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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심으라 (신 16: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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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으라 (신 16:13-17)


노을이라는 필명으로 쓴 “삶에서 참 값진 3초”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를 누르기 전 
3초만 기다리자.
정말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차 앞으로 다급히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3초만 서행으로 기다리자.
그 사람의 아내가 정말 아플지도 모른다.

친구와 헤어질 때 그의 뒷모습을
3초만 더 보고 있어주자. 
혹시 그가 가다가 뒤돌아 봤을 때 허전하지 않도록…….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는 때라도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화는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다가 한 아이와 눈이 마주 쳤을 때
3초만 손을 흔들어 주자. 
그 아이가 크면 분명 다른 아이에게도 그리 할 것이다. 

죄짓고 감옥 가는 사람을 볼 때 욕을 하기 전 
3초만 생각하자.
내가 그 사람의 환경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내가 화가 나서 소나기처럼 퍼부어도 
3초만 미소 짓고 들어주자.
그녀가 저녁엔 넉넉한 미소로 한잔 술을 부어줄지 어찌 아는가?

가만히 생각하면 3초의 여유도 마음먹기에 따라 30초의 여유로 바꿀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마음이 먼저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풍성한 수확은 씨 뿌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씨를 뿌릴 때 사람들은 풍성한 열매를 거둘 것을 기대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서는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씨를 뿌릴 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밭을 잘 갈아 엎습니다. 흙은 곱게 고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씨를 뿌립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그러니까 씨가 자라기에 좋은 땅을 만들고 난 다음 씨를 뿌려야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땅이 좋지 않으면 기대한 만큼의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그럼 무엇이 좋은 땅입니까? 온전한 믿음입니다. 그 어떤 시련이 있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때로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우리 앞을 가로막습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를 해할 권세는 없지만 우리를 속일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어려움이 생기면 그거 보라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냐고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어째 그런 일이 있냐고 합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를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는 아이가 다시 주저앉을 것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일으켜 세우고 또 일으켜 세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래야 그 아이가 서서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일으켜 세우는 그것이 어찌 사랑이냐고 사랑한다면 어찌 그럴 수 있냐고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세상 염려와 재물에 대한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염려되는 일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돈도 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염려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돈도 많이 벌고 싶은 마음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내일 염려까지 오늘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계속해서 염려하고 있지 말라는 것이지 염려하는 마음조차도 우리에게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잠시 염려하는 마음이 스쳐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때 얼른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의지하면 됩니다. 모든 염려 하나님께 아뢰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 평안함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돈에 관해서도 있는 것으로 족한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내게 없는 것 가지고 아쉬워만 하고 있지 말고 마중물의 원리를 따라 먼저 심으면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좋은 땅이라고 해도 씨를 뿌리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그저 잡초만 무성할 뿐입니다. 그러면 그 형편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많은 열매를 기대한다면 그만큼 씨를 많이 뿌려야 합니다. 밭은 넓은데 한쪽 모서리에만 씨를 뿌린다고 하면 아무리 풍성한 열매라고 해도 고만큼 밖에 더 거두겠습니까?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많이 거두기를 원한다면 많이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열매를 거두기를 원한다면 좋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콩을 거두기를 원하면 당연히 콩을 심어야 되겠죠. 보리를 심는다면 당연히 보리를 거두겠죠. 그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라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우리가 종종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농사꾼은 거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씨앗을 삼아 다음 씨 뿌릴 때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내게 없는 것이라면 씨앗을 파는 곳에 가서 좋은 씨앗 내가 거두기를 원하는 그 씨앗을 사서 준비를 합니다. 종자가 나쁘면 열매도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가장 좋은 것으로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심되 거두고 싶은 만큼 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말라기를 통해 마중물의 원리로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십일조와 봉헌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도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끼는 것 좋지만 그것도 아껴야 할 곳에 아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인색하면 안 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보물창고가 열려지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보물 창고를 활짝 여시도록 그렇게 감사함으로 드리고 즐거워하며 드려야지 그것을 아까워서 벌벌 떨면서 쥐꼬리만큼 드린다고 할 때 하나님이 그것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깝습니다. 내가 저런 사람에게 주는 것이 너무 아깝다 그러면 아깝지 않은 사람에게 몰아주지 않겠습니까? 그럼 얼마큼 드려야 하느냐? 

모든 거둔 것의 십분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십분의 일이라는 것은 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마중물을 통해 물이 나오도록 할 때 물이 나오게 되기까지 부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십분의 일입니다. 그것도 감사함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씨 뿌림의 원리를 실천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풍성한 수확은 은혜의 가꿈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농부는 먼저 밭을 준비할 뿐 아니라 씨를 뿌리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밭을 돌봅니다. 김을 매줍니다. 비료를 줍니다. 벌레를 잡아 줍니다. 그런 수고는 열매를 가두기까지 계속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에게 하신 말씀이 네가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먹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는 같은 땀을 흘려도 이제는 그 의미가 달라야 합니다. 전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복 주심을 믿고 수고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일할 거리가 있음을 감사하고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더불어 힘주심을 감사하고 건강 주심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 힘이 드는데요? 그렇습니까? 당연히 힘이 들겠죠? 어찌 힘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절제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쉴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을 하되 집중의 원리를 활용해야 합니다. 같은 성격의 것을 모아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일은 오늘하고 내일 일은 내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고 내일 일을 오늘 하려고 하니까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를 아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이 내게 힘을 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를 기억하고 나 힘들어 나 피곤해 하고 스스로 암시하지 마십시오. 나 힘들어가 아니라 하나님이 힘주셔 그러면서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힘주세요. 그러면서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 늘 산에 다닌다고 해서 산에 오르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좀 더 쉬워질 뿐이지 좀 더 힘이 생겼을 뿐이지 그래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그것을 계속해서 극복해 나가는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도 주시고 필요한 것도 채워주십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잠도 못자고 너무 피곤하다가 아니라 잠시를 쉬었어도 하나님이 나에게 단잠을 주셨다고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잠이라는 것도 그 잠자는 시간이 얼마만큼 많으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잤느냐 입니다. 그러니까 단 오 분을 자도 아주 깊이 잠을 자게 되면 몇 시간 잔 것보다 더 개운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기쁨으로 하고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짜증을 내면서 하면 힘은 힘대로 들고 결과도 시원찮습니다. 그러나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면 우선 힘든지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해냈다고 하는 뿌듯함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게 되죠. 그래서 더욱 즐거워집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 함께 일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심을 기억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왜 밤낮 나만 하냐고 하지 마시고 밤낮 내가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그 일도 즐겁고 그렇게 해 나가다 보면 언제부터인가 그런 내 옆에 돕는 사람이 있게 하나님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파 죽겠어가 아니라 아픈 몸을 가지고도 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나마 내가 움직일 수 있으니 감사하십시오. 이런 몸을 가지고도 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고백하십시오. 나 정말 죽겠어가 아니라 그런 나를 통해서도 힘주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다고 고백하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수고가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풍성한 수확은 나눔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돼지가 젖소에게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은 사람들에게 햄과 베이컨과 고기를 제공하는데도 ‘게으름’과 ‘추함’과 ‘우둔함’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사람들을 위해 단지 우유를 제공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온몸을 희생해 유익을 주지 않은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나를 칭찬하지 않는 것일까?” 
젖소는 한참 생각한 후 입을 열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지. 너는 죽어서 사람들에게 고기를 주지만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 신선한 우유를 제공한단다. 바로 그 점이 다르단다.” 
그제야 돼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후에 많은 유익을 끼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이웃을 위해 선을 행하는 것은 더욱 값진 일입니다. 사랑과 재물의 구두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이 아름답지 못하면 내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은 오늘 뿌린 사랑의 열매를 수확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한 사람이 많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얼마나 추수를 많이 했는지 자기가 지닌 창고를 가지고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창고를 지어야만 했습니다. 창고마다 가득가득 채웠습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몇 년을 먹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좋은지 잠도 잘 안 옵니다. 그가 잠자리에 누워서 생각을 합니다. 이제 추수도 마쳤겠다 창고마다 가득가득 다 채웠겠다 이것만 가져도 몇 년을 먹고도 남을 정도가 되니 내일부터는 실컷 먹고 마시고 내 마음껏 즐기며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흐뭇하고 신이 나는지 입가에 웃음을 하나 가득 머금은 채 잠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그는 그 밤이 저의 마지막이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에서 내려다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네 인생이 참으로 어리석구나. 너는 어떻게 너밖에 모르냐? 네가 그 많은 것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 다 누구 때문이며 무엇 때문인지 너는 알지 못하고 있구나. 너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어떻게 내가 더 두고 볼 수 있겠느냐? 안 되겠다. 네 생명의 날은 오늘까지로 끝이다. 그러니 이가 거두고 창고에 가득 채운 것이 더 이상 네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왜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것은 저가 먼저 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첫째는 절기를 지키되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와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너와 네 자녀 뿐 아니라 주의 일을 하는 주의 종들 그리고 노비와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곧 섬기며 나누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부모든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식들에게 좋은 것으로 먹이고 싶고 입히고 싶고 가르치고 싶은 것 당연합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보여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섬기며 나누는 것입니다. 그 섬기며 나누어야 할 첫 번째 대상은 주의 일에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를 위한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를 위한 중보자요 축복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서 섬기는 분들입니다. 성도들의 아픔을 보면서 내 일처럼 아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립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마음껏 주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으로 섬기라고 했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하신 이유도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순복입니다. 좋은 스승 밑에 좋은 제자가 나는 법이죠. 지난 번 동계 올림픽에서 피겨 스케이트의 김연아 선수라든가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수영의 박태환 선수가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들의 자질도 뛰어나지만 그들에게 뛰어난 좋은 코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코치라 해도 그 권위에 따르지 않으면 그 가르치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무슨 성과를 거둘 수가 있겠습니까? 거기에 더하여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하여금 또한 아무런 염려 없이 주의 일에 전념하며 복음만 전할 수 있도록 모든 뒷받침을 다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자기 생활에 염려가 된다면 마음이 그만큼 나뉠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나만도 못한 사람들이라든가 나그네들 그리고 고아와 과부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을 섬기며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여야 합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는 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혼자서는 설 수도 없는 사람을 걸으라고 뛰라고 한들 그들이 한 걸음인들 걸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안 되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축해 주어야죠. 그렇게 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점차 걷다 보면 나중에는 혼자서도 일어서게 되고 이윽고는 한 걸음 한 걸음 스스로 걷게 되고 이윽고는 한 걸음이 두 걸음이 되고 세 걸음이 되다가 나중에는 더욱 힘이 생겨 뛰게도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잠언서에서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왜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되느냐 하면 나도 그런 어려움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힘들어 할 때 말 한마디 푸근하게만 해 주어도 그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아마 겪어 보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지극히 작은 자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이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지극 정성으로 그들을 섬기시며 필요한 것으로 함께 나누도록 하십시오. 

둘째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일 년에 세 번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라고 하십니다.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벗어난 날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광복절에 해당이 되는데 그럼 우리의 영혼의 광복절은 언제일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날도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세상에 보내주신 그날 다시 말해서 성탄절을 우리 구원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 지키는 것도 바람직하다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입니다. 

물론 이 날들뿐 아니라 모든 주일을 주의 날로써 온전히 예배하며 주의 전에서 섬겨야 하겠지만 특별히 이 삼대 절기는 더더욱 주님께서 택하신 곳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으니 철저히 주의 전 교회로 나와서 예배하며 섬겨야 합니다. 뭐 형편상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우리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리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참 잘 하셨습니다. 

셋째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 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주의 전에 나와서 어떤 마음으로 즐거워해야 하느냐 하면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네 모든 소출에 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모든 소출에는 우리 몸의 소생과 우양과 떡반죽 그릇이 다 포함이 됩니다. 그러니까 자녀가 잘 되고 우리의 생업이 복을 받고 가정이 복을 누리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즐거워하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넷째로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 때 빈손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나는 그렇게 섬기며 나눌 것이 없다고요?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앞에서 마중물의 원리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섬기며 나누게 될 때 마치 씨앗을 좋은 땅에 뿌린 사람과 같아서 백배 육십 배, 삼십 배 로 가두게 될 것입니다. 
그럼 언제부터 하느냐 바로 오늘부터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그렇게 섬기며 나눌수록 더욱 풍족하게 되는 아름다운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하지만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모든 수고를 다한다고 해도 거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풍성한 수확은 어림도 없습니다. 먼저 싹이 나게 하시는 분도 자라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심고 가꾸고 거두는 것은 우리가 한다고 해도 싹이 나게 할 능력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자라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더욱 열매는 더 그렇습니다. 우선 날씨가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날씨가 좋아야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지 사흘 걸러 비가 내리고 기온도 곤두박질친다면 거기에 무슨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는 바울 사도의 고백을 우리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으신다면 우리 가운데 누구 하나도 온전할 수 없고 따라서 풍성한 열매는 기대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십시오. 날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주의 종과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고를 아끼지 마시고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섬기며 나누도록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풍성함으로 채워주시기 위해서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순적하게 열려지고 모든 길이 평화로우며 즐거움으로 가득한 풍족한 삶을 항상 누리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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