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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하라 (요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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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라 (요 13:1-7)


10여 년 전 미국에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대학생 선교회 학생들이 5000여명 정도 모인 큰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계 선교를 꿈꾸는 젊은이 들이었습니다.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며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은혜로운 자리였습니다. 성회를 주관하는 분들이 특이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거지로 가장한 사람을 등장시키고 거지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응을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빵을 봉투에 싸서 쓰레기통에 넣어두고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집회기간인 일주일 동안 사람들이 출입하는 교회 문 앞에서 구걸을 하도록 했습니다.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일주일 동안 불쌍한 거지에게 관심을 보이며 도와준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 했다는 것입니다.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인이 1달러를 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충격을 받은 C.C.C 본부 측은 신앙교육의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고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계 선교에 헌신하기로 다짐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인데, 그들이 보여준 영혼에 대한 반응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주님을 향한 그들의 의욕은 허공을 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며 예수님께 직접 말씀을 배운 제자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셨을까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분명한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때는, 유월절 저녁을 먹는 날이었습니다. 이날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석상이었습니다(누가복음 22:17~24).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하심으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우리나라의 광복절과 같은 날로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입니다. 이 유월절 명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되던 전날 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양을 잡아 그 피를 대문에 바르라. 그리하면 천사가 내려와서 애굽의 각 가정의 장자를 죽일 때에 그 집을 넘어가고 그 집안의 장자는 무사하리라”(출애굽기 12:13)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망의 저주가 넘어간다는 뜻의 절기가 유월절(逾越節)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있는 곳에 죽을 생명이 살아나는 구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절기에 맞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일이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최후의 만찬을 드시는 엄숙한 순간입니다. 그들이 믿고 섬기며 따르던 스승이 내일이면 십자가에서 극형을 받아야 하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순간입니다. 불안과 공포가 가득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이 자리에서 누가 더 크냐(누가복음 22:24) 하고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당시 이스라엘 나라의 관습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밖에 나가 다니다가 집안에 들어오면 반드시 발을 씻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막지대이므로 먼지가 많았습니다. 요즘처럼 구두를 신고 다니는 때가 아니고 모두가 샌들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걸어 다녀도 발에는 먼지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담은 항아리가 집집마다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하인이 있는 가정에는 하인이 주인과 손님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하인이이 없을 경우에는 아래 사람이 윗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때가 언제 입니까? 요한복음 13:4말씀을 보면“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들어올 때 씻어야 할 발인데, 그 집에는 발을 씻어줄 종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서로 씻어주어야 했을 일입니다. 그런데 방에 들어와 저녁 먹는 순간까지도 먼지투성이의 발 그대로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누가 크냐하는 다툼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누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내 발을 씻어주나 두고 보자”는 기싸움이었습니다. 심지어 스승이신 예수님의 발까지 씻어드리는 제자가 없었습니다. 이기심과 교만으로 가득 찬 가운데 지금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함께 기거하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인데 그들은 이처럼 한심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라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의 심리상태에 대해 말하기를“이기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한 관심이나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이나 인격에 대한 존경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 이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으며,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자기에게 얼마나 쓸모가 있느냐’로만 판단하려 든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상태가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죽음을 눈앞에 두신 상황이었지만 거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누구하나 걱정을 하거나, 안타까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은 자존심, 교만뿐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막힌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생애의 마지막 제자교육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족식은 예수님의 마지막 교훈이기도 하지만 신앙생활에 이어서 가장 수준 높은 교훈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 겸손 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서로 높아지고자, 서로 먼저 대접을 받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은 종의 자세로 낮아져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13~15) 하셨습니다. 
교만은 사람을 해칩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해치고, 상대방을 해치게 됩니다. 그러나 겸손은 사람을 치유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모두 발을 씻기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으로 발을 씻겨주는 교훈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산 교훈에 깊은 충격을 받은 베드로는 평생 이 교훈을 간직하고 살아갔습니다. 베드로는 그가 쓴 편지 베드로전서 5:5에 기록하기를“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이 말은 수건을 허리에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모습을 연상하며 한 말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 겸손입니다. 교만의 뿌리는 사탄입니다. 교만하여 하나님께 반항하다가 저주를 받아 땅으로 내어 좇긴 것이 사탄 즉 마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입니다. 잠언 21:24 말씀에“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妄靈)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교만에 빠진 자를 가리켜“무례한 자”“망령된 자”라 하셨습니다. 망령(妄靈)이란“허망할 망, 거짓 망”자를 쓰고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허망한 영혼, 거짓된 영혼으로 비 없는 구름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향하여 잠언 15:25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하셨습니다. 교만한 자의 집을 헐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신비스러운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이 도시에서 꽤 이름난 화가를 어렵게 만났습니다. “그림 값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 초상화를 그려 주시겠습니까?” 여인을 본 화가는 거만한 태도로 말하기를 “나는 너무 바빠 당신의 초상화를 그릴 수 없습니다. 저기 길 건너 초라한 곳에 가면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가 있소. 그 사람에게 가보시오.”라고 했습니다. 그“일거리가 필요한 화가”는 레오날도 다빈치였고, 이 여인은 모나리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은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손을 들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미국 독립 당시 정치가, 사상가,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벤자민 프랭클린이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청년 때, 이웃에 사는 어느 노인 댁을 방문한 후 집을 나설 때의 일입니다. 그 집에는 천정보다 낮은 들보가 하나 있었습니다. 노인은 프랭클린이 머리를 부딪힐까봐 주의를 주었습니다.“머리를 숙이세요.”그러나 그 들보를 미처 보지 못한 프랭클린은 저분이 왜 저러시나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말하기를“이보게 젊은이, 자네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머리를 자주 숙이면 숙일수록 그만큼 부딪치는 일이 적을 걸세.”라고 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 말을 평생 동안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겸손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가르쳐주신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입니다. 교만은 마귀의 방법이지만 겸손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잠언18장 12절에 말씀하시기를“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하셨습니다. 

2. 섬기라는 교훈입니다. 

서두에 드린 말씀과 같이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 주인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요한복음 13:13~15에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남을 섬기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있었지만 으뜸이 되는 방법에 있어서는 안타깝게도 세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자기의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심,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으로 으뜸의 자리에 앉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방법인지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지닌 욕망입니다. 누구나 다 다른 사람들보다 두드러져 인정받고, 칭찬받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에 대해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0:43~45에 말씀하시기를“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크고자 하면 섬기라, 으뜸이 되고자 하면 먼저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말없는 섬김>이란 제목의 아름다운 글이 있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참된 섬김에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섬김은 적고 말만 많기에,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보다는,
교회를 아프게 할 때가 많습니다.

저들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대신
오히려 상처를 주는 때가 많습니다.
섬기면서 쓸데없이 말이 많은 것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유능하면 유능해서 말이 많고
무능하면 무능해서 말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섬기는 사람은 잠잠한 양 같습니다.
그들의 섬김에는 땀과 눈물이 가득 할 뿐,
구차한 말들이 오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의 최고봉이 섬김입니다. 섬김은 신앙생활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섬김을 신앙생활의 꽃이라고 합니다. 섬김이란 말이 아닌 행동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섬김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섬김은 겸손의 실천입니다. 섬김은 온유의 실천입니다. 효민교회 존재 목적이“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다섯 가지 목표 가운데 마지막 다섯 번째가“섬김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므로 이 세상의 빛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 다섯 번째 목표가 오늘의 본문“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14-15) 고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문 17절 말씀에“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겸손히 낮아진 삶, 말없이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복이 임할까요? 

첫째로, 겸손하게 섬기면 기쁨과 건강의 복이 임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애들러 박사라는 분은 자기를 찾아오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이런 처방을 자주 한다고 합니다.“당신은 가서 2주일 동안 매일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 그것만 골똘히 생각하고 한 번 실천해 보세요. 2주일 동안만 그렇게 살면 당신의 병은 깨끗이 나을 것입니다.” 이 처방으로 우울증이 나은 사람이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 자기의 입장, 자기의 생각, 자기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불만과 불평, 짜증과 미움, 시기와 질투로 가득합니다. 이 어찌 마음의 병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겸손히 섬기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오늘도 내가 신자다운 일을 했구나 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곧 행복입니다. 
둘째로, 영광과 풍요로움의 복이 임하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되고 장수하기를 원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섬길 자를 섬길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에베소서 6:1~3 말씀에“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사람들의 특징 중 한 가지는 모두가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아버지 노아의 벌거벗은 실수를 가려주었든 셈과 야벳은 넘치는 복을 받았으나, 아버지를 실수를 들추어내고 험담한 둘째아들 함은 자신과 후손들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섬길 자를 섬기는 사람을 사랑하시며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낯선 나그네까지 극진히 섬기다가 천사를 만났고, 100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온갖 서러움을 겪으면서도 야박한 외삼촌을 잘 섬긴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금의환향(錦衣還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가정에서는 아버지 야곱을 잘 섬겼고, 노예로 생활할 때는 주인을 섬겼고, 죄수로 감옥에 있을 때에는 간수와 다른 죄수들을 잘 섬긴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애굽의 총리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미디안 광야 처가에서 양을 치며 40년간 처가를 받들어 섬겼든 사람입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는 가운데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그들은 40년을 하루같이 지도자 모세를 따르며 한마디 원망이나 불평 없이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대왕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온갖 수단을 다하는 사악한 왕 사울 앞에서 신하의 도리를 다하며 섬겼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보신 하나님은 사울에게 주셨던 왕위를 빼앗아 다윗에게로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일평생 섬기시는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30세까지는 나사렛동네에서 가난한 부모님을 섬기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생애 마지막 날 밤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14~15)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섬김의 절기 추석명절을 맞았습니다. 섬길 자를 섬겨야 하겠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시며 기쁨으로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섬기는 것이 힘들고 수고롭기는 합니다. 그러나 내 한사람의 섬김이 온 가족에게 기쁨이 된다면 이는 보람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섬김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13,16 말씀에“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섬김이 빛이 되어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셨습니다.

또한 나의 섬김의 삶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그들도 하나님을 섬길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3에“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하셨습니다. 섬김의 삶은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추석명절은 좀 고달프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섬길 절호의 기회입니다. 섬길 수 있는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없는 고아들이나 탈북자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섬길 수 있는 건강이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누리는 건강이 없어 병상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명절을 즐길 수 있는 평화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일제치하나 6.25 전쟁 때에 이런 명절이 이었겠습니까? 그러므로 감사하며 기뻐하며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모이는 그들은 남이 아닌 나의 가족입니다. 디모데전서 5:8 말씀에“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하셨습니다. 

섬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즐겁고 보람된 추석 명절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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