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불완전한 회개의 비유 (마 12:38-45)

첨부 1


불완전한 회개의 비유 (마 12:38-45)  

비유가 11번째 이어진다. 지난 주 두 아들의 비유를 설교했는데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누가 첫째 아들인가? 둘째 아들인가?” 결국 뉘우치고 포도원에 들어간 자가 아버지 뜻대로 행한 자로서 회개의 삶이 중요함을 가르쳐 준다. 오늘 비유 이야기는 참 회개와 불완전한 회개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귀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본문을 보라.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간 귀신이 쉬기를 구하며 쉴 곳을 찾으나 쉴 곳을 얻지 못하여 다시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귀신이 내 집이라고 부르는 그 집이 사람을 말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귀신이 돌아왔을 때 그 집이 비어 청소되고 수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결국 사람은 무엇인가? 
  

1. 사람의 마음은 영적 존재가 거하는 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무엇인가 들어와서 거하는 집이다. 그 집은 온갖 쓰레기를 쌓아둔 집일 수도 있고 귀중한 보물을 쌓아둔 집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천하고 귀한 것은 집 안에, 즉 그 사람의 마음의 집 안에 무엇을 모셨는가, 무엇이 들어와 있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더러운 귀신이 거하는 집이면 그 사람은 더럽게 된다. 반면 거룩한 성령이 거하는 집이면 그 사람은 거룩하게 된다. 

전12:1~7을 보라. 사람을 집에다 비유했다. 늙어가는 노인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데 그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노래했다. 노년의 때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박동이 미약하고 맥박이 불규칙하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팔, 다리가 쑤시는 것을 가리켜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지고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라고 하였다. 전도서는 치아가 빠져 나가는 것을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라고 하였고 시력이 나빠지는 것은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의 상태를 집에다 비유하여 쇠락하는 집이 곧 늙어가는 사람임을 표현하였다. 

그렇다. 사람은 집이다. 누군가 거주하는 집인데 나의 집 안에, 나의 마음의 집 안에 어떤 존재가, 누가 머물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당신의 마음의 집 안에 어떤 것이 머물고 있는가?
  

2. 나의 마음의 집을 청소하고 수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더러운 귀신이 쫓겨 나갔다가 자기가 집으로 삼았던 사람에게 돌아와 보니 그 집이 비어 있었다. 마12:44을 보면 그 집을 가리켜 청소되고 수리된 집이라고 소개한다. 집을 청소하고 수리했다는 것은 깨끗한 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더러운 것을 다 쓸어내고 리모델링을 해서 새 집처럼 단장했다는 말이다. 이런 일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집을 방치해 두면 쇠락하고 쓸모없게 된다. 때때로 수리해야 한다. 그러면 살만한 집이 된다. 이렇게 살만한 집이 되도록 청소하는 것, 그것이 마음이 회개한 것이다.

회개는 자주 필요하다. 자범죄, 원죄의 피가 흐르는 마음의 집을 닦는 회개는 꼭 있어야 한다. 요13:8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라고 말한다. 그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그때 시몬 베드로가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라고 말한다. 

이어서 예수님이 요13:10에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몸은 아니더라도 자주 필요시 손발을 씻어야 한다. 씻으므로 내 마음의 집이 정돈된다. 회개의 빗자루질을 통해서 청소가 되어야 한다. 회개가 필요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번 회개하면 끝이다.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오해다. 이단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내 마음을 닦고 씻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대로라면 자주 발을 씻어야 한다. 그러므로 씻지 않아도 될 사람은 이 땅에 한 사람도 없다.
  

3. 집 안에 주인이 거하도록 해야 한다.

집을 잘 정돈했더라도 빈 집으로 두면 곤란하다. 마12:45을 보면 더러운 귀신이 자기 옛 집에 돌아와 보니 텅빈 집이다. 그래서 이 더러운 귀신은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그 집에 거하며 주인이 되었다. 더럽고 악한 귀신 일곱이 그 사람의 주인이 되어버리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악하게 되었다. 

그렇다. 내가 인천 내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던 시절에 교회 앞 상가 옥상에는 예비군 부대 사무실이 있었다. 이 집이 새 막사를 짓고 이사를 갔다. 그 집은 텅 비어 있는 집이 되었다. 집의 주인이 떠나니까 이 집이 불량배들의 소굴이 되었다. 남녀가 혼숙하고 본드를 흡입하고 술, 담배를 마시며 뒹구는 아지트가 되었다. 텅빈 집을 만들어 놓으니까 완전히 더러운 집이 되고 말았다. 

나라를 지키는 예비군 부대가 사용한 집이 나라를 망치고 가정을 망치는 귀신의 집이 되고 말았다. 집을 비어두는 것으로 끝나면 안된다. 주인이 거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청소한 후 비어두는 빈 집으로 끝나는 것은 참 회개가 아니다. 불완전한 회개다. 불완전한 회개는 오히려 잘못되는 결과를 만든다. 

그러면 누가 마음의 집에 들어오시는 주인이 되어야 하는가? 예수님이다. 더러운 귀신을 일곱 길로 내쫓아 버리는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한다. 그런데 집에 주인을 모시지 않고 참 회개가 없는 유대인은 날마다 의롭다 하는 자들이었다. 더러운 귀신이 들어온 집과도 같다. 그들이 누구인가? 참 회개가 없이 불완전한 회개를 한 유대인들이다. 빈 집으로 일곱 귀신이 들어와 거하는 집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비참하게 된다. 

마12:45下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여기서 악한 세대는 유대교의 바리새인, 서기관들의 형편이 나빠지게 된다는 예수님의 선언이다. 무너지고 비참하게 망가지리라는 뜻이다. 왜, 갑자기 바리새인, 서기관인가? 그들은 참 회개가 없기에 겨우 회개한 것처럼 외형상으로만 깨끗하게, 거룩하게 보이는 위선을 가지고 있기에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텅빈 집과도 같은 것이다. 

사실 예수님을 마음의 집으로 모셔야 하는데 예수님을 외면하고 거짓된 의, 의로워 보이려고 포장만한 의로서 집을 단장한 유대인들은 일곱 귀신이 들어온 형편이 되고 마는 것이다.  

보라. 마음의 집이라는 오늘의 비유 이야기는 요나의 전도와 회개, 솔로몬의 지혜와 남방 여왕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다. 무슨 뜻인가?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크신 분이다. (마12:41)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다. (마12:42)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음의 집에 예수님을 집 주인으로 모셔드려야 한다. 그런데 참 회개를 하지 않는 악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방 사람보다도 못하다. 이방 사람인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도 회개하였다. 

그런데 요나보다 더 큰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참 회개하지 않으니 그들이 심판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듣고자 남방 여왕도 달려왔다. 그런데 솔로몬보다 더 큰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으니 참 회개가 없는 유대 지도자들은 심판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결국 자기의, 자기 공로의 의, 자기 자랑의 의로 무장하고 불완전한 회개를 앞세워서 자신의 마음의 집이 청소된 것처럼 살아가는 유대인들은 그 집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더러운 귀신과 악한 일곱 귀신을 모시고 사는 자들이기에 심판을 면하기 어렵다. 

진정한 회개는 이 땅에 그 누구보다도 크신 분, 히브리서 1~2장의 말씀대로 천사보다도 크시고 모세보다도 크시고 아론의 제사장보다도 크시고 어떤 선지자보다도 크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마음의 집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집 청소는 모두 불완전한 회개다. 악한 귀신이 들어와 지배하게 되는 잘못된 회개다. 텅빈 내 집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거하게 하라.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청하라. 내 마음의 집이 더 이상 귀신의 것이 되어져서는 안된다. 

내 마음의 집이 예수님이 거하실 집이 되게 하고 ‘내 집에 들어오소서’ 초대하라. 오셔서 내 마음의 집에 침소로 들어오시고 내 마음의 집에 서재실을 봐 주시고 내 마음의 집에 응접실과 식탁에 주인으로 앉아주소서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의 집,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제하는 마음의 집, 예수님의 즐거움이 되는 일들을 보여드리는 마음의 집이어야 한다. 내게서 예수님이 떠나지 않고 예수님이 계속해서 머무시는 성령의 향기나는 마음의 집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자.   

내 마음의 집의 문패는 예수님으로 바뀌었는가?

내 마음의 집에 있는 승용차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바꾸었는가?

내 마음의 집 안에, 장롱 안에 있는 통장과 등기 문서의 주인 이름도 예수님으로 바뀌었는가?

아예 주님에게 명도해야 한다. 

눈만 뜨면 싸우고 혈기를 부리고 탐욕과 정욕, 시기와 분냄으로 도배하므로 더러운 귀신이 주인이 되는 집으로 내 마음의 이름을 명도하지 말라. 왜 냄새나고 더럽고 썩은 집으로 만들어 가는가? 온전한 회개란 집 주인으로 예수님을 모신 것이다. 

오늘 불완전한 회개의 비유 이야기가 내 마음의 집에 누가 주인인지를 보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여러분에게 묻는다. 

당신의 마음의 집에 누가 와 계시는가?

누가 삶의 주인이신가?

집 대문 앞에 누구의 문패가 달려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님이라고 되어 있는가?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