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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임하시는 마음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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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시편(147) 주님이 임하시는 마음

(시편 98편 1-9절)


1. 은혜를 기억하는 마음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의 은혜에 대해 기뻐하며 찬송하는 고백을 합니다(1절). 그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남이 기억해주기를 원하면 남을 기억해주는 것부터 잘하십시오. 은혜 받기를 원하면 은혜를 오래 기억하는 훈련부터 잘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베푼 은혜를 잊으면 마음속으로 분노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남의 은혜를 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의 은혜도 잊지 말아야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잊지 마십시오.

 은혜를 기억하는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아는 마음이 임하십니다. 축복과 행복도 감사를 아는 마음에 주어집니다. 행복한 환경보다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구하십시오. 성숙함이란 고난과 불편 중에도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믿음이 커지면 감사가 커지고 감사가 커지면 평안이 커집니다. 감사가 충만한 것이 결국 성령 충만한 것입니다. 복된 공동체는 프로그램이나 세미나로 형성되지 않고 거룩한 공통 비전과 넘치는 감사로 형성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커지면 희망도 커집니다.

 삶이 지옥 같이 느껴지는 제일 이유는 환경과 상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감사가 전혀 없는 곳입니다. 감사가 넘치면 그곳이 하늘나라가 됩니다. 상처, 사건, 사고, 질병 등의 절망적인 상황을 감사로 번역하는 탁월한 영적 번역가들이 되십시오. 감사 없이 축복을 기다리는 것은 구름 없이 단비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아의 항아리에 감사의 물을 채울 때 그것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로 변합니다.

 남이 변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항상 자기 변화가 우선입니다. 자기를 ‘감사하는 자기’로 변화시키면 만족하지는 않아도 초월할 수는 있습니다. 핵심 축복은 만족이 아닌 초월입니다. 초월할 때 만족을 주는 것이 조만간 찾아옵니다. 최고의 영성은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이 그 마음이 찾아와주셔서 약할 때 강함 주시고 부족할 때 만족 주시고 가난할 때 부요케 하시는 역사를 나타내실 것입니다.

2. 공의를 나타내는 마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공의’를 명백히 나타낸 것이었다고 노래합니다(2절). 하나님은 공의로운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게 함으로 공의를 충족시키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를 통해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구원이 ‘공짜’라는 사실보다는 구원을 통해 하나님이 명백하게 나타내신 ‘공의’입니다.

 ‘공짜’를 추구하는 마음이 아닌 ‘공의’를 추구하는 마음을 준비하십시오. 성도라고 무조건 좋기만 하면 안 됩니다. 공의를 따라서 지혜롭게 좋아야 합니다. 성도는 ‘호인’은 되어야 하지만 ‘호구’가 되면 안 됩니다. 요새는 호인과 호구가 묘하게 동일시되어 표현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남편을 호인으로 보지만 그 호인 남편 때문에 속 썩어 미치려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맨날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어리석게 당하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좋게 보면 공의가 서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좋게 보는 것이 진짜 좋은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며 품는 의문 중 하나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꾼들의 상을 둘러엎고 채찍질하는 장면입니다. 그때 “사랑이 많은 예수님이 꼭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또한 이런 의문들도 듭니다. “왜 사랑의 사도 요한이 자기 서신에서 이단을 그토록 무섭게 정죄했을까? 왜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무섭게 말했을까? 왜 성경은 그런 내용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기록했을까?” 시간이 꽤 지나서야 그런 장면과 말씀에서 사랑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이나 책임의식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내세워 공의와 질서와 리더십을 세우지 못하고 ‘열린 것’만 좋아하다가 거의 무장해제 수준까지 열리는 것은 ‘호인의 모습’이 아닌 ‘호구의 모습’입니다. 사람을 사귈 때도 호인 칭호에 도취되어 나쁜 친구를 정리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나쁜 친구는 과감히 멀리하십시오. 그것은 차별도 아니고 사랑이 없는 모습도 아닙니다. 나쁜 친구를 멀리해야 하나님이 좋은 친구를 주십니다. 성도는 공의로운 호인은 되어도 공의가 상실된 호구가 되면 안 됩니다.


3. 즐겁게 찬송하는 마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구원이 이스라엘을 향해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기에 주어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3절). 그래서 하나님을 하나님을 즐겁게 찬송하라고 외칩니다(4-8절). 때로 힘든 상황을 만나고 길이 막혀도 하나님의 플랜 B를 신뢰하고 즐거운 찬송을 잃지 마십시오. 고난 받으신 예수님처럼 어떤 고난도 감수하겠다고 각오하면 고난이 주어져도 예수님처럼 반드시 부활의 은혜와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그 아이를 건강한 아이보다 더 생각합니다. 그처럼 성도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더욱 가까이 하십니다. 결국 고난의 때에 은혜의 가능성은 커집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지구에서 강하고 장수하는 사람은 대개 북쪽의 추운지역 사람들입니다.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들이나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들도 대개 북쪽의 추운지역 사람들입니다. 추운 환경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겨울에 등산 갔다 온 후 사우나에 가면 피부에 윤기가 흐릅니다. 찬바람이 피부를 건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얼굴을 닦아 피부 각질이 깎이면 점점 피부가 없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새로운 피부가 나면서 더 피부가 좋아집니다. 반면에 피부를 보호하겠다고 피부의 각질을 벗겨내지 않으면 오히려 피부가 노화되고 나빠집니다. 생명이 없는 물건은 깎으면 점차 닳아 없어지지만 생명이 있는 것은 깎으면 그곳에 새 살이 돋습니다. 생명이 없는 자에게 고난은 불행의 원천이지만 생명이 있는 자에게 고난은 새 살을 돋게 합니다.

 비바람이 칠 때도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가면 태양이 빛나는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처럼 믿음의 고도를 높이면 문제를 만나도 기쁨과 찬송을 잃지 않습니다. 사람이 물에 빠져죽는 것은 물이 깊기 때문이 아니라 수영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문제가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고 문제를 풀 실력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거친 파도가 닥칠 때 어떤 사람은 휩쓸려 죽지만 어떤 사람은 파도를 타고 서핑과 카약을 즐깁니다. 믿음의 고도를 높이고 즐겁게 찬송하면 마음이 싱싱해지고 강건해집니다. 그런 마음에 주님이 임하십니다.

4. 공평을 실천하는 마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심판도 찬양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왜 하나님의 심판을 찬양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고 공평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9절). 그러므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려면 의와 공평의 실천에 힘써야 합니다. 특권의식을 버리고 차별적인 마음과 편견적인 마음도 힘써 버리십시오. 편견은 정신이 병든 약자가 남을 보편적으로 매도함으로 자기를 높이고 위로하려는 일종의 병입니다.

 무엇보다 공평한 사회를 만들려면 늘 작은 자를 살피고 작은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나아가 힘써 자기 것을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외형에 끌리는 본능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조차 그런 본능적인 시대상을 좇아간다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반인들은 실망합니다. 그런 실망을 주지 않도록 성도는 없는 자들과 작은 자들의 설움을 이해하며 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주는 마음을 더욱 키워가야 합니다.

 선교사들 중에도 어떤 선교사는 후원자가 많아서 사역에 어려움이 없지만 어떤 선교사는 후원자가 거의 없어 일반생활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소외감과 어려움의 물이 자기통제의 둑을 넘어 선교의 불길을 끄지 않도록 어려운 선교사들을 위해 더 기도해야 합니다. 선교 후원기관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선교헌금이 사역을 잘하는 일부 선교사들에게만 지나치게 몰리지 않게 최대한 공평하게 배분해서 사역 차이로 인한 후원 차이가 생활 차이로까지 크게 벌어지지 않도록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사랑 받고 있다!”란 느낌이 중요합니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란 확신이 있고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면 낙심을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에 쓰임을 받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구하고 “나는 못해!”라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붙들고 주님과 동행하면 자기 한계와 약점을 극복해서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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