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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한 신앙을 위하여 (행 8: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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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신앙을 위하여 (행 8:9-24)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여러분의 계획에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세밀하게 이끌어 가심을 믿습니다.  

며칠 전, 논산에서 대전 쪽으로 가다가, ‘백제군사박물관’에 잠시 들렸습니다. 가려고 목적삼아서 간 것이 아니라 지나가다가 무심결에 안내판을 보고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백제시대 충절을 상징하는 계백장군의 유적지입니다. 계백장군이 5천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군 5만여 명과 맞서 싸웠다는 바로 황산벌의 현장입니다. 

계백장군을 소개하는 글은 “백제말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하여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 나아가 신라의 대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최후를 마친 계백장군”이라고 하였습니다. 박물관 입구의 한 안내판에는 “계백장군이 5천 명의 군사로 적군 5만 명과 싸운 곳이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제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계백장군이 목숨을 버려가면서 지키려고 하였던 조국이 ‘나의 조국’인가? 계백장군이 싸웠던 적군인 신라 군사가 ‘나에게도 적군’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분은 제 생각이 이상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에게는 계백장군에게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계백장군과 싸웠던 신라의 김유신장군에게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계백에게는 백제가 조국이었고, 김유신에게는 신라가 조국이었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신의 조국을 위하여 싸웠던 것입니다. 우리 익산이 옛 백제의 영토였기는 하지만 여러분 중에는 계백장군과 싸웠던 신라의 후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계백의 적군은 사실 적이 아니라 동포일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가 복잡하여집니다.

역사에 대한 논란은 각자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그런데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하였으면 하는 것은 ‘영원한 조국’이란 어디인가, 우리가 싸워야 할 진짜 적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하여 잡아 가두고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깨닫고 보니 자신이 돌로 쳐서 죽인 스데반이 다른 아닌 예수님 안에서 자기 형제였습니다. 자신이 잡아 감옥에 가둔 사람들이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울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나중에 그는 말하기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 15:9)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가슴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눈이 더 멀리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처럼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풍성한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박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사람 중에 빌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로 내려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단순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빌립의 말을 듣고 따랐습니다. 회심이 일어났습니다.  

I. 회심  

오늘 말씀은 특별한 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따르게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빌립이 내려가서 복음을 전한 사마리아의 한 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을 부려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놀라다[ejxivsthmi/엑시스테미]’는 말은 ‘제 정신을 잃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큰 인물인 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자였습니다.

한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좋은 일입니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교회에 다니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때 영향력은 사랑과 섬김이어야 합니다. 군대에서 지휘관이 어떤 종교를 가졌다고 부하들에 같은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큰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선한 영향력으로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또, 시몬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0절 말씀입니다.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시몬은 낮은 사람으로부터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야말로 이른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의 소유자이다”고 말하며 그를 따랐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따른 것은, 오랫동안 그가 마술로 그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입니다(:11). 그에게는 사람을 매혹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2. 사람을 따르게 하는 자였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사람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따르는 유명한 스타가 예수님을 믿고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따르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전도자가 된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빌 3:17)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처럼 자신을 본받아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고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시몬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13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3a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성에 사는 남자나 여자나 다 그의 말을 믿고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시몬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도 세례를 받은 뒤에 항상 빌립을 따라다녔습니다. 많은 사람이 따르던 사람이 전도자 빌립을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3. 전도자를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회심(回心)이라는 말은 마음을 돌이켜 먹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하여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따라 살기로 마음먹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신만 바라보라던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을 내세우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여 살던 사람이 성령에 취하여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박수 받던 사람이 박수를 쳐주게 되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던 사람이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칭찬받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 칭찬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위로를 받던 사람이 위로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나만 바라보라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간의 습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합니다. 질기고 모진 것이 목숨이라지만 목숨과 함께 가려고 발버둥질을 치는 것이 습성입니다. 거듭났다는데 문제는 여전합니다.
  

II. 문제  

시몬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지만 그의 습성이 하루아침에 다 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시몬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가 비록 믿고 세례를 받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지만 그의 관심은 예수님의 말씀이나 구원의 감격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나타나는 표적과 빌립이 행하는 큰 능력이었습니다. 시몬은 자신이 과거에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던 것보다 더 큰 표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는 성령의 외적인 현상만 보았을 뿐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보이는 것만 보았습니다.

1. 감각적인 체험에 놀랐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오감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이 깜짝 놀랄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라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6-27a) 예수님의 목적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감각적인 것에 머물렀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소중히 여기되 이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보이는 것만 쫓다가는 엉뚱한 것을 보게 됩니다. 경험만을 추구하다가 가짜 경험에 속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빌립을 통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하여졌습니다. 이에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본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주면서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19) 하였습니다. 이런 그에게 베드로가 한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20절 말씀입니다.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베드로는 시몬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시몬은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황금만능주의입니다.


2. 금전적인 가치를 중시하였습니다.

이것은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돈! 중요합니다. 돈! 벌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감각적 경험이 중요하지만 경험만 추구하면 문제가 되는 것처럼 돈이 중요하지만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은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단호한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시몬에게 “너는 네 돈과 함께 망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여기에는 계시지 않으시겠지요? 참말입니까? 속으로 웃으시는 분이 계시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돈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돈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영적인 것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주인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돈을 바르게 돌리는 주인이 되십시오.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주고 사려고 하였던 것이 무엇입니까? 시몬은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20)하였습니다. 그는 돈을 주고 성령의 권능을 사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권능[ejxousiva/엑수시아]’은 특권 또는 초능력입니다. 그는 이 권능을 사서 무엇에 쓰려고 하였습니까? 그가 되고 싶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21절 말씀입니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돈을 주고 성령의 권능을 사려고 하는 시몬을 향하여 베드로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일에 그대가 차지할 자리도 몫도 없소.”라는 말입니다. 사도들이 하는 일에 한 자리 차지하고 끼어 들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시몬이 원하였던 것은 자리였습니다.


3. 능력 있는 자리를 원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행세할 수 있는 자리를 탐할 수 있습니다. 돈을 주고서라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참으로 조심스러운 말입니다만 감독이나 총회장 자리를 돈을 주고서라도 오르려고 한다면 이것은 사마리아 시몬입니다. 만약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의 직분을 행세하는 자리로 안다면 이 역시 사마리아 시몬입니다. 순수한 봉사와 섬김을 위하여 열정을 가진 분들에게 욕을 끼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리를 탐하여 돈으로 자리를 사고, 그 자리에서 유세를 떨고, 자리에 연연하는 것을 꾸짖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힘 있는 자리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힘없는 자리로 내려앉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람이 자리를 빛나게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는 어느 곳이라도 향기가 나고 빛이 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머무는 곳이 어느 곳이든 향기 나고 빛나기를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보이는 것에 치우치기 쉽고, 돈의 힘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리에 연연하기 쉬운 우리가 어떻게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III. 성숙  

우리는 정말로 성숙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22절 말씀입니다.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베드로는 시몬에게 ‘이 악한 생각을 회개하고, 주님께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회개[metanoevw/메타노에오]’는 ‘마음을 바꾸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혐오스러운 과거의 죄를 고치는 것입니다. 못된 생각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1. 끊임없이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여야 하는 것처럼 항상 회개하여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것처럼 쉬지 말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여야 하는 것처럼 범사에 회개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실수하고 끊임없이 회개하여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하여 죄를 짓고 계속하여 회개하여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회개하기 위해서 잘못을 해야 한다는 것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할 거리를 찾기 위하여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실제로 잘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비록 행동으로 죄를 짓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늘 죄를 짓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못난 탓이나 하고 앉아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회개는 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회개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는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회개하십시오. 모든 일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고,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살전 5:16-18).  

성숙한 신앙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23절 말씀입니다.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베드로는 시몬에게 악의가 가득하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가 불의에 얽매여 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볼 때에 시몬은 죄에 얽매여 마음이 고약하여졌습니다. 그런데 악의가 가득하다면 쏟아 내버려야 합니다. 불의에 매여 있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2. 불의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성숙한 신앙이 되려면 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공로를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주장하는 인본주의도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 이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답게 사는 길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 안에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아무도 미워하지 말라고 배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악을 미워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b)고 하였습니다. 죄를 싫어하고 악을 미워하여야 성숙한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마귀가 시켜서 죄를 지었다고 핑계하지 말고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되 죄악을 미워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의 성숙한 신앙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살펴볼 말씀이 남아 있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시몬은 보이는 것을 위하여 돈을 주고 자리를 사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엄히 꾸짖었습니다.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불의를 떨쳐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시몬은 “여러분들이 말한 것이 조금도 내게 미치지 않도록, 나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얼핏 보기에 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는 단지 저주가 임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는 저주의 무서움을 알았습니다. 그는 단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우선 소나기 피하고 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사도들의 대답이 없는 것을 보아도 진실한 회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향하여 서서 자신의 잘못을 벗어 내던지려는 처절함이 없었습니다. 


3. 전인적인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믿음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영혼의 구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영혼만의 구원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풍성함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성도들이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b-19)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혼 구원만을 기뻐하고 감사하는데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하심을 맛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사의 전승에 의하면, 사마리아 시몬은 결국 회개하지 못하고 모든 이단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시몬은 그의 제자들에게 ‘위대한 신’으로 추앙을 받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날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령의 음성으로 명령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더욱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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