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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버린 돌이 머릿돌 (시 118: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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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돌이 머릿돌 (시 118:22-24)

  
김대리가 출근했는데 로비에서 사장님과 만났습니다. 사장님이, 김대리! 왜 눈텡이가 밤텡이가 됐나? 아내 한데 맞았나? 아닙니다. 버스에서 그랬습니다. 누구랑 싸운 거야? 아닙니다. 아가씨한테 맞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된거야? 차에 오르는 아가씨의 치마가 거기에 끼어 있더라구요 보기에 민망해서 제가 뺐더니 주먹이 날라 왔습니다. 그런데 양쪽 눈이 다 그런 건 뭐야? 그 아가씨가 내릴 때 그 치마를 종전대로 끼워 주었더니 또 치는 겁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에 머릿돌이 되었나니”(22절) 

오늘은 눈덩이가 밤텡이가 된 것이 아니라 버린 돌이 모퉁이 머릿돌이 된 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버린 돌

“건축자가 버린 돌”이란 실제 돌이 아니라 사람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축자란 기득권자요 권력의 실세입니다. 버린 돌이란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선택되지 못하고 탈락된 사람입니다. 축에 끼지 못한 사람입니다. 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의 부류를 축이라고 한다면 버린 돌은 그런 사람들에 축에 못 드는 사람입니다.  
 
자식들을 해병대나 공수부대에 지원하게 하는 부모를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을 강하게 키우기 위한 눈물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 하나뿐인 목사님이 아들을 해병대에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분은 전보다 더 크게 보였습니다. 먼 옛날 애굽의 바로 중에 라암세스 2세는 열 네 살 때 아버지 앞에서 야생황소와 겨루는 단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바로의 자리에 올라 67년 간 애굽을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그렇게 키웠습니다.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아주 잘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버려야 할 아이였습니다. 애굽의 바로가 명하기를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지고 딸을 낳으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아기를 석달 동안 숨겨서 길렀습니다. 아이가 점점 커 가는데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어지자 갈대 상자를 만들어 역청을 발라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고 아기를 거기에 담아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왔다가 갈대 상자를 보고 강에서 건져냅니다. 그 아이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습니다.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다”는 뜻입니다(출2:10). 죽음의 강에 버려졌던 그가 이스라엘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치타는 평균 시속 96킬로미터라는 공식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마음먹고 뛰면 최고 120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어 공포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후 1년이 고비입니다. 표범이나 하이에나의 밥이 되기 십상입니다. 치타의 새끼들은 태어난지 6개월만에 90%가 사라집니다. 맹수로 태어났기 때문에 맹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생존의 위기를 견디며 훈련됐기 때문에 맹수가 된 것입니다. 주는 것이나 받아먹고 자란 가축은 맹수가 되지 못합니다. 버려진 현장이 강하게 키워줍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강하게 태어났다기보다 살아가면서 강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웃라이어들의 공통점은 모두 버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기댈 언덕이 없는 밑바닥에서 홀로 서기를 배운 것입니다. 밑바닥 생활을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교육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훈련장이 밑바닥입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킬 때 등에서 내던져 버립니다. 죽는 것 같은 위험에 버려진 후 하늘의 황제로 만들어집니다.   

  
󰊲 취한 돌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 7:12) 사무엘이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이기고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기념비가 된다는 것은 최고의 영예입니다. 돌로 만들어지고 기념비가 되는 것 같은 영광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안철수 박사는 “평범한 내가 쉽지 않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두 세배 더 시간을 투자한다”고 했습니다. 실력을 갖추니까 오라는데도 많고 투자할 사람도 찾아옵니다. 자기의 몸값을 올려야 취하는 돌이 됩니다.  
  
취(取)했다는 것은 골라서 가졌다는 뜻입니다. 취한 돌이란 선택된 돌입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어 거기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돌 하나를 취하여 베개를 삼고 거기 누워서 자다가 사닥다리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본 사닥다리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천사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곱은 버려져 있는 돌을 취하여 베개로 사용하였습니다. “네가 지금 누워있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자손이 티끌 같이 많아질 것이며 땅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네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창28:13-14) 그 돌 베개에 머리를 올려놓고 하늘에 오르는 길을 보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가 취한 그 돌은 베개로 사용하고 버린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고 일어나 그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베개로 취한 돌이 성전의 기둥이 되었고 그 곳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곳이 성지가 되었습니다. 돌 하나가 만든 기적입니다.  
  
환경을 탓 할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고 나서 가나 출신 버스 기사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흑인들도 전에 상상도 못했던 꿈을 갖게 되었다 이젠 흑인이라서 못한다는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나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내 안에 있는 유전자를 찔러 일깨워주는 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영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하나님의 형상이 자극을 받고 무한한 잠재력이 개발되기 시작됩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1) 다윗이 하나님을 만나 다윗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을 키우십니다. 
                                            
  
󰊳 머릿 돌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고 믿어주는 자를 만나야 합니다. 길가에 버려진 돌을 보고 내 작업실로 옮겨 놓으라 그 속에 잠자고 있는 다윗을 깨우리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조각가를 만나야 합니다. 
  
시력 장애와 청각 장애를 이기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헬렌켈러라는 인물은 그를 믿어주고 그의 잠재력을 꿰뚫어 본 설리반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헬렌이 설리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이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신약에 나오는 핍박자 사울이 예수님의 눈에 띠기 전에는 주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주님은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집에서 다소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아나니아가 대답하기를 “이 사람에 대하여 여러 사람에게 들었는데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에게 받았다나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9:15-16)
  
바울은 유대인으로 이방인을 멸시하는 전형적인 유대인이었는데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의 그릇으로 귀하고 크게 쓰였습니다. 그가 안디옥을 근거로 하여 이방인 전도에 나섰습니다. 
  
그가 한 때는 살기를 품고 죽이는 일을 했던 자이나 예수님이 그를 취하여 쓰실 때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리는 일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니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유대인들까지 굴복시켰습니다.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바울은 성경의 저자가 되고, 신학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를 통해 그리스도가 누구신지가 정리되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23절)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보라 내가 새것이 되었도다!”  
  
일본 전국시대는 누가 천하를 움켜쥐느냐를 놓고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되풀이한 시대입니다. 오다 노부가나라는 패권자는 일본의 카리스마 지도자로 유명합니다.
  
언젠가 노부가나가 전쟁터로 나가는데 그의 영내에서 한 농부가 밭고랑에 누워 코를 골며 잠을 자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부가나의 가신 한 사람이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건방진 녀석입니다. 영주가 전장에 나가시는데 밭고랑에서 코를 골며 잠을 자다니, 저런 녀석은 즉시 목을 베어 본보기를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노부가나는 빙긋이 웃으며 “내버려두어라, 나는 내 영토 안에서 농민이 저렇게 편히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 내가 전쟁에 나가는 이유는 농민들에게 바로 저런 생활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이다. 전쟁은 우리가 할 일이고, 농민은 땅을 일구는 것이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농민을 못 본척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는 무서운 독재자였습니다.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버린다는 일화를 남겼습니다. 자기 변혁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부하는 가차없이 추방했고, 망언이나 배신은 결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국시대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움켜쥐었습니다. 그가 집권하는 목적은 민중을 구원하고 그들을 편히 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다 노부가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정복해야 합니다. 전국시대 같은 혼란에 종지부를 찍을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분과 더불어 먹고 마셔야합니다. 
  
청주 주성대학 창업경영학과는 세계 최초로 교도소 캠퍼스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장기 재소자면 누구나 응시 할 수 있습니다. 합격하면 청주 교도소로 이감시켜 줍니다. 교수가 교도소로 가서 강의를 하는데 학구열이 천도나 된답니다. 그들은 버려진 돌에서 머릿돌로 옮겨질 그 날을 바라보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새 시대가 열립니다. 세상에서 천 날보다 더 좋은 새 날이 시작됩니다. 주의 날이란 주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주의 날이 내 날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내가 변하여 새 사람 된 날입니다.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참 기쁘고 즐겁도다!
  
예수님은 모퉁이 돌, 그가 나를 세워주시고 받쳐주십니다. 하나님은 버린돌이 모퉁이 돌이 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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