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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9) : 삶의 활력 (에 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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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9) : 삶의 활력 (에 4:13-17)

어떤 돈 많은 할아버지가 있었답니다. 죽어라고 돈만 벌며 살았는데 나이가 들자 삶의 활력을 잃어버렸답니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고 의욕도 없었답니다. 나이 들면서 가장 떨어지는 것이 활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별 상품가치를 “10대는~ 쌤풀. 20대는~ 신상품. 30대는~ 정품. 40대는~ 명품. 50대는~ 쎄일품. 60대는~ 이월상품. 70대는~ 창고 대매출. 80대는~ 폐기처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활기 있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생활하면 활기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지 않는 이 할아버지는 더 늙기 전에 외국여행을 가서 활력을 찾아야 하겠다고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하였답니다. 은행에 가니 예쁜 아가씨가 앉아 있었답니다. 

은행직원 아가씨에게 할아버지가 “아가씨 나 외국여행을 갈건데 돈을 좀 바꿔 줘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러나 아가씨가 “애나 드릴까요?”라고 했답니다. 앤화란 말을 잘못들은 할아버지가 당황해서 머뭇거리고 있자 아가씨가 “아님 딸라드릴까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속으로 "내가 돈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고, 나이도 젊은 아가씨가 참 당돌도 하네." 생각했지만 그래도 젊고 예쁜 아가씨가 "애나 드릴까요? 딸나 드릴까요?" 하니 삶의 활력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외국 여행 안가도 활력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심 기쁘고 흐뭇한 할아버지가 아가씨에게 얼른 말했답니다. "이왕이면 아들을 나아줘!!"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요즈음 활력 넘치는 삶을 사고 있습니까? 살아 움직이는 힘이 활력입니다. 영어로는 “Energy”입니다. 경기 침체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활력을 잃어버리고 그저 그럭저럭 살고 계십니까? 

오늘을 회복 시리즈 아홉 번째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삶의 활력에 대하여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삶의 활력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 성도님이 사장님이라면 회사 직원을 뽑을 때 무엇을 보고 뽑겠습니까? 

세계 최대 기업인 GE는 직원평가를 위해 4개의 E로 시작하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어느 개인이 활력이 있는가(energy), 남에게 동기를 부여하는가(energize), 판단력과 결정력이 있는가(edge),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행능력이 있는가를 점검한다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활력을 가지고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활력은 살아 움직이는 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소명을 받은 우리 신앙인도 활력이 필요합니다. 활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가정이 행복해지고, 교회가 건강해지고, 세상이 아름답고 풍성해 집니다. 

우리 신앙인은 쉽게 포기하고, 쉽게 우울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혹 신앙생활하면서도 삶의 활력을 잃고 권태와 침체에 빠져 아무런 진전도 발전도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업하면서 활력을 잃었습니까? 부부 생활하면서 활력을 잃었습니까? 신앙생활하면서 활력을 잃었습니까? 예배 드려도 감격이 없고 말씀 들어도 냉랭합니까?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쁨도, 확신도, 행복도, 평안도, 감격도 없습니까? 마음은 공허하고 불안과 두려움, 걱정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습니까?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집니까? 마지못해 교회에 나옵니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며 맥이 빠져 있습니까? 기도하는데 그냥 머리 숙일 따름이지 아멘이 없습니까? 찬송을 부를 따름이지 감동이 없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 활력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믿는 우리는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활력 있게 살고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3,14). 

지금부터 약 2480년 전, 유대인 전체가 생의 활력을 잃어버리고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제패한 나라는 페르시아였는데 이 때 왕은 127도를 다스리는 아하수에로라는 왕이었습니다. 당시 권력의 제 2인자 역할을 한 하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 아말렉 출신입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개방정책을 썼기 때문에 각국의 인재들을 등용하였습니다. 하만도 아말렉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인데 유대인과 적대감을 가진 하만은 신에게 절을 하듯 자신에게 무릎 꿇고 절할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모르드개는 궁궐 문지기였습니다. 매일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만은 분개하였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 뿐 아니라 유대인 모두를 죽이려는 인종 청소계획을 세웠습니다. 12월 13일을 기해 모든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 지방관들에게 왕의 조서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모드드개를 처형하기 위해 장대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런 민족적 위기는 오늘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여 활력을 잃어버린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해 활력을 잃어버린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뜻대로 되지 않아 활력을 잃어버린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의 날이 다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형 선고를 당한 것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무기력입니다.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때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삶의 활기를 가지고 민족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민족이 바람 앞에 촛불과 같은 처지에 있을 때 모르드개는 어떻게 합니까? 

13, 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황후로서 왕궁에 있으니 홀로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민족과 분리하여 홀로만 살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민족은 죽어도 나만 살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바로 이어서 한 말이 무엇입니까? 만약 에스더가 잠잠한다 하여도 유다인들은 죽지 않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생명을 구출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모르드개의 절대 긍정의 신앙입니다. 반드시 놓임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우리는 유추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절대 긍정의 신앙을 모르드개는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삶의 활력을 주는 사람들은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희망을 가지는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하는 사람에게는 활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활력을 줄 수도 없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긍정적으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활력 있게 살아가고, 다른 사람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 줍니다.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면서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던 신앙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땅을 정탐하였습니다. 그런데 10명의 정탐꾼은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울며 탄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모세를 줄이려 하고 돌아가자고 합니다. 활력을 잃어 버리고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깥은 땅을 보고 왔지만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하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민14:8)”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백성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골리앗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며 도망가고 있을 때 다윗은 “하나님이 너를 내 손에 넘기리니”라는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나아가 승리하였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한 작가가 “기적을 만들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86년에 34번째 생일을 맞는 크리스마스, 그 떠들썩하고 흥겨운 파티장에서 스미스는 사람들 한가운데서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악성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머리속의 1/3이 악성 종양으로 가득 차 있어서 수술도 어렵고 불과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의사들은 말을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 로스쿨을 졸업하고 작가의 길을 걷던 그의 미래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가장 먼저 그에게 찾아온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무기력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을 선택하기보다는 희망을 붙들고 자신의 질병을 치료해줄 의사를 찾기 위하여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닥터 힐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힐랄은 스미스에게 다른 많은 의사들이 제안한 방사선 요법을 쓰지 말자고 요구했습니다. "당신이 나이가 일흔 정도 되고 5년 정도 더 살고 싶어한다면 방사선 요법을 쓰겠지만 당신은 30대입니다. 앞으로 30-40년은 더 살고 싶겠지요. 안 그래요?" 힐랄의 도발적인 말은 스미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의사들마다 3개월이라고 말하는데 30년 이라니, 스미스는 힐랄의 실험적인 치료법을 선택했습니다. 얼굴 반신이 마비되어 주스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10여 년의 사투를 벌이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잭슨 플록' 전기의 첫 줄을 병원 침대에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1998년 그 전기로 플리처 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18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직 살아 있고, 또다시 화가 '고흐'의 전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털어버리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기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29:11)" 

여기서 절대 긍정은 자신의 능력을 믿는 신념이 아닙니다. 자기도취나 자기 최면이 아닙니다. 긍정 심리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지금 상황이 활력을 잃어 버릴만한 상황이라도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고 하시면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되어 지고 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말씀 믿고 절대 긍정의 삶을 살다 가면 되는 것입니다. 웃은 돼지는 죽어도 값이 나갑니다. 삶의 환경이 어떻게 되는 이렇게 살다 천국 가면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살면 결과야 어떻게 되는 어떤 경우에도 활력 있게 죽는 날까지 살며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절대 믿음을 가지고 삶의 활기를 불어 넣으면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6장 1절이 보십시오. 왕이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 것 단순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자 역사책을 보게 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르드개의 업적이 발견되고 결국 하만은 자신이 단 장대에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8장 1-2절을 보십시오.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을 향하여 "당신은 소생할 가망성이 없습니다."라고 절망적 말을 하는 사람보다 "당신은 아직도 소생할 수 있는 가망성이 있습니다."라고 절대 긍정의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환경일지라도 "새벽이 다가올수록 어둠은 짙어진다."고 절대 긍정의 믿음을 주는 사람, 실연당하고 슬퍼하는 자에게 "꽃은 봄이 되면 다시 핀다."고 절대 긍정의 믿음을 전하는 사람, 실패하여 좌절한 사람에게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절대 긍정의 믿음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믿는 우리는 결핍을 소명으로 받아 활력 있게 살고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4). 

절망적인 상황에서 모르드개는 계속해서 에스더에게 어떤 말을 합니까? 1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고아를 황후로 만들어 놓은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부모 없이 자란 소녀였습니다. 사촌 오빠 밑에서 자란 소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후가 되어 역사의 중앙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자신이 속한 유대인들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입니다. 결핍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결핍의 순간이 에스더에게는 사명의 순간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결핍은 활력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아니라 활력을 가지고 사명을 붙드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에스더를 단순히 한 나라의 왕비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을 구원하는 민족 영웅으로 만들려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결핍이 기회라는 것입니다. 

주변의 결핍을 보면 도피하려고 하지 말고 이때를 위해 나를 공부하게 했고, 이때를 위해 나를 부자가 되게 했고, 이때를 위해 나에게 건강을 주었고, 이 때를 위해 나에게 능력을 주었고, 이때를 위해 나에게 명예를 주었고, 이때를 위해 나에게 권력을 주었고, 이때를 위해 나에게 믿음을 주었다고 결핍을 사명으로 받아들이면 자신도 활력이 생기고 다름 사람에게도 활력을 불어 넣은 인물로 한 시대 쓰임받을 줄 믿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최악의 시대에서 최선의 세대를 창조해낸 사람들입니다. 

결핍은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넘치도록 채우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결핍입니다. 모든 결핍은 탁월함의 발사대이기 때문에 극복하면 우리를 날아오르게 합니다. 한나가 유명해 진 것은 아이를 갖지 못한 결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브닌나의 핍박을 받으며 열심히 기도하여 사무엘을 낳은 것입니다. 다윗이 유명해진 것은 이스라엘 장수 중에 골리앗을 이길만한 능력 있는 장수가 없는 결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을 이길 만한 장수가 있었다면 다윗은 졸지에 전쟁 영웅이 될 수 없었습니다. 결핍이 있는 순간이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활력을 가지고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비상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가정이 가난하다고, 직장 환경이 좋지 못하다고, 교회가 부흥이 안 된다고, 자녀가 잘 되지 못한다고, 사업이 후퇴한다고 활력을 잃지 말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경제적 결핍이 오히려 치열한 삶을 통해 부자 되는 기회가 되고, 건강의 결핍이 오히려 활력 넘치는 운동을 통해 더 장수의 기회가 되고, 정서의 결핍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돕는 기회가 되고, 학력의 결핍이 오히려 더 실력을 배양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결핍이 활력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의 활력까지 빼앗은 기회가 아니라 더 활력 넘치는 삶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활력을 넣어주는 기회를 활용해야 합니다. 내게 부족한 것을 활력을 잃는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활력을 찾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회가 부족한 점이 있으면 교회 지도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있게 하시는 구나라고 도약의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레오나드로 다 빈치는 첩의 아들이라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성도 받지 못했습니다. 다 빈치라는 말은 빈치 마을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이름도 주지 않은 그의 모진 아버지는 그에게 교육을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애정 결핍으로 망한 것이 아닙니다. 극단적인 결핍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덮쳤지만 그는 그것을 기회로 활용하여 불멸의 이름을 남겼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입양아였지만 그것으로 인생 망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결핍을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건국대 유태영 교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머슴살이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가난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스스로 학비를 벌면서 야간학부를 다녔다고 합니다. 새벽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메어달렸습니다. 그러다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썼답니다. 

우리나라가 6.25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려면 농촌이 살아나야 하는데, 덴마크는 우리가 배우고 싶은 모델이라며 간신히 얻은 주소로 편지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얼마 후 덴마크 국왕은 장학금을 주겠으니 와서 공부하라는 답장을 보내왔답니다. 만약 그가 시골 머슴 출신이 아니라 재벌의 아들이었다면 그런 답장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가난이 기회입니다. 때로는 병약함이 기회입니다. 때로는 못배운 것이 기회입니다. 활력이 있는 사람은 삶이 어려운 도전과 과제에 대면시킬 때 그것을 기회로 활용합니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가난 때문에 학교 문턱에도 가지 못했지만 유도전기를 생각해 냈습니다. 강력한 모터를 만들었습니다.

 열역학의 아버지 볼츠만은 미국으로 망명가 영어가 통하지 않자 오히려 인간관계가 단순해지고 연구에게 몰두해 통계역학을 열고 인류에게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 병약함 때문에 오히려 더 자신만의 건강을 챙기는 비법으로 규칙적인 생활과 식이요법을 수행하여 장수하면서 많은 결과물을 내어 놓았습니다. 파스칼 병약하게 태어나 그 부친은 그를 학교에 보내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집에서 지내게 했을 정도였지만 몸의 연약함 때문에 더 하나님께 가까이 하며 경건하게 살면서 마침내 수학, 과학, 철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정약용은 투옥되고 귀양을 가 기회가 박탈당하자 그것으로 실망한 것이 아니라 신앙은 더 견고해졌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500여권의 책을 남겼습니다. 역사적 영웅이나 신앙적 영웅은 결핍을 기회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준 사람들입니다. 평범했다면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어려운 고난을 기회로 활용하여 신앙을 지켰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그분들의 생을 생각만 해도 신앙의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입니다. 결핍이야 말로 탁월함에 이르는 쓰디쓴 보약입니다. 기회로만 활용하면 됩니다. 

수많은 장애를 가지로 있던 헬렌 켈러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는 설리번 선생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애정결핍으로 정신 병동 지하에 갇혀 있던 소녀였습니다.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부모에 대한 증오가 마음에 가득해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온갖 약을 쓰고 상담을 했지만 오히려 더 난폭해 지자 의사도 손을 들었습니다. 치료를 포기하고 병원 지하에 가두어진 소녀는 세상을 증오하고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혹시 지하로 내려오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면 그 소녀는 벽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병원에는 오랫동안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한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소녀가 눈에 밟혀 가끔 지하로 내내갔답니다. 어김없이 소녀는 벽을 향해 돌아섰지만 할머니는 그저 한 두 시간 동안 신문에 난 세상 이야기를 해 주고 갔답니다. 몇 년 동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소녀를 찾아와 말을 걸었답니다. 할머니는 어느 가을 날 공원에 나갔다가 국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지하에 갇혀 있는 소년가 생각났답니다. 할머니는 그 아이도 나처럼 이렇게 아름답게 핀 국화를 보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여기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답니다. 

할머니는 국화를 한 아름 따서 바로 병원 지하실로 내려갔답니다. 소녀는 소리를 듣고 벽을 향해 돌아섰답니다. “얘야, 오늘 고원에 갔는데, 네 생각이 나서 국화꽃을 따왔다”라는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 생전 말이 없던 소녀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답니다. “내 생각이 났다고 말했나요?” “그래 네 생각이 났어” 소녀는 벽에서 얼굴을 돌려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국화꽃을 받았답니다. 할머니는 계속 소녀를 찾아와 주었고 몇 시간씩 이야기를 했답니다. 

의사도 포기했던 소녀의 증오는 봄눈 녹듯이 녹아내렸답니다. 소녀는 정신 병원을 나왔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답니다. 소녀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교육자가 되었답니다. 그 소녀가 바로 헬렌 켈러의 선생인인 앤 설리번입니다. 애정 결핍은 참으로 설레번 선생님에게 불행이지만 이 결핍을 딛고 일어나 진정 남을 도와주는 탁월한 봉사자, 멘토가 된 것입니다. 

누구보다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헬렌켈러 같은 사람을 맡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위대한 인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결핍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기회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보십시오. 중풍병자, 혈루증 앓는 여인, 나병 환자, 38년 된 병자, 아들을 잃은 나인성 과부, 키 작은 삭개오, 결혼 생활에 실패한 수가성 여인 등 정신적, 육체적, 영적 결핍으로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 활력을 찾고 활력을 주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5:32)”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7-28)”


3.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믿는 우리는 순교자적 열정으로 활력 있게 살고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6,17).

모르드개의 말을 들은 에스더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16, 1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먼저 수산에 있는 유대인들을 다 모아 자신을 위해 3일 동안 금식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기도의 위력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시녀와 함께 금식 기도하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리고 금식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의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순교자적 결단입니다. 당시 왕비라도 왕의 부름을 받아야만 왕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고 부르지 않아도 민족의 구원을 위해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행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왕 앞에 나아가려면 좀 예쁘게 하고 나가야 왕이 반갑게 맞이할 것입니다. 그런데 3일 금식 기도하고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3일간 밥을 먹지 않으면 예뻐지겠습니까?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죽어도 좋으니 하나님 전적으로 의지하고 결단하는 행동화된 신앙인의 모습니다. 조국 유다를 구원하기 위해 일사각오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순교자적 열정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활력을 불어 넣는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주어진 일을 열정을 다해 하는 것입니다. 위기가 다가오면 열정을 잃어버리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지 말고 오히려 죽을 각오를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활력 넘치는 삶을 살고 죽음의 공포에 처해 무기력한 자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복음에 대한 순교자적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S. 키엘케골은 “이 세대는 종교가 부족해서 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부족해서 망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열정을 가지면 활력 넘치는 삶을 사게 되고 그런 사람이 사는 곳은 활력이 넘치는 세상으로 변합니다. 해도 해도 안 된다고 활력을 잃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집사님이 아내에 대하여 농담을 하면서 지갑만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내들은 다 그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개발 강의를 들으면서 이 세상에는 세 가지의 귀중한 '금'이 있는데, 그것이 황금, 소금, 지금이라고 들었답니다. 그래서 감동을 받고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답니다. '여보, 이 세상에 세 가지 귀중한 '금'이 있는데, 그게 뭔지 맞춰봐.' 잠시 후 아내에게서 답이 왔답니다. ‘현금, 지금, 입금’ 우리 남편들 지갑 좋아하는 아내들 보면서 활기 잃을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순교적 열정으로 아내를 사랑해 보십시오. 집안이 활기가 돕니다.

미국 기업가들의 50%는 대학에서 평점이 C학점 출신들이요, 미국 대통령의 75%는 학교에서 중하위권이었고, 억만 장자의 50%는 결코 대학을 마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평범에서 비범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열정(passion)” 이라고 합니다. 

챨스 슈압은 “무한한 열정만 있으면 사람은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괴테는 “천재는 계속해서 열정적인 자에게 붙은 별명이다.”이라고 말합니다. 말콤 그래드웰은 [아웃 라이어]라는 책에서 모든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10,000시간 즉 하루 3시간, 10년 간 집중할 때 이루어진 결과라고 합니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하루도 몸이 아프지 않으면 연습을 게을리 했다고 생각하며 연습했다고 합니다. 김연아 선수는 1번 넘어지면 65번을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명장 김규환씨에 대한 글을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15세에 고아가 되어 거지처럼 지냈습니다. 겨우 대우 중공업 사환으로 채용되었었습니다. 그는 입사하여 매일 5시에 출근하였습니다. 하루는 사장이 왜 일찍 오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는 선배들을 위해 미리 나와 기계를 워밍업(warming up)한다고 대답을 했답니다. 다음 날 그는 기능공이 되었고, 똑같이 2년을 5시에 출근한 끝에 반장이 되었답니다. 

그는 1°C가 변할 때 쇠가 얼마나 변하는 지 알아내기 위해 공장 바닥에 모포를 갈고 2년 6개월간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 연구 결과 정부로부터 '일본으로 유출되면 곤란한 최고의 기술'로 평가 되었답니다. 그는 국가 기술자격 학과 시험에 9번 불합격, 1급 국가 기술 자격에 6번 불합격, 2종 보토 운전면허 시험 5번 불합격, 그리고는 창피해 1종으로 바꾸어 5번 만에 합격을 하였답니다. 결국 그는 우리나라 1급 자격증 최다 보유자가 되었답니다. 국제 발명특허 62개를 획득하였답니다. 

[어머니 저는 해 냈어요]란 책도 출판을 했습니다. 기술 분야의 명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학원에는 다녀본 적이 없답니다. 외국어를 하루에 한 문장씩 외웠답니다. 집 천장, 벽, 식탁, 화장실문, 책상 등 다니는 곳마다 붙이고 또 보았답니다. 이렇게 외국어를 공부하여 결국 5개 국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죽으면 죽이리라고 다짐하며 하나님께 금식기도하며 매달리면 무엇이든 못하겠습니까? 

순교자적 열정을 가진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소요로 로마 군인들에 의해 체포가 되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공회 앞에서, 벨릭스 총독 앞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행26:23) 그 때 베드도 총독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26:24) 

미친 사람처럼 열정적인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3절에서 바울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였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물은 저절로 끓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순교자적 열정을 보십시오. 가르치고, 선포하고, 치유하시는 사역으로 식사할 겨를조차 없이 바쁘게 사셨습니다. 주변에서 예수님은 미쳤다는 말을 할 정도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사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7절에 "...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고 번역했습니다. 미쳤다 할 정도로 순교자적 열정으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말씀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4,15)

죽고자 하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죽고자 하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에스더가 죽기로 각오하고 나가니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5장 1절 이하를 보십시오. 왕이 에스더를 맞이합니다. 유대 백성이 살아납니다. 부림절이라는 절기가 생기게 됩니다. 에스더라는 이름의 뜻대로 자신은 역사 앞에 스타가 됩니다. 하만이 제거됩니다. 장애물이 제거됩니다. 그들을 통해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9장 17절 이하를 보십시오. 생명이 건짐받고 잔치를 하며 기뻐합니다. 서로 예물을 주며 그날을 기념합니다. 백성이 활력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르드개가 제 2인자가 됩니다. 10장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왕의 다음이 되고 크게 존경받고,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백성에게 이익을 주고 모든 족종을 안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숫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부패한 시대 순교자적 삶을 산 노아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 망했습니다(창28:32).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문제입니다. 내가 각오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애굽에서 삶의 활력을 잃어 버린 백성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 넣은 사람은 모세였습니다. 활력 넘치는 나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내가 결단하고 활력 넘치는 삶을 살면 세상이 변합니다. 내가 결단하고 활력을 불어 넣으면 가정이 변합니다. 아들이 활력이 없다고, 남편. 아내가 활력이 없다고, 교회 지도자가 활력이 없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내가 순교자적 열정으로 살면 주변은 활력 넘치는 공동체로 바뀌어 버립니다. 

법궤를 메고 죽음을 각오하고 요단강으로 들어가면 물은 갈라집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골리앗 앞에 나가면 골리앗은 쓰러지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요나단과 그의 부관이 나아갈 때 기적은 일어난 것입니다. 순교자적 자세로 신앙생활하면 우리 민족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 그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순교를 각오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만일 이 때 에스더가 자신의 안일에만 심취했었다면 그는 졸렬한 인생으로 역사의 기억에서 사리진 존재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롯을 보십시오. 룻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오르바를 보십시오. 일사 각오의 길을 택하면 큰 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그 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기운을 잃어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 믿음의 사람조차 맥 빠지게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정에, 교회에, 회사에, 이 사회에 삶의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그 한 사람으로 살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결국 역사를 주관하시고 역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한 시대 주어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활력있게 살며 활력을 불어 넣는 사람으로 쓰임받기 원하시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에 근거하여 제가 세 가지를 제시하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믿는 우리는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활력 있게 살고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13,14).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긍정을 가지면 활력있게 살고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믿는 우리는 결핍을 소명으로 받아 활력 있게 살고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14). 어떤 결핍과 위기가 다가와도 그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면 활력있게 살 수 있고 활력을 불어 넣는 삶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믿는 우리는 순교자적 열정으로 활력 있게 살고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16,17). 어떤 장애물도 순교자적 열정으로 나아가면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활력 있게 살 수 있고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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