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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쓴 소리를 즐거워하자

  • 황해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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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소리를 즐거워하자

오래전 퇴근하면서 공원 길을 걷던 중 어떤 어린아이가 강아지와 산책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정감있게 보여 인사를 하려는데 자세히 보니 강아지가 길에 앉아 변을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끔씩 새벽기도를 가다 견변을 밟아본 경험이 있던 터라 “얘야, 지금 이 강아지 뭐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이 아이 대답.“아저씨, 보면 몰라요? 영역표시 하는거예요” 너무나 당당한 대답에 당황했던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영역 표시를 하려면 잔디밭에 해야지, 길에서 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잖니 …”“영역 표시를 하는데 땅 구분이 어디있어요? 그런데 웬 참견이세요?”아이는 조금도 지지 않는 기세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참으로 영악해서 말도 잘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처럼 남의 이야기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너무 당돌한 것이 문제입니다. 어쩌다 아이들에게 충고나 교훈, 필요한 말을 하려면 들으려는 자세가 돼있지 않은 경우를 많이 봅니다. 교육이란 듣고, 보고, 따라하는 형태를 통해 이뤄진다고 할때 듣지 않으려는 현상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교육방법도 다양해지고 교육 내용과 양과 질도 좋아지는데 왜 점점 듣지 않는 시대가 되었을까요? 따지고 보면 이는 아이들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이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국민 또한 지도자의 말을 안 듣고 있습니다. 기업가는 노동자의 소리에, 노동자는 기업가의 애로에, 교사는 학생의 소리에, 학생은 선생님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귀가 닫혀 이처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구약성경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을 때 롯은 그의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했습니다(창 19:14).그 결과 그들은 소돔성의 멸망과 함께 망하게 되었습니다. 사사시대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성소에서 악행을 일삼았을 때 그 아비가 책망했지만 그들 역시 아비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삼상 2:25).

결국 그들도 하나님의 진노로 그 가정에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남)의 저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수가성의 여인과 대화하실 때 먼저 여인의 소리를 충분히 들으셨습니다.“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말마다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던 여인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이시고 충분히 대화하신 예수님은 결국 그 여인을 구원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지혜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잠 1:5-6)
하나님의 소리, 양심의 소리, 진리의 소리, 가족의 소리, 선생의 소리, 이웃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귀를 열고 잘 듣는 교육과 실천이 이루어질 때 위기에 처한 자녀교육과 가정, 이 사회와 정치를 위기에서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들을 때 일방통로가 아닌 쌍방 교차로 우리 사회는 조화와 성숙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황해국 (일산세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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