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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라오디게아교회- (계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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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라오디게아 교회-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마지막 일곱 번째 편지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졌습니다. 이 편지는 발신자이신 주님을 『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 』라고 묘사했습니다. 
이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는 반대로 부요하나 가난한 교회라고 했습니다. 이 교회는 앞의 여섯 교회와는 다르게 칭찬할 것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교회는 책망 받을 죄가 있었는데 라오디게아 교회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그들은 미지근한 믿음과 영적 자만심과 부족을 모르는 영적 가난과 영적 소경된 것과 영적 수치를 책망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지근하지 말고 차든지 덥든지 하라는 것과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는 주님의 준엄한 권면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과의 교제와 영적 보좌를 약속했습니다. 

Ⅰ. 라오디게아 교회의 역사적 이해입니다. 

로마제국 시대에 중요한 도시였던 라오디게아는 골로새에서 서남쪽 14km, 빌라델비아에서 동남쪽으로 약 65km지점인 오늘날 에스키히사르(Eskihisar)입니다. 이곳은 남쪽 지중해 방향으로 가는 무역로의 교차점입니다. 
라오디게아는 좋은 교통과 통상의 요건을 갖춘 도시였기 때문에, 당시 소아시아 일대에서 상업과 경제의 중심도시로 발전했습니다. 

따라서 이 도시에는 은행들이 있었고, 당대의 갑부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대형극장과 경기장과 목욕탕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또한 이 지방에서는 염색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까맣고 윤기 나는 검은 양羊이 사육되었으므로, 질 좋은 고가의 모직물이 생산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근처 계곡에는 온천들이 솟고 있었는데, 온천의 샘들은 항상 많은 양의 미지근한 물을 품어내고 있었습니다(15-16절). 
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에는 유명한 약학교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특히 "브루기아의 분말"로 불리는 유명한 안염제眼炎劑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러 지역에서 이 약을 사기 위해 모여 들었다고 합니다(18절).

라오디게아는 전체적으로 부유하고 풍족한 도시로써 부족한 것이 전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도시는 주후 60년경에 이 성읍을 덮친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도시가 크게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재건 보조금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성읍을 부흥시킬 정도로 그 부요함을 자랑했던 도시였습니다. 
골로새서 4장 12-13절에 근거해 볼 때 에바브라가 이 교회를 설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교회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영적으로 나태한 것을 책망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Ⅱ. 라오디게아 교회의 진상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아멘, 참된 증인, 창조의 근원"이십니다. "아멘"은 인간의 소망에 대한 응답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적극적인 긍정입니다. 
여기서 "증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람에게 증거하시는 분이시며 특히 구원받은 사람을 하나님에게 제시하시는 분이심을 뜻합니다. 
한편 "창조의 근원"은 모든 것의 시초이신 예수님, 즉 창조자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1)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행위를 책망했습니다.
본문 3장 15-16절에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 『 차다 』는 것은 라오디게아의 물 사정이 좋지않아 약 16km 떨어진 골로새로부터 냉수를 공급받는 것을 감안하면 그들이 불신의 상태로 세상에 속하였음을 시사합니다.

『 더웁다 』는 것은 인접한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신앙을 위한 열정을 비유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만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차든지 덥든지"하라는 요구는 양자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라는 의미라기보다 "차든지"와 "덥든지"의 중간 상태를 택하는 그들의 "미지근한 상태"에 대한 신랄한 책망입니다. 
마태복음 11장 16-17절에 『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라고 했습니다.

(1) 미지근한 상태는 부패腐敗를 조장시킵니다.
성도의 생활이 미지근하다는 상태 그 자체가 부패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2) 미지근한 것은 결단성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은 결단성이 없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일들을 보는 것 같이 알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결과를 보고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현장화 시키고 현실화 시켜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회개에는 결단성이 있어야 합니다. 결단해야 될 일이라면 현재에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을지라도 한사코 감행해야 합니다. 
미지근한 것은 머뭇머뭇하고 있는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신앙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말하기를,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고 했습니다(왕상 18:21).

(3) 미지근한 것은 성장이 없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시대보다 떨어져도 안 되고 시대에 동화同化되어도 안 됩니다. 우리는 시대를 이길 수 있는 선견先見적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타락한 이 시대를 왜 이기지 못합니까? 성경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왜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살지 않는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고 했습니다. 

2)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부요 가운데 영적 빈곤을 책망했습니다. 
본문 3장 17-18절에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고 했습니다. 

(1) 저들은 금전의 부요를 자랑했습니다(3:17).
그러나 주님이 보신 교인들의 실상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다고 했습니다. 

(2) 저들은 아름다운 의상을 자랑했습니다(3:18)
그런데 교인들의 실상은 벌거벗고 있다고 했습니다. 벌거벗은 나체는 극도의 수치를 상징합니다(삼하 10:4; 사 20:4; 단 5:25).

(3) 안약을 자랑했습니다(3:18).
그러나 주님이 보신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참으로 보아야 할 것을 못보는 캄캄한 소경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 41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저들의 실상은 곤고하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7장 24절에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라고 했습니다.
저들의 실상은 가련하다고 했습니다. 저들의 실상은 눈이 멀었다고 했습니다. 저들의 실상은 벌거벗은 추태라고 했습니다. 


Ⅲ. 라오디게아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1)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했습니다(3:18).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 불로 연단한 금 』이란 말은 연단 받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가난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2) 흰 옷을 사서 입으라고 했습니다(3:18).
회개 곧 속죄의 옷입니다. 그래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3)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3:18).
이는 성령의 은총으로 소망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골로새서 1장 27절에 『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 사라 』고 했습니다. "산다"는 말은 값을 지불하고 소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값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입니다. 

4)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했습니다(3:19).
본문 3장 19절에 『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고 했습니다.
이 두 개의 명령문은 즉시 단번에 회개하고 지속적으로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회개"에 대한 원문의 뜻은 "슬퍼하고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회개는 단순한 도덕적 개혁이나 생활상 변동만을 가리키지 않고 죄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옴입니다. 단순한 도덕적 개혁은 기독교 밖에도 있기 때문에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심령 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요엘서 2장 13절에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Ⅳ.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주님의 약속입니다.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신 주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곧 신앙의 승리자에게는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도록 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주님의 그 보좌는(계 22:1, 3) 주님께서도 이 땅에서 세상과 싸워 십자가의 승리를 거둔 이후에(요 16:33) 하늘의 성부聖父 아버지께 얻은 보좌(빌 2:7-11)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왕의 영광스러운 보좌인 것입니다. 주님의 그 보좌에 승리자를 앉히겠다는 것은 주님과 더불어 왕노릇할 수 있는 영광을 베풀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약속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약속한 천상교회의 기둥처럼 보배롭게 여길 것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계 3:12). 

세상의 크고 작은 환난과 유혹을 이기고 마침내 하늘 문에 도달한 승리자는 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영광된 보좌寶座에 앉히시는 것입니다. 
이 소망스런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오늘 교회와 성도들은 미지근한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고 흰 옷을 사며 안약을 사서 자신을 부요하게 합시다. 

지난 주일날 이 세상에서 아쉬울 것이 없는 강남의 어느 대형교회 오 아무개 목사님은 설교 말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떠나는 날 하늘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맛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내 자식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고 잘못 했을 때 책망하고 채찍질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열심을 일으키십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회개를 일으키십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하늘의 보좌를 약속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합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① 에베소 교회가 이기면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한다고 했습니다(계 2:7). 
② 서머나 교회가 이기면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않도록 한다고 했습니다(계 2:11). 
③ 버가모 교회가 이기면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계 2:11). 
④ 두아디라 교회가 이기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별을 주겠다고 했습니다(계 2:26-28). 
⑤ 사데 교회가 이기면 흰 옷을 입혀 줄 것이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겠다고 했습니다(계 3:5). 
⑥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기면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계 3:12). 
⑦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기면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계 3:21).

천국은 승리자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지고는 못사는 것 아닙니까? 이겨야 합니다. 
죄를 이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죄를 이기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망을 이겨야 합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사 사망을 이기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 환난을 이겨야 합니다. 큰 환난을 이기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그 곳에서 만납시다(be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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