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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시 5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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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줄 아는 사람 (시 50:22-23)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에서 ‘항상 기뻐하라, 수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항상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과연 항상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일은 가능한 일인가요? 그것이 가능한 일이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며 행복하게 사는 일은 가능한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을까요? 범사에 감사하면 가능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과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같은 말씀입니다. 늘 감사할 수 있으면 늘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보다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감사하며 살라고 하면 세상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느냐며 세상과 환경과 여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만 좋아진다면, 여건만 좋아진다면 누가 감사하며 살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는 세상과 환경과 여건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50년 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였습니다. 60년대 초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80불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우리나라는 250배 가량 발전했습니다. 세상에 지난 50년 동안 우리나라만큼 급속하게 발전한 나라는 세상에 몇 없습니다. 

저는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까지 방안에서 얼음이 어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74년도에 처음으로 선풍기를 들여 놓았고, 텔레비전은 76년도에 들여 놓았습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보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전화는 78년도에 처음으로 놓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 텔레비전과 전화가 있으면 부자였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우리는 지금 왕같이 살고 있습니다. 세상과 환경과 여건이 우리만큼 많이 변하고 발전한 나라도 세상에 몇 없습니다. 감사가 세상과 환경과 여건 때문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나라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감사보다는 불만이 더 많지 않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입니다.

감사하며 살 줄 알면 항상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우리는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일까요? 우리가 감사할 줄을 모르며 사는 까닭은, 그리하여 복을 받으면서도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 줄 모르는 까닭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죄를 가지고 있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욕심 때문에 우리는 만족을 못합니다. 만족을 못하니 감사할 수 없고 감사할 수 없으니 기쁠 수 없는 것입니다. 욕심이 끝이 없으니 50년 전보다 250배나 넉넉하게 되었으면도 은혜를 모르고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림은 250배나 여유로워 졌는데도 기뻐할 줄 모르고 행복할 줄 모르며 그때나 지금이나 늘 불만하며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뿌리는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착각하는 마음입니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했을 때 한 말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네가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이었습니다. 하와는 스스로 하나님이 된다는 말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하와의 후손인 우리 인간들에게 자기가 마치 하나님인 것과 같이 착각하는 중대한 어리석음이 본능처럼 있습니다. 때문에 세상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여 삶이 발전해도 그것이 다 자신 때문이라고 대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감사하려면 욕심을 버려야만 합니다. 욕심을 버리면 작은 일에도 만족할 수 있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욕심을 채워야 행복해 지는 줄 알지만 사실은 반대입니다. 욕심을 버려야만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욕심을 버린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욕심을 버리려면 가치관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가치관이 바뀌면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막내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하기 시작한 말 중에 하나가 100원이었습니다. 형들과 함께 100원을 들고 가게에 가서 그것으로 사탕도 사고 장난감 시계도 사면서 100원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그 가치에 대한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100원, 100원이라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로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막내가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며 ‘100원’ 그랬습니다. 100원을 주려고 주머니를 뒤져 보니 100원 짜리가 없었습니다. 500원 짜리 동전이 손에 잡혔습니다. 이놈 수지 맞았다 생각하면 500원 짜리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막내가 손 바닥 위에 그 500원 짜리를 올려 놓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었습니다. 돈 같기고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가 웃었습니다. 제가 웃는 모습을 보고 막내가 오해하였습니다. 아빠가 돈 아닌 것을 가지고 장난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500원 짜리 동전을 방바닥에 내 던지곤 다시 손을 내밀어 100원을 외쳤습니다. 

그때는 500원의 가치를 몰라서 그랬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500원 짜리 동전 과 100원 짜리 동전을 놓고 둘 중에 하나만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면 서슴없이 500원을 위하여 100원을 버릴 것입니다. 500원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되면 100원에 속한 가치는 즉 욕심은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려면 가치관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가치관이 바뀌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가치관이 바뀔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면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뀝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인하여 세상의 모든 자랑과 욕심을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사람이 거듭나게 됩니다. 사람이 거듭나면 가치관이 바뀝니다. 가치관이 바뀌면 바뀐 가치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며 늘 행복한 천국의 삶을 살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성령 받는 것은 쉬운 일일까요 어려운 일일까요? 성령은 받는 일은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령을 받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 하시며 그렇게 하면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오순절날 성령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으로부터 저들이 성령을 받은 오순절은 정말 며칠이 안 되었습니다. 계산을 해보면 일 주일 미만의 기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을 사모하고 기도하면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을 받은 초대교인들에게서 나타난 중요한 현상이 무엇입니까? 욕심이 없어졌습니다. 누구도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필요에 따라 함께 나누어 썼습니다. 당장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그곳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천국이 있었습니다.

욕심을 버리려면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에게 어떤 힘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큰 소리를 잘 칩니다. ‘내가 어디 가서 밥 세끼 못 먹으랴?’ 저도 그렇게 말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것이 교만하고 어리석은 말과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편 127편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이 말씀에 은혜를 받으며 저는 제가 하나님 아니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지무능한 자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으니 은혜가 되었습니다. 하루 밥 세끼를 먹는 것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모르고 감사를 모른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은혜와 감사를 잊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잊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고 그냥 그대로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찢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가 찢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하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 비유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찢겨지면 우리는 죽은 목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본문 23절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아멘.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사람이라고 본문에서 표현하고 계십니다.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즉 다시 말해서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원은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곳은 항상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만족한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도 보며 살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까닭은 세상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 욕심 때문에 말도 못한 은혜와 축복을 받았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과 불만과 원망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지 못하며 사는 까닭은 우리가 평생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며 기도하기 이전에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땅에 살면서도 하늘 봄으로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감격하며 사는 천국의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느 사도보다 많은 수고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 된 것은 자기 때문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평범한 말씀 같으나 매우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되지 않아 은혜와 축복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자기의 자기 된 것이 자기의 노력과 수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모릅니다. 그래서 감사를 모릅니다. 그래서 기쁨을 모르게 되고 행복을 모르게 되고 구원의 삶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골로새서 3장 15절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감사하는 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축복을 누림으로 이 땅에서도 항상 기뻐하며 천국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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