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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8) : 축복의 통로, 순종 (삼상 15: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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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8) : 축복의 통로 순종 (삼상 15:17-23)

언젠가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영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미들로디언의 한 마을에 19살 학생인 라이언 키칭이 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너무 게을러 방 청소를 하지 않고 지저분하게 살았답니다. 그러자 2주 동안 어머니가 방 청소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였답니다. 

오늘 온 가족이 모여 예배드리는 가족 예배를 드리는데 중고등학생들 방청소 잘하고 있습니까? 유초등부 학생들 자기 방 잘 정돈되어 있습니까? 오늘 예배 후에 자신의 방을 사진 찍어 카톡으로 보내라고 하면 자신 있게 보낼 수 있겠습니까? 이 학생은 어머니가 계속 2주 동안 방청소를 하라고 해도 청소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계속 강요하니까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청소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던 방을 억지로 청소하던 키칭은 방청소를 하다가 복권 한 장을 발견했답니다. 

지난달 자신이 일하는 대형 마트에서 산 복권이었답니다. 방이 쓰레기장이라 방 어딘가에 던져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복권인데 그는 그 복권의 당첨 여부를 확인했답니다. 그 결과 5만 2981파운드(약 9400만원)에 당첨되었답니다. 

예상치 못한 복권 당첨에 키칭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쁨을 표시하며 "무엇보다 (청소를 요구한)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글을 남겼답니다. 어머니 말 순종하였더니 9천 400만원의 돈을 번 것입니다. 

오늘 같이 예배드리는 유초등부, 중고등부, 청년 대학생들 여러분 부모님 말씀 순종하는 것이 복 받는 길일까요? 거역하는 것이 복 받는 길일까요? 부모님 말씀 순종하여 손해 본 경험이 있어요? 우리가 예수 믿고 복 받고 싶어요? 저주를 받고 싶어요? 순종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닙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 세 가지만 들라고 하면 

첫째는 예수 믿고 내가 복 받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먼저 영적인 복을 받아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정신적으로 복을 받고, 내가 건강에 복을 받고, 내가 물질의 복을 받고, 내가 인복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둘째는 내가 복 받음으로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복으로 다른 사람도 복을 받게 하는데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였습니까?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통해 열방이 주님께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렀습니까?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른 것입니다. 제자 삼는 자로 만들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였습니까? 우리를 통해 이웃들이 복을 받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나만 천국 가는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웃이 천국 가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나만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를 통해 이웃이 부의 축복을 같이 누려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돈 벌어 남 주기 위한 것입니다. 나만 건강하고 나만 평안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웃들이 건강하고 마음의 평강을 누리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에스더 한 사람 때문에 민족이 살고, 요셉 한 사람으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이 가뭄에서 굶주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잘되고 나로 말미암아 가정이, 사업이, 사회가, 나라가 잘되면 그것으로 내가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여 불렀습니까? 우리가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14)”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14)”

우리가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서 이런 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단순한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끝없는 복을 누리며 인간을 살게 만드시고 단 한 가지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만 따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같이 예배드리는 우리 어린이들 부모님에게 용돈 많이 받고 싶지요. 용돈 많이 받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컴퓨터 게임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효도하라고 하면 효도하고 부모님이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하면 거짓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용돈도 많이 받고 세상에서 출세합니다. 부모님 말씀 잘 듣다가 망하는 사람 없습니다. 

부모님 말씀 순종하지 않고 잘되는 사람도 없습니다. 순종이야 말로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이 가라하면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부어 주십니다. 어떻게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적당히 순종할 것이 아니라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지수가 높아야 합니다. 50%만 순종하려고 하지 말고 100%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순종은 동의와 다른 것입니다. 내 뜻에 맞는 것에 따르는 것은 동의입니다.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것만 따르는 것은 동의입니다. 

순종은 이해되든 안 되든, 내 맘에 맞는 안 맞든 따르는 것입니다. 말씀한 분의 권위와 능력, 인격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종할 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롬6:17; 엡6:5; 대하34:31)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기쁘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사1:19). 

이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성 프란체스코가 수도원에 있을 때의 일이랍니다. 수도사가 되겠다는 두 사람이 수도원을 찾아왔답니다. 그때 그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을 했답니다. "배추를 거꾸로 심어라." 

한 사람은 프란체스코의 말대로 순종했고, 또 한 사람은 "말도 안 된다"라며 제대로 심었답니다. 거꾸로 심은 사람은 수도사로 입문하게 되었고, 제대로 심은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는 순종의 사람을 원했답니다. 사울 왕은 철저히 순종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사울을 세웠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막내아들의 후손입니다. 아버지가 암나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버지가 찾아오라고 합니다.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나귀 찾으러 갔다가 사무엘을 만나 왕이 된 사람입니다. 아버지 말에 철저히 순종하다 복 받아 졸지에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왕직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복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이겠습니까? 아말렉과 전쟁을 하였습니다. 

아말렉은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처음으로 그들의 길을 막은 족속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아말렉은 사탄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족속입니다. 이 사람들은 간교하게 이스라엘의 후미를 공격해서 노약자와 어린이 병자를 공격하여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힌 민족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계속 괴롭혔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대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말렉을 멸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철저히 심판하라고 말씀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철저히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어떻게 합니까? 

15절을 보세요.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남겨 놓았습니다. 물질 앞에서 철저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세요.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끌어 왔습니다. 아각왕을 살려두었습니다. 전쟁 승리의 업적을 삼겠다는 것입니다. 명예 앞에서 철저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적당히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하는 체 하는 것입니다. 100%가 아니라 80% 순종한 것입니다. 부분적인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다만이 문제입니다. 이 때 사무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민 32: 11은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민32:11)”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은 온전히 순종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민 32 : 12, 14: 24, 신1:36, 수14 : 9). 순종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불순종은 곧 죽음입니다. 불순종은 곧 파멸입니다. 

인생의 실패는 불순종입니다. 순복이 복의 통로입니다. 순종하되 온전히 순종할 때 놀라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청명한 하늘에 거대한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노아는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창6:22). 적당히 한 것이 아닙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아브라함은 온전히 순종한 것입니다(창22:1 이하). 

이성과 상식에 맞지 않는 아버지의 지시에 묵묵히 순종하는 이삭도 온전히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의 질은 축복의 질이 됩니다. 순종의 크기가 믿음의 크기입니다.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 시절에 가장 정치를 못하였다고 평을 받은 분이 카터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했답니다. 세계 분쟁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찾아가 평화를 위해 노력을 하였습니다. 해비타트 프로젝트를 만들어 망치를 들고 다니며 집이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매 주일이면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집을 지을 때도 5일 일하고 어김없이 미국으로 돌아갔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섬기는 주일학교로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교회 나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아내와 더불어 교회 청소를 하였습니다. 늘 전도지를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를 하였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철저히,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온전한 순종을 회복하여 징계가 아니라 축복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왕상 2:3)”


2. 순종할 때는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온전히 순종의 질, 순종도의 문제라면 끝까지는 순종의 시간의 문제입니다. 계속성의 문제입니다. 오늘은 순종하다 내일은 순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순종으로 끝나기 원치 않습니다. 밥 한 번 먹고 죽을 때까지 배부른 것 아닙니다. 축복은 순간순간의 순종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울은 어릴 때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겸손하였습니다. 그는 준수한 소년이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미남이었습니다.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크다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해서 부모의 말씀에 순종해서 산지사방을 돌아다닐 만큼 순종적이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으로 뽑혔을 때 너무 부끄러워서 짐보따리 뒤에 숨을 정도로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의 모습은 사무엘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스스로 작게 여길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 순종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축복을 받아 왕으로 기름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 지금은 어떻습니까? 최고의 권력을 잡고 부해지고 왕의 명령 한 마디면 산천초목이 떠는 권력을 가졌을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첫째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가 탈취하기만 급급한 것입니다. 셋째가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는 것을 행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누구의 목소리를 들은 것입니까? 백성의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는 것입니까? 자신이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권력이 누구에게서 나온 것입니까?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온 것입니다. 그의 부가 누구에게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온 것입니다. 사람이 부족하고 연약할 때는 잘 듣습니다. 그러다 조금 높아지고 있어지면 교만해 집니다.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릇이 차 있으면 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알면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버립니다. 사울은 얼마 전에도 자신의 자리를 망각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13장 9절을 보십시오.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입니다. 사무엘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자신이 하나님께 화목제와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월권을 행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제사장 역할을 해도 괜찮은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위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분별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 권력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때 사무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왕위를 패하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순종하되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조금 높아졌다고 조금 안다고 교만 떨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 보십시오. 최고의 권력을 가졌을 때에 성전을 건축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단선지자가 피를 너무 많이 묻혀서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얼마든지 어기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순종을 합니다. 성전 건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해 놓고 그것으로 마칩니다. 자신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안 된다고 합니다. 선교의 명장입니다. 판단력이 있습니다. 예측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 된다고 하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죽기까지 순종을 합니다. 

그러나 사울을 보십시오. 전쟁에 이기고 무엇을 합니까? 15장 12절을 보십시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웁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영광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교만이 극치에 이르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긴 것이 자기의 힘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앉게 해 주시고, 능력 주기고 은혜 주어서 승리한 것입니다. 명예욕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극복하지 못하면 진정한 순종, 끝까지 순종하는 순종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잘못을 지적합니다. 그 때 그가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왕이 순종하지 않아 버렸다고 하니까 그가 사무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30절 보십시오. 백성의 장로들과 백성 앞에서 자신을 높여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자고 하면서 자신을 높여주기 위해 예배를 같이 들이자는 것입니다. 결국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사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블레셋과의 마지막 전투 길보아산전투에서 그의 세 아들과 함께 생명을 잃고 맙니다. 그는 스스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의 생이 이렇게 비참하게 끝이 났습니까? 16장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버려 버린 것입니다. 

15장 23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조금 배우고, 조금 돈이 생기고, 조금 살만하고, 조금 세상에 명예를 얻고, 조금 권력을 받으면 교만해져 하나님 무시하면 안 됩니다. 불순종합니다. 삼손이 불순종하다 결국 포로가 되고 눈을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순종하여 복 받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진정한 복을 잃었습니다. 롯의 처는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천사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의 명하지 않는 다른 불로 제사하다가 망한 것입니다(레10:1-2), 노아 홍수 때 구원받지 못하고 심판 받는 자들은 다 순종치 않는 자들입니다(벧전3:20).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다가 40년이나 광야를 방황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거꾸러진 것은 불순종 때문입니다(민14:26-39). 불순종은 망하는 것입니다. 

조금 안다고 으스대며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에 보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삼상 2:30)”


3. 불순종을 지적받으면 바로 회개하고 순종하는 삶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자 순종했다고 말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합니다. 내 귀에 양의 소리와 소의 소리가 들려오는데 하나님께서 양과 소도 다 죽이라고 했는데 어찌 된 것입니까? 라고 물어 봅니다. 그 때 사울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핑계를 댑니다.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가장 좋은 것은 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잘못을 백성에게 돌리고 하나님을 악하게 이용하려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들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백성이 아니라 자신입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여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백성 핑계를 댑니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워 버리는 것입니다. 솔직히 잘 못은 시인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면 될 텐데 그렇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면 될 텐데 자기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자신 멋대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제멋대로 드리는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은 받지 않습니다. 시날 평지에서 자기 생각대로 바벨탑을 하나님을 흩어 버렸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습니다(민3장). 웃시야 왕이 나라가 부강하게 되자 교만해져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스스로 하다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대하26장).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배를 받고 싶어 하시지 아말렉의 짐승으로 예배를 받고 싶은 분이 아닌데도 제멋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했다고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사실을 탐욕인데 그것을 감추고 하나님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욕심과 사욕을 하나님 예배로 포장한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서 환경 핑계를 댑니다. 부모님 핑계를 댑니다. 자신의 머리 핑계를 댑니다. 공부하지 못한 이유가 자신이 순종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머리가 나쁘고, 부모님이 학원을 보내 주지 않아서이고, 공부방이 없어서이고, 친구들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사업을 못하는 이유가 도와주는 이가 없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때 사무엘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아말렉 제물로 제사를 받는다고 언제 하였습니까?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멋대로 자신의 이익에 맞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4학년이 되었는데도 매일 지각하는 어린이가 있었답니다. 선생님이 지각하지 말라고 말해도 매일 지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왜 매일 지각을 하는 거냐? " 그러자 그 어린이가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학기 초에 선생님께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고 하셔서 저는 선생님말씀을 실천중입니다” 제멋대로 해석하면 진정한 순종을 할 수 없습니다. 

16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밤에 다 알려 주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19절 보세요. 백성이 문제가 아니라 왕이 하나님 말씀을 청종치 않은 것이고, 왕이 탈취하기만 급급한 것이고, 왕이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는 것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 지적을 받으면 항복해야 하지요. 하나님 잘 못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명령에 따라 절대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사울을 보십시오. 20-21절을 보세요. 나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이 마땅히 멸할 것을 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다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원하시지 그런 불순종의 제사 받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왕은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 퇴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자신이 범죄했다고 시인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왕이 이 말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요즈음도 대통령이 사과하는 것 얼마나 어려워합니까? 자손심이 상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권력자인데 백성 앞에서 선지자 앞에서 자기 잘못을 시인하면 뭐가 큰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죄를 사해 주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결국 무었을 위한 예배입니까? 

30절을 보세요. 자기 이름 내기 위한 예배, 자기체면 세우기 위한 예배입니다. 잘 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빨리 회개하고 순종의 길로 돌아오면 복 받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한 순간 불순종하여 축복보다는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금하신 인구를 계수하다가 수많은 백성들이, 온역으로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부하의 아내를 범하고 부하를 죽음의 자리로 몰아넣어 죽게 하였습니다. 성적 욕망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와서 책망할 때 바로 회개하고 순종의 길로 돌아섰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울처럼 징계의 자리가 아니라 축복의 자리로 돌아선 것입니다. 순종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불순종은 멸망의 통로입니다. 순종의 길로 돌이키는 데는 늦은 시간이 없습니다. 창의성과 자율성을 길러준다고 아이들 불순종하며 살도록 방치하면 축복과는 멀어집니다. 순종하는 자녀로 만드는 것이 축복받는 교육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삶”이라는 책을 쓴 헨리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 책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헨리 목사님이 처음 어떤 교회에 부임했답니다. 그는 처음 젊은 부부의 집에 심방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아이 너무너무 말을 안 들었답니다. 부모가 말하면 꼭 반대로 합니다. 앉으라면 일어나고 가라고 하면 오고 조용히 하라면 더 떠들었답니다. 

그런데 그 집에 손자가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 아이를 전혀 건들지 못하게 했답니다. 젊은 부부도 그 아이를 마냥 귀여워만 했습니다. 꾸짖고 책망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답니다. 대문이 열려있는데 그 아이가 대로변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답니다. 엄마가 그걸 보고 “얘가 돌아와야 돼, 거기가면 안 돼”라고 소리쳤답니다. 아이가 돌아서서 씽긋 웃더니 계속해서 대로변으로 걸어 나갔답니다. 그때 차 한 대가 질주하며 달려왔답니다. 차에 치여서 즉사하고 말았답니다. 

목사님은 그 단장이 끊는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뼈저리게 큰 교훈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 반듯이 즉각적으로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책임이 목사에게 있음을 그는 깨달았답니다. 

요즈음은 권위를 너무나 우습게 여기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이면 부모에게 순종하고 지도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 불순종의 길을 걷고 있다면 순종의 길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불순종의 길은 불 보듯 뻔한 결과입니다. 

어느 때든 불순종에서 회개하고 순종의 길로 돌아서면 축복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는 죽음 직전에서 돌이켜 용서받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순종의 길로 돌이키기만 축복의 길은 열립니다. 

불순종이 얼마나 나쁜 죄인가를 보십시오. 2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제사보다도 낫고, 반대로 불순종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
어 하시는 사술의 죄나 우상에게 절하는 죄보다도 더 무서운 죄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어떠하며(1-14), 
불순종하는 자에게 내리는 저주가 어떠한가를(15-68)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1),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1), 모든 복이 네게 임하고(2),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8,12).

그러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15,58), 모든 저주가 네 게 임하고(15,45,46), 모든 일에 저주가 임하고(20), 모든 민족에게 놀램, 속담, 비방거리가 되고(37), 모든 경내의 열매가 떨어지고(40), 모든 나무의 소산을 메뚜기가 먹고(42). 모든 성을 원수가 에워싸고(52,53,55),모든 질병을 네 게 불겠다고 했습니다(60,61).

우리가 순종하는 만큼 영혼이 깨끗하게 됩니다.(베드로전서 1:22)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순종하는 삶을 자신의 성향으로 만들었습니다.(누가복음 2:51)

그리고 예수님은 고난을 겪으면서까지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리서 5:8)

한 마디로 예수님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순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순종의 완전 모델이십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므로, 부활의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빌립보서 2:8)

성경의 공식은 단순합니다. 순종하면 복이 오고, 불순종하면 저주가 임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순종하면 물질적 축복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순종하면 성령의 능력과 은혜로 복을 받는 신비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서는 순종하며 사는 사람에게 임하는 영적 권세에 대해 이런 확신을 줍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순종하는 자가 영적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기꺼이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신속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즐겁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사야서 1장 19절에서는 “너희가 즐겁게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소산을 먹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즐거워한다고 간증합니다.(시편 40:8) 신앙 생활할수록 순종이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순종하다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 그 자체가 최고의 성공이고 순종이 최고의 복이며, 순종이 최고의 섬김입니다. 순종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순종을 잃었습니까? 축복의 통로인 순종을 회복해야 합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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