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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계속에서 희망을 만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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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속에서 희망을 만진 여인

▶성경본문: 막5:25-34

아프리카의 밀림지대에 파견된 어느 병사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소속되어 있던 부대는 밀림 한가운데서 적들에게 포위당해서 그 병사만 남고 모두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6개월 뒤 그 병사는 홀홀단신으로 밀림을 헤쳐 나와 구조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조된 그 병사의 손에는 지도 하나가 꼭 쥐어져 있었습니다. 어떤 지도였을까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손에 꼭 쥐고 있던 그 지도가 밀림의 지도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펼쳐 보인 종이에는 밀림의 지도가 아닌 영국의 지하철 지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밀림의 무더운 날씨와 맹수들 그리고 그의 목숨을 노리는 수 많은 적 들 가운데서도 그 지도를 보면서 나는 반드시 살아서 영국으로 가야 한다. 나는 반드시 살아서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의 희망대로 그는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어쩌면 아프리카 밀림 한 가운데에서 무더운 날씨와 수 많은 맹수들 그리고 우리의 목숨을 노리는 수 많은 적들 가운데 홀로 남겨진 채 언제 죽을 지 모를 너무도 힘들고 외롭게 홀로 싸워야 하는 그 병사와 같이 그렇게 힘들고 어렵고 무거운 인생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으십니까? 

그러나 너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 영국의 이름 모를 한 병사의 손에 들리 워져 있었던 건 단순히 영국의 지하철 지도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오늘 우리의 손엔 그 영국 지하철 지도와 비교할 수 없는 절대희망의 지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절대희망지도가 무엇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이 믿고 있는 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이 성경 속에는 절대포기와 절대좌절의 상황 속에서 도저히 아무 희망도 아무런 변화와 회복도 기대할 수 없이 몸부림치며 힘겹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떻게 절대희망과 절대기쁨의 삶으로 변화될 수 있었는가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여인도 바로 그런 주인공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5장25절 이후에 등장하는 이 여인은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이 여인은 한 마디로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던 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망하고 또 절망하여 더 이상 더 절망 할래야 절망 할 수도 없는 절망의 한계상황에 이르러 있던 여인이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 이름 모를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왜 그토록 깊은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어야 했을까요? 
25절, 26절 말씀을 읽어보면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이 그토록 깊은 절망의 한계상황에서 더 이상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혈루증이란 쉽게 말해 하혈을 하는 병인데 요즘 말로 하면 자궁암과 같은 병으로 끊임없이 피를 쏟아내야 하는 그야말로 여인으로서는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그런 고통스러운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상의 고통보다 그 여인을 더욱 힘들게 하였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 당시 이 혈루증은 바로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여겼던 유출병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레15장25절 이후의 말씀을 보면 이 부정한 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되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도 없었고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었으며 심지어 가족들과도 격리될 수 밖에 없었던 그야말로 저주 받은 질병이요, 부정한 질병이 바로 이 혈루증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25절에서는 이 여인이 혈루증을 앓은 시간이 열두해였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중의 아파보신 분, 그리고 주위에 아프신 분을 지켜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1년 2년도 아니고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누군가 큰 병으로 몸 저 눕게 된다면 그 고통은 그야말로 말로 다 표현을 할 수 없는 심각한 고통이 됩니다. 오죽하면 긴 병에 효자없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이겠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이 여인에게도 또 가족들에게 실날 같은 희망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약을 써보면 낫겠지, 저 의원에게 가보면 낫겠지 하면서 하면서 실날 같은 희망을 안고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써보고 용하다는 의원을 다 찾아보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더 큰 실망감과 좌절감 그리고 치료과정에서 찾아오는 더 큰 괴로움과 물질적인 큰 손해였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이라는 단어와는 너무 동떨어진 절망의 끝자락을 붙잡고 그야말로 죽지 못해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을 지 모릅니다. 
성경은 26절 말씀에서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절망의 한계 상황속에서 이제는 아무런 희망없이 죽을 날만을 고대하며 살아가던 이 여인은 끝내 그런 비참한 인생으로 그의 인생을 마무리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34절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보니 이 여인은 구원을 받게 되었고 또한 건강을 회복하는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여인은 그 지긋지긋한 절망의 한계 상황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주인공으로, 새로운 축복의 주인공으로 변화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 모두 역시 절망의 한계 상황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축복의 주인공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혈루증 여인이 절망의 한계 상황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축복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첫 번째 계기가 되는 결정적 사건은 따라해 봅시다. 듣고입니다. 
27절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게 된 것이 그 여인이 절망의 한계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으로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지 않았다면 이 여인은 아마도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아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금까지보다 더 절망적이고 안타깝고 비참한 인생으로 그의 인생을 허비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기에 그녀는 새로운 인생으로의 출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에 대한 소문, 즉 복음 즉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지만 한 병사에게 영국의 지하철 지도 한 장이 소망의 능력이 되었을진대 하물며 살아계신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능력이 될 수 없겠습니까?  
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때 죽음 속에서도 살아나는 놀라운 주의 은혜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말은 제 말이 아닙니다. 우리 같이 성경을 찾아보죠? 요5:25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치유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음을 믿기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회복의 역사가 있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변화의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부흥의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10: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역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안디옥 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이름 있는 선생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우리 아이는 워낙 총명해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입니다. 가르침을 부탁 드립니다”하고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그 어머니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아이 매우 똑똑하죠?” 그 때, 선생님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아이가 말씀하신대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이긴 합니다만 문제는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무엇이겠습니까? 
누가복음 10:38절 이후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루는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이르러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저녁 준비에 매우 분주했으나 그의 여동생 마리아는 저녁준비는 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 옆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참다못해 불평의 소리를 합니다.“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맡기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도우라고 일러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야, 마르다야”하고 화난 그를 두 번씩이나 다정하게 부르시며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을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한가지이다. 마리아는 그 많은 것들 중에 참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라고 오히려 마리아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가 택한 그 한 가지가 무엇입니까? 바로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좋아하는 한 가지 즉 말씀듣는 것을 늘 선택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이 여인이 희망의 사람으로 변화 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따라해 봅시다. 와서  
그것은 바로 27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가 예수께로 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중에 예수의 소문을 듣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수가 어떤 분이지, 예수를 만나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하는 예수에 대한 소문을 수 십번 수 백번 듣고 평생을 살지만 그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도 실제로 예수님 곁에 다가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여인은 희망의 여인으로 결코 변화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갈수록 영성을 잃어가고 침체되어 마치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그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앞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데이 크리스천이란 말이 왜 나왔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를 만나기를 사모해야 하고 예수를 만나기를 기뻐해야 하고 그 분을 만남을 통해 행복을 누려야 하는데 일주일에 한번 예수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하고 문안 인사드리는 식으로 해서 어떻게 우리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며 절망의 한계상황에 다다른 우리의 삶 속에 새로운 희망의 빛이 비출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화되는 삶을 살기 원하신다면 예수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살 길이요, 이 나라와 민족이 살 길이요, 우리 교회가 살 길이요, 내가 살 길 인줄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밤에 예수님 만나기 위해 오신 여러분들은 참 잘 오셨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해보시죠? 

여러분,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 예수님이 오심으로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히10장19-2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심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무엇입니까? 성소에 휘장이 찢기워진 사실입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기워짐으로 말미암아 구약시대에는 일년에 오직 1차례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던 그 하나님의 지성소를 향해 모두가 나아갈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음을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다시 말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심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새롭고 산 길 그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뻥 뚫려 목포까지 4시간이면 갈 수 있는데도 옛날 논두렁길로 걸어서 목포까지 한 달 두 달 걸려 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사람을 향하여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예수님 앞으로 은혜의 보좌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영적 고속도로가 뚫려있음을 믿으신다면 그 길을 따라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는데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히10:25절 말씀에 보니 말세가 되어갈 수록 사단은 바로 이것을 못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이기를 폐하게 하는 사단의 계략에 휩쓸려 모이는 일을 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그 예배의 시간을 사모하고 소중히 여기며 무엇보다 그 시간을 지킬 줄 아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예배의 시간을 지키는 그 사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지키십니다. 
지금까지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사람의 이름을 아십니까? 그는 바로 록펠러입니다.록펠러는 평생을 살면서 역사상 세 가지 기적을 일으켰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기적은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자가 가장 부유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기적은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남에게 주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기적은 장수입니다. 그는 98세까지 살았는데 치아가 하나도 썩지 않고 깨끗하고 건강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록펠러가 이런 놀라운 3가지 기적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그가 믿음으로 산 사람이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주일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갔으며, 성경을 매일같이 읽었고, 늙어서 눈이 어두워졌을 때에는 성경을 읽어 줄 사람을 채용해서 귀로 성경을 들을 정도로 그는 말씀을 가까이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를 사모하시고 그 시간을 반드시 지키실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키시고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가장 아름답고 복되게 인도해주심을 믿습니다. 

세 번째, 이 여인이 절망의 한계속에서 희망을 만질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대니 바로 만짐 즉 터치였습니다. 
27절 다시 한번 보시면 이 여인은 예수님 곁에 와서 그냥 있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 자락을 만졌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 곁에 왔던 사람은 이 여인 혼자 였을까요? 아닙니다. 
24절에 보니 큰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 밀 수밖에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으로 와 있었습니다. 31절에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리가 에워싸 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물으십니까? 라고 하는 것을 볼 때 그 당시 예수님의 주위에는 정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수 많은 사람들 모두가 희망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 주위에서 예수님을 에워싸 밀던 그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절망의 한계상황을 뛰어넘어 새로운 희망을 경험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바로 이 이름 모를 여인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습니까? 예수님의 옷 자락을 만지는 터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이 사건은 단순히 예수님의 옷자락을 한번 만진 그것이 아님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단순한 터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28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간절한 믿음의 표현으로의 절박한 터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히11:6절에 보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즉 바라는 것 그것이 실상으로 내 앞에 서 있음을 믿는 것이요, 보이지 않는 그것을 보이는 것처럼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여인에게는 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 비록 지금까지 십 이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혈루증을 앓으면서 비참함과 외로움과 고통과 손가락질과 가난함과 눈물과 한숨속에 살아왔지만 오늘 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만질 때 저 분이 내 인생을 변화시켜주실 것을 믿는다. 저 분만이 내 삶을 희망으로 바꾸어주실 것을 믿는다 하는 그 믿음이 있었기에 이 여인은 그 믿음대로 절망의 한계상황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이 믿음이 있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주님 앞에 왔습니다. 이렇게 동일한 공간속에서 똑같이 어떻게 보면 성경의 그 무리들처럼 예수님을 에워싸 밀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는 것은 예수님 주위에서 예수님을 에워싸 이러 저리 미는 그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찬양 하니까 입을 벌리고 남들이 기도하니까 눈 감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러 저리 밀린 채 아무 의지 없이 그냥 왔다가 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 정말 원하고 바라시는 것은 정말 예수님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 예수님만이 나를 낫게 하실 수 있다. 예수님만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수님만이 내 희망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지는 그 믿음의 터치를 원하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늘 오던 기도회인데.. 늘 상 하던 기도인데.. 지금까지 몇 년 몇 십년이 되어도 별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성경속의 이 사건은 성경속의 사건이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치유의 역사가 회복의 역사가 구원의 역사가 있을 수 있겠어... 그건 그때 시대나 있었던 일이지.. 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겐 오늘 이 밤 기도회 시간도 또 그저 그런 시간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여인이 만난 예수님이 수 천년 전 이 여인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간 나에게도 반드시 역사해주심을 믿는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절망의 한계 상황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으로 변화되길 소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성도들이 있다면 살아계신 예수님은 이 천년 전 이 여인에게 뿐만 아니라 동일한 믿음으로 옷자락을 만지는 그 사람을 위해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놀라운 구원을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놀라운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앞에 가지고 온 혈루증은 무엇입니까? 애를 쓰고 수고를 했어도 고칠 수 없었고 해결할 수 없어서 이제는 아무 희망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 혈루증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 중의 어떤 성도는 오랜 시간 낫지 않는 질병의 혈루증을 가지고 왔을 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 중의 어떤 성도는 오랜 동안 해결되지 못한 경제적 문제의 혈루증을 가지고 왔을 지 모릅니다. 오늘 또 우리 중의 어떤 성도는 오랜 시간동안 해결되지 못한 사람들과의 관계의 혈루증을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또 차마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정말 고통스럽고 힘겨운 그런 문제의 혈루증을 가지고 왔을 지 모릅니다. 직장을 위하여 결혼을 위하여, 학업을 위하여 사업을 위하여 그토록 애를 쓰고 몸부림쳐왔는데 오히려 더 많이 힘들고 지쳐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것이 어떤 종류의 혈루증이든, 그것이 몇 년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던 혈루증이든, 이제는 더 이상 고통당하며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예수님 곁에서 떠밀리라다가 그냥 예수님 주위를 떠났던 무리들처럼이 아니라 예수님이 아니면 고칠 수 없다.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다라는 간절하고 절박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그 여인의 믿음처럼 우리가 그 예수님을 동일한 우리의 주님으로 믿고 기도 가운데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때, 믿음으로 터치할 때 여인의 혈루근원이 말랐던 것처럼 우리의 모든 문제와 아픔과 눈물과 한숨의 근원이 다 마르게 되는 놀라운 주의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밤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의 모든 혈루증이 주 안에서 깨끗게 되도록 주님의 옷자락을 만집시다. 여인의 믿음대로 역사하셨던 그 주님이 오늘 우리 각자의 믿음대로 역사하사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켜 주심을 믿습니다. 

오늘 이 밤 혈루증 여인이 만난 그 예수님을 만남으로 절망의 한계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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