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절망은 없다 (민 13:25-33)

첨부 1


절망은 없다 (민 13:25-33)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품어서는 안 될 생각들이 있습니다. 경계해야 할 생각이예요. 우리 자막에서 한 번 보실까요? 먼저는 1. 난 이제 끝났다. 이런 생각가지시면 안돼요. 난 이제 끝난 인생이다. 아니예요. 그리스도 안에서는 늘 새로운 소망이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끝나지 않았어요.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거든요. 두 번째 가져서는 안될 생각은 뭐예요? 2. 내게 더 이상 소망이 없다. 난 더 이상 소망이 없어. 

아니예요.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늘 새로운 소망을 주시는 분이다. 세 번째 3. 이제 노력할 힘조차 없다. 이런 생각!! 아니예요. 나는 나이가 너무 들어서, 기력이 쇠해서 힘이 없어. 여러분! 힘주시는 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셔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 침 같이 올라갈 것이요.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다고 그랬어요. 힘의 근원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예요. 나는 힘조차 없다. 아니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세요. 네 번째 4. 아무도 나를 도울 자가 없다. 자식들도 전화한지 오래됐어. 아무도 나를 도우려고 하지 않아. 아니예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우실 수 있어요. 

이사야 41장 10절에 보니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세요. 시편 121편에 보니까 시인이 뭐라고 노래합니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앞의 말은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자 우리가 품어야 할 생각이 있어요. 자막을 함께 보시죠. 1번을 같이 읽습니다. 시작 1. 내 인생은 늘 새롭다. 그렇습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지만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고린도후서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날마다 새로운 거예요.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인생은 늘 새로운 거예요. 

두 번째 2. 내게는 늘 소망이 있다. 여러분에게는 오늘도 소망이 넘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망이면 못 살죠.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늘 새로운 소망을 주시는 것이죠. 내게는 늘 소망이 있어요. 세 번째 같이 읽어볼까요? 3.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더 좋은 일을 준비하고 계셔요.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처럼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마치 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 번제할 어린 양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처럼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래서 여러분 인생의 황금기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따라해 보세요. ‘내 인생의 황금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과거에 내가 이런 전성기가 있었는데!! 아니예요. 진짜 전성기는 앞에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늘 소망이 있는 거예요. 

네 번째로 4. 내게는 기도의 무기가 남아 있다. 아직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어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내가 응답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해요.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돕겠다는 특별한 방법이고 통로예요.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옆에 분들에게 한 번 이야기해보세요.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염려 걱정하는 분들은 기도 안하는 분들이예요. 그러나 기도하면 염려가 사라져 버린다. 내게는 기도의 무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도 소망이 남아 있는 거예요. 

다섯 번째로 5.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온 세상이 나를 버려도, 자녀들이 나를 외면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 없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옆에 분들에게 이렇게 자신 있게 축복해주세요. ‘하나님은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요! 우리는 이 확신을 가져야 해요. 지금만 잠깐 가지시면 안 되고 날마다 삶 속에서 여전히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고 계세요. 내가 때로는 병들어도 내가 때로는 실패해도 내가 때로는 가난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는 거예요. 우린 이 확신을 가지고, 이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때 절망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절망이 있다? 없다? 없다!! 성가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절망이 있다? 없다? 없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절망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요. 늘 새로운 희망으로 우리는 용솟음 칠 수 있는 거예요. 절망은 없어요. 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절망이 없다는 이 말은 단순히 심리적인 위로! 어떤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믿음이 주는 위로! 이런 것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위에 근거되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시고 우리에게 부활의 승리 영원한 승리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절망이 없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어떤 저주도 가난도 질병도 어떤 죄악도 다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영원한 소망이 있고 절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13장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지 2년이 지났어요.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 도착을 해서 이제 가나안 땅이 바라보이는 곳에 왔어요. 여호수아는 12명의 정탐꾼을 뽑아서 그들을 가나안 땅에 40일을 파견했습니다. 그들이 가서 그 땅을 다 살펴봤어요. 호불호!!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다 살펴보았어요. 그리고 그들이 와서 보고합니다. ‘우리가 가서 보니까 그 땅은 정말 기름진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여기 포도 열매 보세요. 얼마나 큽니까?! 그러나 그 땅은 성읍이 견고하고 키가 장대하고 그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알아보건대 어떤 족속은 어디에 거하고 어떤 족속은 산지에 거하고 광야에 거하고’ 그렇게 자세한 지도를 그려서 보고했습니다. 그 보고가 끝나자마자 갈렙과 여호수아는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올라가서 칩시다!! 이길 것입니다!! 승리할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당연히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뜻이니까!! 

그런데 그것을 반대하는 무리들이 있었어요. 다른 10명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안 됩니다. 그들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길 수 없습니다. 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들은 패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똑같은 것을 보고 왔는데 똑같은 것을 보고 하는데 왜 결과적으로 주장이 다를까요? 이것이 뭐냐? 생각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일어나는 현상은 다 똑같아요. 그런데 쉬운 예를 들자면 어떤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느냐?! 선글라스는 색깔이 있잖아요. 빨간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온통 빨갛게 보여요. 파란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온통 파랗게 보여요. 

어떤 관점에서 어떤 눈으로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다 다르다 하는 것입니다. 두 명은 긍정적인 생각 믿음의 생각으로 바라봤고 다른 열 명은 부정적인 생각, 패배적인 생각으로 그것을 바라봤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생각의 차이입니다. 그 생각이 참으로 중요해요. 

잠언 4장 24절에 보면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그것은 네 생각을 온전히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왜? 부정적인 생각 패배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내 인생이 망가뜨려 지기 때문에 믿음의 생각을 가져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똑같은 밀가루 반죽이지만 붕어빵 틀에 넣으면 붕어빵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호두과자 틀에 넣으면 호두과자가 나오잖아요.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 생각 그 관점이 중요한거예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생각으로 믿음의 관점으로 그 사건을 바라 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해요. 생각의 차이예요. 그러면 갈렙이 ‘올라갑시다. 이깁니다. 싸우면 분명이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만용인가? 허풍인가? 아니예요.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어요. ‘너희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것이다. 네가 그 땅을 너에게 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나아가기 때문에 그 약속을 생각한거예요. 또 그들만이 가는 것이 아니예요. 거기에는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도다.” 전쟁은 누구에게 속했어요?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케 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죠. 

제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 따라 시장에 가면 감자, 고구마 이런 것을 파는데 파는 방법이 있습니다. 천칭이라는 저울에 접시가 두 개 있어요. 여기에 고구마 10kg올려놔요. 그러면 5kg 짜리 쇠붙이를 두 개 올려놔요. 그것이 평형이 이루어지면 아 이것이 10kg입니다. 10kg에 얼마입니다. 하고 가격을 받는 거예요. 여러분 한 번 이렇게 천칭에 올려 놓는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다윗과 골리앗을 한 번 올려 볼까요? 이쪽은 다윗이고 이쪽은 골리앗이예요. 둘을 올려 놓으면 어느 쪽이 더 강할까? 강한 쪽이 무겁겠죠?! 아마 골리앗이 무겁겠죠?! 왜요? 골리앗은 키도 크고 전쟁에 능하고 이미 어른이고 다윗은 아직 어리고 목동이고 소년이고 전쟁에 경험이 없고 당연히 무거운 쪽, 골리앗 쪽이 내려가죠. 

그런데 다윗은 ‘내가 골리앗과 싸워 이기겠다.’ 이것이 허풍입니까? 아닙니다. 다윗에게는 누가 계셨어요? 하나님이 계셨어요.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시니까 천칭이 바뀌어요. 쭉 다윗이 무거워져요. 골리앗이 올라가요. 누가 이겨요? 다윗이 이겼죠.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니까 다윗의 인생은 플러스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하니까 골리앗은 게임이 안되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지금 이스라엘과 가나안 민족을 천칭을 놓고 보면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은 그 당시 철기로 만든 무기를 가지고 있었어요. 이스라엘은 거기에 비하면 전쟁이라는 것은 해보지도 않은 민족이예요. 이것은 싸우나마나 이건 당연히 가나안이 이기고 이스라엘이 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누가 있었느냐? 하나님이 계셨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이것이 거꾸로 되는 거예요.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연약해요. 나는 부족해요. 나는 가진 것도 없어요. 배우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누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플러스 하나님!! 다르지요. 불신자와 신자의 사이에는 분명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내편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늘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초라해지는 거예요. 열등감 속에 살아가는 거예요. 잘못된 것이죠. 갈렙은 바로 이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길 것입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열 명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메뚜기 자화상을 가졌어요. 자 우리 성경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자 31절부터 33절까지 그들의 말을 들어보죠. 

다르죠. 불신자와 신자의 삶에는 분명 다른게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내편이시라는 이 믿음의 확신이 없는 사람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늘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초라해하고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는 거에요. 잘못된 거죠. 

갈렙은 바로 이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올라갑시다. 이길 것입니다. 승리할 것입니다. 그런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다. 그런데 10명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그들은 메뚜기 자화상을 가졌어요. 자 우리성경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자 31절부터 33절까지 그들의 말을 한번 들어보죠. 

자 31절입니다. 시작

31절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절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절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아멘.

그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고 시작을 하죠. 악평이라고 하는 것은 나쁘게 이야기 하는거에요. 나쁜 쪽으로 이해하는 거에요. 그들은 이미 패배적인 안경을 끼고 패배적인 예언을 하고 그들말에 의하면 싸워봤자 질게 뻔하죠. 

어떤 분들은 스스로 자신을 메뚜기처럼 만들고 있어요. 상황을 악평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거 좋은게 아닙니다. 여러분. 나는 어렵고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이 내편이시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그들은 스스로를 메뚜기로 표현하죠. 메뚜기 자화상. 메뚜기는 장대 같은 사람들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건 싸움이 안되는 거에요. 스스로를 메뚜기 자화상을 가지고 있어요.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불신앙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거대한 네피림 자손들이 살고 있다고 보고 합니다. 그것도 틀린거에요. 창세기 6장에 이 네피림 거인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후에 거인족이 존재했다는 성경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단지 가나안 땅에도 골리앗 같은 2미터가 넘는 장대 같은 사람이 있어요. 또 여호수아가 바산왕을 점령할 때 바산왕의 옥의 왕은 키가 장대 같다고 하였어요. 그러한 거인이 있죠. 그러나 모든 사람이 거인은 아니에요. 32절에 보면은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틀린 이야기에요. 그들이 너무 두려워서 냉철하게 보지 못했고 한 두 사람을 보고서는 모든 사람이 그랬다는 거짓된 과장된 보고를 했다고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달라요.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우리는 능히 이길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보니까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따라해 보세요.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렇습니다. 배고프신 분들 밥 생각나겠는데. 옛날 성경에서는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근제 지금 성경에서는 그들은 우리의 먹이다 라고 하였어요. 밥이라는게 뭐에요? 먹어치우는 거에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에요. 올라가면 이깁시다. 이런 이야기에요. 갈렙의 생각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주신 밥이에요. 

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런 생각을 가지시기 때문에 갈렙은 승리를 장담하고 백성을 격려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생각의 차이에요. 여러분들이 오늘 어떤 생각을 갖느냐? 부정적이고 배회적인 생각의 노예가 되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붙들고 이 성경은 약속인거 다 아시죠 여러분.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사람은 충만하기 때문에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나를 도울 것을 알기 때문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할 수 있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어떤 생각을 품느냐 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에 보면은 70-80년대 별들의 고행이라는 아주 유명한 작품을 오랫동안 연재해서 유명해진 작가가 있죠. 최인호라는 분. 이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셨을 거에요. 아주 훌륭한 작가고 한국에 손꼽을 만한 소설가이죠. 그런데 이분의 출생의 삶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6남매중에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10살 때 세상을 떠났어요. 홀어머니가 혼자서 6남매를 키웠다는게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여러분? 그러니까 뭐 제대로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해. 최인호 작가는 늘 큰형이 입다가 물려준 교복을 줄여서 입고 떨어지면 엄마가 꿰매주니까 걸레 같아요. 더덕 더덕 붙었어요. 꿰매서 그래서 별명이 걸레 였데요 걸레. 옷이 걸레 같으니까. 

그런데 그는 굴하지 않고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는 가난이 안긴 열등감을 글쓰기로 이겨냈다. 열심히 글을 썼어요. 가난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그는 위대한 작가로 우뚝 설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잡지에 원고를 냈는데 당선이 되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이. 이 대단한 능력과 열정이죠. 그는 생각이 남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려우면 좌절하고 절망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은 더 열심히 글을 써서 정말 한국이 자랑하는 반열에 설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불교와 여러 종교를 다녔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믿었어요. 그리고 천주교인이 되자 마지막 주님의 부름을 받았어요. 그는 마지막에 하나님이 나를 부르십니다. 하며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생각이 남달랐기 때문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2,000년 7월 교통사고를 당했던 한 자매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13년 전이죠. 이지선 양입니다. 그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를 재학 중이고 아주 예쁘고 코가 오똑한 해맑은 미소의 소녀였습니다. 그러나 소주 5병이나 먹고 만취한 운전자가 모는 차에 충돌하게 되었고 화재가 일어났어요. 온몸에 3도의 화상을 입고 그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는 흉물스러운 얼굴이 되었어요. 그는 큰 수술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온몸을 붕대로 다 감쌌어요. 집에 돌아가서 붕대를 풀 때 기대감이 있었데요. 그래도 내 얼굴이 수술을 여러 번 했으니까 조금 낫겠지 생각 했는데 붕대를 풀은 자신의 얼굴을 보는 순간 기절할 뻔 했어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에요. 너무 충격을 받아가지고 자살을 생각했어요.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릴까. 너무 절망했어요. 

그러나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니야 교회가서 기도할까 이런 생각이 또 들었어요. 그는 자살 하려는 생각들을 뒤로 하고 그는 교회가서 기도합니다.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위해 크게 사용할거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아름답게 사용할거야 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는 얼마 전에 방영된 힐링 캠프라는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아픈 과거를 진솔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는 지금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가운데 살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빠가 물었습니다. 야 지선아 만약에 너 여기 있는 단추만 딱 누르면은 그 예뻤던 얼굴로 돌아가고 싶니? 근데 이지선양은 아니요 오빠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저는 지금이 더 행복해요.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이 더 행복해요. 그는 생각이 남달라요. 

그는 우스게 소리도 하더라고요. 자기는 어렸을 때부터 연애인을 보면 너무 부러웠는데 지금은 자신이 연예인하고 똑같데. 

이지선과 연예인의 공통점. 지하철이나 버스나 대중교통을 절대 이용하지 않는다. 
연예인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안타죠. 개인차를 타고 다니지. 이지선도 그래요. 
식당에 가면 밥 먹던 사람들이 다 자기를 쳐다본다. 이지선과 연예인의 공통점이에요. 얼굴을 많이 고쳤지만 아직도 얼굴이 흉하니까 많이 쳐다보죠. 연예인 보듯이. 또 연예인들은 스케쥴을 매니저가 다 관리를 해주잖아요. 자기도 어머니가 자기의 스케쥴을 다 관리해주기 때문에 연애인과 공통점이 있다 뭐 이런 우스게 소리도 하더라고요. 그는 지금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생각이 다르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중요해요. 

사무엘 스마일스라는 분은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곧 내 인생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자꾸 남의 것을 훔치고 싶은 사람은 분명히 언젠가 도둑이 되고 말거예요. 

여러분이 정말 나는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 그런 소망,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그의 인격이 변화되어 갈거예요. 여러분이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냐. 그것이 여러분의 모습이고 미래의 모습니다. 

잠언 23장 7절에 보니까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이라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품느냐가 중요하죠. 생각이 왜 중요할까? 첫째는 생각은 생명과 멸망을 갈라놓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생명을 보존하기도 하고 멸망당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했던 사람들 그들은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가나안 땅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하나님께서 다 시체가 되게 하셨어요.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영광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에 따라서 생명을 얻기도 하고 멸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6절에 보니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왜 중요하냐? 두 번째 생각은 행복과 불행을 갈라놓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은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어요. 여러분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설문조사를 해보면 행복하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여러분 스스로 물어보세요. 남편이 속 썩이는데 뭐가 행복해. 아이고 돈도 못벌어 오는데 뭐가 행복해? 뭐 이런 핑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여러분의 행복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지선 양은 그런 상황에서도 행복을 고백합니다. 어떤 분들은 사지가 멀쩡한데도 자살할 생각하고 늘 불행하다고 우울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행복할 확률이 아주 높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건강하고 장수의 복을 누린데요. 그런데 자신이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개 불행하고 외로운 사람을 산다고 합니다. 그들은 질병에 늘 시달린다는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말하느냐? 매우 중요해요. 

여러분 이제는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행복하다고 선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를 한번 따라해 보세요. 저는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행복하다고 말하면 행복이 찾아와요.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자꾸 불행한 것만 생각하면 여러분의 인생은 스스로 불행의 무덤을 파고 있는 거예요. 얼마 전에 K티비라고 하는 한국 정책 방송에서 희노애락의 비밀이라는 방송을 방영했어요. 거기에서 뭐를 조사했느냐? 우리 속담에 웃으면 복이 와요. 라는 속담이 있죠? 그것이 정말 사실이냐? 그것을 통계로 내봤어요. 그랬더니 그것이 사실이에요.

열심히 많이 웃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5년 더 살고 건강하고 대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해요. 에이. 목사님 우리 집엔 웃을 일이 있어야 웃죠. 아니에요. 여러분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웃으면 행복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해보세요. 웃으면 행복이 찾아온다. 

그렇습니다. 내가 웃으면 행복이 찾아오고 웃으면 내 신체가 행복한 사람의 몸으로 바꿔져요. 행복한 사람처럼 건강해지고 소화가 잘되고 신경이 잘 돌아가고 이게 그런 거예요. 많은 웃는 행복한 사람일수록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웃으면 복이 온다.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많이 웃어라. 그러면 여러분은 정말 행복해진다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로 한번 웃어봤음 좋겠어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많이 웃으셔야 해요. 생각은 바로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생각은 왜 중요하냐?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우리 속담에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는 말 진리에요. 좋은 생각을 심으면 좋은 삶을 삽니다. 나쁜 생각을 심으면 나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 8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하세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여러분 농사짓는 농부들에게는 자연의 법칙이 있죠. 콩 심은데 콩 이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지만 영적인 법칙이 있어요. 내가 성령을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육체를 심으면 내가 거기서 파멸을 거두고 결국 썩어질 것들을 거둘 수밖에 없다. 무엇을 심느냐가 매우 중요해요. 여러분 믿음을 심고 사랑을 심고 용서를 심고 은혜를 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반대로 미움을 심고 증오를 심고 복수를 심고 범죄를 심으면 내 인생은 파멸의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미움을 심으면 살인을 거둡니다. 분노를 심으면 불행을 거둡니다. 그러나 용서를 심으면 사랑을 거두고 기쁨을 심으면 행복을 거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세요. 어떤 분들은 그래요. 난 뭘 해도 안 되요. 여러분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 생각은 마귀가 주는 생각이에요.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세요. 나는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는 뭐든지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셔야 되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대부분 그 일을 잘할 수 있다고 해요. 나는 저 일을 해보지 못했지만 못할 거야. 그러면 대부분 못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품느냐가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에요.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어떤 분께 심방을 가면 이런 말을 하시는 분이 계세요. 목사님 제가 빨리 죽게 기도해주세요. 아니 늙은게 죽지도 않고 왜 자신이 짐이 된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은 꼭 필요한 분들이에요.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세요. 여러분 가정에 꼭 필요하고 교회에 꼭 필요하시고 이 사회에 꼭 필요하신 분들이세요. 나는 하나님안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세요. 

저를 따라해 보세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필요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나를 보배같이 여기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배 같이 여기시는데 여러분은 왜 여러분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기십니까? 아니에요. 여러분은 꼭 필요한 분들이에요. 나는 이제 외롭다고 말하지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이제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하고 생각하세요. 나는 이제 우울하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내 주위의 많은 성도님들 때문에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세요. 

여러분 경로대학 한번 와보세요.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서로 즐겁게 하고 친교하고 그런데 어떤 분들은 집에 혼자 계세요. 경로대학도 안오시고 불도 깜깜히 꺼놓고 인생의 어두운 곳만 곱씹으니 외롭고 힘들어요. 건강도 나빠지고 경로대학 오면 노래하고 친교하고 얼마나 좋아요.

그렇습니다, 문제는 생각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나쁜 생각은 버리셔야 해요. 이사야서 55장에 보니까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만 생각하세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생각하자. 우리를 향한 주님의 생각은 뭐에요?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 미래에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여러분 그리스도인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새로운 소망 가운데 하루하루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이 주께 있기 때문에 능력이 주께 있기 때문에 소망이 주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업성요. 하나님 주시는 믿음의 생각 은혜의 생각 긍정적인 생각 가지고 오늘도 찬양하고 감사하는 승리의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