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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그리스도인 (딤후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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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리스도인 (딤후 1:1-14)


사도 바울은 3차 선교 여행 중에 에베소 교회를 세우고 약 3년 동안 목회했습니다. 그 후에 디모데로 하여금 에베소 교회를 계속 돌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체포되어 가이사랴에 2년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그 후에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서 약 2년 동안 가택 연금 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에 잠시 석방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기간 중에 오랫동안 꿈꿔 왔던 스페인을 방문했고 이어서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을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에 네로 황제가 로마 대화재 사건을 빌미로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는데 그 때에 다시 체포되어 투옥되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에서 1차 감옥 생활은 꽤 편했던 것 같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서 2차 감옥 생활은 매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는 옥중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6~7) 더 이상 희망이 없었던 것 같지 않습니까? 처형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이 편지를 사도 바울의 마지막 편지인 동시에 그의 후계자인 디모데에게 써 보낸 유서와 같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마지막 편지에서 마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타이르는 것처럼 복음의 일꾼으로 끝까지 충성을 다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보다 먼저 디모데에게 거짓이 없는 믿음, 즉 참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음의 일꾼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거짓이 없는 믿음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과 같은 가짜 믿음으로는 결코 복음의 일꾼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참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갑작스럽게 변화되어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상으로부터 믿음을 물려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매우 바람직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참 믿음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려는 사람은 별로 많은 것 같지 않아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짜 값진 유산은 많은 재산이 아니라 참 믿음이라는 사실을 디모데의 경우를 통해서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종종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지만 참 믿음의 유산은 사랑과 화평과 일치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복음과 고난의 연관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 그가 받고 있는 고난을 디모데에게도 받으라고 분명히 권하고 있습니다. 또한 거듭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딤후 1:12 상반절)

사실 그 동안 한국 교회는 예수 믿으면 건강과 물질의 복을 받는다고 하는 번영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 3서 2절의 말씀을 표어로 삼고 주문처럼 암송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러나 문제는 번영의 신학이 여러 가지로 복음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번영의 신학은 한국 교회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괜히 한국 교회가 욕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의 복음은 번영의 신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복음은 십자가의 신학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삶은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사도로써 많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도 복음을 위해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고난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후계자인 디모데에게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것을 당부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고난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 하면 그에게 있어서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관한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신 이 복음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세상에 생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이 십자가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의 일꾼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거짓이 없는 믿음입니다. 참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갑작스럽게 믿음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무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먼저 믿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녀들에게 참 믿음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막대한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짓이 없는 참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아울러 오늘 복음의 일꾼에게 있어서 요구되는 것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한 것과 자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것을 보면 그 당시 복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 지극히 부끄럽고 미련한 것이 복음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과 관련해서 제 개인의 부끄러운 과거 하나를 고백하고 싶습니다. 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10월 유신 헌법 개정 국민 투표 때에 저는 사병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 선친은 그 당시 유신 반대 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가족들은 늘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부재자 투표 날이 닥쳤습니다. 제가 모시던 분이 대령인데 집무실로 사병 한 명씩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차례가 되어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부친은 이 헌법을 반대하는데 자네는 어떤가?” 미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저는  “부친은 부친이고 저는 찬성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저를 난처하게 만든 부친을 상당히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저의 비굴한 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끝으로 오늘 복음의 일꾼에게 있어서 요구되는 것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려는 자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고난 중의 고난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 사건이 그 중심에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십자가 사건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복음에 충실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 고난을 기쁘게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한 고난은 참 그리스도인의 표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한국 교회는 번영의 신학에 취하여 가능하면 고난을 피하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난 받는 참 그리스도인들을 마치 범죄자처럼 매도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누가 참 그리스도인입니까? 또 어떤 사람이 복음의 참 일꾼이 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거짓이 없는 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과 행위가 일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울러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오히려 복음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고난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주님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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