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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에 사명을 더하라! (막 6:6b-13, 요 1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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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사명을 더하라! (막 6:6b-13, 요 13:34-35)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선교 신학자였던 요하네스 호켄다이크(Johannes C. Hoekendijk)는 ‘흩어지는 교회’라는 개념을 가지고 잠든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세상이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주일에 교회 건물 안에 몇 명 모이는지에만 관심을 집중합니다. 교회에 모였던 사람들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 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켄다이크는 교회는 선교 도상에 있는 임시 거처라고 말합니다. 최종 목적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이는 것은 세상에 흩어지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ecclesia), 즉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까닭은 바로 세상으로 보내시기 위한 것입니다. 동영상 한 편을 보시겠습니다. 

<동영상: The Gathered and Scattered Church>

이 동영상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모여 불러주신 분을 찬양하며 그분 안에서 능력을 얻고(gathered church),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을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scattered church). 

예컨대, 자녀들이 집이 싫다고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 집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집이 좋다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면 그 가정 역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같은 이치입니다. 열심히 모이지 않는 교회도 문제가 많지만, 모이기만 하고 흩어지지 않는 교회 역시 건강한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모여서 예배하고 친교하고 훈련하는 데에 힘쓰며, 또한 다시 세상으로 흩어져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의 선교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Our mission is to make disciples of Jesus Christ for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 (우리의 사명은 세상의 변혁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이 사명 선언에서도 분명하게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더 많은 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제자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더 큰 교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거룩한 세상을 일궈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이기에 힘써야 하고, 또한 흩어져 세상에 나아가 사명을 감당하기에도 힘써야 합니다.

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까닭은 그들을 훈련하여 세상에 보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자신의 몸종으로 부려먹기 위하여 그들을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엮어서 단체를 만들어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부르시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서로 어울리며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그들을 불러 모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분 자신이 성부에 의해서 세상에 보냄을 받으셨듯이,(incarnation) 성자 예수님도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처럼 세상을 섬기도록 내보내기 위하여 그들을 부르셨습니다.(incarnational church) 보냄 받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 그것이 제자의 정체성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첫 사역을 맡기면서 세상에 파송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 담겨 있는 몇 가지 보내심(sending forth)의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기 전에 미리 교육을 하셨습니다. 열 두 제자를 선발하신 후에 함께 데리고 다니면서 보여주신 모든 일들(말씀과 기적, 그리고 생활)이 바로 그들을 위한 산 교육이었습니다.

둘째,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한편 증언에 신뢰를 얹기 위한 일반적인 유대적 풍습이었습니다만, 다른 한편 연약한 제자들이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여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하도록 해주신 주님의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악한 귀신을 억누르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 힘으로 알아서 현실을 헤쳐가도록 하지 않으시고, 악한 귀신이 활개치는 현실을 넉넉히 이길 수 있도록 당신의 능력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넷째, 지팡이와 신발 외에 다른 것은 지참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지팡이와 신발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간 모세의 모습을 연상케합니다. 모세처럼, 제자들 역시 인간적인 수단에 기대지 말고 오직 보내시는 분의 능력과 은총만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다섯째, 어느 동네에 들어가면 떠날 때까지 처음 들어간 집에 머물러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려 하지 말고 오직 사역에만 집중하도록 하라는 명령입니다.

여섯째, 파송을 받아 간 동네 사람들이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발에 묻은 먼지를 떨고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이 행위는 복음을 거부하는 죄악에 대한 엄격한 영적 경고를 주라는 뜻입니다. 

그들의 첫 사역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서 병을 고쳐주었습니다.”(13절) 성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수님 곁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사명을 지니고 거친 세상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불러주시고 보내주신 분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고, 또한 그분께서 주신 권능을 가지고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3.

저는 주님께서 보내시는 때에 보내시는 곳으로 가는 것이 목사의 삶이요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시는 곳이 가장 복된 길임을 또한 믿습니다. 실제로 저는 이제까지 제가 먼저 나서서 갈 교회를 찾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야 할 교회가 제 앞에 주어졌고, 바로 그 때가 제가 교회를 옮기는 때였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 아주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 교회를 찾아가는 것은 한 개인의 삶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내시는 교회로 파송 받아 가는 것은 주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현명한 것입니까? 어느 쪽이 뜻깊은 삶입니까? 어느 쪽이 복된 길입니까? 평범한 개인의 삶에 주님의 사명이 더해질 때, 그때 가장 복된 인생이 펼쳐지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인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자신의 자서전 격인 책 <이것이 사명이다>를 출간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직접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인터넷 자료를 보니 그분이 자기 인생을 다 쏟아 부으며 추구했던 네 가지 사명을 말했다는데, 참으로 뜻 깊어서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째, 남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더 아픈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보다 가슴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보다 더 부담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사명과 연결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 같습니다. 비록 자신의 탁월한 능력이나 노력으로 얻은 재산이지만, 그것을 세상을 향해 나눔을 실천하라고 주신 사명으로 깨닫는 사람. 비록 지우고 싶은 비참하고 고통스런 과거가 있지만, 그것을 유사한 고난을 겪고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도울 수 있는 사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가슴 설레는 꿈을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기쁨을 위한 사명으로 끌어낼 줄 아는 사람. 자기에게 얹어지는 억지스런 부담까지도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한 사명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 예수 믿고 변화된 아버지를 통해서 읽게 된 성경은 그녀를 그토록 귀한 사명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존경스러운 이유는 그녀가 이룬 모든 업적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깨닫고 실천한 사명 때문입니다.

4.

교우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저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혹은 그저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삶입니까? 아니면 삶에 사명을 더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입니까?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한국에서는 1968년 말에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을 제정하였습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런 식의 교육 이념이 과연 바른 것인지에 대한 오랜 논란 끝에 결국 1994년에 교과서에서 삭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진실로 마음 깊이 새겨야 할 진정한 인생 헌장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명 얘기가 나오면 가장 먼저 마태복음 28장에 나오는 예수께서 주신 지상 명령(“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을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보다 더욱 본질적인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인생 헌장, 그 거룩한 사명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요 13:34-35)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도, 나눔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해야 하는 모든 실천의 근본적인 이유는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시려고 교회로 불러주셨고, 또한 이 사명을 감당하라고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또한 서로 사랑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그리고 준비된 사명자로서 세상에 보냄을 받습니다.

세상으로 나아가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는 이 사명을 실천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프라 윈프리처럼, 우리의 소유와 꿈 뿐만 아니라 고통과 부담까지도 서로를 사랑하기 위한 사명으로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남보다 더 앞서가고 더 많이 갖고 더 커지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남보다 더 진실하고 한곁 같은 사랑을 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합니다. 누구는 이겨서 좋아하고 누구는 져서 슬퍼하는 경쟁이 아니라, 모두가 승자가 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경쟁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요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서로 사랑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서 풍성한 사랑을 받고, 진실한 사랑을 드리고, 또한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열심히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서는 언제든지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에 서로 사랑하라는 사명이 더해질 때에, 그 때 우리는 가장 복되고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오늘 마음 깊은 곳에 거룩한 사명을 지니고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 속으로 흩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 염려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능력과,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참된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 (이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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