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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과 금식

  • 이상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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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사순절과 금식

마4:1-2, 26:36-46, 이사야 58:3-9(중)                            

14. 4. 6, 오전


먼저 마태 4:1-2절과 26:36-46절을 읽고 묵상합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공생애를 앞둔 금식기도와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하신 철야기도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40일간 금식하며 지내는 절기입니다. 3세기 전까지는 부활절 전에 금식기간을 2일이나 3일을 지낸적이 있습니다. AD 325년 니케아 교회법 제5조에 그 관습이 나오는데 이것은 원래는 세례 예비자에게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40일 입니까?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금식하며 밤새워 기도하셨으리라 짐작됩니다. 공생애를 출발하면서 40일 씩이나 금식기도를 하셨다면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서는 잡수실 것 다 잡수시고 기도하셨을까요? 아니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럼 우리는 주님이 구원을 다 이루셨으니 가만히 구원의 기쁨을 누리면 될까요? 물론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다만 사순절을 맞이하여 주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통하여 이웃의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40세까지 애굽에서 학문을 익히고 40년 동안은 미디안 광야에서 있었으며,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하여 40주야를 로뎀나무 아래서 기도하였으며,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원래 동방교회에서는 금식일을 7주간 이었으며 토요일과 일요일을 빼면 36일간이며, 서방교회는 6주간을 금식해서 42일동안이지만 역시 주일을 빼면 35일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8주간을 5일씩 금식하여서 실제로 40일간 금식했습니다. 이때는 물은 마셨습니다. 사순절 첫날은 성 금요일이어서 금식을 했고 사순절동안 매일 미사와 예배, 축제의 삶과 자선을 베풀고 회개절기로 지켰고, 그후 육식도 약간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금번 부활절은 4월 20일이고 종려주일은 4월 13일이며 금년 사순절은 3월 9일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늘이 사순절 다섯째 주일인데 금식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사순절과 금식'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립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살펴보았듯이 사순절은 고난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것은 금식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금식에 대하여서 선지자 요엘이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엘서 2장 12절에서 14절까지는 요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간절히 돌아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금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2절은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였고 13절은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금식은 하나님께 돌아가려는 하나님의 사람의 방법 즉 금식, 우는 것, 애통하는 것, 마음을 다하는 것 중 그 하나입니다.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오늘의 사회는 혼탁한 사회입니다. 남북문제가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고, 청년실업이 극심하고 여야 대립 등 갈등사회입니다.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묵상하시면서 기도생활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을 보내시면서 주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더 체험하고, 주께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는데, 잠잘 것 다 자고, 찾아 먹을 것 다 찾아 먹고, 즐길 것 다 즐기면서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면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사야 58장의 본문은 이웃을 배려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책임감을 갖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시기에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폐허된 성전을 재건하였던 때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민족은 과거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제의와 예식 그리고 율법에 열심이었습니다. 이때는 과거 대 속죄일에 일반적인 금식을 행하던 것에서 횟수를 더 늘려 정기적으로 금식을 하였습니다(슥 8:18-19). 실제로 이러한 금식 횟수의 증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과 포로기 때에 이스라엘의 회복과 성전 재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자, 금식의 본질이 훼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성전이 재건되자, 정기적인 금식의 필요성이 있느냐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금식은 그 본질적인 내용을 상실하고 형식만을 가지고 있게 되었습니다. 고난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앞에 세련된 모습으로 서게 되었지만, 그 마음의 중심은 상실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구하는 금식의 형식을 가졌지만, 자신의 동족에 대하여 배려하는 친절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책임은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열매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외면치 아니하시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회복의 말씀을 예언자를 통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육체의 금식이 아니라, 마음의 금식을 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육체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금식이요 응답이 막힌 금식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육체적 금식이 무엇이며 하나님과 통하는 마음의 금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시고, 회개하며 돌이켜 하나님 사랑의 통로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주실 하나님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응답을 강요하는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아닙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다 더 종교적으로 완벽한 율법과 제의 형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공의의 길을 찾으려는 모습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귀한 만남의 방법인 금식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하나님의 응답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보시지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금식 기도를 합니까? 하나님이 알아주시지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생하며 금식을 합니까? 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변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는 금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기 원하는 응답만을 하나님에게 강요하는 육체적 금식입니다. 금식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금식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금식을 통하여 자신을 뜻을 관철하려는 것을 들어주시는 기능적인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뜻, 즉 공의가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금식은 어떻습니까? 내가 원하는 기도의 내용으로 꼭 응답 받으려고 하나님의 뜻을 듣는 것을 외면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금식을 통하여 나의 절박함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금식은 우리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드리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금식을 통해 나의 육적인 정욕을 끊고, 오직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인식하도록 구하면서 기다리는 순복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금식을 통하여 나의 뜻을 간구하는 측보다 우리 자신을 절제하고, 오직 주의 뜻을 구하기 위해 바라보는 마음의 금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회개 없이 쾌락을 추구하는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아닙니다.


3절 하반 절은 앞부분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그릇된 금식의 문제를 예언자적인 표현으로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지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금식을 하면서 오락을 즐기면, 같은 동족을 노예처럼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금식을 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절제되지 못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금식을 통하여 원하고 기뻐하시는 것은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자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은 금식을 하나님의 종교적인 연례행사로 인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어떤 종교적 제의나 형식을 지키는 것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금식하는 자가 연결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내어놓고 용서와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인간적인 쾌락과 자신의 의는 철저하게 소멸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금식으로 나가면서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매년 사순절 기간 끝날 무렵, 고난주간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금식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기적인 금식을 할 때에 주의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금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우리 자신의 삶이 연합할 수 있도록 자신을 죽이는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금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우리의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되고 그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를 항상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마음의 금식을 통하여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고, 이것으로 우리와 하나님, 그리고 이웃이 연결되는 사랑의 통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회개가 동반되는 마음의 금식은 하나님과 우리 그리고 이웃들 사이에 막힌 통로를 뚫는 작업인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이웃들에게 나타날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입니다.(:6-7절)


6-7절을 보면, 하나님은??나의 기뻐하는 금식 … 아니겠느냐??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기뻐하는 금식이 어떤 것인지를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애굽과 바벨론에서 종살이한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압제하는 형제와 이웃을 풀어주고 음식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인 공의를 금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라는 구체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공의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강같이 흐르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공의를 수행하지 못하고, 과거의 타락한 모습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금식도 하나님의 공의가 금식하는 자들에게 전달되고, 그들을 통해 이루어질 때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은 오직 하나님과 금식하는 사람과의 관계적 차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하나님의 공의가 금식하는 사람을 통해 관계하는 이웃들에게 나타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원까지 고려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금식은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를 통하여 통로가 되어서 이웃들에게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진실과 화평을 전할 사랑의 통로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웃들과 막혀 있는 사랑의 통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통로의 건설은 이웃을 배려하는 친절과 책임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누구에게 어떻게 사랑의 통로가 되시기를 원하시는지 깨달으시기 바라니다. 우리가 드리는 마음의 금식을 통하여 이웃 마을 어른들에게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북녘 동포들에게 사랑을 보내 결박에서 풀어주며 압제에서 해방되며 식량을 지원하여 굶주림에서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맺는 말


하나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에게 전달되고, 그것이 우리를 통하여 이웃에게 나타나는 마음의 금식을 강조하십니다. 문제는 이러한 금식을 우리가 결단하고, 하나님의 공의인 진실과 화평을 나눌 사랑의 통로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랑의 통로가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한 약속의 표현이 8절에??그리하면 … 할 것이며 … 하리라는 말씀으로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금식을 행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 약속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전할 수 있는 사랑의 통로 역할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하시고, 앞과 뒤에서 우리를 지키시며, 항상 동행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는 진정한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전달하는 사랑의 통로가 됩시다. 우리들이 이 사랑의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의 진실과 화평이 나타나도록 이웃들을 배려하는 친절과 책임감으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말씀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화


어느 중년의 권사님 가정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70세 중반의 노모를 모셨는데, 삶의 방식의 차이로 생활 중에 사소하게 부딪히는 문제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권사님은 매일 이러한 문제들로 늘 마음이 편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사순절 특별 금식 기도회 중에 권사님은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와 사소한 갈등으로 마음이 상한 권사님은 하나님 앞에 나가 회개하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동안 마음속에 쌓였던 갈등의 골이 매워지게 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생활할 때에 또다시 사소한 생활 방식의 차이로 부딪힘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러한 반복되는 문제로 권사님은 깊은 시험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금식 기도하던 중에 권사님은??그래, 앞으로 내가 어머님의 삶으로 살아 드리고 나를 십자가에 죽이자!??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권사님은 이후로부터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13년 동안 자신의 삶이 아닌 어머니의 삶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와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자신을 죽이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사순절이 그런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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