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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스러운 새 성전의 비전 (겔 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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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새 성전의 비전 (겔 40:1-4)


서론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년 정월 십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겔40:1) 에스겔이 사로잡혔다는 것은 여호야긴 왕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인데, 포로가 된 때는 B. C. 598년입니다. 598년에서 25년이 지났으니까 이 이상이 임한 때는 B. C. 573년입니다. 그리고 성이 함락되었다고 했는데 이 성은 예루살렘 성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때는 B. C. 587년이고, 14년이 흘렀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이상이 임한 때가 B. C. 573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에스겔 선지자가 B. C. 573년에 이 비전을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어도 하나님이 임하여 비전을 주시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디 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임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여기 에스겔이 본 이상은 아홉 개의 장으로 내용이 길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의 핵심은 성전이 회복될 것이며, 예배가 회복될 것이고, 이스라엘 땅이 회복되리라는 것입니다. 내용이 어려워서 유대인들도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에스겔 40~48장을 읽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 본문을 읽고 무슨 뜻인지 물어보면, 부모들은 엘리야 선지자가 오면 가르쳐 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부모들도 모르고, 유대인들도 모르고, 성서 해석학자도 잘 모르는 대단히 어려운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기 때문에 피해서 지나가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은 에스겔 40~42장을 중심으로 에스겔 선지자가 받은 새 성전 비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여호와의 권능에 이끌려서 이상 중에 이스라엘 땅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에스겔의 영혼을 끄집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에스겔의 육신은 바벨론에 있고, 영혼은 성령에 이끌려 이스라엘 땅으로 가서 환상을 본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체험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극히 높은 산에 내려놓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시온산은 해발 750m입니다. 높은 산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산을 극히 높은 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이 시온산으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시온산은 종교(宗敎)의 핵심이 되는 산이기 때문에 극히 높은 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극히 높은 산에 내려다보니 성읍 형상 같은 것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성읍 형상이 에스겔이 본 새로운 성전이 환상입니다. 그리고 놋 같이 빛나는 사람이 손에 척량기구를 들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삼줄을 들고 있고, 또 한 손에는 장대가 있습니다. 이 장대는 작은 장대가 아니고 여섯 척이나 되는 큰 장대입니다. 한 척의 길이가 45cm 정도 되지만, 성전을 척량하는 한 척의 길이는 55cm 정도 됩니다. 놋 같이 빛나는 사람이 잡고 있는 장대는 여섯 척이라 했기 때문에 3,3m입니다. 즉 삼줄과 장대를 가지고 성전을 척량하는 것입니다. 

놋 같이 빛나는 사람에 대해 학자들은 천사라고 하고, 어떤 이는 성육신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라고도 말합니다.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인간이 아닌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분이 에스겔에게 말씀합니다. “에스겔아, 너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여 이것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증거해라”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Ⅰ. 새 성전의 이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담’은 동서남북 정사각형으로 되었고, 한 면이 500척(275m)이고, 높이는 6척(3.3m)이고, 넓이는 6척(3.3m)입니다. 엄청 큰 담입니다. 동문, 남문, 북문이 있고 서쪽에는 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쪽에는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은 대문처럼 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깥문과 안문이 있습니다. 바깥문과 안문 사이를 문간이라고 하는데 문간의 길이가 50척(27.5m)입니다. 문간에는 방이 양쪽으로 각각 세 개씩 있습니다. 합 6개 입니다. 이곳은 문지기가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담은 무슨 목적으로 쌓은 것입니까?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 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겔42:20) 이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새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동문, 남문, 북문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일곱 계단을 올라가야 갑니다. 그리고 여기에 뜰이 있는데 바깥 뜰, 안 뜰, 성전 뜰이 있습니다. 안 뜰에서 성전 뜰로 들어가는 문도 동문, 남문, 북문 세 개가 있습니다. 바깥문과 구조가 같습니다. 그리고 안 뜰 문간에는 제사장이 살고 있습니다. 또 안 뜰에서 성전 뜰로 가는 계단은 여덟 계단입니다. 여덟 계단을 올라 문을 통과하여 안 뜰로 들어가게 되면 제단과 성전이 있습니다. 

이 성전은 세로가 100척(55m), 가로가 20척(11m)입니다. 성전의 2/3는 성소라고 하며, 1/3은 지성소라고 합니다. 성전 좌우로는 방들이 많이 있는데, 이 방은 제사장이 사는 곳입니다. 방들 뒤에 또 방이 있는데, 제사장의 부엌입니다. 백성은 네 귀퉁이마다 있는 부엌에서 밥을 해 먹습니다. 이것이 에스겔이 본 성전인데, 이 성전 안에 들어가면 벽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벽화는 모두 종려나무 그림입니다. 종려나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생명과 풍요, 영광과 승리를 의미합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과 다른 성전은 무엇이 다릅니까? 제1성전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입니다. 원래 다윗 왕이 성전을 짓고 싶어 했지만,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짓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재료를 준비하고 아들인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솔로몬 성전이 유다 백성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 B. C. 587년에 느부갓네살 왕이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은 B. C. 539년에 고레스 칙령으로 돌아와 B. C. 516년에 성전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 성전을 제2성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또 예수님 당시에 헤롯 대왕이 스룹바벨이 성전이 작다고 하여 증축했습니다. 이 성전을 제3성전 헤롯 성전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성전들과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의 비전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다른 성전들에도 뜰이 세 곳이 있지만, 이름이 각각 다릅니다. 바깥에 있는 뜰은 이방인의 뜰, 안에 있는 뜰은 여인의 뜰, 더 안쪽에 있는 뜰은 유대인 제사장의 뜰 혹은 남자의 뜰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에스겔 성전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철폐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철폐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남자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여자고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방인도 구원하십니다. 
 
둘째, 에스겔이 본 성전 안에는 떡 상, 금 촛대, 분향 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의 떡과 빛이 되시며, 자신이 대제사장으로 기도를 올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에스겔이 본 성전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피 흘려 속죄함으로 인해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고,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에스겔이 본 새 성전에는 지성소 안에 언약궤가 없습니다. 그룹 천사가 지키지도 않습니다. 법궤 안에는 원래 세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모세가 받은 십계명의 두 돌비,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가 들어 있습니다. 

에스겔이 본 이 성전에는 언약궤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율법을 다 이루시어 우리를 불순종의 저주에서 속량 해 주셨고,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만나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성전 안에는 그림자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던 것들은 다 없어졌습니다. 또 물두멍도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었는데 이제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아 정결함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물두멍이 필요 없습니다.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은 구약 시대의 성전이 아니라 신약 시대의 성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Ⅱ. 새 성전에 대한 해석

 1. 문자적으로 해석은 불가능하다.
 
에스겔이 본 것은 환상이지 육신의 눈으로 물리적인 성전을 본 것이 아닙니다. 환상을 영적으로 해석해야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새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온다고 했습니다. 이 생명수는 발목을 적시고, 가슴을 적시고, 온 천하가 헤엄칠 수 있는 물이 흘러나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겠습니까? 문자적인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문자적인 해석을 하는 세대주의자들도 이것은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복음이 생명수가 되어 천하 만민을 구원한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도 문자적인 해석을 포기하고 영적인 해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스겔의 새 성전은 과거에도 지어진 적이 없습니다. 또 앞으로도 이런 성전을 짓는 다고해도 성전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전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2. 일부 유대인(성전협회)과 세대주의자들은 아직도 문자적, 미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재 모슬렘 성전이 지어진 곳에 모슬렘 성전이 헐리고, 에스겔의 성전이 지어질 것을 기다리고 있는 세대주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대인 중 어떤 사람들은‘templeinstitute(성전협회)’라고 하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나중에 예루살렘에 이슬람 성전이 파괴되고, 새 성전을 지으려면 재료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면서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에스겔이 이상 중에 본 성전을 미래적, 문자적으로 결코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3. 바른 성서적인 이해

우리는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스가랴 6:12-13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학개와 같이 포로기 이후의 예언자입니다. 스가랴는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 “ 순이(the Branch)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떤 성전을 건축했습니까? 

이 예언은 요한복음 2:19-21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메시야가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전이 예수님의 육신이고, 예수님의 육신은 죽었다가 부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성전임을 증거하고 있고, 교회도 참 성전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이방 성도들도 역시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엡 2:19-21) 우리가 돌입니다(벧전 2:14). 우리는 성전의 한 돌입니다. 돌이 쌓이고 쌓여서 거룩한 집이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교회요, 제사장은 성도요, 제사는 참된 예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Ⅲ. 새 성전의 실천적 의미

새 성전 안에는 거룩한 사람만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새 성전 밖에는 속된 것들만 있습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들을 분리하는 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어 새 성전 안에 들어온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새 성전 안에 들어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까? 종려나무가 상징하는 것처럼, 즉 영원한 생명, 영원한 축복, 영원한 승리가 새 상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 있으면 영원한 생명, 축복, 승리가 없습니다. 지옥에 가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새 성전은 그냥 들어오지 못합니다.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 예수 믿지 않은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전 안에 들어왔다 할지라도 바깥 뜰에만 있으면 안 됩니다. 안 뜰로 들어가야 하고, 여덟 계단을 넘어 성전 뜰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을 바깥 뜰에만 머무르게 하면 안 됩니다. 안 뜰로, 성전 뜰로 들어가는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성전 뜰로 가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한 번도 성령 체험을 못 한 사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바깥 뜰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면 사람은 변화됩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한 번만 경험해도 변합니다. 그러나 평생 예수 믿어도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인지지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해 주실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사람은 변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기쁠 때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입니다. 그리고 성전 안 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끌고 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와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결론

바벨론에 포로가 된 유다 백성은 칠십 년에 후에 돌아간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칠십 년이 되기 전에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여기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지금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어도 이 성전에 거할 백성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것이 백성에게 소망이 되었습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죄악으로 멸망해 가는 세상에서 교회가 없으면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데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소망이 없으면 인생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이 죄악 된 세상에서 유일한 소망은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다른 것들은 거짓된 소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교회를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사업을 해도 주일에 일하는 사업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 공부를 해도 교회에서 해야 합니다. 교회 밖에서 공짜로 가르쳐 준다고 하는 사람 중 정상적인 사람을 못 봤습니다. 
 
이 성전을 보면 규격이 너무 정확합니다. 하나님은 대충대충 하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정확하게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는 정확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대충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위대한 법칙을 주셨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죄로 심은 것은 죗값으로 거두고, 기도로 심은 것은 은혜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정확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소망을 두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교회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깥 뜰에만 머무르지 마시고, 성전 뜰까지 나아가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하는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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