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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1월18일 하나님의 기쁨?

  • 정용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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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8일  하나님의 기쁨?

 

지난주일 설교 제목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였다. 기쁨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첫 글자인 ‘기쁠 희’에 속하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슬픔, 하나님의 화, 하나님의 고통 등등의 표현들이 나온다. 하나님은 하늘에 고고한 자리에 앉아 있는 무감정(apatheia)의 존재가 아니라 세상과 인간의 삶에 기꺼이 참여하는 열정(passion)의 존재라는 말이다. 헬라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이런 열정이 너무 지나쳐서 감정적으로 인간과 다를 게 없는 존재들로 묘사된다.


엄격하게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이나 성향을 완전하게 아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정의롭고 사랑이 충만하며 전지전능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하지만, 그런 표현 자체가 모순으로 나타날 때가 적지 않다. 극심한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아이들의 운명 앞에서 하나님의 자비는 상상하기 어렵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아우슈비츠 사건 앞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전능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성경은 무엇을 근거로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하나님을 감정적인 존재로 묘사하는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성경의 모든 표현들은 하나님 전체가 아니라 한 부분을 가리킬 뿐이다. 거대한 퍼즐을 상상해보라. 한 조각이 사랑이고, 다른 한 조각이 정의이고, 다른 한 조각이 고통이고 다른 조각이 기쁨이다. 각각의 조각만으로는 퍼즐의 전체 그림을 알 수 없다. 거꾸로 각각의 조각이 없이는 퍼즐 전체 그림을 알 수도 없다. 하나의 조각은 다른 것과의 연관을 통해서 전체 그림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기쁨이 하나님의 정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각각의 조각이 달라 보이지만 결국은 종합적으로 하나를 이루듯이 이런 연관의 깊이로 들어가면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치 자궁 안의 태아로부터 시작해서 사춘기를 거쳐 어른이 될 때까지 그 아이가 엄마를 경험하는 차원이 다양하기도 하고 모순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일치되는 것처럼 말이다.


정용섭  http://dabia.net/xe/85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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