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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한 신앙인에게 전도는 기본이다! (막 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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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신앙인에게 전도는 기본이다! (막 6:7-13)


1964년의 일입니다.  경기도 포천 백암산 비무장 지대에 배속된 어떤 초급 장교가 빨간 단풍이 물들어가기 시작한 어느 초가을 오후에 순찰 도중 잡초만 우거진 비무장 지대의 양지바른 산모퉁이에서 이끼가 잔득 낀 돌무더기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는 이 돌무더기 한 쪽에서 녹슨 철모와 썩은 나무등걸 같아 보이는 팻말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 나무 팻말이 어느 이름 없는 무명 용사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전우애로 새겨진 일종의 묘비임을 알아차립니다.

갑자기 그의 눈 앞에 자기 또래의 젊은 무명 용사의 환상이 지나가자 그는 아직도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은 이 돌무덤 곁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글이 지워진 나무 팻말 대신 나라를 위해 인생을 꽃피우지 못하고 헌신한 젊음을 기억하며 주머니에 버려져 있었던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시에 곡을 붙여서 탄생한 가곡이 바로 '비목'입니다.
"초연히 쓸고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

그렇게 해서 이름 모를 비목의 사연이, 그리고 무명의 주인공의 헌신이 우리 모두에게 기억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한 여러분들의 헌신을 우리 주님께서 잊으실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6장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헌신자를 기억하십니다.  여러분의 수고와 눈물과 헌신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수고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기쁜 모습으로 맞아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날 주 앞에 섰을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시며 이렇게 맞아 주실 것입니다.
"어서 와.  착하고 충성된 종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역에 구체적으로 뛰어들어서 헌신하게 될 때에 누가 가장 행복할까요?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할 때에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헌신은 헌신하는 자를 행복하게 합니다.  헌신은 헌신하는 자를 건강하게 합니다.  풍성하게 합니다.  그런데 주를 향한 이 헌신은 나 자신에게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헌신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행복하게 합니다.  헌신하는 그 사람만 바라보아도 힘이 나고 용기가 솟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섬김과 헌신의 결과를 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훗날에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앞에서 자원함이 내게는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내게는 축복이었습니다.  이제는 내 삶의 마지막도 기쁨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헌신의 자리에 서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때 헌신하다가 헌신을 포기하고 구경꾼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의 수고와 봉사를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보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으려고 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기 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신다는 사실에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그 사실에 감사하십시오.

특별히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헌신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실망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가만히 보면 헌신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서 실망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저 사람은 왜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하는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헌신하지 않는 사람을 보지 말고 우리들 보다 앞서 섬김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는 그로 하여금 그의 길을 가게 하고, 여러분은 주님만을 바라보며 사명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리고 기왕이면 헌신하지 않는 사람보다 헌신하는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삶의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헌신의 자리를 굳게 지키십시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일을 세상에서의 수많은 일들 가운데 하나처럼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악세사리로 취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어떤 장식품처럼 취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받는 직분을 마치 훈장처럼 취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존귀하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존귀한 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세상에 있는 수많은 신들 가운데 또 다른 한 신으로 생각하면서 그저 그런 악세사리로 여긴다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헌신하는 일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여러분의 생애와 환경을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자자손손을 기억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 대대로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방망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돌 같은 내 마음을 부수는 방망이입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방망이에 한 대씩 얻어맞으면서 성령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서 단단하게 굳어진 여러분의 심령이 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의 욕심으로 가리워 진 여러분의 눈이 신령한 눈으로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주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축복합니다.  주 앞에서 부름 받은 사명적인 존재로 거듭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내 생명을 불태울 수 있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생명을 불태울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약속된 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우리의 심령에는 약속의 도성과 새로운 축복의 땅이 있음을 확신하고 믿음의 닻을 저어 가게 됩니다.  그 항해가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주요, 완전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다시 일어나 생명의 능력을 붙들고 사명자로 세움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의 믿음의 닻을 더 높이 올리십시오.

어떤 사람이 경상도 어법 이해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가'라는 한 글자를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의미가 이렇게 많은 줄 예전에 몰랐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가! : '가라'는 말입니다.
● 가? : 그 사람이냐?  조금 전의 그 사람이냐는 말입니다.
● 가가 : 성이 가 씨라는 말입니다.
● 가가! : 가지고 가라는 말입니다.
● 가가? : 그 사람이 좀 전에 그 사람이었느냐는 말입니다.
● 가가가? : 성이 가 씨냐는 말입니다.
● 가가 가가~ :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었구나는 말입니다.
● 가가 가가? : 그 사람이 아까 그 사람이었느냐는 말입니다.
● 가가가 가! : 성이 가 씨인 사람이 가라는 말입니다.
● 가가 가가가? : 그 사람 성이 가 씨냐는 말입니다.

'가'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더 많이 있지만 여기에서 줄이겠습니다.  어쨌든 '가'라는 단 한 글자만을 사용하는데도, 말의 높낮이와 길이를 달리할 때 이렇게 다양한 의사를 전달할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경상도 말의 묘미이기에 앞서서 우리말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은 제대로 잘 들어야 합니다.

지난 주일 오후 예배 시간에 오는 11월 28일 귀빈초청 축제주일을 앞두고 전도에 관한 말씀을 전하면서 제직들은 무조건 한 사람 이상 초청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한 사람도 초청하지 못한 제직들은 밥을 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날 저녁에 김창숙 사모가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나는 제직이 아니니까 전도하지 않아도 밥 안 사도 되겠네요?"  그래서 제가 농담도 지나치면 곤란하다고 한 마디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목사가 이 말을 한 의도의 중심이 무엇 무엇입니까?  전도입니까, 밥입니까?  분명히 전도라는 것은 지나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전도를 해서 이 자리를 채워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는 오간데 없고 밥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는 하지 않으면 마음은 좀 무겁겠지만 그래도 손해 보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밥은 내 주머니에서 당장 돈이 나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전도는 내 일이 아니고, 밥은 내 일입니다.

우리가 1년에 몇 번씩 총동원 전도주일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결론은 언제나 우리는 허공을 치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전도할 대상이 없다고 아예 전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다수의 여러분을 향해서 끊임없이 전도를 하자고 외쳐야만 하는 저로서는 조용필 씨의 '허공'을 부르는 기분이었습니다.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어김없이 제가 여러분을 향해 슬픈 옛 이야기를 다시 불러야만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가수 이용복 씨는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잊으라면 잊겠어요"  그러나 여러분, 제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전도를 하지 않으니까 밥이라도 사라는 겁니다.  밥은 내 일이니까 밥을 사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도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래도 전도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상급의 기준으로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라고 고백하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구원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 상급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영광된 성도가 있는가 하면, 지푸라기처럼 부끄러운 자리에 서 있어야 할 부끄러운 성도도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마지막 주 앞에 섰을 때에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축복된 상급을 누리는 영광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 생활에 있어서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성숙한 자가 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찾아서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은 헌신하는 그 사람에게 축복하십니다.  헌신하는 그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장 복된 헌신이 무엇입니까?  한 영혼을 세우는 일입니다.  쉽게 말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전도하는 그 사람에게 재물의 복을 주십니다.  전도하는 그 사람에게 건강의 복을 주십니다.  전도하는 그 사람에게 사람의 복을 주십니다.  전도하는 그 사람에게 환경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도하는 것이 단순히 이런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어린아이는 끝없이 젖병만 찾습니다.  그래서 교회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으려고만 합니다.  자기 욕구만을 채우려고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무너지고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는 제발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말고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건강한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나는 지금까지 균형 잡힌 교회라고 생각을 했다.  건강한 신앙생활이 어떤 신앙일까?  나는 지금까지 균형 잡힌 신앙생활이 건강한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 건강한 교회, 건강한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촛점이 분명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교회요,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데 자신의 목적과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삶이 건강한 신앙생활이요 건강한 성도다."

그렇습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의 기본은 전도입니다.  건강한 성도의 기본 생활은 전도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데 자신의 목적과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그 사람이 바로 성숙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숙한 신앙인에게 전도는 기본이요, 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를 부담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전도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통해서 기적과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는 성도들의 전도 활동이 활발한 교회입니다.  이것은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이 전도를 많이 했을 때는 대영제국이 되었습니다.  미국도 열심히 전도할 때는 경제적인 축복을 누리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와 선교활동을 그만두니까 많은 문제가 생겨서 나라가 점점 위축되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나라도, 교회도, 개인도 전도할 때 하늘의 복을 받습니다.  전도의 불길이 일어날 때 흥왕하게 됩니다.

일본의 우치무라간조는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 전도하는 것은 진정으로 복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심장 속에 전도하고자하는 열망이 불처럼 타올라서 뼛속에까지 태워지기를 바랍니다.  내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는 이 간절한 열망이 여러분의 중심에서 불같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의 사회는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흉칙한 사건들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우리의 사회와 나라는 어디로 갈까?  암담합니다.  길이 없을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이 사회를 건지는 유일한 길은 전도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추락하는 세상을 물려 줄 수는 없습니다.  죽고 망할 세상을 물려 줄 수는 없습니다.

살기 좋은 세상, 발전하는 세상, 점점 더 훌륭해지고 아름다워지는 세상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수고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할 때,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확장될 때 어둠의 세력은 그만큼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추락하는 세상을 멈추게 하고 밝고 맑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길은 죄악으로 무너진 한 영혼을 세우는 전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에게 있어서 전도는 기본이요,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전도가 없다면 그는 신앙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전도를 해야 내가 삽니다.  전도를 해야 내 가정이 삽니다.  전도를 해야 끝도 없이 추락하는 이 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황무한 이 땅을 살리고 고칠 수 있는 길은 오늘 이 땅에 전도의 불길이 일어나야 합니다.

1930년대 미국에 경제대공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졌습니다.  젊은이들은 목적 없이 거리를 방황했습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미국을 일으켜 세웠던 것은 영적 대부흥운동이었습니다.  무디를 중심으로 한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이 다시 주 앞에 돌아오는 전도의 불길을 통해서 미국은 세계의 강대국으로 세워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10년대 우리 나라는 양반의 타락과 세계 강대국들의 침략으로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목숨이 붙어있으니 살아야만 했던 그런 참담한 시절이었습니다.  술과 도박으로 하루하루를 살던 백성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젊은이들에게 민족에 대한 꿈을 품게 했던 것은 평양 대부흥운동이었습니다.  이 부흥의 바람이 전국을 휩쓸면서 전도의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민족 의식이 고취되고 백성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내 가정과 우리 민족이 사는 바른 길은 전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성경에서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전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전도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 앞에서는 선택의 기회가 없습니다.  반드시 받들어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군인이 명령을 거부하면 바로 처형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명령인 전도는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사명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회 공동체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공동체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역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보다는 열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 교회가 아무리 좋은 비전을 품고 있다고 할지라도 교회 구성원이 적다면 그 비전은 허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개인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씩 만나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만 그들을 부르신 다음에는 열두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의 공동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들이 바로 신약교회 공동체의 모체가 됩니다.  열두 제자는 그냥 무리가 모인 단순한 무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사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전도하러 둘씩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한 사람씩 뿔뿔이 흩어보내시는 것과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시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여러분이 혼자 나가서 전도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전도가 쉽지 않습니다.  하다보면 어려움을 느낍니다.  혼자 하다가 지치면 그냥 슬그머니 집에 들어가 버리면 그만입니다.  언제든지 땡땡이 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묶여서 하다 보면 상당히 상대방을 의식할 것입니다.  긴장도 합니다.  "내가 여기서 그만 두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서 인간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전도서에 보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한 사람이 넘어질 때 또 다른 사람이 붙들어 일으켜 세워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대 열두 공동체를 보게 되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안드레와 베드로는 형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환상의 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몬과 유다입니다.  시몬은 아주 격렬한 열심당원 출신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다음에도 아주 특별한 열심을 보였던 제자입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배신자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라본다면 유다와 시몬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몬도 유다를 생각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유다를 어떻게 가슴에 품어야 할까?  비판적인 유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다독거리면서 어쩌면 시몬에게는 굉장한 신앙적 성숙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고 보면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만 성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과 공동체를 이루면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교회 공동체가 부흥하고 신앙의 성숙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신앙 속에서 정말 그리스도인 다운 신앙생활을 저해하는 장애물의 하나가 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시대의 정신 가운데 하나가 철저한 개인주의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도 예외 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때문에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왜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가 필요해서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전도하기 위한 공동체입니다.  전도한다는 것이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전도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킨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나 같은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부족한 대로, 연약한 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가 될 때 그 공동체의 저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교회라는 공동체에게 지상명령의 과제와 숙제를 위임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열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세상을 바꿔라.  모든 족속으로 네 제자를 삼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잠잠한 성도는 결국 세상에 물들기 쉽습니다.  잠잠한 교회는 영권을 상실하여 세속화되기 쉽습니다.  영혼 구원이 일어나지 않는 교회는 생명력이 없는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생명력 없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를 통해서 이웃을 구원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땅에 소금이 되고 빛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하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십시오.  방안에만 콕 박혀있지 말고 거리로 나와서 두루 다니며 전도하십시오.  바쁘다는 핑계로 생명을 외면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찾아가서 한 생명을 주 앞으로 전도하십시오.  아는 사람이 없다고 미리 포기하지 말고 전도할 대상을 찾아가십시오.

이 한 주간 주님의 명령에 의지해서 전도하기를 결단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능력을 철저하게 신뢰하십시오.  전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다 보면 놀라운 사건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전도를 하려고 할 때에 가장 먼저 만나는 대상은 어둠의 세력들입니다.  악한 사단의 세력들이 우리로 하여금 전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의지해서 전도하십시오.

본문 말씀에 보니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권세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이 권세를 의지해서 전도를 하면 어둠의 세력들은 물러갈 것입니다.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보다 성숙한 신앙으로 더 확실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전도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작은 전도를 통해서 공동체가 세워지고 이 공동체를 통해서 세상이 바뀌어지는 역사를 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성숙한 신앙인에게 전도는 생활의 기본입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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