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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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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아브라함                                

창17:1-8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내용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과, 그의 자손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것, 그리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보다 분명히 하시기 위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언약은 일방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쪼갠 고기 사이로 타는 횃불이 지나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홀로 이 언약의 성취에 대한 책임을 지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아브라함이 부족하거나 죄를 짓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언약은 오늘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줍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를 불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구원해주십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혹시 죄를 짓거나 실수하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 자신이 실수를 하지 않거나 죄를 짓지 않아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 중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번 택하시고 구원하신 백성은 끝까지 책임을 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든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구원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될까요? 어차피 우리가 죄를 지어도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니 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제부터 아브라함이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구원받은 성도의 의무와 본분이 있습니다.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해서 성도가 아무렇게나 살 수는 없습니다. 성도는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은 아브라함은 그 아들이 자라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행복감에 젖어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86세에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을 낳았으니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겠습니까? 이제 아브라함은 자신과 사라가 늙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거나 고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100세가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자기 몸에서 나온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습니다. 이 아들이야말로 자기의 상속자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그렇게 이스마엘에게 푹 빠져 지낸 13년은 사실 신앙의 침체기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과 위대하신 계획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이루어 가실 작정이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제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마엘이면 족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13년 동안이나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희미해진 채로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행복에 빠져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아브라함은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는 형식만이 남아 있었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행복을 누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신 약속과 계획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에게 이러한 모습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막힘없이 이루어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신앙에 있어서 이것이 핵심이며 생명입니다. 오늘 당신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하루하루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당신의 모든 형편을 알아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루만지시며 위로해주시고 붙잡아주시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기억하면서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잠자는 신앙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후, 아브라함은 육신적인 행복감에 빠져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과 뜻을 망각하고 외면한 채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한 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계획과 그에게 주신 약속을 망각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이루실 때가 되어가자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포기해버린 일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99세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차차 정리하고, 모든 것을 이스마엘에게 물려주고 죽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늙어버린 아브라함을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고자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포기해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나는 언약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전능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겠다. 앞으로 너에게는 참으로 신비하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약속한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이루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다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주신 약속대로 이제 아들을 낳게 하실 작정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은 하나님께도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고 포기해버립니다.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성도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완전하라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완벽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들을 주시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어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방법대로 얻은 이스마엘에게 빠져 더 이상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딴 길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파트너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에 걸 맞는 사람이 되어야 했고, 그에 걸 맞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망각한 채 세상적인 삶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삶을 버리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는 믿음을 회복해야만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당사자로서 그 거룩한 일에 쓰임 받을 만한 자세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그 모습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받으실 만한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에 쓰임 받을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너무나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세상 일에 너무나 바쁜 나머지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또는 현실의 삶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모습과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서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바로 서라고 하십니다. 잠시 후면 없어질 세상 것들에 너무 골몰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뜻과 계획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엎드렸습니다(3절).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인정하고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삶을 살고 있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금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아브라함은 점점 더 믿음의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길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 묵상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마음을 다하여 말씀 순종하기를 힘쓰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약의 갱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4,7절). 이 약속은 24년 전에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으며(12장), 14년 전에 이미 언약이 맺어졌습니다(15장). 그런데 왜 여기서 다시 언약을 세우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이 언약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세워진 언약이었습니다. 언약의 당사자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언약의 또 다른 당사자였던 아브라함에게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언약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언약을 갱신시키신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세상적인 삶을 살았던 데서 돌이켜 돌아와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믿음의 길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어떻게 그토록 까마득하게 세상에 빠졌던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자신이 걸어가야 할 영광스러운 길을 다시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하나님의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갱신하시면서, 반복해서 그 언약을 ‘내 언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언약입니다. 이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이 진리가 얼마나 귀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에게 완전하라고 명령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이루시지만, 그 언약의 당사자인 아브라함도 그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 실수가 없으시며, 포기하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백성답게 바로 설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야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다운 거룩한 자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을 이루십니다.

   

아브라함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갱신하시면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5절).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새롭게 출발한다는 뜻입니다. 운명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새 이름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구원 계획이 이 이름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99세에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정말 어이없고 웃기는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이제 생을 정리하고 죽을 준비를 해야 할 나이에 새 출발이라니요?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까요? 아마도 미쳤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이루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시며 신실하신 분이심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자신의 이름을 쓰거나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내와 가족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 이삭을 품에 안았을 때, 아브라함의 감격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결코 실망하지 않으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나서 새로 받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 예수쟁이, 집사, 권사, 장로, 목사, 성도 … 이것이 우리의 새 이름입니다. 그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내가 누구인가를 늘 생각하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그 분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위대하신 일을 위하여 부르신 사명자입니다. 그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감격하며 새롭게 결단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하나님 백성답게 살고 있습니까? 일에 너무 쫓긴 나머지 주일 예배나 겨우 나오고, 더 이상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사는 재미가 너무 좋아서 하늘 영광과 사명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신앙이 잠을 자고 있는 성도는 없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오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새롭게 결단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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