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연평도포격

첨부 1


‘연평도 포격’.com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13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14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15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6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렘1;11-16)

 어제(2010. 11. 23. 화) 연평도 포격이 있었습니다. 3월에 천안함 폭침 이후로 불과 7개월만에, 그리고 휴전이후 처음으로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포격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보시는지요? 저는 오늘 예레미야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그 처음이 질문입니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여러분 눈에 무엇이 보이십니까?
예레미야의 눈에는 살구나무 가지가 보였습니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팔레스틴 지방에서 살구나무는 우리나라의 매화처럼 아직 추운 겨울인데 흰 꽃을 피우면서 봄을 예고해 줍니다. 다른 모든 나무들은 추위에 죽은 듯이 움츠리고 있을 때 살구나무는 생명력을 자랑하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나무를 솨케드(dqev;)라고 불렀습니다. 이 솨케드라는 말은 히브리어 동사 솨카드(dq'v)에서 왔는데, 이 말의 뜻은 “지킨다”라는 뜻입니다. 추운 겨울에도 살구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살구나무처럼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주실 것을 약속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구나무가지의 환상에는 하나님의 지키심에 대한 약속이 담겨있습니다. 성경에는 모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 약속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며 꿈이며 비젼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환경적으로는 불가능한, 추운 겨울입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지만 살구나무 가지에 싹이 트듯이,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살구나무 가지 환상은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시고,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실제로 예레미야가 사역을 해야 할 때는 따뜻한 봄철이 아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을 했고, 남 유다도 곧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서 나라가 망하는 시점입니다. 계절로 말하면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는 혹독한 겨울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데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말씀하셨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 모두가 달콤한 거짓 선지자들의 말만 듣고 예레미야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손가락질 하고 핍박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의 환상을 다시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약속하신 것의 온전한 성취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말씀의 선포를 물러서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때로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 겨울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그 살구나무의 가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 가지에 지금 꽃이 피어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반드시 꽃이 필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 살구나무가 그려진 안경을 쓰고서 읽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꼭 이루어진다. '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내가 지켜보리라'고 하면서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2번째로 예레미야에게 물으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이제는 끓는 가마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심판입니다.  끓는 가마는 심판이 극심하고 맹렬한 것을 말합니다. 또 그 끓는 가마의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져' 있습니다. 윗면에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은 그 솥의 끓는 물이 북쪽에서부터 이미 넘쳐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두려운 심판의 임박' 이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심판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들이 북한에게서 포격을 받고 전쟁의 위협을 받는 것처럼 당시 유다도 북쪽의 바벨론으로부터 공격을 받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왜 자기 백성인 유다를 심판하려고 하십니까?
예레미야는 두려운 심판이 임박한 이유를 16절에서 말하고 있는데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을 징계의 채찍으로 삼아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며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심판으로 표현됩니다. 노아 때,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審判)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무거울 때 하나님은 그 성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는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으시겠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끓는 가마의 환상을 보여주시기 전에 살구나무 가지 환상을 먼저 보여주셨는데 이것은 '나는 내 말을 꼭 지킨다'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남 유다왕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성도여러분, 2,600여 년 전에는 바벨론이 유다를 멸망시켰습니다. 끓는 가마가 쏟아져서 유다를 덮어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과연 북한이라는 끓는 가마가 우리 남한을 향해 쏟아질까요? 아니면 식어버리고, 기울어진 것이 바로 되어서 아무 염려가 없는 상태로 변할까요? 만약에 끓는 가마가 남쪽을 향해 쏟아진다면,  이렇게 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이며, 누구에게 달려있을까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환상, 이것은 2,600여 년 전,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환상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에 주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①우리 사는 한국사회(韓國社會)는 타락과 부패에 빠져있으면서 거기서 헤어 나오려 하지 않고 그것을 즐기며 오히려 더 깊이,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전 세계에서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어느 나라일까요? 대한민국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가정파탄이 최고로 많은 나라가 어디일까요? 대한민국입니다. 청소년 가출 일위도 , 일인당 술소비 최고도 우리나라입니다. 공무원들의 부정 부패 지수도 매우 높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사회는 갈등과 혼란 속에 있으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힘쓰지 않고 그 갈등과 혼란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갈등이야 있든지 말든지 자기와 상관이 없으면 무관심합니다. 자기만 생각합니다. 갈등이 더 깊어가도록 방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사회가 아닙니다. 인구의 1/4이 교회를 다니는 사회가 이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②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환상,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韓國敎會)에 주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을 중심에 두어야 할 교회가 다른 것을 중심에 둘때, 세속화될 때, 하나님은 교회를 심판하십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할 교회가 그렇게 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교회를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짠맛을 잃은 소금은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힌다는 말씀으로 이 사실을 확인하여 주셨습니다. 불의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교회가 침묵할 때 하나님은 교회를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적 앞에서 '아니오!' 할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만을 섬기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나는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나는 의로운 사람, 외로운 사람 편에 서 있습니다. 나는 이 악한 시대에서 예언자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할 자신이 있습니까? 

  또 하나 ③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사람들이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잘못 사용할 때도 반드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심판하셨습니다. 에덴에서 추방하시고 여러 가지 고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이라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 숭배, 불신앙, 불평으로 이 선물을 얼룩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세대를 광야에서 소멸시키는 것으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한국인들에게 주신 큰 선물 가운데 하나가 물질적인 부요입니다.  이미 ‘다문화사회’ 100만명이 넘어가는 사회입니다. 제가 학생때에나, 젊었을 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습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들어봤어도... 코리안드림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현실입니다. 이것이 선물이 아니면 무엇이 선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것이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책임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잘못한다면 심판을 받는 풍요입니다.
 만약에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이 이 시대를 심판하신다면 오늘 우리에게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자연현상을 사용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때는 홍수(洪水)로써,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硫黃)과 불을 사용하셔서 심판하셨습니다. 백두산 화산이 폭발한다면 전쟁에 못지않는 심판이 될 것입니다.  또한 공해나,  물 부족을 사용하실 지도 모릅니다.  질병을 사용하실 지도 모릅니다. 전쟁을 사용하실 지도 모릅니다.  천안함이나 연평도사건을 생각한다면 전쟁이 가장 유력합니다.  6·25 때 북한을 채찍으로 드신 하나님께서 북한을 심판의 도구로 다시 한 번 사용하시지 않을까,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전쟁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전쟁은 안 됩니다. 천안함이 10대나 더 폭침되고, 연평도뿐 아니라 서울이나 부산에 포탄이 떨어져서 군인과 민간인이 훨씬 더 많이 죽어도, 그래도 전쟁만은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시지요?  전쟁이 터지면... 전 후방이 없습니다. 많은 시설들이 파괴됩니다. 외국의 투자자본이 철수를 하고, 나라는 빈껍데기만 남습니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G20에서, 후진국이 됩니다. 30년은 나라가 후퇴합니다. 그런데 옳은 말인데..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경제(經濟)’ 때문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면서, 너무나 슬픈 말입니다. ‘같은 민족’이니까 싸워서는 안 된다 가 아닙니다. ‘경제 때문에 싸워서는 안 된다’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경제 때문에 통일이 되면 안 되고, 계속 이대로 분단국가로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통일 아니어도 잘사는데 굳이 통일해서 힘들게 살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역시 경제가 최우선입니다. 저는 경제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세가 노예로 수백년을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서 자유를 주어도 이스라에ㅐㄹ백성들은 노예시절을 그리워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가 그들의 구호였습니다. 만나와 매추라기를 매일 먹으면서도, 아무런 노동을 하지 않고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예배하는 데도.. 그들은 너무 심한 압제와 핍박이 있었고, 아들을 낳으면 부모가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던 노예생활을 그토록 다시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이미 풍요의 맛을 본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가난을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가슴이 아픈 것도 사실입니다. 정말 경제가 이토록 모든 것에 우선합니까? 정말 돈이 가장 최고의 가치인가요!! 우리가 언제부터 잘살았나요? 20년전, 30년 전에도 잘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또 노력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뜻을 헤아리는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끓는 가마가 북에서부터 기울어졌습니다. 심판의 가마가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리는 이때에, 그 끓는 물의 열기가 느껴지는 이때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심판 받을 요인들을 제거하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말씀 위에 서서 믿음을 굳건하게 하며, 성도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