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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름을 타고 속히 오시리라 (계 1:7; 계 22:7,12) - 재림

첨부 1


제목 : 구름을 타고 속히 오시리라 (He Is Coming Soon with the Clouds) 
성경 : 계 1:7; 22:7, 12, 20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1: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22:12)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우리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2천년전 유대땅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인류의 죄값을 감당하셨고, 이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오심은 전 세계적으로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재림입니다. 만일 주님의 재림 약속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광야와 같은 삭막한 세상을 어떻게 건너갈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고맙게도 주님은 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거듭하여 다시 오실 것을 천명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다시 오시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우리 곁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혼 속으로 스며들기를 원합니다.  


1. '오시리라‘의 상황적 의미 (= 예수님의 재림) 
 
1:7=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요한이 본절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재림입니다.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기대는 이미 공관복음에서도 공통적으로 피력된 바 있습니다(막 13:26, 마 24:30, 눅 21:27)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절은 구약 다니엘 선지자의 환상과 결부된 것으로 보입니다. 단 7:13에 의하면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런데 구약성경이나 히브리 사상에서 ‘구름(네펠론)’은 주로 ‘하나님의 임재나 현현(顯現)’과 밀접한 관련을 지닙니다(출 13:21, 행 1:9).  
 
그러므로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언급은 예수님의 종말론적인 신적 임재와 현현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진술입니다. 

특히 여기 ‘오시리라’로 번역된 ‘에르케타이’는 직설법 현재형으로, 예수님의 재림의 확실성과 임박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본절은 이렇게 다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보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계 3:11, 22:7). 이것은 재림의 상황의 첫 번째 모습이요, 사도 바울에 의해 입증된 예수님의 재림의 모습입니다.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어떻게 구름을 타고 오실까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경은 말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계시록에는 ‘오시리라’는 말씀이 네 번 나옵니다. 그 중 첫 번째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말씀은 주님이 오실 때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주님이 재림하시는 상황은 초림시에 많은 제자들 앞에서 구름에 싸여 승천하시던 모습과 흡사합니다.  
 
행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행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천사들이 말합니다.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본 모습 그대로 우리 곁으로 다시 오십니다.

“오시리라”의 상황은 두 번째로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계 1:7) 
 
세계 어디서나 모든 사람들이 다시 오시는 주님을 볼 수 있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집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주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믿습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각인의 눈이 그를 보는데서 공개적으로 강림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종말론적 재림의 성격이 그의 초림과는 대조적으로 공개적일 것임을 드러냅니다.

“오시리라”의 상황은 세 번째로 땅에 있는 족속들, 구원받지 못할 자들도 본다는 것입니다.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계 1:7).
 
‘찌른 자들’이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본문과 슥 12:10을 인용한 요 19:37에서만 등장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찌른 자’가 단수형으로 제시되어 있는 데 반해 본절에서는 복수형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로마 병사는 한 명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의 정치 권력의 야합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더 나아가 당시나 오고오는 세대에 예수님과 그의 증거를 ‘대적한 모든 이들’을 아울러 지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그 자체로 축복이지만 그것을 대적한 모든 이들에게 있어 주님의 재림은 그 자체로 심판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주님 재림 때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라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지구상의 전인류에게 미칠 것이라는 예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놀라운 일은 진실로 반드시 될 일이므로 본문에서 요한은 ‘그러하리라 아멘(나이 아멘)’ 이란 표현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러하리라’로 번역된 ‘나이’는 ‘아멘’과 동일한 의미로서 ‘나이’가 헬라식 긍정을 의미한다면 ‘아멘’은 히브리식의 긍정을 뜻합니다. 이로 볼 때 요한 계시록은 헬라적 전통과 히브리적 전통 아래 있는 모든 문화권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주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본문을 다시한번 읽으며 우리의 믿음을 공고히 합시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1:7) 


2. ‘오시리라’의 축복의 의미 (= 천국 인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본절에서 ‘내가 속히 오리니’는 예수님께서 지체하지 않고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시는 최대의 축복입니다. 주님이 더디게 오신다면 세상의 환난과 사탄의 미혹 아래서 고통받아야 하는 영혼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속히 오리라’는 말씀 속에는 세상의 어떤 불꽃보다도 더 강렬한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오시리라는 약속은 성도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여기 ‘속히’로 번역한 ‘타퀴’는 부사로서 ‘빨리’ ‘지체없이’의 뜻입니다. 이는 재림의 긴박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말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반복입니다(2:16, 3:11).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본절의 복은 계시록에 언급된 일곱 가지 복 중 여섯 번째 복입니다. 이것은 첫째 복을 언급하고 있는 1:3의 반복으로, 이는 예언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고난 가운데 인내하여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여 주신 것처럼 말로만 예수를 믿고 행함이 없는 사람은 심판받기 때문입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여러분,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혹 연약해서 무너진 자는 회개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무서워하지 않고 죄를 짓는 것은 안 됩니다. 악(惡)해서 죄 짓는 것은 안 됩니다. 속히 오시리라는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오시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을 붙잡고 흠과 티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계시록 19장을 보면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 교회가 세마포를 입는다고 했습니다.

계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옷은 의로운 행실입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의 얼마나 많은 성도라는 사람들이 행실을 올바르게 가꾸지 않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부끄러움도 잊은 채 살고 있습니까? 다시 오시는 재림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자는 기름을 준비한 처녀와 같은 자입니다. 

‘오시리라’의 축복은 계시록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비록 힘겹고 눈물나는 일이 있을지라도, 비록 대환난의 무서운 핍박 앞에서도 예수 이름만큼은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시 오시리라는 주님을 눈물로 기다리며 순교의 제물이 되어갔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요! 천국은 바로 그런 자의 것입니다.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만을 소망하며 사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3. ‘오시리라’의 보상적 의미 (= 상급의 면류관)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세 번째 ‘오시리라’는 ‘속히 오시리라’입니다. 여기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는 7절의 반복입니다(3:11). 
 
본절의 내용처럼 악한 자와 의로운 자를 구별하여 심판하시는 것과 연결된 재림은 이사야 40:10의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이는 권능의 손을 휘둘러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권세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됨을 시사합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은 빈 손으로 오시지 않고 우리에게 주실 상급의 면류관을 가지고 오십니다.  
 
여기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를 직역하면 ’그리고 나의 상이 내게 있어서‘입니다. 
본절에는 행위에 따른 상급 또는 보상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성경 전체에 일관되는 사상입니다(욥 34:11, 시 62:12, 겔 33:20).

‘상’(賞, 미스도스)이라는 말은 원래 어떤 선행이나 일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답’ 또는 ‘삯’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말은 종말론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최후 심판 때 믿음으로 구원 얻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자기의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롬 14:12, 고후 5:10).

동시에 이 말은 불신자들이 세상에서 지은 죄에 대하여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케 되는 하나님의 온전한 선물인 반면(엡 2:8, 9), 상급은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대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고전 3: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다시 오셔서 우리가 행한대로 갚아 주십니다.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의 목적을 분명히 밝혀줍니다. 

의로운 자에게 주어지는 ‘상(賞)’은 많은 핍박과 고통 가운데서도 오직 예수님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믿음을 인내로 지킨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입니다(13:10, 14:12). 
 
그런데 의로운 자에 대한 보상은 상대적으로 악한 자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그를 추종하고 따른 자들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즐거움을 가져다 주지만, 짐승과 사탄을 숭배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는 두려운 심판만을 가져다 줍니다.

주님이 장차 주실 상급에는 분명한 등급이 있습니다(마 25:14-30, 고전 3:8-15). 그러나 상의 등급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 상급의 판단 기준은 은사나 능력의 정도가 아니라 맡겨진 일에 대한 충성 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마 7:16, 20; 고전 4:2; 갈 5:22). 
 
둘째, 상급의 등급 개념은 이 세상의 순차(順次) 또는 대소(大小)의 개념으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성도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속히 오십니다. 속히 오신다는 것은 그만큼 맡겨진 달란트를 가지고 충성되게 일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사도 바울은 이 신앙으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인을 위해 열심히 충성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재림신앙으로 충성하며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일한대로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속히 오시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교회의 맡은 직분에 충성하는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속히 오시리라’의 의미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본절은 지체하지 않고 오시겠다는 예수님의 증언으로 시작되어(7, 12절), 그 큰 날에 대한 교회의 열망을 반영하는 요한의 응답으로 끝납니다.  
 
본절은 22장 내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세 번째 확증이며(7, 12절), 동시에 그 재림의 확증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을 나타냅니다. 

한편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초대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자주 사용되던 기도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시사합니다. 
 
이 구절은 고전 16:22에 나타난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마라나 타)와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마라나타,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과 모든 인간사를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고백을 나타냅니다. 교회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구속(救贖)이라는 대드라마의 최후의 장입니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 주님은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참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때가 되면 반드시 갑자기 속히 오실 것입니다. 성경의 최종 결론은 재림 예수님을 기다리며 재림의 그날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재림신앙이 사라지고 오히려 ‘마라나타’를 외치면 이단 사이비 취급을 하는 너무도 안타까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역사의 안목으로 볼 때 주님의 재림은 너무도 임박했습니다. 성경 여러 곳의 예언의 말씀, 특히 계시록의 예언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 5월에 독립하여 강한 나라가 되어 이제 종말의 추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니엘 2장에 나오는 금신상의 비유에서 보인 종말의 적그리스도의 나라들과 그를 돕는 거짓 선지자의 세력이 이미 표면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럽 연합과 로마 카톨릭, 그리고 카톨릭의 종교다원주의에 동참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출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동서남북의 4대 세력이 대립되어 언제라도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곳의 바람을 잡고 있는 천사들에게 ‘놓으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세계는 엄청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종말의 대환난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입니다. 

이제 666 짐승의 표가 나타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참 교회와 음녀 교회를 구별해 내기 위하여 주님은 사탄의 준동을 짧은 시간 동안 한시적으로 허용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늘로부터 강림하셔서 이 모든 것을 말끔히 정리하신 후에 우리를 천년왕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린 그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도 요한처럼 주님의 재림을 학수고대해야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는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누리고 주님의 재림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주님이 속히 오시리라를 반복해서 여러 번 강조하며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철통같은 재림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 고백합시다: 
 
“나는 속히 오실 예수님만을 소망하며 살겠습니다.” 

“내 목에 칼이 겨누어질 지라도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만은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물속에라도 불속에라도 뛰어들어가서 재림신앙을 전하겠습니다.”

마라나타! 주님이 속히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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