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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용사 입다 (삿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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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용사 입다 (삿 11:1-11)

  
한 아들이 태어난지 6개월만에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고 간 것은 결핵균이 전부였습니다. 아기 때부터 결핵성 관절염을 앓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행상을 했는데 계가 깨지는 바람에 빚에 쪼들리다 이이를 버려 두고 가출을 했습니다. 아이는 외가에 맡겨져 초등학교를 겨우나왔습니다. 제멋대로 자란 절뚝발이 아이는 거리를 쏘다니며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렸습니다. 형사 계장 아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돈을 빼앗은 일로 인해 소년원에 다녀온 일도 있습니다. 
  
그 아이를 키운 것은 가정이나 부모가 아니라 길바닥이었습니다. 길바닥에서 망가지고 거기서 만들어져 일어났습니다. 그가 일어섰다는 것은 국회의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이철용입니다. 지금은 교회 장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입다’입니다.

서출로 태어나다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1절) 입다는 기생의 몸에서 태어난 서출입니다. 여종의 몸에서 태어난 이스마엘보다 더 떳떳치 못합니다. 
  
사람이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되는 일 중에 하나가 떳떳치 못한 출생입니다. 기생의 몸에서 태어났으니 기가 꺾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출처란 자기의 의지나 선택으로 결정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적자가 되는 것도 서출이 되는 것도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 아이를 태어나게 한 것이 죄라면 부모의 죄일 뿐입니다. 
  
입다는 누구를 통해서든지 태어났습니다. 부모를 원망해도 세상을 원망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입다는 문제를 안고 출생했습니다. 괄시 천대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기생의 아들이라는 딱지를 달고 다녔습니다. 그를 낳은 생모는 인간이 아닙니다. 자기가 낳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동물적인 본능도 없는 한심한 여자였습니다. 자기가 낳은 아이를 버리고 제 갈 길로 가버린 것입니다.
  
수치심은 열등감의 원인입니다.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근본을 부정하게 하는 무서운 독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포기하는 무서운 결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다는 용감한 사람 큰 용사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에 기드온, 삼손, 다윗, 사무엘과 같은 반열에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고 약속을 받기도 하였다고 칭송했습니다(히11:32-33). 
  
그를 용사로 키운 것은 무엇일까? 좋은 가정이나 훌륭한 부모가 아닙니다. 일류학교나 존경받는 선생이 아닙니다. 그를 용사로 키운 것은 용기입니다. 용사가 되는 첫 걸음은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쫓겨나다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2절) 
  
사람이 가장 비참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버림받는 것입니다. 버려지는 아픔처럼 큰 고통은 없습니다. 입다를 내쫓으며 했던 말처럼 속을 쑤셔놓는 말이 없습니다.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너는 아버지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자의 연을 끊어 낭떠러지로 떨어뜨린 것입니다. 
  
그는 맨 땅에 버려진 것입니다. 입다는 두 번째 버려졌습니다. 태어나서는 어머니가 그를 버렸습니다. 이제는 본 부인의 아들들이 또 버렸습니다. 이복형제들이 내 쫓아 버렸습니다. 
  
버림받으면 큰 충격을 받습니다. 나 같은 것 살아서 뭐하나! 죽어 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자포자기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사람에 따라서  반응이 다릅니다. 상처가 고통인 것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상처가 실패의 원인일 수 도 있고 성공의 동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진주는 상처가 만든 보물입니다. 상처받지 않은 조개는 진주가 될 수 없습니다. 상처받은 자리에서 나온 액체가 굳어 영롱한 진주가 된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에서, 진정한 치유자는 상처를 입고 치유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상처가 남을 치유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픈 상처가 있는 사람이 아픈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돕 땅에 거주하다
  
“이에 입다는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3절) 돕 땅에 사는 입다에게 찾아온 사람들은 잡류였습니다. 잡류는 잡념을 가지고 잡담이나 하는 부류들입니다. 행동 없이 말만 하는 사람을 잡초라고 합니다.  
  
일류가 있고, 삼류가 있는데 이류도 삼류도 안 되는 잡류들에게 둘러 싸여 있습니다. 풀도 잡초가 있고, 나무도 잡목이 있습니다. 개도 잡종이 있고, 사람도 잡류가 있습니다.  
  
잡류가 무엇입니까?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입니다. 불량하고 무가치한 부류들, 가치 없는 비루들입니다. 그들 속에도 행복이 움츠리고 있습니다. 거기도 사람 키우는 공간은 있었습니다.  
  
‘아웃라이어outlier’라는 단어의 뜻은 집 밖에서 사는 사람, 노숙자, 본체에서 분리된 물건입니다. 입다는 아웃라이어 입니다. 그의 친구가 잡류인 것을 보면 그도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잡류들의 장점은 야성입니다. 거리에 굴러다니며 자란 사람은 잡초 같이 억세고 강합니다. 좋은 환경은 야성을 키우지 못합니다. 하우스에서 자란 화초는 아름답지만 유약합니다.    바람에 부딪치고 짓밟히며 자란 잡초는 확실히 다릅니다. 꽃도 자연 속에서 해풍을 받으며 자란 야생화가 아름답습니다.  
  
악기를 만드는 목재는 팔풍받이 고산에서 자란 나무에서 가장 높고 고상한 공명이 나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구부러지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장의 눈에 띄어 명장의 손에서 명기가 됩니다. 
  
입다는 잡류들과 어울리는 한심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겉으로 보이는 입다입니다. 그러나 그를 용사로 만들어 낸 곳은 “돕”이라는 땅입니다. 
  
“트리핑포인트tripping point”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가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실수를 통해 깨닫는 순간을 말합니다. 어느 분야이건 밑바닥이 있습니다. 창업자들은 모두 밑바닥에서 시작했습니다. 자기만의 방식이 있습니다. 입다느 맨땅, 맨발, 맨손의 사나이입니다. 곱게 자라면 곱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세상이치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험하게 키우고 엄하게 키우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장관으로 부름 받다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6절) 쫓겨난 서출에게 장관이 되어 달라는 요청이 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했기 때문입니다(4절).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하니까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고 했습니다. 우두머리가 되어 민족의 위기를 해결할 자로 여긴 것입니다.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삿10:18)
  
머리가 되려면 머리가 있어야 합니다. 머리에 들은 것이 없는 자가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머리는 육체의 힘과 지적인 능력과 용기를 가진 자입니다. 백성들이 머리가 되어 달라는 것은 입다가 암몬을 물리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지휘관으로 여긴 것입니다. 군대를 통솔할 만한 지휘관이 없었던 때에 입다는 자기에게 찾아오는 잡류들 속에 통솔력을 배웠습니다. 
  
입다는 자기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굴욕과 천대를 증오와 보복으로 대항했다면 그가 어찌 사사가 되었겠습니까? 길르앗 장로들 좀 보세요. 쫓아 낸지 몇 년 만에 입다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장로들이 입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자기들이 입다에게 주었던 굴욕보다 더 큰 굴욕이었습니다. 
  
입다를 따르는 잡류들이 비록 성격이 난폭하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 같지만, 입다가 지닌 지도력과 고상한 인품에 이끌렸던 것입니다. 마음이 끌리는 품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슬기로운 종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주인의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형제들 중에서 유업을 나누어 얻으리라”(잠17:2) 입다는 비록 서출이었고, 쫓겨난 자였지만 민족의 위기를 막아낼 능력과 슬기가 있었습니다. 사치와 영웅은 같은 고장에서 태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입다는 돕 땅에 머물며 함께 했던 잡류들 속에서 영웅으로 태어났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말하다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11절) 이 말씀은 길르앗 장로들이 자기를 찾아와 제안했을 때 그 일을 하나님과 상의했다는 말입니다. 그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과 상의했고 자기 결심을 하나님께 아뢰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와서 보니 입다를 키운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상의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아픔을 그의 눈물을 하나님이 갚아 주셨습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16:1) 
  
입다는 말의 중요성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께 말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이루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입다는 장로들의 제안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먼저 입다는 조심스럽게 암몬과 협상을 펼쳤으나 결렬되었습니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전쟁에 나가려 하니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셨습니다(29절). 여호와께서 암몬 자손을 입다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입다에게 임한 여호와의 영은 곧 전쟁의 영이었습니다.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완전 항복했습니다(33절).        

입다는 서출입니다. 쫓겨난 자였습니다. 주류사회에 진입할 수 없는 변두리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버려진 땅에서, 잡류들이 머무르는 맨 땅에서 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누더기 속에서 영웅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입다는 개천에서 나온 용입니다. 그는 장관이 되어 달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입다는 그 부름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기게 하시고, 사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입다는 침공해오는 암몬 자손을 물리쳤습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는 평범했던 자가 성령이 임하시면 비범해지고 용사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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