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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 권오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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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대하17장 7-19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이었던 죤 에프 케네디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미국의 모든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치던 성경을 자율에 맡기는 정책을 썼습니다. 그러자 많은 학교들이 성경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청소년들의 타락과 방종의 상징인 히피족이 생기고 문란한 생활로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칠 때와 가르치지 않을 때의 차이는 엄청나게 컸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학법 재개정 문제로 기독교계와 정치권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립을 보면서 국민들은 사학을 개혁하자는데 왜 기독교가 저렇게 극단적으로 반대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한국의 개신교 교파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 교회가 속한 장로교 통합측이 가장 선두에 서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은 총회장이 삭발했고, 교단의 대표적 교회인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연동교회의 담임목사님들이 삭발했습니다. 명성교회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사학법이 재개정되지 않으면 김삼환목사님과 모든 교인들이 삭발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승려도 아닌 목사들이 왜 삭발까지 하면서 반대하는지, 왜 유독 장로교 통합측이 가장 극렬하게 반대투쟁을 하는지 잘 모르고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는 이유를 잘 아셔야 합니다. 우리 교단이 가장 선두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개신교가 설립한 초중고대학 가운데 우리 교단이 세운 학교가 전체 약 70%로 가장 많습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개정된 사학법에는 외부에서 이사가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개정 사학법의 독소조항인 개방형 이사제도라는 것입니다. 이 법대로 하면 기독교가 세운 학교에 비기독교인들이 이사로 들어오게 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삭발하면서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학교를 설립한 목적은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림으로 성서적인 인간을 만들고 기독교 정신을 소유한 국가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비기독교 이사가 들어오게 되면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을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하챦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고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됩니다.


  기독교 사학에서 성경과 예배는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집안의 학생들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혹은 대학을 기독교 학교로 진학해서 성경을 배우고 예배를 드리면서 소명을 받아 목사가 되고, 훌륭한 기독교인 지도자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수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개정된 사학법으로는 기독교 학교에서도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사학의 설립목적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영적으로 보면, 여기에는 사탄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기독교가 설립한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누가 제일 좋아합니까?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개혁이라는 미명으로 개입해서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을 앞세우고 그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탄과의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절박한 문제입니다.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오늘 본문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여호사밧 왕이 재위 3년에 온 국민들에게 성경교사들을 파송해서 성경을 가르친 이야기입니다. 본문 7,8절을 보면, 전국으로 파송되어 성경을 가르친 성경교사들의 명단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벤하일, 오바댜, 스가랴, 느다넬, 미가야를 비롯해서 스마야, 느다냐, 아사헬, 스미라못, 여호나단, 아도니야, 도비야, 도바도니야와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입니다.


  본문 9절에 성경교사들의 역할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 이들은 전국을 돌면서 율법, 즉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전국을 돌면서 성경을 가르친 결과가 본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가정과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하고, 또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사밧 시대에 받았던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여호사밧 시대에 성경을 가르친 결과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국가의 안보가 튼튼해 졌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사밧과 유다를 축복하셔서 강하고 부강한 나라로 만드셨습니다. 국가의 안보가 튼튼해 졌습니다. 주위의 나라들이 두려워서 감히 전쟁을 걸어오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전국의 모든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면, 인격과 정신이 바로 서고, 신앙이 강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두려움이 없고 불안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출애굽해서 백성들과 함께 홍해 바다에 이르렀을 때에, 앞은 홍해바다로 건널 수 없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고, 양 옆으로는 산으로 둘러싸여서 도망할 수가 없습니다. 독 안에 든 쥐의 신세로 꼼짝없이 죽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백성들의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차라리 항복하고 다시 애굽에 가서 종으로 살자”는 사람들도 있고, 애굽에 매장지 없어서 여기와서 묻을려고 했느냐며 불평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전혀 두려움이 없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백성들을 향해 “여러분, 무서워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이 위기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지 가만히 지켜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과 싸울 때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담대했습니다.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단창을 의지하고 내게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나간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역으로 상대방에게는 큰 위협입니다. 세상에는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사람이 무섭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너 죽고 나 죽자”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들 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나는 죽으면 천당 간다는 사람”입니다. 나는 죽으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산다고 믿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성경을 배우면 신앙이 성장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게 됩니다. 그러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여호사밧이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더니, 백성들에게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어떤 나라와 전쟁을 해도 이긴다는 자신감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두려워서 감히 전쟁을 걸어오지 못했습니다.


  강도들이 무서워하는 집과 무서워하지 않는 집이 있습니다. 문을 열고 현관에 딱 들어갔는데 신발이 잘 정리되어 있으면 강도들도 겁을 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발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집은 무서움이 없고 아주 쉽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성경을 배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면 삶이 안정되고 질서가 있습니다. 그러면 마귀가 무서워합니다.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 모두가 성경을 배우는 그날까지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성경을 배워서 무장하면 일본이 감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지 못합니다. 중국이 고구려가 자기들의 한 부족이었다는 엉뚱한 소리를 못합니다. 북한의 김정일이가 핵무기로 남한을 넘보지 못합니다. 국민들이 성경을 배우면 국가의 안보가 튼튼해 집니다. 우리 자녀들이 성경을 배울 때 자신감이 생기고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면 무슨 일을 해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성경교사들을 전국에 파송해서 가르쳤던 여호사밧 시대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백성들이 어떤 나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안보가 튼튼해집니다. 국가의 안보를 튼튼히 하고 국민들을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성경을 개정 사학법으로 가르치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반드시 재개정되어서 기독교 학교만이라도 자유롭게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안보를 튼튼히 하는 길이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입니다. 기독교 학교들을 통해서 신실한 신앙인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합니다.

  여호사밧 시대처럼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나라가 복 받는 길임을 믿으시고 반드시 사학법이 재개정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부귀와 영광이 있었습니다.


  역대하 18장 1절에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다”고 합니다. 여호사밧이 전국적으로 성경을 가르친 결과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흥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도 “블레셋 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조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들도 짐승떼 곧 숫양 칠천칠백 마리와 숫염소 칠천칠백 마리를 드렸더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강해지자 주위의 여러 나라들이 잘 봐 달라며 많은 조공과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너무 많아서 보관할 장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 보면 “이 모든 것을 저장하고 쌓아둘 수 있는 국고성을 건축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모든 축복은 여호사밧이 성경교사들을 전국에 파송해서 성경을 가르친 결과라고 합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니까 이런 부귀와 영화의 복을 받습니다.


  유태인들은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쉐마”로 불리는 신명기 6장 4-9절의 말씀을 가르치고 암송케 합니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이 말씀을 외우고 지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메어 기호로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찌니라”.


  유대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복 받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공부하는 자녀들이 성경을 읽고 있으면, 공부 안하고 성경 읽는다고 야단칠 때 있습니다. 비싸게 주고 산 위인전이나 동화책 읽지, 성경 읽는다고 나무라기도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수십만원짜리 책도 아까워하지 않고 사다 주면서 만원, 이만원하는 성경책 사는 것은 아까워합니다.


  유태인들이 오늘처럼 복을 받은 것은 우리 아이들처럼 어릴 때부터 위인전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과학서적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달에 수십만원 하는 학원에 다녔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은 쉐마에 나오는 말씀처럼 어릴 때부터 앉으나 서나 누우나 길을 가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합니다. 그것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 받는 길을 정부가 앞장서서 막으려고 사학법을 개정했습니다. 개정된 사학법으로는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날이 옵니다. 이것은 마귀의 계획대로 되는 것으로 불행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을 비롯한 한국교회가 다 반대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 시대는 성경을 가르치고 배움으로서 부귀와 영광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모두도 성경을 읽고 배움으로서 큰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 교단이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서 지키는 기도주일입니다. 일부 사학들의 비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총회가 설립하고 총회가 이사를 파송한 사학에서는 아직까지 지탄받을 비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학의 비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존의 법으로도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바로 잡고 개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안된 것은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눈감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독교 사학에 외부 이사를 파송해서 성경을 못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은 마귀의 계략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인들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마귀와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전국적으로 성경을 가르친 결과 국가의 안보가 튼튼해지고, 창고를 새로 지어야 할만큼 넘치는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나라가 복을 받고 우리 자녀들이 복을 받는 길은, 성경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가르치고 읽게 하십시오. 그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사학법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재개정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반드시 사학법이 재개정되어서 기독교 학교는 설립목적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일에 열심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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