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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 (마 20: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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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 (마 20:20-28)

< 성도의 제일 사명 >

어느 날, 한 여성이 담임목사에게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게는 말 못할 은밀한 죄가 있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너무 고민되어서 찾아왔어요. 저는 주일에 교회에 올 때마다 교인들을 죽 둘러보면서 제가 교인 중에 제일 예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그것이 죄인 줄 알아도 통제가 안 돼요. 이 죄를 어떻게 극복하나요?” 그때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자매님!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그것은 죄가 아니라 오해예요.”

살다 보면 그런 비슷한 오해들이 많습니다. 죄도 주의해야 하지만 오해도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성도가 가장 주의해야 할 오해는 “위대함이 무엇이냐?”에 대한 오해입니다. 위대함은 자리나 위치나 소유나 외모에 있지 않고 ‘더 성숙해지고 더 섬겨주는 것’에 있습니다. 부자나 권력자는 VIP(very important person, 매우 중요한 사람)는 될 수 있어도 MIP(most important person, 가장 중요한 사람)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MIP는 ‘섬겨주는 성숙한 사람’입니다. 

왜 하나님이 성도들 구원하시고 사명을 주셨습니까? 사랑으로 섬기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섬기는 삶은 반드시 나누는 삶을 동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재능과 소유 등 자기 것을 최선을 다해 나누십시오. 돈을 벌 때도 나누려고 벌고 물건을 살 때도 나눈다는 심정으로 사십시오. 그런 나눔의 철학으로 살면 물건을 살 때 사치를 부리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적절한 가격을 지나치게 후려쳐 깎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업과 나눔이 공존할 수 있을까요? 사업은 자선이 아니기에 이윤을 내야 하는데 종업원들의 월급을 더 주려고 하고, 복지혜택도 더 제공하고, 적절한 납품단가도 보장해주고, 사회에도 기여를 하는 등 나눔의 철학을 가지고 기업하면 사업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지혜를 주시고 최상의 기회와 만남을 주시면 나눔의 철학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사업을 잘 할 수 있다고 믿고 그런 은혜와 축복을 구하십시오.

특히 영혼 구원을 위한 일에는 더욱 힘써 나누십시오. 가끔 교회 형편 이상으로 선교후원을 하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필요는 언제 채우고 우리 비전은 어떻게 이루나?” 그러나 나눔이 최상의 비전인 줄 믿고 도와야 할 의무를 외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설득하십시오. “그래! 하나님이 후원할 마음을 주신 것이 복이지. 그렇게 하나님의 심정을 따라 힘써 나누면 내게도 축복과 행복이 찾아올 거야.”

선교사님들의 어려운 기도제목을 듣고 그때 반응해서 돕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제목을 듣지 않아도 평소에 돕는 삶을 체질화하십시오. 정기적인 후원에 나서고, 예상외의 수입이 생기면 자발적으로 후원에 나서고, 좋은 일이 있거나 삶 자체가 감사해도 자발적으로 후원에 나서십시오. 선교사님들은 어려워도 대개 스스로 도와달라는 말을 잘 꺼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선교사님들이 힘들다고 말하기 전에 기도 중에 어떤 감동이 생기면 스스로 알아서 돕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선교사님들과 교류하다 보면 어려운 사정을 많이 듣습니다. 지난주에도 자동차 고장 난 얘기, 냉장고 필요한 얘기, 자녀의 교육 문제, 건축비 문제 등등 여러 선교사님들의 필요를 들었습니다. 그런 기도제목들이 워낙 많아서 일일이 다 소개하지 못합니다. 특히 그런 얘기들 중에는 평신도에게는 직접 못하고 목회자인 제게만 할 수 있는 얘기들도 많습니다. 구차하게 들릴 수 있고 못난이처럼 사역을 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역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을 잘 못해서 의식주도 잘 해결하지 못한다고 너무 못났다고 하지 마십시오. 지금 목사님들 중에 택시와 트럭 운전하는 분들과 막노동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개척교회와 중형교회는 점차 죽어가고 이마트 같은 초대형교회만 커지니까 80%의 사역자들이 먹고사는 일조차 힘들어진 것입니다. 선교사의 경우도 초임 선교사님들은 대개 사역도 어렵지만 생활도 어렵습니다. 그런 사정들을 알아주고 전방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후방에서 최선을 다해 후원하려고 하십시오.

항상 나눔의 사명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고 사업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자신이 받은 축복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을 이루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음지의 뿌리 동역자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시고 살 길을 열어주시려는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힘든 영혼을 돕고 거룩한 비전의 보이지 않는 뿌리 역할을 하는 뿌리 동역자가 되는 것은 성도의 제일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 >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려고 예루살렘에 가는 길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는지 잘 교훈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기뻐하실까요? 

1.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

본문 바로 앞부분인 17-19절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삼일 만에 살아나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주 어두운 분위기입니다. 그 분위기에 역행해서 한 여인이 치맛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세배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절하면서 자기의 두 아들들을 주님 나라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20-21절). 

그때 주님은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22절). 그들이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런 약삭빠른 마음으로는 주님의 좌우편에 앉지 못하고 우직하게 충성하는 사람이 주님의 좌우편에 앉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약삭빠른 마음은 약삭빠른 도둑보다 더 안 좋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착각이 있습니다. 약삭빠른 생각을 하면서 “내가 참 영리하구나! 나는 잘 살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사기 치는 것입니다. 남에게 사기 치는 것보다 자신에게 사기 치는 것이 더 불행한 것입니다. 결국 ‘약삭빠른 것’은 ‘영리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입니다. 약삭빠른 사람은 잘 살 것 같지만 더 못 삽니다. 반면에 순수하고 깨끗하게 살면 겉으로는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2. 십자가를 지는 사람

본문 22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때 예수님의 마시려는 잔은 십자가였습니다. 결국 십자가를 기쁘게 질 때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습니다.(No Cross, No Crown). 

일전에 어떤 발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발이 못생겼는지 마치 희귀병 병자의 발 같았고 나무뿌리처럼 생겨 마치 엽기 사진 같았습니다. 그 발은 바로 세계적인 발레리나인 강수진 씨의 발이었습니다. 한 여류 시인은 그 발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루 19시간씩, 1년에 천여 켤레의 토슈즈가 닳아 떨어지고 멀쩡한 발이 괴물 발처럼 될 정도로 노력해서 얻은 성공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도 없지만 영혼도 부패합니다. 그러므로 복만 받으려고 하지 말고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기쁘게 지려고 하십시오. 무엇이 십자가입니까?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십자가이고 말없이 음지에서 최상의 헌신을 하는 것도 십자가지만 시련과 고난 중에도 “하나님! 이 시련과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도 십자가입입니다. 그처럼 기쁘게 십자가를 질 때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되고 조만간 축복의 문도 활짝 열릴 것입니다.


3. 성령 충만한 사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때문에 나머지 10제자가 두 제자에게 크게 분노했습니다(24절). 성령 받기 전의 제자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사람의 본능은 늘 “누가 크냐?”고 다투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남이 나보다 앞서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남이 큰 실수를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면 얼굴도 밝아지고 마음이 어린이처럼 되면서 미움과 상처와 한에 맺혀 살지 않게 됩니다. 

어린이들은 매를 맞아도 다음날에는 환하게 웃고 놉니다. 자녀에게 매를 대면 부모는 마음이 아파지고 우울해지지만 정작 맞은 어린이들은 하루만 지나면 벌써 잊어버립니다. 또한 심하게 싸우면 어른들은 그 후유증이 오래 가지만 어린이들은 금방 잊고 다시 친해집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성령 충만한 모습입니다. 아무리 타당한 이유가 있어도 한 맺힌 감정을 오래 품는 것은 성령 충만한 삶이 아닙니다. 

신비하고 화려한 성령의 은사는 있는데 마음속에 한과 상처와 미움이 그대로 있다면 그것은 사실상 감정 충만이고 자랑 충만이고 무대의식 충만이지 성령 충만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싫고 밉고 섭섭한 마음이 들 때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의 십자가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었을 거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그를 누구보다도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4. 종처럼 섬겨주는 사람

그때 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문제로 시기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안타깝게 생각하시면서 본문 26-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 앞에서 권세를 부리는 일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하는 일이다. 너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너희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

신앙의 핵심목표는 나를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려는 것이고 축복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축복 받고 그 축복을 남을 위해 쓰려는 것입니다. 복에 집착하면 영혼이 황폐해지고 축복도 저주로 변합니다. 또한 섬김만 받으려고 하면 관계가 깨지면서 자기도 손해를 보지만 섬겨주려고 하면 관계가 좋아지면서 자기도 유익을 얻습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습니다. 받으려고 하면 결국은 손해 보지만 주려고 하면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왜 섭섭함이 생길까요?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주려고 하면 섭섭함이 없고 더 주려고 하면 더 섭섭함이 없습니다. 결국 주려는 마음을 체질화시킬 때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누가 큰 사람입니까? 많은 종을 거느린 사람이 아닌 많이 종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사닥다리는 올라가는 방향에 있지 않고 내려가는 방향에 있습니다. 

사실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자리다툼은 그 전의 갈릴리에서도 있었습니다(막 9:30-37). 그때 제자들은 다투면서 저마다 타당한 논리를 내세웠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수제자임을 내세우고 요한은 자기가 제일 사랑 받는 제자임을 내세웠을 것입니다. 마태는 돈을 많이 버는 세관원의 자리를 포기한 사실을 내세웠고 안드레는 자신이 최초의 제자임을 내세웠고 가룟 유다는 자신이 제일 신뢰받는 재정담당자임을 내세웠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큰 인물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잘못이거나 성공을 원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성공을 원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성공을 잘 활용하면 됩니다. 그래서 성공이 나쁘다는 질책 대신에 누가 큰 인물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시며 큰 인물은 종처럼 남을 섬겨주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을 거느릴 때 크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섬길 때 크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진리에 대한 실물교육을 위해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힘도 없고 돈도 없어서 성공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요구만 많습니다. 자녀를 낳으면 그때부터 주는 삶이 시작됩니다. 만 18세가 넘어 성인이 되면 안 줘도 될 것 같은데 계속 줄 일이 생깁니다. 마침내 자녀가 결혼하면 안 줘도 되고 받을 날이 시작될 것 같지만 그때도 부모는 계속 주는 입장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처럼 세상적인 시각으로는 귀찮고 전혀 성공에 도움이 안 되는 어린이와 같은 약한 존재를 잘 영접하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세상은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지만 성도는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없는 사람을 무시하면 그만큼 축복이 깎이지만 없는 사람을 섬겨주면 그만큼 축복이 쌓입니다. 결국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주느냐에 따라 앞날의 축복과 행복과 보람이 현저히 좌우되고 천국의 상급도 현저히 좌우될 것입니다.


< 소외자의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

한 청년에게 중학교 때 진따란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하는 짓도 진따고 생긴 것도 진따였습니다. 친구들이 “야! 내 숙제 좀 해!” 하면 “어. 알았어!” 했고, “야! 볼펜 예쁜데. 내가 가져도 되지!” 하면 “어. 그래.”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 청소 일 하는 찐따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다리를 절며 아들에게 다가가 큰 봉투를 건네주고 가자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야! 찐따. 거 뭐냐?” “음. 아빠가 너희 주라고 가져오셨어.” 봉투 안에는 빵이 있었는데 진따 아빠가 자기 아들이 왕따인 줄 알고 잘 봐달라고 사온 것이었습니다. 그때 친구들은 조롱했습니다. “야! 그 빵 청소하다 주워온 것 아냐!” 그러면서 아무도 먹지 않아서 그날 진따는 말없이 그 빵을 그냥 가져갔습니다.

다음 날, 진따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웃었습니다. “야! 진따가 땡땡이도 치네.” 다시 며칠 후 종례시간 때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진호가 많이 아프단다. 형편이 어려워 병원에 못 가서 병이 커졌단다. 선생님도 어제 가봤는데 많이 아픈 것 같다. 너희들도 한번 가봐라.” 

그날 몇몇 친구들이 학교 끝나고 진따에게 갔습니다. 진따집을 찾아 달동네로 올라가는데 아직도 한참 더 올라가야 한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다른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찐따 정말 슈퍼맨이었네. 어떻게 매일 이 길을 다녔어?” “진따 다리 봤잖아. 그래서 다리가 두꺼웠나봐.”

드디어 찐따 집을 찾았습니다. 빌라 후문에 있는 낡고 작은 단칸방 집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친구들이 소리 질렀습니다. “야! 진따! 아니, 이진호! 우리들이 왔다!” 그런데 방이 너무 적어 10명이 한꺼번에 다 들어갈 수 없어서 서너 명씩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처음 들어갔다 5분쯤 후에 나온 친구들이 눈이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야! 너 왜 그래? 울었냐?” “아냐! 그런데 이제 진호 어떡하냐?”

친구의 감춰진 눈물을 보고 무거운 마음으로 작은 방으로 들어가자 진호가 보였습니다. 머리가 퉁퉁 부어 ET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야! 진호야!” “어. 경수 왔구나!” “왜 이래?” “약 먹었으니까 곧 나을 거야.” “뭐! 약을 먹어! 머리가 이렇게 퉁퉁 부어 눈도 못 뜨면서 병원도 안 가!” “괜찮아!” 야윈 몸을 보니까 가슴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따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빨리 병원에 가셔야죠?”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 동안 찐따에게 아무도 따뜻한 시선을 주지 않았지만 그날만은 달랐습니다. “야! 찐따. 꼭 나아야 된다! 너 안 나오면 내 숙제는 누가 해주냐?” 그날 저녁 진따 집에서 나오는데 아무도 말이 없었습니다. “야! 찐따 괜찮겠지?”하고 물어도 아무도 말이 없었습니다. 또 “야! 말 좀 해봐! 진따 괜찮겠지.”라도 해도 역시 아무도 말이 없었습니다. 

그 후 진따는 계속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방학이 되고 다시 개학해도 여전히 진따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개학 후 일주일쯤 지났을 때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진호 별명이 진따였니? 진호가 하늘나라 갔다. 가기 전에 너희들 얘기 많이 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너무 슬프고 너무 진따에게 미안해서 욕이 나왔습니다. “병신! 쪼다! 찐따 같은 자식. 그래, 우리 안보니까 좋겠다!”

그날, 반 전체가 조용했습니다. 흔한 지우개 던지기도 안 했고 자주 하던 말뚝 박기도 안 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불쌍한 친구를 못살게 군 나쁜 친구였다는 생각에 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그는 진따가 보고 싶어서 <진따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찐따야! 나다. 기억 나냐? 우리 엊그제 동창회 했다. 네게 숙제시키던 명식이도 나왔고 네 뒤에 앉아 샤프로 콕콕 찌르던 정호도 나왔다. 명식이는 결혼했다. 딸도 있는데 지 에빌 닮아 시집은 다 간 것 같다. 정호는 PC방 사장됐다. 만나서 너 얘기 많이 했다. 너 혹시 하늘나라에서도 왕따 당하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웃었다. 진따야! 너 춥니! 안 추워? 너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어 한다. 진따야! 정말 미안하다. 너 다음에 우리 만나도 친구 해줄 거니? 응? 말 좀 해봐? 야! 찐따! 내 말 안 들리니? 진따야! 하늘나라에서 잘 있지? 보고 싶다. 진호야.” 

하나님은 역자의 친구가 되어주고 돕는 삶을 무엇보다 기뻐하실 것입니다. 또한 사랑을 나눠주러 거친 전방으로 간 선교사님들을 돕는 손길도 다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요새 ‘사역의 필요’는 말해도 무능하게 보일까봐 ‘생활의 필요’는 말하지 못하고 깊은 고통에 신음하는 선교사님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선교사님의 구체적인 실명을 공개해 기도제목을 내놓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분들의 명예와 자부심을 지켜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들을 이해하고 선행적으로 나눔에 최선을 다해 나서고 또한 더 많이 나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사십시오.

살면서 ‘얻으려는 일’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드리려는 일’에도 관심을 두십시오. 나눔에 관심을 기울이고 힘써 실천할 때 하나님은 그 영혼에 풍성한 행복감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이제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도울 사람이 없습니까? 제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이 시간에 제가 도와야 할 사람이 생각나게 하시고 실제로 손을 펴서 그를 돕고 섬기게 하소서!”

요새 입시철이 다가오면서 입시생 부모들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이가 이번 시험을 잘 보게 하소서!” 반면에 이렇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이가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게 하소서!” 어떤 기도를 먹고 자란 자녀가 능력 있고 부요하고 복된 자녀가 될까요? 당연히 후자의 기도를 먹고 자란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전자의 기도를 하면서도 후자의 기도를 결코 놓치지 마십시오. 전자의 기도가 VIP(very important prayer, 매우 중요한 기도)라면 후자의 기도는 MIP(most important prayer,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4년 간 “예수 믿고 인물이 되라!”는 비전을 가지고 계속 기도해왔습니다. 우리 당대와 후대 중에 인물이 한 사람만 나와도 몇 천 명, 몇 만 명 교회가 하는 일 이상을 할 수 있음을 깨닫고 그런 비전을 가진 것입니다. 그 기도대로 이뤄져 이제 조만간 우리 중에 인물 나는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인물이 되라!”는 말은 단순히 “성공한 큰 부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나눔의 거목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런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고 준비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창조성과 지혜를 발휘해 열심히 사십시오.

오늘 성찬식을 할 때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기억하고 나눔과 섬김의 삶을 새롭게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기도할 때마다 ‘달라는 기도’도 하면서 동시에 ‘나누게 해달라는 기도’도 꼭 잊지 마십시오. 그런 나눔을 위한 기도가 바로 예수님의 기도였고 그런 나눔의 삶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그처럼 ‘나눔과 섬김의 사명’을 늘 기억하면서 내일의 보람과 행복과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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