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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해를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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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출애굽기 15장 22-27절

설교제목: 한 해를 시작하면서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었던 부부가 드디어 딸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늦게 얻은 딸이기에 딸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 주었습니다. 또 너무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말을 듣지 않아도 야단을 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딸은 아주 버릇없는 아이가 되어서 부모님의 말씀을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부모가 오라고 부르면 도망갔고 앉으라고 하면 일어섰습니다. 이 부모는 그런 행동을 나무라기보다는 그저 귀여워했습니다. 하루는 그 집 앞마당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마당을 빠져나가 길 쪽으로 가는 것이 부모 눈에 띄었습니다. 저쪽에서 차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주차해 둔 두 대의 차 사이로 빠져나가 도로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안 돼! 돌아와!” 이 부모는 다급한 목소리로 어린 딸에게 외쳤습니다. 아이는 잠깐 서서 부모를 보고 씩 웃더니 다시 돌아서서는 차가 쪽으로 곧장 뛰어갔습니다. 차는 아이를 세게 들이받았고 아이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 부모는 죽어가는 딸을 끌어안고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고 합니다.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 를 하다가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셔서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홍해가 가로막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가게 하셨고 애굽의 군대는 수장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은 종살이에서 구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애굽 군대를 물리쳐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승리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벅찬 감격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을 향해 첫걸음을 떼는 장면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감격을 가슴에 품고 가나안으로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하여 겨우 삼일이 지났는데 위기가 찾아옵니다. 먹을 물이 없어서 여기저기서 아우성입니다.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첫걸음을 떼는 시작점부터 꼬이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 가운데서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쓴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서 이런 위기를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는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위기는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서 23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간 종살이를 하다가 드디어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감격에 들떠 있었습니다. 더더군다나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하시려고 애굽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을 체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는 기적도 보았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지켜주시며 이끌어 가신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감격은 삼일 만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난 후에 가나안으로 가는 첫 걸음을 떼는 수르 광야에 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수르라는 지명은 ‘바위’라는 뜻으로 대부분이 바위와 사막으로 된 곳으로 물을 구할 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가지고 온 물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물을 구할 수 없었고 삼일이 되어도 물을 구할 수 없게 되자 갈증은 더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우리는 끝났다, 죽었다’고 난리를 칩니다. 단지 사흘을 걸었을 뿐인데 그들의 행복이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건져 내실 때만해도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이제 고생이 끝났다. 행복 시작이다.’라고 생각했던 백성들은 가나안까지 가는 길이 순탄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탄탄대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삼일 만에 위기를 만났습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고 40일 정도는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을 마시지 않으면 3일 후부터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간절하게 물을 찾다가 겨우 물을 발견합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런데 그 기쁨이 곧 원망으로 바뀌고 맙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맙니다. 그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닥친 위기는 절대적인 것이며 근본적인 것이었습니다. 민족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출애굽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위기가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까지 가려면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가는 길에 사막도 만날 것이며, 산도 만날 것이고, 강도 건너야 합니다. 평탄한 길도 있지만 울퉁불퉁하고 돌부리가 가득한 길도 걸어야 합니다. 언제 어떤 일을 만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고생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수르광야가 아니라 가나안이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최종목적지인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이 시작된 것입니다. 어떤 길, 어떤 어려움을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가다보면 쉬운 길도 있겠지만 언덕도 올라야 합니다. 웃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눈물의 길도 걸어야 합니다. 언제 어떤 일을 만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가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최종목적지는 이 길 끝에 가서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물이 쓴 것이 아닙니다. 겨우 찾은 물이 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물이 쓰다고 미래를 포기하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나 이런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지치지 않고 승리하려면, 죄악의 길로 가지 않으려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붙드는 인생,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인생은 어떤 고난이나 역경이 온다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습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 포기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포기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만을 붙드는 인생은 어떤 어려움과 역경도 능히 이겨낼 줄 믿습니다. 

 

둘째로 위기를 만나면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25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본문에 보면 위기에 대처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서 24절에 보면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즉 위기가 닥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원망했을까요? 네, 마실 물이 없었기 때문에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자 물을 찾아 나섭니다. 이렇게 해서 찾은 물조차 써서 마실 수 없게 되자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 이 ‘원망’이라는 단어를 원어로 보면 모두 12번 원망한 것으로 나옵니다. 4년에 한 번 정도 원망을 한 것인데 이 정도면 많이 원망한 것인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한 것은 누구에게 한 것인가요? 물론 지도자인 모세에게 한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모세로서 그 자신도 똑같이 물이 없어서 목이 말랐지만 백성들처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25절 앞 부분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에 부르짖었더니” 즉 모세는 똑같은 위기 앞에서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원망했지만, 모세는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모세인들 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원망은 백해무익합니다. 원망은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원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렇다면 왜 기도해야 하나요?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위기를 만나면 원망할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세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을 만납니다. 2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즉 위기를 만났을 때 원망하지 않고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문제의 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위기를 만나셨습니까? 절망 가운데 계십니까? 답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원망하지 마시고 기도하십시오. 원망하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기도하면 문제의 답을 주실 줄 믿습니다. 마라의 쓴 물을 만났을 때 ‘나는 끝이다. 답 없다. 이제 죽었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절망 가운데 있어도 아직 한 가지 남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답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통해서 답을 알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요?

 

 

마지막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25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어떤 응답을 받으셨나요? 응답을 받으셨을 때 아멘 하실 수 있으셨나요? 아니면 노멘 하셨나요? 할렐루야 하셨나요? 아니면 놀렐루야 하셨나요?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 주신 답대로 순종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쓴물을 해결하시도록 답을 주셨을 때 답을 알았으니까 끝, 이랬다면 여전히 마라는 쓴물로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답을 알았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셨습니다. 만약 모세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나무를 던지면 물을 마실 수 있다고 알았다고 해도 그 나무를 던지지 않았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모세도 마찬가지로 이 수르 광야를 처음 와보는 곳인데 그곳에 있는 나무의 성분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나무를 던져서 그 물이 정화될지 의심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어떤 약성분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 나무를 쉽게 던지지는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나무를 던지는 순종을 합니다. 그렇게 순종하니까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이란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내 생각과는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그래서 순종이란 바로 하나님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절대성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 순종이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본문 26절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귀를 기울이고,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순종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들어야 하며,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하며, 계명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순종을 간단하게 말한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 뜻, 내 생각을 포기하고 이해되지 않고 납득할 수 없어도 하나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성경에서 순종의 절정을 보여주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감람산에서 기도하신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2장 42절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그렇습니다. 순종이란 바로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바로 광야생활 40년이 이 순종훈련을 하는 곳입니다. 이 순종 훈련을 통과해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하는 자에게 애굽에 내린 질병을 하나라도 내리지 않으시는데, 여호와 라파 즉 치료하시는 여호와임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순종을 통해서만이 치료의 하나님에게 이를 수 있음을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위기를 만났지만 순종했더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위기가 곧 기회로 바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순종의 시험을 통과한 자들에게 엘림에 이르게 하셔서 쉼을 얻도록 안식처를 주십니다. 이 엘림은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나무와 물이 풍부한 오아시스였습니다. 이 엘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지치지 않고 가나안까지 갈 수 있도록 힘을 얻게 해 주시는 곳입니다.

 

(핵심)

이렇게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생고생 하며 걸어갈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팔짱 끼고 지켜보고만 계실까요? 출애굽기 19장 4절에 보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업어서 인도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등에 업힌 사람이 힘들까요? 아니면 업은 사람이 힘들까요? 누군가를 업고 광야를 걷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바른 길이든 굽은 길이든, 평지이든 돌밭이든 누가 힘들겠습니까? 우리가 가는 길이 이런 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등에 푹신하게 업혀서 가고 있으면서도 힘들다고, 배고프다고, 목마르다고 투덜대지만 주님은 행여 등에 업혀 있는 우리가 힘들까봐 내려놓지도 못하셨습니다. 주님 발이 부르트도록 돌밭 길을 걸으시다가 발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흘러도 우리를 내려놓지 않으시는 주님, 그 주님께서 우리를 가나안으로 업어서 인도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왜요! 자신은 피땀을 흘리시지만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차마 내려놓지 못하는 그 주님의 사랑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는 길이 힘드십니까? 어려우십니까?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업고 계시는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여정은 나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길입니다. 오죽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고 싶으셔서 이 땅에 오실 때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지으셨겠습니까!

 

이제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해를 지나는 동안 좋은 일, 기쁜 일이 가득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어려움도 만날 것입니다. 아프기도 하고, 목마를 때도 있을 것입니다. 물질 때문에 어렵기도 하고, 직장 때문에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불평하지도 말고, 원망하지도 마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늘 동행해 주셔서 어려움을 이기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아플 때 치료해 주시는 여호와 라파를 경험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새로운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외로울 때 주님께서 동행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면서 한걸음, 또 한걸음 나아갑시다. 우리를 이끄시고 인도해 주시는 주님 손을 붙들고 나아갑시다. 그래서 올해가 어느 해보다도 은혜가 넘치는 멋진 한해가 될 줄 믿습니다. 위기를 만날지라도 넉넉히 이기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주시는 주님을 믿고 나아갑시다. 올 한해도 주님께서 동행해 주셔서 멋지게 승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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