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주님이 오시는 날 (말 4:1-6)

첨부 1


주님이 오시는 날 (말 4:1-6)

오늘 말라기서를 마치는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구약성경에 모두 18회 등장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의 직접통치가 시작되는 날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셔서 악을 행하는 자나 교만한자들을 직접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한 국수주의자들은 이제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이방세력을 단호히 꺾으시고 고난받던 이스라엘에게는 평화와 기쁨의 날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굽에서 고통받던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를 보내셔서 강한 바로의 군대를 물리치고 해방과 구원을 주셨던 것처럼 여호와의 날이 정치적으로는 독립을 경제적으로는 풍요와 안정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여호와의 날이 진실하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쁨의 날이요, 이를 위해 핍박과 고난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의 날이지만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크고 두려운 날이요, 심판의 날입니다. 이 사실은 요엘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엘서에는 ‘여호와의 날’이란 말이 다섯 번에 걸쳐 나오고 있습니다(1:15, 2:1, 11, 31, 3:14 등). ‘그 날’이라고 표현된 곳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이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욜 2:2)이며, 크고 심히 두려운 날(욜 2:11)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날에 여호와께서 직접 오셔서 이방과 악의 세력을 심판해 줄 것으로 희망했지만 부패한 이스라엘에게 이 날은 오히려 어두움(즉 심판)이요 빛(즉 구원)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호와의 날은 대부분 주님의 재림하실 날과 연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 속에 오시는 그 자체가 바로 심판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그 날의 의미를 되새겨 봅시다. 그날이 과연 어떤 날일지, 그리고 그날을 기다리는 우리의 신앙 자세는 어떠해야 할지 살펴보면서 함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됩시다. 


1. 이날은 의로운 해가 떠오르는 날입니다. 

이날 의로운 해가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의로운 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 1:78-79)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의로운 해가 떠오를 때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이날 초개같이 불타 없어지지만 어떤 사람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기뻐 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올 가을에는 추위가 일찍 찾아온다고 합니다. 혹 일조량이 모자라면 과일이 잘 익지 않고 배추는 결구가 잘 되지 않으며 벼이삭은 여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농작물에 있어 햇볕은 대단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해에는 이 햇볕에 의해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말라죽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2000년전 예수님이 오실 때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셨을 때 환영하고 영접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피하여 숨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대적하고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지요. 결국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 3:19-21). 

그런데 예수님이 마지막 날 다시 오실 때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는 예수께서 머리에 면류관을 쓰시고 피 뿌린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오시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이 재림하실 때 그를 따르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군대를 모아 감히 전쟁을 일으키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다 잡혀 산채로 유황불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검에 죽고 말았습니다.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날이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운 심판의 날일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실 것입니다(말 3:18). 의인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말하고 악인이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의 공로 없이도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교만한 자입니다. 악행하는 자는 곧 화평을 파괴하는 자가 악한 자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와의 화평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곧 악행인 것입니다.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를 것입니다. 극렬한 풀무 불이란 어느 불보다 더 뜨거운 불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 던져 넣었습니다(단 3:20). 이 불이 얼마나 뜨겁든지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들이 다 타죽었습니다. 하물며 초개같은 인생이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초개는 마른풀을 말합니다. 극렬한 심판의 불은 이런 악인들을 뿌리까지 살라 버릴 것입니다. 나무는 잘라도 그루터기가 있어서 새싹이 돋아납니다. 그러나 뿌리까지 불에 탄 나무는 다시금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 날에 대해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7-10).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는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해가 떠오르면 어둠이 물러가고 온 누리에 광명이 비추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긴 어둠의 고난의 세월이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에 그들은 송아지처럼 구속의 기쁨을 인하여 기뻐 뛸 것입니다. 

여기 광선이란 말의 원문은 날개입니다. 그러니까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란 말씀이 가진 원래의 뜻은 “그의 날개 안에서 치료하리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질병의 치료보다는 오히려 상처받은 마음의 치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기가 참 힘듭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하고 핍박과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사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 4:12-13)고 했겠습니까?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하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갈 동안 환난이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주님은 당신의 날개 안에서 우리의 모든 아픔을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시 91:4). 

지금까지 외양간에 갇힌 송아지처럼 고난과 시련 속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던 성도들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 해방의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마치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기뻐 뛰게 될 것입니다. 

이날, 성도들은 악인들을 밟을 것입니다.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4:3). 하나님을 섬기며 경외하는 자들은 이제 해방과 자유의 기쁨만을 누리게 될 뿐 아니라 드디어 악인들을 누르는 권세를 얻어서 악인들을 정복할 것을 말합니다. 악인들은 의인들에 밟혀 결국 재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원문은 ‘재가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는 고난받아도 결국은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승리는 곧 성도의 승리입니다. 


2.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전자를 의인이라 부르고 후자를 악인이라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인 유대인들 중에는 두 종류의 신자가 있었습니다.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성의도 없고 정성도 없이 짐승들 가운데 싸구려, 다시 말해서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받을 상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도 두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하고 마당만 밟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재림하실 때 교회를 먼저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산상수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 중에도 하나님이 당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아 아끼는 백성들(말 3:17)이 있는가 하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잘 구별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주님이 오시는 그날 분명히 구별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지못해 교회에 나오고 봉사를 해도 의무 때문에 할 수 없이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곤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말 4: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선지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오리라 하신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1:14). 맞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였습니다(눅 1:17).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세례 요한의 말을 듣지 않았고 세례 요한이 소개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신 예언대로 그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쫓겨나 전세계를 방황하는 유랑민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세례 요한을 보내셨던 것처럼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시기 전에도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실 것입니다. 그도 역시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입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돌이키지 아니하면 주님이 오셔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주의 종 선지자의 말을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계 22:11-15).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