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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모든 것에 감사함은 하나님의 뜻이고, 축복입니다 (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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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감사함은 하나님의 뜻이고, 축복입니다(살전 5:18)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은 구약의 수장절을 기원으로 하여서 일 년에 가을걷이를 한 후에 드리는 감사의 절기입니다. 

유대달력으로는 가을철인 7월 15일에서 22일까지 지금의 양력으로 따지자면 11월 중순경 7일 동안을 계속해서 나뭇가지로 만든 초막 속에 거주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신분의 높낮이 없이 모두 한데모여서 잔치를 벌이며 즐거워하게 됩니다. 이 수장절은 본래 타작마당과 열매의 소출 즉, 과일 올리브열매 그리고 포도 등을 저장하는 것을 감사하고 기념하여 드리는 절기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농산물을 다 거두어 마치고 수확물을 창고에 저장한 다음에 그것을 기념하여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 기간이 되면 <신명기 16장 14절>처럼 온 백성이 한자리에 모이되 본인, 자녀, 남녀노비, 성중의 레위사람, 객, 고아, 과부 모든 신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처지를 다 잊고 모여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날은 당시 신분이 자유롭지 못한 종들도 이 감사의 잔치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또 그 당시 소외계층이요, 가난한 사람들이었던 기업을 얻지 못했던 사람들, 과부, 나그네 같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즐거움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누구나 높낮이가 없고 모두가 동일한 값지고 귀한 백성으로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발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다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더욱이 이 잔치는 일주일동안 진행이 됩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미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들의 감사를 나름대로 표현하여 지냅니다. 

오늘 우리가 저녁에 찬양을 준비한 것, 그리고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의 찬송을 나누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동안 달려왔던 길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마음속에 다시 한 번 새겨보며 의미를 다시 새김질 하는 것입니다. 
또 이들은 감사를 드릴 때 말로만 하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16장 16,17절>에 말씀 하신바와 같이 공수 즉, 빈손으로 여호와께 보이지 않고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서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즉, 감사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직인과 사무를 맡은 투철한 청지기로서의 자각과 더불어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활의 실제로 이어져야 함을 말씀하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드림과 더불어 소외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나누어줄 선물을 가지고 옴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께 최선을 드리되 수평적인 이웃에 대하여 나눌 수 있는 사랑을 나눔을 의미합니다. 

오늘 교회에서 준비한 과실이나 우리가 정성껏 드린 추수감사절 헌금을 이웃사랑과 사회복지를 위한 헌금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통하게 됩니다. 
오늘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우리는 이 시대 속에 어떠한 마음을 가지며 감사절을 지키고 감사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첫 번째 생각하는 것은 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속해있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나게 하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것을 땀 흘려 수고하여 얻었다고 해도 땀 흘려 수고할 수 있는 노력의 근거되는 의지력을 누가 주셨으며, 건강을 누가 주셨으며, 지혜를 누가 주셨겠습니까? 
여건을 누가 형성했으며 또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을 누가 붙여주셨기에 우리가 그와 같은 성취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겠습니까? 
즉, 이와 같은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 스스로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닙니까? 
내 마음에 내적인 소명을 주시고 소명에 응답케 하셔서 주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조차도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를 영원한 죽음의 세계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는 죄악으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입니다. 우리의 삶은 암흑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영원한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하므로 우리의 모든 것은 새로운 가능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더욱이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 감사가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가 감사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확인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의 축복의 근원임을 믿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하나님께 대한 인정, 하나님이 나의 주가 되심, 그 모든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계의 확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연관을 의식하고 살아가게 되고 이것이 또 은혜를 받게 되는 비결인 것입니다. 또 은혜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감사의 백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고 내게 베풀어주신 모든 축복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감사야말로 오늘도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와 능력입니다. 

두 번째로 구체적으로 어떤 때에 감사해야 합니까?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오늘 사도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어느 때든지 무엇이든지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때에 감사하라는 뜻입니까? 
기쁘고 감사한 일이 넘칠 때 감사해야 합니다. 
기쁘고 감사한 일이 넘칠 때 처음에는 우리 감사하나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높아져 감사의 마음을 잊고 오만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수고했는데 내가 잠 못 이루고 애썼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 못했고 버둥거리며 수고해서 이와 같이 얻었는데...’ 우리 마음에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의 근원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한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심으로 생명을 주시고 은혜와 자비와 은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낙담의 지경에 수많은 어둠의 세월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고 일어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에게 기쁘고 감사한 일이 넘치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이름은 주님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과 마병의 숫자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일을 위해서 우리의 실력을 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실력을 기른다면 우리의 삶에 생활의 신앙고백이 됩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애써도 몇 년이고 밭 갈고 씨를 뿌려도 몇 년이고 비가오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황무지에서 꽃을 피운다는 것은 우리의 간구와 애씀 끝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발동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의 성취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은 나를 은혜의 도구로 삼아 역사를 이룰 것이니 내가 어떤 일을 잘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라는 마음의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렇게 살아서 안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되는대로 살아서는 안 되죠. 에라 모르겠다라고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한 순간도 정신 차리고 마지막까지 정신을 가다듬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드리려는 마음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삶의 순간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마음의 끈을 놓지 않고 마지막까지 붙잡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고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어떤 것을 이루실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기쁨과 감사한 일이 넘칠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감사하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만방에 선포해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곤고함과 슬픔이 있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과 기대 때문입니다. 내게 어려움이 있습니다. 곤고가 있고 슬픔이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더디고 내게 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게 베풀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과정일 뿐이지 내게 주어지는 것은 결과가 아니니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기뻐할까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엉뚱하게 동문서답할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렇죠? 나는 이런 의도 가지고 얘기했는데 그 사람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여 알아듣는단 말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도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고통을 주실 때 눈물을 주실 때 대체 이 고통과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까? 고통과 눈물을 통해 우리를 더 깊고 폭넓게 만들며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가슴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릇을 넓혀 은혜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함이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곤고와 슬픔이 있을 때도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믿는 믿음이 있는 곳에 우리는 기대가 있고 포기하지 않는 담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우리는 어렵고 곤고한 슬픔이 있을 때 그 사랑을 기대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렵고 곤고한 슬픔이 있어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믿음만 있으면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을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나를 이대로 방치하지 않을 것인데 그렇다면 이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것을 언제든지 생각합니다. 
‘하나님 눈물 한 번 주셨지요. 그럼 기쁨 주실 줄 믿어요. 하나님 제 마음에 가슴 아픔 주셨지요. 그럼 저는 하나님이 위로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사랑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주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더욱이 어떤 때 구체적으로 감사해야 하나요? 
오늘 성경은 평상시 삶의 순간순간마다 감사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를 느낄 때 우리마음에 영적으로 상태는 매우 좋은 상태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은 교만의 지경으로 나가거나 낙심의 지경에 처해지거나 지루한 삶의 기쁨 없는 지경으로 전락합니다. 
날마다 감사가 내 마음에 넘칠 때 우리는 날마다 펑펑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는 것처럼 삶의 새로운 활력 속에 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추수감사절이기 때문에 감사를 이야기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삶속에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너무나 새로울 수 있습니다. 감사의 심정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합시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식구들을 볼 수 있고 저녁에 들어올 때 편히 쉴 수 있는 가정이 있다는 것은 내가 직장에서 일할 곳이 있고 직장을 잃었을 때 잠시 쉬어 충전하라는 뜻인 줄 알고 우리의 삶속에서 각자의 모습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해 하나님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감정은 감사의 심정입니다. 감사를 느낄 때 우리 삶에 최고의 기쁨을 우리는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 번째 우리는 어떻게 즉,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감사를 하나님에게 표현하고 살아가야 합니까?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를 외적인 헌신의 모습으로도 드려야 합니다. 
물론 감사라는 것은 우리의 심정적인 상태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행동이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진심이라는 것은 자신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라고 마음은 있는데 외적으로 아무런 모습의 표현이 없으면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여건에 따라 모양은 다르지만 우리는 실제적으로 외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와 그 교회와 백성을 위한 헌신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소중하게 여기는가 판단해보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집에 누군가 손님이 왔어요. 집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꺼내서 대접하고 싶으면 그 사람은 반가운 손님입니다. 그런데 어떤 손님이 왔을 때 이것은 남겨두었다가 더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 써야지 하고 덜 귀한 것만 대접한다면 그 사람은 별로 반가운 손님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대한다면 내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드리는 것 자체가 기쁨이지요. 
귀한 손님이 초대되었어요. 식사 때가 되어서 밥 한 그릇 더 먹는다면 아깝겠습니까? 
우리 마음에 기쁘고 감사한 대상이 있다면 무엇인가도 공대하고 싶고 드려도 아깝지 않고 드리지 못해서 안타까운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 무엇인가 내 것을 드리고 싶은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봉사도 하고 싶고 헌신도 하고 싶고 다른 이에게 그 사랑을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복음을 전하는 것이죠. 그때의 심정도 내가 이렇게 주를 위하여 사용되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에게 우리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께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계명 두 가지가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까요? 
밥상 차려놓고 “드십시오.”하고 제사음식처럼 드리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구체적인 방법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밥상 차려놓고 하나님 드십시오 라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 밥상을 차려놓고 우리 이웃에게 “드십시오.”라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애 실천이고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모두입니다. 많이 가진 자도 적게 가진 자도 아무것도 없는 자도 그 마음이 허한 사람은 모두가 가난한 자로서 우리의 이웃입니다.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됩니다. 그리고 범위를 넓혀 가면 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다 선교사로 갈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능력이 쌓이고 쌓이면 우리 모두가 우리 삶의 지경에서 진정한 헌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수고와 애씀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고했어요. 잠 못 잤어요. 하고 싶은 것 못했어요. 마음껏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자랑하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이 관대 노력과 의지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마음에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수고한 것을 내 의로 삼는다면 우리는 바리새인이 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내 의를 내세우는 가장 슬픈 자의 지경으로 전락합니다. 


이제 마지막 네 번째 말씀입니다.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우리가 버려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과거에 하나님께 혹은 사람들에게 상황에 대하여 섭섭한 마음이나 억울한 것은 잊어버리고 오히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체험해야만 합니다. 
섭섭하거나 억울한 마음은 의외로 우리에게 오래 남아서 좋지 않은 추억으로 우리를 괴롭힙니다. 
사람에 대하여 원수의 감정을 갖게 하거나 상황을 탓함으로 우리 자신의 잘못을 볼 수 없게 만들고 진보를 가로막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삭감시켜서 기도에 대한 확신도 없고 믿음으로 하는 일에 매사에 자신이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정밀히 따져보면 우리 마음에 섭섭했던 사실은 진심으로 억울한 경우도 있으나 불완전한 내 모습 때문에 다가온 것임을 알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조건, 똑같은 능력으로 수고했는데 왜 저 사람은 잘되고 나는 안 됩니까? 
그 사람의 축복의 분깃일 뿐입니다. 내 분량은 받은 것입니다. 남의 축복의 분깃까지 내가 뭐라 한다면 주권자의 권한에 대한 월권행위입니다.

좋지 않은 형편에서 어떤 일을 잘 하는 것은 불만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감사요, 자부심입니다.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와 영광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의 백성입니다. 내게 어려운 일을 주셔도 나는 이것이 너무 감사하다하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힘을 기울이는 분, 이와 같은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감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다 어렵다면 내게 주어진 기회다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용기를 구하고 기회삼아야 합니다. 

비교해서 좋지 않은 여건이라고 생각하면 이때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시간이고 우리가 빛나게 될 순간이라고 기대해야합니다. 비교해서 섭섭한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은혜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기를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관계는 늘 유동적입니다. 섭섭했다가도 감사하고, 감사하다가고 섭섭해 합니다. 
섭섭한 마음 가지고 꽁하게 대하면 내 불행일 뿐입니다.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어떤 경우도 감사했던 경우를 생각하여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아도 곧 다시 마음을 돌이켜 감사한 때를 기억하자 감사한 것 잊어버리고 불만과 불평, 마음에 싫어하는 마음만 생각하면 우리 삶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감사를 가지면 우리는 건강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 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좋았던 시기를 기억하며 행복해야 합니다.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 아름답게 사랑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부끼리 다투고 나면 한 번 연애했던 장소에 가보시기 바랍니다. 이전의 추억을 살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때의 기분이 어땠는가, 온 세상이 내것같지 않았었는가, 한번 꼭 가보세요.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가며 이러저러한 피해를 끼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원수 삼지 말고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내 삶과 인격에 평생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 각각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에게 내가 그 말 한 마디의 영향 받아서 내 마음속에 어떤 결심을 했고 그것이 나의 삶속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돌이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좋지 않은 생각이 들 때 그러한 생각으로 내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은 더욱 더 귀한 것이 됩니다. 

감사는 표현되어야 합니다. 
침묵이 금이면 감사의 표현은 보석입니다. 
애틋한 감사의 표현으로 서로를 더욱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감사의 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정리를 하고자 합니다. 
제 책상 옆에 메모판에 포스트 잍이라는 메모지에 적어서 붙여놓은 메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득 생각날 때 적어놓은 것들 비교적 오래된 것도 있고 비교적 최근의 것도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다 눈길이 가서 보니 한 귀퉁이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극복해야 될 과제. 
1. 고독 2. 슬픔 3. 분노 4. 아픔 

삶이란 늘 고독과 싸우되 그것을 벗 삼아야 합니다. 
슬픔을 극복하여 반짝이는 삶의 보석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분노를 소화하고 삭임으로 나를 다스려야 합니다. 아픔을 넘어서 그것을 성숙의 디딤돌로 삼아 발전해야 합니다. 
또한 삶은 의미부여라고 생각합니다. 

어제도 제 방에 있는 강아지 인형과 곰 인형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게 생일선물이라고 준 것입니다. 
아이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둘째는 곰 인형을, 셋째는 강아지 인형을 제 생일선물로 사왔습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니 아빠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꼬깃꼬깃 모은 돈 가지고 생일선물로 준비해온 것이죠. 자신들은 초등학교 시절이지만 저는 사십대 남자였습니다. 

이와 같은 인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것을 소중히 바라보며 아이들의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에는 책상 그 위에 올려놓아서 제 방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꼭 그것을 달라고 해서 울어요. 줄 수도 없고 안 줄 수도 없고... 가지고 있다가 나갈 때는 놓고 가라고 얘기하고 그 우는 아이 참 마음이 안타까워서 얼른 가게에서 사서 그 집으로 보내준 적도 있습니다. 

곰과 강아지 인형이란 물건이 아니죠. 그 물건에 담긴 마음의 의미겠죠. 지금 아이들은 그 때 감정을 잊어버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의미를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며 보물처럼 그 순간의 마음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 마음에 이 세상 떠날 때까지 아이들은 잊어버렸을지라도 제 마음은 아이들의 순수했던 마음을 잊지 않고 꺼내보며 미소 지을 겁니다. 요즘은 그래서 아이들이 와서 달래지 못하도록 책상 밑에 놓고 제가 보고 있습니다. 

평생 살다보면 아이들이 제 마음 아프게 할 때도 있고 어렵고 힘들게 할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기억해서 마음에 품고 평생 마음 어려운 일을 사랑의 의미로 덮어 가려고 생각합니다. 
삶은 의미입니다. 비록 삶의 상황이 고통스럽고 아프고 눈물 나고 가슴 아플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사랑과 은혜와 기쁨의 의미를 그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얼마든지 기쁠 수 있고 감사하고 감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렸을 때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하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고백하는 아픔의 순간이 계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선언하시고 극복과 성취의 순간을 맛보십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부활의 영광을 이루셨습니다. 
그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으로 인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주를 믿는 백성은 이제는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죽음의 세계에서 건져져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시련과 고난이 없다면 부활의 영광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인생들에게 생명의 구원과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주실 수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삶의 아픔과 고통과 쓰라림을 당할 때 그것이 비록 내 잘못으로 인한 것이나 아니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거나 그것은 별로 다른 바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건 하나님은 그러한 삶의 아픔과 고통을 통해 그 백성을 세우시고 성숙시키시고 은혜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 의를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게 하시며, 내 주장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간구하게 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그 분이 운용하시고 섭리하시는 우리 삶의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범사의 모든 일에 감사할 일임을 믿고 인정하고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호흡하고 있음을 감사합시다. 
오늘아침에도 너무 심한 통증 때문에 차라리 내 삶을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 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음을 감사합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삶은 흘러갑니다. 
삶의 흘러감은 우리 삶은 얼마든지 새롭고 또 은혜와 기쁨의 자리로 인도하신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대와 소망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내가 어떤 어려움가운데서도 일어남으로 그 누구도 어떤 어려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어야 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원망하거나 한탄하지 말고, 비관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그 모든 것에 감사의 의미를 찾아서 누리고 감격하고 감사하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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