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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하나님의 뜻-감사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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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감사 (살전 5:18)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말이 있습니다. 세상이 아주 많이 바뀌어서 전혀 딴 세대처럼 느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게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만, 그 중에 하나는 식량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옛날 하루 세끼 밥 먹기도 힘들었던 보리 고개 시절에는, 한 톨의 쌀이 얼마나 귀했습니까? 그런데 요즈음은 그토록 귀하게 여겼던 쌀도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 교회에서는 일 년에 3차 곧 설과 추석과 성탄절에 어려운 가정들을 조금씩 도와드리는 일을 하는데, 어떤 가정들은 쌀이라고 하면 사양을 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껴보았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이 고백한 대로 이밥 곧 쌀밥에 고기 국을 먹는 게 소원이라고 하는데, 남한의 경우 쌀밥을 먹고 고기 국을 먹는 것이 소원인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또한 예전에는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동 메달 하나만 따도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메달을 딴 선수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는데, 지금은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이나 동메달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지금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에서는 우리나라가 현재까지 무려 50여개의 금메달을 따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렇게 감동하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풍요속의 빈곤이라고 할까요? 그렇습니다. 풍요속의 빈곤이 바로 감사일 것 같습니다.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금년의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이지만, 사실은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영육간의 은혜를 회고해 보며 감사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지나 온 우리의 생애 발자국마다 하나님의 은총 아닌 것이 없지만, 금년에도 참으로 감사할 일들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먼저 국가적으로는 역사 이래 가장 많은 국가 원수들이 한 자리에 모인 G20 정상회의를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치러내고, 우리나라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고 교회적으로는 3천여 명의 전국 목사 장로들이 우리교회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우리 교회 역사상 가장 큰 행사를 은혜 중에 잘 치르게 해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베풀어주신 영육간의 은혜도 지극한 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잊기 쉬운 계명이 있다면 ‘전도하라’ ‘감사하라’ 등의 계명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소극적인 계명은 중요하게 여기면서, 적극적인 계명은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살인’이나 ‘강도’ 같은 죄를 범하면 큰일 날 줄을 다 알지만, ‘전도하라’ ‘감사하라’ 등의 말씀은 경시하기도 하고, 혹은 잘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 추수 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감사 생활과 신앙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감사는 신앙생활의 기본적 요소입니다.

신앙을 표현하는 예배 중 찬양, 기도, 헌금 등을 들 수 있으나, 감사는 그 중에서도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있어 마땅한 일입니다. 왜 그러합니까? 첫째,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감사하지 않는 것은 본분을 망각한 처사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알면서도 감사하지 않는 자이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일반 은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모든 조건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구원받아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성도는 죄와 사망의 세계에서 영원히 해방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특별 은총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입니다.

2. 감사하는 생활은 진보하는 생활입니다.

사람은 감사할 때가 있고,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할 때는 진보하고, 원망할 때는 퇴보하는 것입니다. 링컨은 “나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자랑하는 사람을 달라. 일을 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을 달라. 그는 더 잘 할 것이고, 더 오래 견딜 것이고, 더 많이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행복론을 쓴 ‘힐티’는 말하기를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했고, 루터는 “마귀의 세계는 감사가 없다.”고 말하면서, 감사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신앙생활은 감사하는 생활이요, 감사하는 생활은 진보하는 생활입니다. 처녀나 아이들은 웃음이 많지만, 노인은 웃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는 자라고, 처녀는 아름다워지고, 노인들은 퇴보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사람에게는 밝은 마음이 있고, 어두운 마음이 있습니다. 전자는 감사하는 마음이요 전진하는 마음이고, 후자는 원망하는 마음이며 퇴보하는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홍해를 기적으로 건넌 그들은, 해변에서 기쁨과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그 감격으로 미지의 광야를 단숨에 건널 듯 행진해 갔습니다. 그러나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점령한 열두 명의 정탐꾼이 돌아와서 부정적인 보고를 하자, 그들은 소리를 높여 원망했으며, 그 후로는 계속하여 전진하지 못하고 사십 년 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민족의 운명도 개인의 운명도 감사할 때 전진하고, 원망할 때는 후퇴하는 것입니다.

3. 감사하는 생활은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감사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감사는 단순한 정서적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에너지가 됩니다. 뇔르 C.넬슨은 ‘소망을 이루어 주는 감사의 힘’에서 “감사는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을 증가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고, 사랑이 넘치도록 만들며,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을 도모하도록 한다.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마치 기적처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Thanks! 마음을 여는 감사의 발견’이라는 책을 쓴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에먼스는 마이애미 대학교 심리학과 마이클 매컬로프 교수와 함께 감사에 대하여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을 A. B. C. 세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들에게 일주일동안 세 가지 말과 행동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A 그룹은 기분 나쁜 말과 행동에 집중하도록 했답니다. 불평하는 그룹입니다. B 그룹은 감사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감사하는 그룹입니다. 

C 그룹은 일상적인 말과 행동에만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감정을 유발하지 않는 일상적인 말만하는 그룹입니다. 관찰 결과 감사 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해 25퍼센트 더 행복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감사 그룹은 일상적인 말을 하는 그룹에 비해 건강했고, 더 많은 시간을 운동에 할애했다고 합니다. 감사는 감정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평균 수명이 9년까지 늘어나며, 감사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대학생들을 추적 연구한 결과, 16년 뒤에는 연평균 수입이 2만 5천 달러가 높았다고 합니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 119명을 대상으로 수술 1년 뒤를 추적 조사한 결과, 감사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건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사는 단순한 느낌을 뛰어 넘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기업 내셔널의 창업자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집안의 몰락으로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자전거포 점원으로 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온몸으로 살벌한 세상을 배워가며 570개 기업, 13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대기업의 총수자리에 까지 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말했는데, 곧 ‘가난’ ‘허약한 몸’ ‘못 배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것들을 불평의 조건으로 받아드린 것이 아니라, 감사의 조건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가난 때문에 부지런히 일했고, 몸이 약했기 때문에 건강의 소중함을 알아 몸을 아꼈고, 못 배웠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만들어 배우는데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 중 범사란 무슨 뜻입니까? 凡事란 ‘모든 상황 가운데’와 ‘언제든지’ 라는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성도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언제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은 무슨 일이 잘 될 때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감사하고, 나쁜 일이 생겼어도 감사하고, 학교에 입학을 했어도 감사하고, 떨어졌어도 감사하고, 취직이 되었어도 감사하고, 실직을 했어도 감사하고, 병이 나았어도 감사하고, 병들었어도 감사하고, 살아도 감사 죽어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신자가 범사에 감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얻은 성도의 본분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마치 승용차 한대를 선물 받은 사람은 기쁨이 충만해서 볼펜 한 자루 잃어버린 아까움을 능히 지워 버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내 몸이 조금 아프다는 것, 내 생활이 조금 어렵다는 것도, 구원을 받은 큰 기쁨 앞에서는 결코 불행으로 느낄 조건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만으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롬 8장: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불행한 것같이 보이는 일도 있으나, 그것이 결코 궁극적인 불행이 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불행한 조건이라고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더욱 영광을 들어내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보다 병들었을 때에 더 감사해야 할 경우가 있고, 실패가 성공보다 더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좋은 일에만 감사를 합니다. 그러나 시간을 좀 두고 살아보면 오늘의 좋은 일이 반드시 내일까지 좋은 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반면에 오늘의 실패와 불행이 내일에 얼마든지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에디슨은 귀머거리였습니다. 그것은 분명 그에게 불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에디슨은 그러한 불행을 극복하고 발명왕이 됩니다. 밀턴은 말년에 눈이 어두워지는 불운을 겪었는데, 그것이 그로 하여금 그 유명한 실낙원을 쓰는 계기가 됩니다. 

작가 스티븐슨은 결핵 말기의 고통 때문에 고생하였지만, 그 병으로 인하여 그는 보물섬이라는 명작을 쓰게 됩니다. 파스칼은 청년시절부터 그를 괴롭힌 온 몸의 통증 때문에 팡세를 완성하게 됩니다. 베토벤은 청각장애 때문에 고통을 이기는 동안 명곡들을 작곡해 냅니다. 헨델은 그 장엄한 메시야 곡을 열병으로 24일 동안 식음을 전폐한 생활을 하는 동안 영감을 얻어 작품을 완성합니다. 진주조개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날 몸속에 모래가 들어옵니다. 그 때 속살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러나 진주조개는 그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는 동안 값진 진주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유대 탈무드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행복은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 라고 했으며,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듯이, 감사한 만큼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빌헤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이다.”고 했습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기 보다는 감사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마음은 지옥과 같고, 감사가 없는 가정은 메마른 광야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지식과 명예와 권세와 부를 많이 쌓아놓았다고 해도, 감사가 없으면 진정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료이며 풍요로운 삶의 재료입니다.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에너지입니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말하기를 “인생에는 두 가지 삶 밖에 없다. 한 가지는 기적 같은 건 없다고 믿는 삶. 또 한 가지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후자이다.”고 했습니다. 사막에서는 물 한 방울 얻는 것이 기적입니다. 식물인간에게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기적입니다. 삶이 소중하고 감사한 사람에게는 땅 위를 걷는 것, 숨을 쉬는 것, 좋은 사람과 함께 마주 보는 것, 이 모두가 크나큰 기적인 것입니다.

체코가 자랑하는 작곡가로서 ‘안토닌 드보르작’이 있습니다. 주옥같이 아름다운 여러 음악을 작곡했는데, 그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신세계 교향곡’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작곡한 악보를 보면 어떤 곡이든지 맨 끝에다가 ‘하나님께 감사를!’ 이란 문구를 기록해 놓았다고 합니다. 힘들여 만든 음악의 말미에 ‘하나님께 감사를!’이란 문구를 기록해 놓은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드보르작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재능을 주셔서 이토록 좋은 음악을 작곡하게 되었는데, 또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건강과 환경을 주셨는데, 내 음악의 뿌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고 있는데, 그분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임자가 있습니다. 한 낱 미물인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안다고 했는데,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내 삶을 창조하신 분이 계십니다. 내 삶의 뿌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서는 향내가 납니다.

사람들은 다 사람들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특별히 정치인들은 민심을 파악하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 ‘이심’ 즉 대통령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관심의 초점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민심’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나?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공통된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즉 ‘천심’이 무엇인가? ‘천심’이 어디에 있는가? 에 관심을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가? 오늘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또는 찾기 위해 기도원으로 기도하러 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식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세상에 전기의 혜택 없이 사는 2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집에 식수 시설이 되어 있다면, 그렇지 못해 아무 물이나 마시는 1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루 천 원 이상으로 생활하고 있다면, 천 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루 한 끼라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8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당신은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할 100만 명의 환자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한 번도 전쟁의 위험이나, 수용소의 외로움, 고문의 고통, 굶주림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전쟁과 기아상태에 있는 5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체포, 협박, 학대, 고문,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없이 교회에 나갈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 30억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당신의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당신의 몸에 맞는 옷이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 75%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은행에 그리고 지갑에 약간의 돈이 들어 있다면, 이 세상의 8% 안에 드는, 감사할 이유가 있는 부자입니다. 부모님이 아직 살아 계시고 지금 혼자가 아니라면, 보기 드물게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또 당신이 글을 읽을 줄 안다면, 이 세상의 문맹자 20억의 사람들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에게 감사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줄 압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만 가지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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