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절대희망 (왕상 18:41-46)

첨부 1


절대희망 (왕상 18:41-46)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42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왕상 18:41-46)

신앙인만이 볼 수 있는 눈(眼)이 있습니다.  
파괴 속에서 건설을, 어둠속에서 빛을, 부정 속에서 긍정을, 작은 것들 속에서 큰 것을, 손 만한 구름 속에서 천지를 뒤덮는 큰비를 보는 것이 신앙인의 눈(眼)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중의 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엘리야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엘리야의 기적이 나옵니다.  그런데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출연한 시기를 보면.. 그 시대가 어느 때 보다도 암담했던 시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절망의 시대에 능력 있는 종을 보내는 것은 언제나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비상조치입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 선지자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던 절대절망의 시대에,   ‘절대희망’의 역사를 불러온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엘리야가 되어 어둠속에서 빛을 노래하고, 슬픔 속에서 기쁨을 노래하고, 절대절망의 땅에서 절대희망을 노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엘리야의 기도를 보여줍니다.
갈멜산에 불이 떨어졌던 사건, 이방 선지자 850명과의 대결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그는 승리 이후에 무엇을 했을까요?  승리의 감격에 도취되어 잔치를 벌여놓고 축하객을 영접하였나요?  성가대를 조직하여 찬양대회를 했나요?  

본문 42절을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그는 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기다리며 곧장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비를 거두어 가신 하나님, 이제 당신의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비를 내려 주세요.” 하면서 백성의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다시 갈멜산 꼭대기를 향해 기도하러 올라가는 엘리야의 모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간 예수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왕상18:1)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면 구태여 기도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約束)은 언제나 기도(祈禱)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기도의 사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요14: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느니라”

엘리야는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기에 그 약속을 붙들고 갈멜산으로 기도하러 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약속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분은 “무엇이든지”, “얼마든지” 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하면 “무엇이든지” 주십니다. “얼마든지”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언제든지”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믿음으로 기도하시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신약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엘리야가 기적을 일으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비결이 우리와 다른 어떤 재능(才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처럼 실수 하는 사람, 우리처럼 때로 낙심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처럼 연약하여 넘어질 수도 있고, 방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토록 능력 있는 사람, 큰 역사를 일으킨 사람이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기도한즉. 다시 기도한즉’ 입니다. 기도 때문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옳습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기도는 부흥을 가져옵니다.   성도여러분, 기적(奇績)의 시대가 사라진 것 아닙니다. 기적을 일으킬 믿음이 사라진 것이요,  사람들이 기도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믿기 때문에 기도(祈禱)하시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엘리야가 엎드려 기도하자마자 소낙비가 쏟아진 것이 아닙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한 엘리야는 사환에게 묻습니다.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고 오라” 살피고 돌아온 사환이 “아무것도 없나이다” 합니다. 다시 엎드려 기도합니다.  다시 눈을 뜨고 사환을 보냅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나이다” 합니다.  이렇게 하기를 일곱 번이나 반복합니다.   엘리야는 여섯 번이나 머리를 무릎사이에 넣고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 때, 사탄은 우리에게 “소용없는 일이다. 깨끗이 그만두자” 포기하라고 말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일곱 번 째 또 머리를 무릎사이에 넣습니다. 일곱 번 째 살피고 돌아온 사환이 말합니다. “저 먼 바다에서 사람의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제 하나님이 응답을 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응답(應答)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를 합니다.  우리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까? 그러면... 우리도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합니다. 응답받는 기도를 간증하게 되는 날이 자주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봅니다.
여러분, 3년이 넘는 가뭄에 내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엘리야는 손 만한 구름 속에서 큰 비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위대한 모습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어린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산을 옮깁니다.  밀알 하나가 백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애굽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바로와 대항할 만한 능력도, 백성들을 설득할 만한 웅변술도 없었습니다.  머뭇거리고 있는 모세를 향해 하나님이 묻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 입니다.”  양 치던 지팡이, 양털과 똥이 묻은 그 지팡이를 이용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납니다.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생수가 쏟아지고, 백성들을 인도하게 됩니다.  목동이라면 아무라도 들고 다니는 흔한 막대기이지만... 모세가 전능한 하나님 의지할 때에 그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고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언제나 밝은 곳을 보고, 하늘의 풍성함과 능력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눈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는 절망을 볼 수도 있고 현실만 볼 수도 있고, 환경에 사로잡혀서 그저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당연한 것이요, 다른 환경은 꿈도 못꾸고 살 수 있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희망을 볼 수도 있습니다. 실패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안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자기의 입으로 스스로 불행을 예언하고,  실패를 예언하지 마십시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는 인생의 한 모퉁이에서 은혜의 비가, 축복의 비가 우리 앞에 내려지는 날이 반드시 올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일어나는 일입니다.    

“비록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손 만한 구름일지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구름이라면,  나는 이 구름  속에서 은혜의 소낙비를 보겠다. 축복의 소낙비를 보겠다. 기적의 소낙비를 보겠다. 나는 실망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손 만한 구름을 가슴에 끌어안고 감사하리라!” 이것이 엘리야의 신앙이었습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생각은 파괴의 씨앗과도 같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폭탄과도 같은 힘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확신에 가득 찬 엘리야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새까만 구름으로 뒤덮이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기도 생활 속에도 이런 은혜의 큰 비가 내리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부지런히 성경 찬송 들고 다니지만 왠일인지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도 기도하고 집에서도 기도하고, 밤에도 낮에도 기도해 보지만 응답의 비가 내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손 만한 구름이 떠올라도 그 속에서 장대비를 볼 수 있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뻐 소리칠 수 있을 만큼 응답의 큰 비가 내릴 때가 반드시 곧 올 것입니다. 
  
미국 어느 지역에 계속된 가뭄으로 인하여 지역교회가 연합으로 어느 토요일을 기도의 날로 선포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적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연합하여 기도하는데 2,800여명의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우산을 들고 나온 사람은 단 세 사람 뿐 이었다고 합니다.  기도해도 안 이루어질 것이라는 그런 믿음으로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응답받을 준비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불신앙을 보여주는 장면 아니겠습니까?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베드로의  구출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탈출한 베드로가 기도하는 사람들의 집을 찾아와 대문을 두드립니다. 이때 로데라는 여자아이 하나가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  너무 기쁜 나머지 대문 열어주는 것도 잊고 사람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돌아왔다고 소리칩니다. 그때 기도하던 사람들의 반응을 기억하십니까?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더라” (행12:15) 이 얼마나 불신앙으로 가득 찬 말입니까? 기도는 하는데 안 믿는 기도를 합니다. 베드로가 옥에서 나올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어쩌면 불신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교회 바로 맞은 편에 술집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에도 시끄러운 음악소리, 술 취한 사람들의 고함소리 싸움 소리로 너무 힘듭니다.  그렇다고 정당한 영업을 못하게 할 수도 없고... 목사님과 교인들이 작정을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 술집이 장사가 안 되어서 묻을 닫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정말로 몇 달이 못 되어 술집이 장사가 안 되어 문들 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술집 주인이 목사와 교회를 상대로 고소를 했습니다.  ‘교회가 기도를 해서 영업이 안 되었다. 교회 책임이다. 손해 배상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술 집 주인의 고소 내용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술집 주인에게 손해 배상을 해 주어야 합니까? 안 해야 합니까?  목사와 교인 대표가 판사에게 이렇게 대답을 해답니다. ‘판사님, 기도한다고 어떻게 술집이 문을 닫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손해배상으로 줄 돈이 아까워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은 목사와 교인대표들 보다는 술집 주인이 더 믿음이 좋았습니다. 
 
한 번 물어봅니다. 여러분은 목사인 제가 기도를 하기를 원하십니까?  
어떤 기도를 하기 원하십니까?  사실 목사의 기도는 교회를 향한 기도 뿐 입니다.  목사가 부자가 되려고 하겠습니까? 명예나 권력을 바라겠습니까? 목사의 모든 관심은 교회요, 예배드리는 여러분 아닙니까?   그러면 여러분, 우리 교회가 어떻게 되기를 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시골의 특징상 10년 뒤에는 지금 보다 더 줄어들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많으니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 작아질 것 아닙니까?  이것도 믿음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확신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기도할 것이 없습니다. 운명이 뻔한데, 하나님도 별 수 없는 데...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기도할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목사는 할 일이 없습니다. **교회 목사님을 만났는데... 교회 마당에 차가 없으면 목사님 떠난 것이 아닌가? 하고 교인들이 놀랜답니다.  교인들이 종종 목사님에게 부탁한 답니다. ‘목사님 어디가지 마세요. 내 묻어주고 가요. 내 묻어주고 가요’   참으로 눈물 나는 말이요, 시골 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정(情)이 있고 신뢰가 담긴 말입니다.  이런 말자체가 정과 신뢰가 없으면 안 나오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목사의 일이 교인을 땅에 묻어주는 것입니까?  혹시 여러분도 저에게 바라는 것이 이것입니까? 
 
갈멜산 꼭대기에서 무릎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기도하던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이 외면하셨습니까? 손 만한 구름에서 장대비를 보았던 엘리야의 믿음을 하나님이 저버리셨습니까?  46절을 보면 엘리야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빗길을 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아합 왕은 마차를 타고 자기 별장이 있는 이스르엘까지 가는 중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마차 앞에서 비를 흠뻑 맞으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50리길 비를 맞으며 마차 앞을 달려갔던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50리 길을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야와 함께하였기에 가능한 장면입니다.  그가 빗속을 뛰어가는 것은 응답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동입니다. 비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비가 너무나 고마워 송두리째 맞고 싶었던 것입니다.  빗속을 달리는 엘리야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요, 위대한 웅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보라! 비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비를 주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 그분만이 참 하나님이시요, 그분만이 우리의 사랑이시다.  그 분은 하늘을 닫을 수도 있고  하늘을 여실 수도 있다.” 모르기는 하지만 엘리야의 두 뺨에는 빗물과 함께 감격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응답의 빗속, 축복의 빗속을 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메마른 땅을 걸어가면서도  반드시 여러분 가정에, 우리교회에,  이 민족에게 복된 장대비를 부어 주실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절대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보는 축복입니다. 

1958년 5월. 축구시합을 하다가 공에 눈을 맞는 사고를 당한 후 맹인이 되었던 중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홀 어머니는 시골에 남아 있는 논을 팔아 수술을 마쳤지만 그 소년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절망의 끝을 보아야 했습니다.  담당의사는 면회를 온 어머니에게 “당신의 아들은 맹인이 될 수 밖에 없다”라고 털어 놓았습니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8시간 후 그의 어머니는 뇌일혈로 쓰러져 돌아가십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18세의 누나가 고교를 중퇴하고 살림을 맡았고,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평화시장 의류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이런 생활을 몇 달 지속하던 누나는 심신이 지쳐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채 어머니 곁으로 떠나가게 됩니다. 의지할 곳 없었던 그 남자 아이는 열세 살짜리 남동생과 아홉 살짜리 여동생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결국 남동생은 친지의 소개로 철물점에서 먹고 자는 점원이 되었고,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맹인 재활 기관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 속에 놓여 있었던 그 남자 아이를 일으킨 것은 경기도 양평군 작은 시골 교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들었던 성경말씀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늘 신학교에 가서 장차 목사가 되라고 말씀 하셨고, 또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 어머니의 소원과 기도가 그의 가슴속에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맹학교를 졸업하면 보통은 안마사나 점쟁이가 되지만 그는 이러한 운명을 거부합니다. 맹학교에 5년 지각생으로 입학했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더 나아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일급 전문인이 되겠다는 큰 꿈을 꾸었습니다. 갈 곳이 없는 외로운 고아지만 언젠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성공적인 자녀 교육도 하리라는 큰 꿈을 가졌습니다. 다른 이에게 부담이 되는 자신의 현실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눈 뜬 사람들까지 섬기고 봉사하는 삶으로 바꾸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결국 그는 가난과 맹인이라는 편견을 뒤집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야간학교와 검정고시를 거쳐 연세대학교 교육과에 입학 하게 되고, 졸업할 때에는 2등으로 졸업합니다. 그리고 피츠버그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심리학 석사, 교육 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최초의 맹인박사가 됩니다. 나중에는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까지 지낸 강영우박사의 이야기 입니다.        

강영우박사는  ‘나는 고난 속에서 주님을 보았고, 절망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세상을 보지 못하는 실명은 나의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이다’ 라고 말합니다.  강영우 박사는 헬렌켈러의   “가장 불쌍한 사람은 맹인도 농아도 아닌, 시력은 있으되 (꿈)비전이 없는 사람이다” 이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강영우박사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면서, 세상과 미래를 선명하게 내다보고,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 즉 ‘비전’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중학생 때 불의의 사고로 앞을 볼 수 없게 됐지만 한국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가 됐고, 세계 장애인 복지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미 연방정부 최고 공직자로 영광스럽게 은퇴를 했습니다. 강영우 박사가 가진 유일한 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세상 사람들 앞에 보여 줍시다. 그들보다 성공하지 못했고 그들보다 잘난 것이 없다 할지라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주신다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이상, 우리는 늘 기도하고 즐겁게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기도하여 응답의 큰 비를 체험합시다. 그리고 세상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빗속을 힘차게 달리는 오늘의 엘리야가 됩시다. 세상 사람들이 절망하는 그 곳에서 절대 신앙, 절대 희망을 보여 줍시다. 가난해도 당당한 우리. 실패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는 우리. 병든 몸으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우리.  우리의 삶은 절대희망의 표시입니다. 

약속의 구름을 붙들고 기도하는 우리! 절대희망의 사람인 우리 앞에 하나님은 큰 비(雨)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은혜의 소낙비를 맞으며 빗속을 우리가 반드시 달려가게 될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 나를 지켜 주셨군요. 하나님! 드디어 은혜의 비를 주셨군요.  세상 사람들아, 나를 보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이렇게 간증할 때가 우리 모두에게 꼭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중한 내 남편이 영적인 거인이 되기를 원하는데... 
초라한 신앙인으로 오늘도 비틀거리고, 초라한 인격으로 오늘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손 만한 구름을 품에 안고 위하여 축복하고 격려하는 말을 아끼지 마십시오.  
  
소중한 내 아이가  역사상의 위인이 되기를 기도했건만... 
왜 저렇게 어리석은 모습을 내게 보여줄까?  포기하지 마십시오. 실망하지 마십시오. 손 만한 구름을 품에 안고 자녀를 위하여 끊임없이 축복하십시오.   은혜의 소낙비가 저들의 생애 가운데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소중한 내 기업이 창대하기를 원했는데... 
지금은 손 만한 구름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포기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기도하여 응답을 얻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보고 엘리야는 말을 합니다. 
“올라가 아합에게 이르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엘리야는 손 만한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환경을 준비했습니다. 복 받을 그릇을 준비했습니다. 손 만한 구름을 보고서 모든 기도의 응답이 완성된 것으로 믿었습니다. 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이 믿음이 오늘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