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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롱당하신 주님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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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조롱당하신 주님                         

마27:27-44

   

마지막 한 주간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주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오늘이 바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그때 수많은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주님을 왕으로 환영하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는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통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한 주간을 간단히 살펴봅시다. 월요일에 주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치들의 소굴이 되어 있던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으며,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주님께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으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힐문에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하는 질문으로 응수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의 비유와 악한 종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또 가룟 유다의 반역이 있었습니다. 수요일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목요일 밤에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시면서 성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유월절 만찬이 끝난 후에,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사력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주님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체포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다음 날인 금요일 아침 예수님은 채찍질을 당하셨으며, 십자가를 지시고 여러 번 쓰러지시면서 갈보리 언덕을 향해 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날 오후 늦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토요일이 지나고 주일 새벽에 주님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렇게 고난을 당하셨던 바로 그 한 주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한 주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경건하게 보내도록 합시다. 그렇게 보내는 가운데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과 말로 다할 수 없는 크신 은혜를 새롭게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형이 결정됨
 

사람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체포하여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곳에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여 예수님을 심문한 후, 예수님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예수님을 이끌고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갔습니다. 전날 밤 그들은 예수님을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결정했는데, 이제 총독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의 고소를 접수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예수님께는 아무 죄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석방하겠다고 했으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사주를 받은 유대인들이 거세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군중을 달래기 위해 예수님에게 참혹한 채찍질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석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더욱 거세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마치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빌라도는 할 수 없이 유대인들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형을 집행하는 로마 군인들에게 인계되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의 조롱
 

오늘 본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조롱 받으시는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로마 군병들의 조롱, 지나가는 사람들의 조롱,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조롱입니다.
 

총독의 군병들, 즉 형의 집행을 맡은 로마 군인들은 총독 관저의 마당에 모두 모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처형 장소인 갈보리까지 끌고 갈 작정이었습니다. 그 전에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한바탕 즐기고자 했습니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 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27-30절)
 

그들은 주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습니다. 희롱을 마친 후에는 홍포를 벗기고 다시 옷을 입혔다. 이렇게 옷을 벗길 때마다, 채찍에 맞아 찢어지고 터진 상처에 들러붙었던 옷이 떨어지면서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희롱을 당하실 때, 주님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 벗김을 당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수치입니까? 고문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벌거벗김을 당할 때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군병들이 주님께 홍포를 입힌 것은 주님이 왕이시라고 하신 것에 대한 조롱이었습니다.
 

그들은 또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주님의 머리에 씌웠습니다. 이 가시는 인류가 타락한 이후에 즉시 뒤따라 들어 온 저주였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7-18상) 그런데 지금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머리를 찍어 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로 인해 인류에게 임했던 저주를 주님께서 대신 담당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가시관을 주님의 머리에 씌웠을 때, 못보다 더 날카로운 가시들이 주님의 머리를 찌르면서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군인들은 또 갈대를 주님의 오른손에 들려 드렸는데, 이것은 왕 홀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에게 이런 분장을 시키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주님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자기의 홀을 빼앗겨 그것으로 맞으며 침 뱉음을 당한 왕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잔인하고 비열하게 주님을 조롱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셨고, 지극히 선하시고 아무 죄도 없으시며 거룩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묵묵히 당하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조롱
 

로마 군병들은 희롱을 마친 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예수님을 끌고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치고 탈진되신 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까지 가셨습니다. 당시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처형 장소까지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밤새도록 심문을 당하셨고, 참혹한 채찍질을 당하셨기 때문에 극도로 지치고 탈진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자꾸만 쓰러지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잡아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같이 지고 가게 했습니다.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게 하였더라”(31-32절) 그렇게 갈보리 언덕에 도착하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조롱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39-40절)
 

예수님께서 실제로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버젓이 영업하고 있던 장사치들을 쫓아내시고 성전을 청결케 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 당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는 증거를 보이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요2:18)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유대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요2:20) 요한은 이 말씀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21)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비로소 성전이 예표했던 것, 즉 ‘임마누엘’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 성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전 되신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신성모독죄를 범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이 말을 가지고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여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를 범한 자라고, 허풍쟁이라고 조롱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진정성이 철저히 무시된 채 사람들에게 왜곡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거기에 조롱까지 당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그 모든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의 조롱
 

사람들이 이렇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할 때 대제사장들도 그들과 함께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41-42절)
 

예수님은 평소에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고 귀신들을 쫓아내셨으며, 심지어는 죽은 자까지 살려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유대인들은 없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죽이려고 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까지도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많은 이적을 행하셨고, 수많은 무리가 그분을 추종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두려워했으며, 어떻게든 죽여 없애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을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들은 평소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많은 이적을 행하셨던 것을 상기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남들은 그렇게 잘도 고쳐주고 도와주더니, 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꼼짝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보니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던 모든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 스스로 구원하고 내려온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겠다고 조롱했습니다.


자기를 구원하실 수 없었던 이유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의 조롱을 들으시면서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더 이상 아무 힘도 없으셨기 때문이었을까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43절)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시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보란 듯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게 하셨더라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정하신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한 순간도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해 칼을 빼들고 휘둘렀을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마26:52-54)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로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모든 고난과 수치와 조롱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만물의 주인이시며 통치자이신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조롱을 묵묵히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대제사장들의 이 조롱은 십자가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나타내는 말이 되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들이 무지하여 주님을 조롱한 이 한 마디 말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모든 고난과 수치와 모욕과 조롱과 슬픔과 고통과 죽음의 의미와 목적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구원하실 수 없었던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당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은 나를 구원하셔야 했기 때문에, 자기를 구원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원수들의 조롱이었으나, 십자가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이 말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셔야 했기 때문에 자신을 구원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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