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파트너십의 능력 (행 4:29-31)

첨부 1


파트너십의 능력 (행 4:29-31)

지난 주일 설교에서 협력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면서 기도 파트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기도하는 파트너의 관계가 되면 하나님은 그 관계를 사용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는 이야기도 드렸습니다.

Philadelphia의 한 유명한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부임을 하셨습니다. 부임 첫 설교를 마친 후 나이 많은 노신사 한 분이 목사님께 다가와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은 이 큰 교회에서 목회하기에 너무나 젊습니다. 우리 교회는 경험 많은 중견 목사들이 그 동안 목회 해왔습니다. 이 교회에서 성공하시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복음을 증가하는 내용이었어요. 앞으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이 젊은 목사는 노신사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계속해서 이야기하며 “내가 성령의 능력이 목사님 위에 임하도록 매주일 아침에 기도하겠습니다. 그런데 나 외에 두 사람이 함께 기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기도하겠다고 하니 나빴던 기분이 좀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3명이 10명이 되고, 10명이 20명이 되고, 20명이 50명이 되더니 200명으로까지 불어났습니다. 매주일 설교 전에 이 사람들은 목사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에서는 18명의 장로들이 목사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이 목사는 엄청난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교회는 더 크게 부흥했다고 합니다.

같은 이야기가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법정에 들어가서 예수의 이름을 다시는 전하지 못하도록 엄중한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가 판단해 보라고 반문하며, 조금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증언했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 있을 때 나머지 성도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한 마음으로 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옵소서. 사도들에게 능력을 주시사, 저들이 병을 고치고, 예수께서 하셨던 놀라운 일들을 저들도 하게 해 주옵소서!” 어떻게 간절하게 기도했던지, 그 있던 장소가 지진이 나듯 진동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기도에 힘입어 사도들은 나가서 담대하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 같은 기도의 파트너쉽이 이루어진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관계가 이렇게 기도하는 협력사역을 위해 이루어진다면 우리 모두가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목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고, 성도들은 매 주일 모일 때마다 생명의 양식으로 공급받는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기도의 파트너쉽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함께 하는 동안에 서로의 부족을 채워줍니다. 

어떤 양로원에 한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심장마비로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원래 피아니스트였는데, 반신 불수가 되니 보통 실망이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비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또 한 분의 피아니스트 할머니가 반신불수의 몸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원장은 이 두 분을 소개해주면서 친구로 지내라고 부탁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정이 비슷한 두 할머니가 같이 신세타령하면서 위로 받으라고 두 사람을 소개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원장의 생각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Margaret이라는 할머니는 오른 쪽에, Ruth라는 할머니는 왼쪽에 마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한 의자에 앉혀 놓고 악보를 얹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연주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습횟수가 늘어갈수록 한 사람이 치는 것 같은 멋있는 음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인생이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이 양로원에는 음악이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혼자 할 수 없는 것을 둘이 합하면 할 수 있습니다. 재능이 다르고 가진 것이 다른 우리들이 무엇이든 합하면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소리가 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새 목사가 오십니다. 저와 그 분 사이에 협력사역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각기 가진 달란트가 다릅니다. 각기 생긴 모습도 다릅니다. 우리는 협력사역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것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혼자 무엇이든 하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리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 인생이 지루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것을 기쁨으로 축복하는 사람의 인생은 그 인생이 재미 있습니다. 생기가 있습니다. 부부도 다르기 때문에 문제도 생기지만, 사실 더 온전한 가정을 이루는 데는 서로 좀 다른 것이 좋습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무엇을 하면 얼마나 유익이 많은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사이에 협력이 안됩니까?

첫째로, 우리 모두가 다 한 목적으로 부름 받은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집안에서 살면서 같은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도 한 분, 우리를 부르신 목적도 하나입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고,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프고, 안되면 고소한 것입니다.

둘째로, 내가 너무 살아서 무슨 일이 이루어지면, 나 혼자 한 줄로 알고, 다른 사람의 공로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혼자 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했다!”는 착각이 협력을 깨뜨립니다.

작은 연필 하나를 만드는데도, 나무는 워싱턴주 임업장에서, 연필심은 남아프리카 흑연광산에서, 고무는 말레이지아 고무농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나 혼자 했다’는 마음은 협력정신을 무너뜨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반자(Partner)로 살아가도록 관계를 주십니다. 우리의 만남, 우리의 관계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가꾸는 중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은혜를 누립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마음에 너무나 간절한, 불타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일을 이루려고 하시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각자가 자기 한 몸, 자기 가족 하나 잘 사는데 그 인생의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능력 있는 일을 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LA에 그의 구원 사역 창조사역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는 이 같은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습니까? 우리의관계가 새로워질 때입니다. 우리의 서로를 보는 관점이 우리 자신의 포부나 꿈이나, 필요에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의 만남을 통해 무슨 일을 이루려고 하시는가 – 그 관점에서 피차를 볼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우리 관계에 대해 좀 더 의도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자연적인 본능이 우리의 관계를 지배하게 내버려두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우리의 관계를 지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계를 주시고, 그 관계가 어떻게 사용되는가-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제 마음에 깨달아진 것 하나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나눠줍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준 돈을 어떻게 투자하고 관리했는가를 결산합니다. 열심히 활용해서 남긴 사람에게는 많은 상급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땅에 묻어두었던 사람에게는 큰 형벌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시간과 재능과 재물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계는 우리의 만남은 하나님이 주신 큰 자산 중의 하나입니다.

그 관계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평화스러운 관계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관계 없이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의 평화입니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물을 질문은 “우리가 서로 평화롭게 잘 지내는가?”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가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이루어 가는가?”입니다.

우리의 관계가 하나님을 향해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피차에 독려하고 끌어준다면 그 관계는 좋은 관계입니다. 우리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더 효율적으로, 더 생산적으로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원래의 목적을 이룬 관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관계가 아무리 서로간에는 편하고 좋아도, 하나님의 목적과 그의 기대를 조금도 이룰 수 없었다면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 우정과, 그 관계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려는 일을 방해 하였다면, 그것이 과연 내게 유익한 것입니까? 우리는 서로 파트너로 만나지만, 무엇보다 그 파트너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유익합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와 함께 시간과 대화를 나누는가 – 또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우리는 조심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만나서 같이 기도할 수 있는 파트너, 만나서 같이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파트너, 만나서 같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파트너, 무엇보다 하나님을 위한 마음으로 통하는 그런 친구들 속에서 파트너를 찾읍시다. 이제까지 우리의 친구 관계, 부부 관계, 형제 관계가 그런 방향으로 나가지 못했다면 그런 방향으로 다시 고칩시다. 모처럼 좋은 일을 하고 싶어도 친구가 방해가 된다면 잠시 그 관계를 중단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같이 만나서 시간의 낭비, 언어의 낭비, 재물의 낭비, 재능의 낭비가 더 많아지면 우리의 인생이 낭비되는 결과가 생깁니다.

건강한 파트너쉽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의 바탕이 튼튼하게 생긴 후에, 믿음이 약하거나,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친구를 맞아들이게 되면, 그도 또한 전염이 되어 그의 인생에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누구에게도 유익이 안 됩니다.

우리의 만남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리의 만남과 관계에는 무슨 뜻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루어 드립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