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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각하라 (골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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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라 (골 4: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골로새서 4장 18절>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누군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몸에서 
‘돈 많이 줄테니 바꾸자’고 한다면 바꾸시겠습니까?
아니면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절대 바꿀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돈만 있으면 코도 고치고, 눈도 고치고, 턱도 깎고 싶다고 합니다.

요즘 야구시즌이 한참입니다. 
지금 미국 메이저리그 신시내티라는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추신수 선수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고
LA다저스(Dodgers) 소속으로 뛰고 있는 류현진 선수 또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 인기도 많고 돈도 많이 벌고 있습니다. 

류현진 선수와 한 팀(LA Dodgers)에서 뛰고 있는 
브라이언 윌슨(Brian Willson)이라는 투수는
덥수룩한 턱수염이 특징인 선수입니다.
턱수염이 가슴팍 근처까지 내려오도록 기른 것도 모자라
수염 끝 부분을 고무줄로 묶은 채 마운드에 오르기도 합니다.

한 면도기 회사가 이 투수에게
자사의 면도기로 턱수염을 면도하는 모습을 찍게 해 주면
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 했습니다.
그러나 윌슨 선수는 자신은 무덤까지 턱수염과 함께 갈 것이라면서
면도기 회사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2013년 8월 22일, 미 TMZ Sports ‘My Beard is Here to Stay!’ 기사. 참조>

저도 오늘 아침 면도를 했는데 누구 하나 돈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면도나 머리를 깎는 조건으로 12억, 아니 천 만원을 준다면
거절하시겠습니까, 승낙하시겠습니까?
12억도 거절하고 턱수염을 무덤까지 가져가겠다, 
지키겠다고 하는 것 대단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믿음을 잘 지키십니까?
만약 우리의 믿음을 포기하는 대가로 
큰돈을 주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단돈 백 만 원에 믿음을 팔아먹는 사람이 많습니다.
단돈 몇 푼에 예수 안 믿는 척 하고 믿음을 저버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잡아 흔들고 
우리의 믿음의 견실함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려는 사람, 일들이 많습니다.
하물며 턱수염도 아니고 믿음인데 여러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과 “우리 믿음 흔들리지 맙시다.”라고 인사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의 마지막 한 마디

로마가 탄생시킨 최고의 영웅이라고 평가받는
‘시저’(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 BC 100.7.12~BC 44.3.15)는
죽기 직전에 “브루투스, 너마저 …”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실제 그런 말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4.26~1616.4.23)의 비극
‘줄리우스 시저’에서 …> 
자신의 생명을 노린 암살자들의 틈에서
믿었던 심복 브루투스를 발견한 시저의 이 마지막 말은
로마의 최고 권력자였던 사람이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고 
배신과 반란에 대한 염려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게 해줍니다.
< A.J. 제이콥스,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서울: 김영사, 2007), p.67. 및
임성학, 『인생 게임에서 이겨라』 (서울; 청어, 2007) p. 208. 참조>

1955년 미국에서 사망한 독일 출신의 과학자(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3.14.~1955.4.18.)은
임종 직전에 마지막으로 독일어로 무엇인가를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아인슈타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독일어를 모르는 미국인들이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말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기류 미사오, 『알고 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 
(서울: 노블마인, 2007), pp. 189~190. 참조. >

마지막 말이나 죽기 전에 하는 유언은 
한 개인의 인생이 고스란히 농축된 ‘엑기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인의 유언을 중요하게 여기고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또 그 유언이 실현될 수 있도록 여러모로 힘을 씁니다.

사도 바울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골로새서입니다. 

골로새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기록한 편지입니다.
그때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바울은
- 자신이 다시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 …
- 나가게 된다면 언제쯤이 될지 …
- 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오는 
골로새 교회를 방문할 수 있을지 …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비전 성경 사전』 (서울: 두란노서원, 2011) p. 58. 참조.>

그래서 골로새 교회에 쓴 편지를 마무리하는 순간에 …
바울은 골로새 교회 교인들을 향해
유언을 하는 심정으로 꼭 필요한 말을 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중요한 한 마디가 바로 골로새서의 마지막 구절 … 본문 말씀입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골 4:18)

바울은 자신이 친필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당시에는 바울의 이름을 도용하여
잘못된 가르침을 퍼뜨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바울의 편지가 위조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듯
편지 마지막 문장을 직접 기록했습니다.
<목회와 신학 편집부, 『데살로니가전후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서울: 두란노 아카데미, 2012). p.211. 참조. >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은 본문에 언급된 것처럼
어쩌면 손이 모두 묶여(매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글을 쓰기 어려웠던 바울 곁에는
누군가 바울이 불러주는 내용을 기록했던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마지막 한 마디만큼은 
직접 기록했음을 명확하게 표현했습니다.
< 『베이커 성경주석(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서울: 기독교문사, 1987), p.366. 참조>

그만큼 중요한 한 마디 … 그만큼 값진 한 마디가 바로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였습니다. 
복음 때문에 쉽게 번역된 성경에는 이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내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골 4:18, 쉬운 성경)

영어 성경에는 같은 말씀이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 Remember my chains …”(계 3:17)

자신을 묶고 있는 사슬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슬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힌 채 묶여 있는 자신의 상황을 강조한 것은
-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 골로새 교인들에게 동정을 구하는 표현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왜 지금 감옥에 있는지를
골로새 교회 교인들이 알기 원했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임을 전하다가
매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골 4:3)

바울은 자신처럼 골로새 교인들이 진리 때문에 고난을 받을지라도 …
복음 때문에 어려움에 처할지라도 …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히 12:2)
승리하는 삶의 주인공이 될 것을 바랐던 것입니다. 
< 렌스키, 『성경주석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서울: 백합, 1979) p. 371. 참조. >

골로새 교회가 ‘교회를 위협하는 모든 거짓과 비방을 이겨내고 
끝까지 복음을 지키는 것 …’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고 표현한 바울의 속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매여 있고 고통중에 있다. 
내가 왜 고통 중에 있는 줄 아느냐, 
내가 복음을 전하다 그렇게 되었지만 나는 소망가운데 있다. 
너희들은 나를 보면서 너희들도 복음 안에서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어도 잘 견뎌라’하는 말입니다. 
종종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잘 하는 말이
“다 십자가로 생각하고 참고 살아야지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 그게 옳은 말일까요?

물론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마 16:24, 막 8:34, 눅 9:23)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섬기며 살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욕심이 있고 지고 가야할 십자가도 있습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고통까지도
‘십자가’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을 십자가라고 말해도 됩니까.
욕심을 부리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그것을 십자가라고 말합니까.
방탕하고 사치스러웠던 과거의 소비습관으로 인해
현재 물질적 궁핍함을 겪는 사람이 
그것을 거룩한 십자가라고 포장해서 말해도 되느냐 말입니다.

물론 십자가는 고난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겪는 고난이 다 십자가는 아닙니다.
우리의 명백한 잘못과 실수 때문에 
혹은 욕심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이 십자가는 아닙니다.

십자가에는 ‘복음의 십자가’와 ‘욕심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복음의 십자가’는 신앙을 버리면 겪지 않아도 될 고난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 믿지 않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난입니다.
교회에서 집사, 권사, 장로, 목사가 되어 겪는 고난은 
직분을 내려 놓으면 됩니다.
여선교회 회장, 남선교회 회장, 속회강사, 찬양대, 교사, 
주방봉사, 주차안내를 하다가 겪는 어려움은 그만두면 됩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복음의 십자가일 것입니다. 
-‘욕심의 십자가’는 고난은 고난이지만 
자신의 욕망과 실수와 죄로 인해 겪게 되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해 복음의 십자가를 지는데 
‘모범’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골로새교회 교인들이 매여 있는 자신을 떠올리면서
힘들고 어렵지만 소망 가운데 승리하기를 구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의 고난과 역경이 더 이상 절망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 2:19)

그러므로 비록 세상에서 
- 복음 때문에 매여 사는 것 같다 할지라도 …
- 예수님 때문에 남들처럼 세상살이가 편안하지 못하더라도 …
- 예수 믿기 때문에 아무 것이나 먹을 수 없고, 
아무 곳이나 갈 수 없고, 아무 일이나 할 수 없다 해도 …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
그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쁨과 자랑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을 대신하여

바울이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고 기록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한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던 바울은
당시 로마 제국에 속한 여러 도시들을 다니면서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바울은
더 이상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설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골로새 교회 교인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매여 있는 자신을 대신해 전도에 힘써 주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영생의 기쁨과 복음의 소중함을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계십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그 식당 음식 맛있게 하더라’라고 소개해 본 적 있으십니까?
맛있는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한 만큼
여러분이 교회를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보셨습니까?
여행을 다녀와서 ‘정말 좋더라. 너무 아름답더라. 너도 꼭 가봐’라고 
여행지를 소개한 것만큼 천국을 소개해 보셨습니까?

진짜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일류 요리사가 만든 음식, 유명한 식당의 음식이 맛있는 것 같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식당, 음식이 제일 맛있는 음식입니다.
왜 갑니까? 먹어보고 맛있으니까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듣고 가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셨습니까?
기둥교회를 자랑해 보셨습니까?
예수 믿고 구원 받아 가게 될 천국을 소개해 봤느냐는 말입니다.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하는 말이
‘내가 감옥에 갇히고 사슬에 매여 더 이상 전도할 수 없으니
너희들은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며 전도하라’는 말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씨를 뿌려야
기쁨으로 거둘 수 있습니다. (시 126:5)
많은 사람들이 
예전처럼 전도에만 힘쓰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전도를 통한 외적 성장보다 교회 내적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전도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최윤식, 『2020 2040 한국 교회 미래 지도』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3) pp.76~78. 참조. >

주로 신학자들, 목회자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 전도 그만하고 
모인 사람들끼리 질적 향상에 집중하여 수준을 높이라고 나와 있습니까.
물론 성숙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 구석구석에 담긴 이야기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구원 받기를’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은 너희들은 빛 되고 소금된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제 됐으니 그만두라’는 말이 어디 있습니까.
수준 낮은 사람들의 수준을 높이고 업그레이드하라고
교회성장 그만두고, 전도하지 말라는 말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은 전도해도 안되는 때라고 … 왜 안됩니까.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어 구원 받은 기쁨이 있고 
하늘의 소망이 있다면, 신앙생활 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왜 전도하지 못합니까.
안된다고 하는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합니까.

영어 단어 ‘can’은 다른 동사와 함께 조동사로 쓰이면
‘할 수 있다’라는 뜻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a’나 ‘the’와 같은 관사가 붙어 명사로 쓰이면 
‘깡통’이란 뜻이 됩니다. 
누구와 함께 일하게 되느냐 … 어떻게 쓰임 받느냐 … 에 따라 
우리의 이름도/가치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듯 …
여행지에 가서 좋았던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여러분은 복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전했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살전 1:5)

복음은 말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도우심이
믿는 이들의 확신을 통해 역사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 …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어 동사 ‘can’과 또 다른 동사가 합쳐질 때
‘… 을 할 수 있다’는 뜻이 되는 것처럼,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과 함께 한다면 우리도 ‘can’ …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도 이것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전할 때
우리를 통해 믿음의 씨가 곳곳에 뿌려질 수 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골로새서 4장에 기록된 
바울의 동역자들에 대해 말씀을 전했고 들었습니다.
- 두기고는 사랑받는 형제며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
- 오네시모 역시 신실함으로 인해 사랑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 아리스다고와 바나바, 마가, 유스도는 과거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 에바브라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누가는 데마와 달리 끝까지 바울 곁에 있으면서
믿음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 눔바는 가정에서 먼저 인정받는 신앙인이었습니다.
- 아킵보는 맡은 직분을 잘 감당했던 ‘믿음의 군사’였습니다.

이들 모두 필요할 때, 필요한 일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선한 생각을 마음에만 품고 있지 않았고
각자의 믿음대로 행동으로 실천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의 선조, 믿음의 모범이 되었던 여러 인물에 대해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 가정에서는 눔바처럼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 일터에서는 두기고처럼, 오네시모처럼
성실하게 일하고 그로 인해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언제, 어디서나 에바브라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 누가처럼 끝까지 변함없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방문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곳의 성도들과 만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골로새서 2장 1절 말씀을 보면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골 2:1)

그만큼 깊이 관심 가졌고 사랑했던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렇게 인사하며 편지를 마쳤습니다.

“…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골 4:18)

이제 골로새서를 통해 만난 선배 신앙인들의 훌륭한 삶을 
우리도 삶의 현장에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돈 잘 벌어서 잘 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시대에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 사는 사람이 
복된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턱수염 하나를 죽을 때 까지 지키겠다고 
100만불을 준다고 하는데도 거절한 사람처럼
우리가 가진 믿음 목숨을 걸고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보면 
우리의 믿음을 잡아 흔들고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릴 만한 사건과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귀에 믿음 떨어질 만한 
수많은 이야기가 들릴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에 보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승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믿음의 행진에 주인공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복음 때문에 갇혔던 바울을 기억하며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의 힘든 것을 통해 절망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 삶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힘이 들고 어려워도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하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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