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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출 13: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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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출 13:17-22)

제1차 걸프전쟁을 기억하실 겁니다.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를 침공해서 장악했습니다. 여기에 맞서서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연합군이 결성되어 이라크와 전쟁을 벌었습니다. 사막의 폭풍 작전이라고 연합군이 아라비아 사막을 가로질러 이라크군을 공격했는데, 그들이 선택한 루트는 산도 없고, 강도 없고, 오로지 사막만이 있는 평지였습니다. 아무리 지도를 들여다봐도 위치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지형입니다. 사막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길을 찾았느냐? 지금은 흔한 기술이 됐지만 당시에는 최첨단 기술이었던 GPS를 사용했습니다. Global Positioning System. 요즘에 자동차 내비게이션으로 익숙한 GPS가 그 당시에는 첨단기술이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알 수 없는 사막에서 아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GPS는 사막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는 아주 긴요한 방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도 그들의 상황이 비슷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400년 동안 살던 애굽 땅을 떠났습니다. 이씨 조선이 500년이었는데 400년 동안 남의 땅에서 종살이를 했으면 거의 그들의 삶의 뗄레야 뗄 수 없는 부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가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소수의 무리가 아닌, 거대한 민족이 사막을 횡단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그들 앞에 무엇이 나타났느냐면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적으로 그들을 인도한 것입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면 로렌스가 사막을 횡단할 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하지만 그의 앞에 구름기둥 같은 것이 나타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막의 회리바람이 구름기둥처럼 보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났던 구름 기둥도 그런 현상이 아니었을까? 회리바람이 마치 구름기둥처럼 보인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름기둥은 그렇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불기둥은 어떻게 설명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회리바람이 하루 이틀 불 수는 있지만 40년 동안 지속적으로 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경험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첫째로 이들의 여정은 이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들을 이끌어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고역이 힘들어서 하나님께 부르짖기는 했지만, 바로로부터 건져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고 가나안 땅으로 데려다달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이들을 인도해서 기대하지 않던 길고 어려운 여정을 시작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을 얻었을 때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큰 일이고 더 위대한 일이고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만일 이들이 그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애굽에서 나오는 것을 주저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도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어떤 일을 행하실지 미처 다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구하고, 구원해 주시기를 구하고, 도와주시기를 구했지만 하나님의 선민이 된다는 것,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 의로운 백성이 되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다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저도 처음 목사로 헌신할 때 그것이 신나고 기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목사라는 소명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다 알지 못했습니다. 알았더라면 주저했을 것입니다.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미혼남녀는 결혼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핑크빛 인생이 기다릴 줄로 생각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면 이제는 어른이 돼야 되고, 어른으로서 인생을 책임져야 되고, 내 삶뿐만이 아니고 배우자와 자녀와 가정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또 취업을 구하는 젊은이들은 취직만 하면 인생이 행복하리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출근하기 시작하면 고달픈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것을 불평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런 것을 불평한다면 애들은 어른이 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고 사람은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패키지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고 싶다면 어른의 의무를 감당해야 되고, 결혼을 하고 싶다면 결혼에 책임을 져야 되고, 부모가 되고 싶다면 부모의 임무를 감당할 수 있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사명 · 부르심 · 은사 이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것을 이해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고 대장부가 되어야 하고 그릇을 더 크게 키워야 됩니다. 우리는 달라, 달라고 청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려고 하지 않는데 엘리사가 과부에게 기적을 경험하기 위하여 먼저 병을 빌리라고 명한 것처럼, 그래서 빌린 모든 병이 가득 찰 때까지 기름이 부어진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고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고 또 도우심을 받을 때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해야 되는데 이 그릇은 우리의 믿음이요, 우리의 인격이요, 우리의 담대함이요, 결단인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아무도, 아무 일도 할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벌이시는데 사람만이 일을 벌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큰일을 벌이셔서, 아담을 창조하신 것도 일을 벌이신 것이고, 노아의 홍수 후에 다 멸절하지 않고 노아의 가족을 살리신 것도 일을 벌이신 것이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지신 것도 일을 벌이신 것이고, 교회를 세우신 것도 일을 벌이신 것입니다. 그 말은 위험을 감당하시고 어려운 일인 줄 알고 하나님이 의도하셨다는 얘기에요. 하나님도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만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 믿음을 지키는 길, 믿음대로 사는 길이 우리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도 그 사실을 아시지만 그것을 알고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벌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대책 없이 일을 벌이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시리라’ 이루시지 않으실 일은 하나님이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시작하셨다는 말은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사람은 용두사미, 시작은 했지만 끝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셨기 때문에 시작하신 것을 이루실 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은 시작하신 것을 이루신다는 의지와 방법을 보여준 것입니다. 

또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부르셨다면 이루실 줄을 믿어야 됩니다. 목사로 부르든, 성도로 부르든, 제자로 부르든, 주님이 부르셨다면 주님이 미쁘시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실 줄을 믿어야 됩니다. 이것은 나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이에요.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릴을 좋아하시는 분은 신앙생활이 적성에 맞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이나 살던 애굽 땅을 떠났습니다. 과거에 그들이 비록 노예 신분이었지만 애굽이라는 나라, 애굽이라는 공동체, 애굽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소속이 되고, 거기에서 어떤 소속감을 느끼고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된다고, 애굽이라는 나라의 문화 · 전통 · 그들의 국력, 이런 것에 비빌 수가 있었어요. 그러나 애굽에서 나온 다음에는 홀로 서는 배워야 되고 더 이상 비빌 데는 하나님밖에 없어요. 과거에 그들이 의지했던 애굽은 더 이상 이들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로스라는 여자 주인공이 원래 영국의 귀족가문 출신입니다. 그런데 그 가문이 몰락했어요. 그래서 미국의 부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그가 속했던 가문의 명예는 빛 좋은 개살구에요. 지금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더 이상 과거의 영화나 과거의 학벌이나 과거의 업적이 더 이상 나의 현실에 도움을 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 더 이상 해답이 없어요. 이제 내가 갈 길을 하나님이 GPS로 보여주셔야 될 때가 옵니다. 애굽 사람은 아마 이스라엘을 내보내면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한 달 안에 되돌아온다. 그들이 분명히 못 살겠다, 배고프다, 힘들다, 돌아 올 것이다. 다시 받아달라고 애원하는 날이 올 것이다.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백성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굶어 죽지도 않고, 길을 잃지도 않고, 모세가 말한 것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놀라운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것이 기적이지만 가나안에 들어간 건 더 큰 기적이에요. 우리가 크리스천이 된 것도 기적이지만 믿음을 지키고 천국 가는 것은 더 큰 기적입니다.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70 평생이든 백년이든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보다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시험과 환란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했을 때 아마 바티칸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 사람들 얼마나 가나 두고 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되돌아올 것이다. 저들이 가봤자 어디로 갈 것이냐?’ 그러나 개신교회는 가톨릭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독자적인 길을 개척했고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입장이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공감하실지 모르겠지만, 21세기의 기독교, 여러분이 저의 설교를 들으실 때 제가 늘 고민하고 염두에 두는 것은 21세기 기독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21세기의 기독교는 이제 어디서 하나님의 인도를 얻을 것이냐? 이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영화는 과거의 것에 불과합니다. 

1,500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유럽대륙은 포스트 크리스천 문명이 됐어요. 유럽의 도시마다 서 있는 성당들은 박물관일지언정 신앙의 생명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유럽의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인구의 비율이 5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의 개신교는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야 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부흥하던 때가 있었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이 됐고 부작용이 노출되었고, 비판에 직면했고,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는 동네북이 됐습니다. 

교회세습 · 재정비리 · 도덕적 타락 · 기복신앙 등등 여러 가지 과거에 우리가 잘 하는 줄로만 생각했던 것이 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만일 이대로 지속한다면 이 세대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기댈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방법이 더 이상 먹히지 않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처럼 여기에서 길을 찾아야 됩니다. 

그런데 교회의 생존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세상의 교회와도 같습니다. 아마 애굽 사람들은 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어떻게 될까, 굶어 죽을 것이다, 길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이 세상의 교회도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데 어디에 있든, 어느 시대든, 크든 작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하나님이 오늘날 인도하시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자동차 엔진을 켜면 내비게이션이 저절로 인공위성의 신호를 잡아서 가동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GPS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다른 것을 바라보지 말고, 남이 도와줄 줄을 기대하지 말고, 과거의 경험에서 전례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이 오늘날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인도하실 줄을 믿어야 됩니다. 그렇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길을 찾을 수 있고 길을 잃지 않을 것이고 굶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이전에 교회를 인도하셨던 것처럼 21세기에도 당신의 교회를 인도하시고 오히려 흥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I will build my church’ 남의 교회가 아니고, 사람의 교회가 아니고, 교단의 교회도 아닌, 예수님의 교회에요. 나의 교회 - my church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의 권세가 없는 게 아니에요. 음부의 권세는 항상 있어요. 바다에 항상 파도가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늘 음부의 권세가 파도처럼 일지만 그럼에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얼마나 귀중한 말씀인지 몰라요. 

그러므로 교회에 대한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에 교회의 승리를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켜면 저절로 인공위성의 신호를 찾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열고 우리의 영혼의 on 스위치를 켜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시작합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압니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해보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로 이스라엘에겐 그 당시에 성경도 없고, 율법도 없고, 제사장들도 없고, 성전도 없고, 그들에게는 모세를 통해 확인하신 하나님의 약속밖에는 붙들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이라는 극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그들이 실감할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절박함에 상응하는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인간의 상황이 절박할수록 하나님은 거기에 상응하는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만약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GPS가 있고, 내비게이션이 있었다면 불기둥 구름기둥이 필요 없지만 그게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필요한 방법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만약 광야에 오천 명의 남자가 먹을 것이 풍성했다면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풍성했다면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당시 이스라엘에 병원이 많고 의료시설이 발달하고 의학이 발달했다면 예수님이 그처럼 많은 병자를 고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하여 우리가 일부러 병이 들고 일부러 가난하고 일부러 길을 잃어야 된다는 말이냐? 그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기대하면 됩니다. 남의 상황을 흉내 내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어린이가 자라면서 보니까 언니도 안경을 쓰고 엄마도 안경을 쓰고 아빠도 안경을 쓰고 자기만 안경을 안 썼어요. 그래서 나도 안경을 끼고 싶다 그래서 일부러 안 보이는 척, TV를 보면서도 일부러 얼굴을 찡그리면서 안 보이는 척, 그건 어린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안경이 없어도 잘 보이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모르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됩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드린 얘기입니다마는 어떤 사람이 꿈에 주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예수님이 첫 번째 사람은 껴안아 주시고, 두 번째 사람은 손을 잡아 주시고, 꿈을 꾸는 사람이 세 번째 사람이었는데 눈만 마주치시고 지나가시더래요. 그래서 섭섭해서 ‘주님, 왜 저 사람은 껴안아주고, 이 사람은 손을 잡아주시는데 나는 눈만 맞추고 가십니까?’ 그랬더니 주님 대답하시기를 ‘첫 번째 형제는 상처가 많고 내가 안아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두 번째 사람은 그보다는 강하기 때문에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고, 네가 그중에서 제일 강하기 때문에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어느 것이 낫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각 사람에게 족합니다. 남의 상황을 흉내 내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는 신앙의 훈련도 안됐고, 성경도 없고,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이라는 극적인 방법을 통해서만이 그들을 인도하실 수 있었지만 이것은 영원한 방편이 아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일시적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말씀이 있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신앙의 훈련을 받으면 이것을 가지고 얼마든지 옳고 그른 것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어요. 광야에서 굶어죽지 않고 길을 잃지 않았어요.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성도와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김영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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