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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대 이은 문화재 반환

  •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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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이은 문화재 반환

1944년, 종전을 한해 앞둔 도쿄는 연일 공습으로 아수라장이었다.
서예가 소전 손재형은 폭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의 동양철학자
후지즈카 지카시의 집 근처에 여관을 얻어 진을 쳤다.
소전은 후지즈카가 소장하고 있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국보 180호)를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할 목적으로 일본 땅을 밟았던 것이다.
소전은 매일 아침 휴 지즈카를 찾아가 인사만 올리고 되돌아 왔다.
그러나 후지즈카는 세한도를 내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소전이 문안 인사를 올린 지 90일 되던 날, 후지즈카는 소전에게 말했다.
"내가 눈을 감기 전에는 내놓을 수 없지만 세상을 뜰 때 맏아들에게
유언해서 자네 앞으로 보내 줄 테니 돌아가라."
그래도 소전은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열흘 동안 더 문안을 드렸다.
감복한 후지즈카는 세한도를 거저 내 주었다.
후지즈카는 중국 철학을 전공했지만 1926년 경성제대 교수로 오면서
추사에 매료됐다.
그는 서울과 베이징의 고서 점을 다니며 추사 유품과 자료를 사 모았다.
그의 도쿄대 박사 논문 주제도 추사였다.
그런 그가 세한도를 내주며 한 말은 "잘 보관해달라" 는 한마디뿐이었다.
62년만인 올해 초 아들 후지즈카 아키나오는 과천시에 추사의 미공개
편지 20여 점을 비롯한 문화재 2,700점을 기증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그는 아버지의 수집 품을 돈으로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추사 연구에 써달라며 200만 엔 (2,000만원)을 쾌척 했다.
그리고 지난 7월 4일 도쿄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받아서 고마워하고 기뻐하는 사람에게 줘야 유물이 살아 있는 것이다.
이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한국이다."
후지즈카 부자는 세상에 없지만 그들이 남긴 추사에 대한 사랑과
대 이은 문화재 반환은 살얼음판 같은 한일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출처 : 월간 좋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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