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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가 될 수 없는 세 가지 경우 (눅 14: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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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될 수 없는 세 가지 경우 (눅 14:25-33) 
 

<이 좋은 계절에 새롭게>

폭염으로 찌들었던 날씨가 어느 날 갑자기 선선해졌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가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야말로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하늘은 높고 맑고 햇빛은 따사롭습니다. 들판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추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우리의 신앙도 새로워지고 깊어져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내리교회에서는 특히 9월에 그동안 얼굴이 보이지 않던 장기 결석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달로 정했습니다. 그렇게 열심을 내던 분들이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습니다. 한 주 빠지고, 두 주 빠지고, 계속해서 빠지다 보니 어느새 세상에 깊이 빠져 아예 교회 출석을 못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께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당연히 명단을 만들고 전화도 드리고, 심방도 해서, 최선을 다하여 돌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역자들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니 우리 모두가 다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누가복음 15장에서 말씀하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으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기어코 찾을 때까지 찾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9월 22일부터는 김진홍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할 예정입니다. 이번 부흥회야말로 여러분들처럼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교회에 나오지 못하시는 분들까지 다 연락하고 심방해서, 그야말로 우리 내리 가족 총동원 부흥성회로 모여야 할 것입니다.

<제자가 되기 어려우 세 가지 경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크리스천이 된 것은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 분의 제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 옛날 2천 년 전에 12명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세주로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대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너무 쉽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냥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저절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들어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아니, 간단하지 않을 정도를 넘어 우리 같이 보통 사람들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불가능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오늘 봉독한 누가복음 14장 25-33절은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제자도(discipleship), 즉 제자가 되는 길을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어려운 세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로, 26절을 봅시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가족들을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처자식과 형제와 자매까지 미워해야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해야지만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어려운 말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의 가족과 자기의 목숨까지도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물론 예수께서 “미워하라”는 표현을 쓰실 때의 원뜻은 마음 깊은 곳에 원한 감정을 갖고 원수를 미워하듯이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고, “돌아서라”(turn away from), “멀리하라”( detach oneself from)는 의미를 갖습니다. 창세기 29장 30절에 보면 야곱이 레아보다 라헬를 더 사랑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야곱이 레아를 미워했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라헬보다 덜 사랑했다는 뜻이지요. 야곱은 결코 레아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미워했다면 레아와 동침해서 아들을 일곱 명이나 낳았습니다. 야곱은 단지 라헬보다 레아를 덜 사랑했을 뿐이고,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가족들과 자기 목숨을 미워하라고 말씀하셨을 때의 진정한 의미는 적대감을 가지고 증오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대개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는 대상은 자기의 가족이나 자기의 목숨일 때가 많은데,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목숨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알코올이나 마약과 같은 최악의 것들을 버려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최선의 것들조차도 두 번째, 세 번째가 되게 해서 예수님을 오직 으뜸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중동 지역에서는 한 개인의 정체성은 언제나 가족과의 유대관계에 의해서 결정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집안의 가장이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로 개종할 경우 집안 식구 전체가 기독교인이 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부족의 추장 한 사람이 개종하면 그 마을 전체가 개종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가장 떼어내기 어렵고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가족관계인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가장 중요한 관계를 두 번째로 둘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27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십자가를 진다는 말을 우리는 너무 자주 오해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을 마치 무슨 큰 부담이나 고통을 지는 것처럼, 심지어 속을 썩이는 남편이나 자식을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십자가는 억지로 지는 골칫거리나 부담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실 때 구레네 사람이 구경 나왔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적이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진 십자가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자발적으로 기꺼이 진 십자가가 아닙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였을 뿐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십자가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지는 십자가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하여 어떤 희생이나 고통도 감수하고 모욕과 조롱까지도 감당하겠다는 자세를 말합니다! 

셋째로, 33절을 봅시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자신의 소유물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예수께서 이 세 번째 제자의 조건을 말씀하시기 전 두 개의 비유를 드십니다. 먼저 망대 짓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28-30). 망대, 즉 탑을 세우기 전에 먼저 비용 계산부터 먼저 한다는 말이지요. 예산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건물부터 짓게 되면 기초만 달랑 놓은 채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게 된다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비유를 더 드십니다. 선견지명이 있는 임금의 비유입니다.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전쟁을 할 때 먼저 상대편 전력과 자신의 전력을 비교하고 따져봐서 충분히 승산이 있는가를 검토부터 먼저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편 임금이 2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올 때 자기의 군사는 겨우 만 명밖에 되지 않아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설 경우,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청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 비유는 모두 사전 검토, 어떤 일에 뛰어들기 전에 손익계산부터 먼저 한다는 말씀입니다. 망대를 짓는 사람이 예산에 대해서 충분히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건축에 뛰어들지 않고, 전쟁을 치르는 이 역시 이기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를 것인가를 따져 본 다음에 전쟁에 뛰어든다는 말이지요. 예수께서 이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희생도 치를 각오고 하지 않고 너무 쉽게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결코 쉽고 가벼운 길이 아닙니다.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했다가 순교당한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한 것처럼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건축하는 사람이 건축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다 따져보고 건축에 뛰어들 듯이, 전쟁을 앞둔 임금이 상대편 전력과 자기 편 전력을 비교 계산해서 승산 여부를 따져본 다음에 전쟁을 치르듯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도 이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가를 따져본 뒤에 결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섣불리 쉽게 생각하고 뒤따랐다가 도중에 낭패를 보는 이들이 그 얼마나 많습니까?

<그 멀고 험한 길, 제자의 길>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제자의 길이 그리 수월치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가족이나 자기 목숨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참 제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자기 소유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도 주님의 제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좋게 여기는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그 비용을 충분히 계산해 봐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너무 쉽게 안이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아무런 희생도 손해도 모욕이나 조롱도 치르지 않은 채 제자가 되는 값싼 은혜를 추구해왔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리 귀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문제는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너나없이 낙심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보통 사람들이 이렇게 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족보다, 자기 목숨보다, 자기 소유물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절망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한계성을 절감하고 우리가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출발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힘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결단이나 각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합니다. 내 의지나 힘으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구할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목숨이나 소유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제자의 길이 결코 손쉬운 값싼 은혜의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터키의 노벨 문학상 작가 오르한 파묵은 소설쓰기를 바늘로 우물을 파는 작업으로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각고의 정신으로 글을 쓴다는 말이지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도 바늘로 우물을 파듯이 치열하고 진지하게 걸어가야 할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담설전정(擔雪塡井)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깨에 짊어질 담, 눈 설, 메울 전, 우물 정. 무엇을 하더라도 눈을 짊어지고 우물을 메우는 것처럼 하라는 말이지요. 우물을 메울 때 흙을 져다 부어야지 눈을 져다 부어봤자 다 녹아 없어지고 맙니다. 참으로 무모한 일이지요! 하지만 담설전정이라는 말속에는 중단하지 말고 끝없이 노력하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흙을 져다가 우물을 메우면 손쉽게 금방 메워지겠지만 결국 우물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눈을 져다가 우물을 메우는 일은 바보처럼 보이지만 눈은 스스로 녹아 없어져 우물은 계속 있게 됩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기 위하여 겸손히 끝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의 좋은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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