 평평한 인도에 익숙하여 그렇지 못한 길은 적응을 잘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길이 평평하고 순탄할 때도 있지만 울퉁불퉁하고, 돌투성이이고, 걸림돌이 수북한 길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야 합니다. 걸림돌은 딛고 올라서라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주 오래 전 어느 교회의 대학부 지도목사일 때 여름에 대학생들이 지방 여러 곳에서 농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곳을 방문하러 갔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큰일이었습니다. 영화를 하면 동네 사람들이 죄다 모이곤 했습니다. 그래서 차에 영사기를 싣고 영화를 상영하는 기술자인 장로님과 권사님을 모시고 제가 운전을 하고 다녔습니다. 

전라북도 어디엔가를 가는데 당시엔 내비게이션이 없기 때문에 지도를 보면서 갔습니다. 지도를 보니 가까운 길이 있어서 그 길로 들어섰는데 그 길이 완전히 돌길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섬진강댐을 굽이굽이 한 바퀴를 돌아간 것입니다. 얼마나 험한 길인지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덜컹거리는데 걱정이 되었든지 뒷자리의 권사님은 계속 “주여”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중간쯤 가니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가 얼마나 더 가면 되느냐고 물어보니 한참을 더 가야 한다고 하면서 “한 해에 한 두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 이 길로 들어와요”라고 하였습니다. 돌아갈 수도 없는 길이었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걸림돌이었습니다. 이런 때에 어떻게 합니까? 걸림돌은 빨리 지나가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결론 

탈무드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을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는 ‘키이소오’(돈 주머니)입니다. 사람에게 돈을 맡겨서 어떻게 쓰고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보면 그 삶을 금방 평가할 수 있습니다. 돈주머니는 인간 평가기준으로 제일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돈주머니를 ‘유니버설 패스포트’라고 합니다. 

둘째는 ‘코오소오’(술잔)입니다. 술잔은 인격을 흔드는 요소입니다. 사람이 모인 곳 가운데 술자리처럼 인심이 후한 곳이 없습니다. 술잔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제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합니다. 

셋째는 ‘카아소오’(노여움)입니다. 노여움은 작은 것이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미친 사람처럼 되게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자신이 평가 받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이 세 가지가 디딤돌이 되게 만듭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세상에 걸림돌은 없습니다. 디딤돌만 있을 뿐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장로,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장로님을 디딤돌로 만드는 것이 목회자의 몫이라고 봅니다. 저는 “우리교회 장로님은 디딤돌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야 좋은 리더십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장로님은 ‘돌’이 아니라 목회자의 동역자이며 협력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여정은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십자가의 걸림돌을 제거하여 십자가의 길이 평탄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여정에서 우리 앞의 모든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어 항상 위를 향해 독수리 같이 올라가는 힘 있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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