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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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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2-20)


제가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저로서는 꽤 충격적인 대중가요 하나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 오늘 집에 안 갈래 / 오늘 밤은 같이 있고 싶어 / 날 그냥 보내지 마"라는 식으로 시작되는데, 나중에 가서는 "우물쭈물 하지 좀 말어 / 남자가 그렇게도 줏대가 없어 / 니가 뭘 지켜 너나 잘 지켜 / 오늘은 날 좀 안 지켜줘도 돼"라고 아예 노골적인 유혹으로 이어지는 가사의 노래였습니다. 
  
영상물들은 '19금' 등의 시청자연령제한이라도 있지만 그처럼 음란한 대중가요는 아무 제재도 없이 방송을 타게 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의 의식이 혼전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물들어 가고 있을지 새삼 심히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8년 전에 있었던 어떤 통계자료에 보면 우리나라의 남자 대학생의 55퍼센트, 여자 대학생의 18퍼센트가 혼전관계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었는데, 물론 지금은 그보다 더 높아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미혼남녀 가운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꼭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보다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사회의 곳곳에서 음란한 성인문화가 청소년들의 눈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상업 광고들이 시청자들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내용으로 제작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남녀가 서로 좋아하기만 하면 혼전관계를 가지는 것이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으며, 소위 '하룻밤의 즉석만남'(one night stand)이란 것을 중학생들까지도 인터넷을 통해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대도시였던 고린도 역시 성(性) 문제에 대해 걷잡을 수 없는 타락일로에 빠져 있었습니다. 
고린도시에는 제우스나 아폴로와 같은 고대 그리스 신들을 위한 신전들이 많이 세워져 있었고,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라틴어로는 '비너스'의 신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너스 여신에게 드리는 제사 방식 중에 하나가 '종교적 매춘'이었습니다. 
그 신전에는 소위 '신성한 창녀'라 불리는 수백 명의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그곳에 찾아오는 참배자들은 사랑의 여신에게 예배드린다는 미명 아래 그들과 동침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이 편지를 보내면서 그런 타락한 음행에 결코 물들지 말고 신자로서의 경건한 생활과 순결한 육신을 지켜야 한다고 엄히 경고한 것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물론 저는 우리 경향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몸 역시 깨끗이 지키며 자라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고린도시보다 훨씬 더 악화되어 있는 오늘날 우리 주변사회의 이 음란한 현실은 여러분의 성도덕 관념과 생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SFC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 경향교회의 청소년들이 절대로 속아 넘어가서는 아니 될 세 가지 잘못된 사고방식, 여러분들을 타락시키려 하는 사단이 유혹하는 소리들이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함으로써, 어떻게 해야 우리가 '자신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를 바로 깨닫고 결단하는 시간으로 삼고자 합니다. 

1. '나는 성생활에 대한 자유가 있다.'라고 하는 유혹에 말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이고 나는 자유로운 국민으로 태어났으니 당연히 내가 원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본문 12절에서 사도 바울이 "12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한 것이 바로 2천 년 전에 고린도의 시민들이 했던 그와 똑같은 주장을 가리켜 반박한 말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라는 말은 사도 바울 자신이 하는 말이 아니라 고린도 사람들이 하고 있는 말을 바울이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 번역에 보면 이 말 앞뒤에 따옴표를 붙여 두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즉 고린도 사람들은 상투적으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라고, 바꾸어 말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들의 음란한 성생활을 변호할 때도 역시 사용되었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무엇을 하든지 상관하지 말게. 내가 비너스 신전에 가서 거기 있는 여사제들과 재미를 보든지 말든지 그건 자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않나? 나는 자유로운 시민이고 또한 그것은 우리 고린도시에서 지극히 합법적인 행위가 아닌가?"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다.' - 오늘날도 그대로 인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는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만 않는다면 무엇을 해도 괜찮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리고 혼전관계 역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아니므로, 이 나라의 십대 소년소녀들까지도 소위 '성의 자유'라는 것을 마음껏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 말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이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주장에 사실은 심각한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고 성령께서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계십니다. 
12절을 다시 보시면,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라고 사람들이 말할 때, "그러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다"라고 사도 바울이 곧바로 이어서 반박했습니다. 
그래도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라고 사람들이 다시 말할 때, "그러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사도 바울이 또 이어서 반론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에 '내게 그 행위에 대한 자유가 있는가 없는가?'만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과연 내게 유익한가 아닌가?'라는 문제까지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대로 사람에게는 비록 '가하기는' 하지만 '유익하지는 못한' 일들이 실로 많이 있지 않습니까?
담배 피우는 것은 가한 행위이기는 하지만 결코 유익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모든 담뱃갑에 인쇄되어 있는 보건복지부의 경고 그대로 사람의 건강에 해로운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두 번째로 반박한 말 그대로 비록 '가하기는' 하지만 일단 사람이 그 일을 한번 하게 되면 그 행위 자체에 자신이 오히려 '제재를 받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술 마시는 것도 가한 행위이기는 하지만 일단 취하게 되면 이제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은 바로 알콜에 의하여 제재를 받게 됩니다. 
마약을 사용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지만 일단 중독이 되면 그때부터는 바로 마약이 주인이 되고 그들 자신은 그 마약의 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사람에게 '가한' 즉 자유롭게 행할 수는 있지만 본인에게 결국 '해'가 되며, 할 때는 마음대로 행하지만 하고 나면 그것 자체에 스스로 제재를 받아 매이게 되는 행위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이 원리가 신자의 성도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혼전의 성관계는 철저히 개인의 자유에 속한 일 같지만 그것은 결코 유익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병이나 임신의 위험을 유발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청소년들의 건전한 교제를 해치고 학업에 집중해야 할 소중한 학창생활을 망치게 만듭니다. 
또한 그것은 당사자들이 나중에 각각 이루게 될 가정에 파탄을 불러올 위험요인도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처럼 사람이 일단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자신의 정욕을 따르게 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 그의 전 인생이 바로 자신의 정욕에 의하여 제재를 받게 되며 자신의 정욕이 하자는 대로 이끌려 가는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비단 성생활뿐 아니라 다른 모든 면에 있어서도 자신의 영으로 자신의 육을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말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해롭고도 중독적인 죄악으로 이끄는 생각, '나는 성생활을 내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다.'라는 소리에 결코 현혹되지 말고, 자신의 몸에 유익한 판단, 자신의 몸을 자기의 영으로 컨트롤하여 건강하게 지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관계는 다 자연스럽고 좋은 것이다.'라는 음행자들의 말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몸은 성욕을 가지고 태어났고 섹스를 즐기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에 좋은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지로 막을 필요가 있나?"라는 논리입니다. 
13절에 "13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 역시 고린도 시민들의 그런 논리에 대한 반론입니다. 

이 구절 역시 영어 성경에는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라는 말에 따옴표가 붙어 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음행을 일삼는 고린도 사람들의 또 하나의 상투적인 변명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음식물은 위에 좋은 것이고 위 또한 음식물을 원한다. 즉 먹는다는 것은 사람 몸에 지극히 자연스럽고 건강한 행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생활은 몸에 쾌락을 주는 것이고 몸 또한 그것을 원하고 있다. 그러니 그게 뭐가 잘못된 일이냐? 사람이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마치 음식물을 먹고 소화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억지로 억제하는 것이 오히려 몸에 해롭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리는 주장이며, 이 또한 오늘날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찬동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런 논리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한다"라고 주장할 때,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고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의 결합관계를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즉 사람의 몸은 두 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것이 자신의 정욕에만 철저하게 결합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몸이 우리 주님과 온전히 연합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첫 번째 결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면, 하나님께서는 "이것저것 다" 즉 그 몸과 그 정욕에 찬 영혼을 둘 다 함께 마지막 심판날에 "폐하실" 것이라고 즉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 몸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가장 '자연스럽고 건강한 상태'인 것으로 알면, 주님께서는 바로 그런 성별된 몸을 "위해" 주신다고, 즉 보살펴 주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처럼 당신과 연합된 몸을 얼마나 "위하여" 주시는지 아십니까?
14절 말씀에 답하기를 "14하나님이 주를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바로 영생을 누리는 데까지 이르도록 그런 '성별된 몸'을 철저하게 "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신자에게 베풀어 주실 부활' 바로 이것이 자기 육체의 가장 자연스러운 욕망이 될 때 그 육체는 가장 건강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자신의 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욕구가 짧은 한순간의 성적 쾌락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참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이겠습니까?
무분별한 성관계를 두고 '몸에 좋은 행위'라고 여기는 것은 실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우리 몸의 진짜 자연스러운 욕망은 바로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영생이야말로 사람의 몸에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이 예수님 쪽으로 달라붙으면 주님께서는 바로 그런 몸을 위하여 최고로 좋은 것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욕대로 행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는 말 역시 오직 음란한 자들의 구차한 핑계에 불과함을 깨닫고, 그 대신에 '자기의 몸은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하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몸을 위해 영생까지 약속해 주시는' 이 가장 자연스럽고 건강한 몸을 지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내 몸은 내 것이다.'라고 사단이 꾀는 소리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내 몸이다. 내 몸은 순전히 나 자신의 소유물이다. 그러니 나는 내 돈을 내 마음대로 쓰듯이 내 몸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정말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주장입니다. 
개인 소유물의 목록에서 본인의 몸을 제쳐 놓고 첫 번째 칸을 차지할 만한 '더 개인적인 소유물'이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낙태옹호론자들이나 동성연애자들이 백악관 앞에 모여서 "내 몸은 내 것이다. 내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지는 내가 선택하겠다."라고 쓰인 피켓을 치켜 들 때,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 주장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바로 성경 말씀이 그 틀린 점을 정확히 비판합니다. 
15절에 "15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 사도 바울이 반박하고 있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들은 너희의 몸이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소유에 속한 것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만일 모른다면 이것부터 제대로 똑바로 알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19절과 20절의 말씀에도 보면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기록했습니다. 
'내 몸은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라는 음행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성경 말씀은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다.'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몸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팔린 것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무슨 대가가 치러진 줄 아십니까?
원래 죄악으로 더럽혀져 있던 여러분의 몸을 그처럼 깨끗하고 거룩한 몸으로 바꾸기 위하여 지불된 대가란 것이 과연 얼마나 비싼 것인지 아십니까?
'우리 예수님 자신의 몸',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실로 사람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최고의 비싼 값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그처럼 값비싼 대속을 하셨겠습니까?
왜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을 당신의 십자가의 고통과 죽으심이라는 계산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속전을 지불하고 사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몸을 바로 주님 당신의 몸의 "지체"로, 즉 '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몸'으로 곧 "성령의 전"으로 개조하시기 위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몸이 악한 일을 저지르는 '도구'가 되어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되기를 결코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아예 당신의 '지체'로 바꾸어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 몸의 한 일부'가 음행을 저지른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가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될 소리이며,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15절 하반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 정말이지 사족이 필요 없는 지극히 지당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자신의 몸이 바로 주님의 몸의 한 일부가 되었음을 인식하고 나면 결코 그 몸으로 음행을 범하려야 범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 몸이 악한 일을 저지르는 가장 적당한 '장소'로 사용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성전'으로 바꾸어 버리신 것입니다. 
아무리 청춘남녀가 음행을 저질러도 설마 예배당에서 밤에 몰래 만나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그 어느 누구도 그런 생각조차 차마 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 각자의 몸을 사서 아예 성전으로 완전히 개조해 버리신 의도입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몸이 곧 성전, 즉 마땅히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섬기는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할 좌소임을 깨닫는다면, 그 누구도 그처럼 신성한 곳에서 그런 악행을 저지를 꿈조차 꾸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건강하고 아름답고 젊은 몸은 이제 더 이상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몸을 바로 당신의 생명이라는 아주 비싼 속전을 치르시고 완전히 사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몸이 더 이상 악한 일에 쓰이지 않고 오직 당신의 몸 된 교회와 성령과 연합되도록, 그래서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몸도 점점 더 성화되어 결국에는 당신과 똑같은 몸으로 영화되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몸을 아예 사서 당신의 몸의 일부인 지체로 만들어 버리신 것입니다. 
'내 몸은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음행할 수 있다.'라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말 역시 오직 우리의 육신을 망치려는 사탄의 꼬임인 줄을 간파하고, 자신의 몸을 오직 그 몸의 새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거룩한 지체로 가꾸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SFC 운동원 여러분, 그 옛날 고린도에서와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에서도 '성행위는 자유다.', '성욕 해소는 자연스럽고 건강에 좋다.', '내 몸은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한다.'라는 소리들은 날이 갈수록 더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많은 청소년들이 정신적인 것보다는 육체적인 것에 완전히 '빠져들어'(preoccupied) 있으며, 인생과 사회의 다른 그 어떤 문제보다도 오로지 관능적 쾌락에 대하여 가장 빨리 배우며 자라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연히 이들의 머릿속에는 '덕'(virtue)이라든지 '도의'(morality)라든지 '경건'(godliness)이라는 등의 개념이 점점 더 사라질 수밖에 없으며, '순결'(chastity)이란 단어는 마치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고어가 될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이 나라 청소년 사회의 비극이요 심각한 재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여러분이 이런 무서운 유혹에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 권면을 주는데, 우선 18절 상반절에서 "18a음행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노골적으로 대쉬(dash)하면서 유혹을 해 왔을 때 그녀의 손에 잡힌 자기 겉옷까지 그냥 남겨 놓고 재빨리 도망쳐 나왔던 것처럼, 음행의 유혹이 어떤 방식으로 닥쳐오든지 간에 바로 그 순간 즉시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면서도 최상의 대응책인 것입니다. 

두 번째 권면은 바로 20절 하반절 "20b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흔히 '몸으로 열심히 일해서, 몸으로 교회 봉사를 많이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의미로 자주 인용되고 있지만, 적어도 본문의 문맥에서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바로 신자가 지켜야 할 성도덕에 대한 교훈의 결론으로서, '음행을 피하고 자신의 몸을 순결하게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향의 청소년 여러분이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유혹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육체의 순결을 깨끗하게 지켜내는 것 역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군대에 가면 선임들이 "야, 너 정말 아직도 총각이야?"하고 오히려 순결을 지키는 기독청년들을 놀리지만, 사실은 그네들이야말로 자신의 몸을 '더러운 음욕의 놀이터'로 전락시키고 있는 불쌍한 자들입니다. 
'자기가 정말 날 사랑한다면 몸도 허락해 주어야지.'라는 말은 절대로 여러분을 진심으로 아끼는 연인의 고백이 아니라 오로지 '사단의 꾀는 소리'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결혼할 때까지 자기 몸을 예수님의 지체로 거룩하게 지키고 있는 여러분들이야말로 바로 그 순결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실로 '아름답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원래 '성(性)'이란 결혼한 부부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고귀하게 창조해 놓으신 '섹스'를 바로 사탄이 유혹의 수단으로 악용하면서 청소년 여러분의 육체를 더럽히고 그 영혼까지 타락시키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결한 결혼관계에서 벗어난 혼전관계나 혼외관계는 모두 다 결코 사랑이 아니라 오직 더러운 음행이요 죄악일 뿐입니다. 
  
즉 '성생활의 자유'만 주장하면 결국 스스로 그 정욕의 제재에 오히려 포로가 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성욕을 '육체의 가장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여기면 그 몸은 그리스도와 부활로 연합하는 영화에 이를 수 없고, '내 몸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고만 생각하면 사실은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사단 마음대로' 끌려 다니는 종이 될 뿐인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적 순결은 고리타분한 구세대 어른들이 만들어낸 것이 결코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도 당신처럼 거룩하게 되라고 내리신 명령인 줄을 깨닫고,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관영하고 있는 음행을 피하고 순결을 지킴으로써 진정 '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멋있고도 경건한 경향의 SFC 운동원과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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