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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1월23일 세례와 삶

  • 정용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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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3일 세례와 삶

 

지난 설교 마지막 단락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과 하나 되었습니다. ... 저의 인생은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예수와 더 긴밀히 하나가 되는 과정입니다.’ 세례 사건이 내 삶의 토대라는 뜻이다. 세례 받았으니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세례는 죽음과 삶에 대한 종교 의식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산다는 뜻이다. 종교 의식은 단순한 형식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내용을 담는다. 죽음과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세례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도대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산다는 게 말이 되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살아 있으면서도 늘 죽음을 의식하는 것일까? 초기 기독교는 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한 것일까?


세례를 삶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죽음을 먼 미래에 일어날 막연한 것으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아무도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일상이 너무 생생하다. 지금 이렇게 숨을 쉬고 먹고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그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를 어떻게 실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대개 죽음은 순전히 낱말로, 또는 하나의 관념으로 떨어질 뿐이다. 예수의 부활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인의 삶이 예수와 하나 되는 과정이라는 말은 죽음과 삶의 문제를 수행으로 여기고 살아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번 예수를 믿고 뜨거워지는 것으로 끝나는 아니라 숨이 끊어질 때까지 예수에게 일어난 사건 안으로 부단히 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성경공부, 신학공부, 인문학공부, 자기에 대한 성찰 등등, 여러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 자체가 수행이다. 학위를 받는 공부만 공부가 아니다. 자기와 세계를 성찰하는 삶의 태도가 바로 공부다.

정용섭  http://dabia.net/xe/856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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