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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에 눈을 뜨라 (롬 4: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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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에 눈을 뜨라 (롬 4:17-25)  

믿음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믿음은 움직이며, 변화시키며, 꿈을 이루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뒤집어 버립니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그 먼지 쌓인 믿음을 이제 다시 작동시키기 원합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에 눈을 뜨길 원합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그것은 무엇입니까? 

1.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자  ; 전폭적인 신뢰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은 전폭적 신뢰입니다. 전폭적인 신뢰란 하나님 말고 다른 대안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발등 찍힐까봐 다른 도끼 준비하지 않는 겁니다. 배수진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해 전폭적인 신뢰를 하였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롬4:·17) 하나님만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믿는 하나님에 발등 찍히면 찍히자”라는 마음입니다. ‘아브라함은+하나님을+믿었다.’에서 어디에 기적의 비밀이 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니고, 믿음도 아닙니다. 믿음의 관건은 믿는 사람이 아닌 믿음의 대상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고 모든 민족의 조상이 됩니다. 이 기적을 경험한 이유는 그가 남달라서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조건이나 재료가 있어야 무엇을 만들어내는 분이 아니며, 무엇이 준비되어야 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 새로운 조건이며, 근거이며, 원인이며, 기초이며 밑천이며 재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까봐 다른 도끼를 준비합니다. 마음을 다 주지 않습니다. 다른 안전장치를 마련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부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에게 다른 조건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조건이 아닌 믿음, 전폭적인 믿음, 100%의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만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는 하나님께 발등 찍혀봅시다. 한번 하나님께 내가 가진 믿음 다 던져봅시다. 전폭적인 신뢰를 받을 실만 한 분, 기적을 만드시는 분, 내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2.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자 ; 거침없는 신뢰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은 거침없는 신뢰입니다. 거침없는 신뢰는 상황에 좌우되지 않지 않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나쁘건 여건이 열악하건 상관없습니다. 보이는 대로 믿지 않고, 약속대로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 1) 

현재를 보고 미래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앞당겨 현재를 삽니다. 이미 약속이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하고 말합니다. 떡줄 사람 생각도 없는데, 먼저 김칫국 마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떡 줄 거라 믿고 미리 마십니다. 이것이 거침없는 신뢰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아브라함은 25년 전에 “너를 모든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겠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될 것이다”는 엄청난 약속을 받습니다. 그리고 무자식으로 살아갑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입니까? 하나님은 아무것도 안주고 약속만 주고 보이는 대로가 아닌 약속대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 거침없는 신뢰의 주인공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롬4:18) 

바랄 수 없는 중이란 희망이 한 가닥도 없는 때, 가능성 제로일 때입니다. 자식도 하나도 없는데 그 약속 믿었다는 겁니다. 바랄 수 있을 때 바라는 건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기적은 나의 가능성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랄 수 있는 중이건, 바랄 수 없는 중이건, 희망이 있건, 없건, 가능성이 있건 없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기적은 가능성이 필요하지 않고, 약속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가능성이 아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약속은 나의 가능성과 합하여 일하지 않고, 믿음과 함께 일합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것은 가능성 문제도, 확률 게임도 아닙니다. 약속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된 다음에 한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이미 된 것처럼 행동하고 말해야 됩니다. 약속은 현실입니다. 가능성과 상황에 주목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꿈을 거침없이 받아들이십시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아무것도 없어도 그 소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십시오. 내 가능성위에 삶을 올리지 말고, 약속위에 삶을 올리십시오. 그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을 맛보실 것입니다.  


3.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 듣자 ; 무한 신뢰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은 무한 신뢰입니다. 내 짧은 지식으로 약속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내 좁은 경험으로 말씀을 제단하지 않습니다. 내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황당하더라도, 심지어 믿어지지 않더라도 신뢰하는 것이 무한신뢰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무한 신뢰를 드린 사람입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롬4:19)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99세이고, 사라는 89세입니다. 하나님이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요? 도대체 이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할머니 사라가 자식을 바랄 수 있습니까? 가능성 제로입니다. 아니 마이너스입니다. 100세와 출산이 연결이 됩니까? 팥과 메주가 연결이 됩니까? 

그런데 놀라운 단어가 있습니다. “알고도” 아브라함이 자신은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브라함이 오히려 믿음이 강해집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합니까? 아브라함은 알았습니다. 하나님도 알고 있다는 것을. 아기 못 낳는 할아버지라는 것을 몰라서 그런 약속하신 게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 능력을 의지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 지식이, 내 경험이, 심지어 세상의 일반법칙까지도 말씀과 충돌하면 과감히 내 지식과 경험을 버리는 겁니다. 말씀을 붙드는 겁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무한 신뢰하는 겁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것으로 사십시다. 하나님은 스케일이 다릅니다. 수준이 다릅니다. 믿고 기적을 맛보십시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제일 믿기 어려운 것을 이미 믿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천국 가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우주 최대의 기적입니다. 이것을 넘었는데 뭐든 못 하겠습니까? 무엇이 불가능합니까? 기적의 근거는 세상의 조건도, 나의 가능성도, 주변 상황도, 우리 능력도 아닙니다. 

기적의 근거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나중에 천국 가려고 보관중인 믿음 꺼내십시오. 작동시키십시오, 이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힙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해도, 김칫국부터 마십시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곧이들읍시다.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인 전폭적인 신뢰, 거침없는 신뢰, 무한신뢰로 인생의 한복판에서 기적을 경험하십시오. 기적의 주인공, 이제 당신입니다. 
(권오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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